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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누리가 큰 위기에 빠졌던 사실을 모르는 고객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큰 만족감을 느끼며 돌아간 오후 무렵, 주방에는 또 한 차례의 태풍이 불어 닥쳤다.
"이것들은 뭡니까?"
"강릉에서 가져온 동해안 특산물입니다."
"이건요?"
"그건 횡성에서 갓 잡은 한우입니다."
"여기가 가온누리죠?"
"그쪽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우리는 군산에서 왔습니다."
"그쪽 분들도 유병만 회장님이 보내서 왔는가요?"
"그렇습니다. 저희들은 각종 야채를 비롯해서 서해안에서 오늘 잡은 각종 특산물을 가져왔습니다."
거리가 가까운 서울과 수도권은 대부분 오전 중에 다녀갔다.
반면 지방의 조직들은 거리가 있는 만큼 이제야 당도했는데 그들은 노영필이 보내준 목록의 물품만이 아니라 지역의 특산물까지 함께 가져왔다.
덕분에 팔도의 싱싱한 특산물을 공짜로 얻은 가온누리는 특별 서비스라는 명목으로 더욱 풍성하고 맛있는 요리를 제공해서 고객들의 감동을 얻어냈다.
한편 이번 일을 주도한 박현식과 장철우는 자신들의 예상과는 달리 기온누리가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사장님, 놈이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도 믿기지 않은데 방금 그곳을 다녀온 직원들의 말에 의하면 평소와 다름없이 영업을 하고 있답니다."
"식자재가 턱없이 부족할 텐데 무슨 수로 장사를 한다는 것입니까?"
"아무래도 어느 정도의 식자재를 비축하고 있었나봅니다."
"아무리 식자재를 비축했다고 해도 신선도가 떨어지거나 평소에 비해서 음식이 충실하지 못했을 텐데, 그것과 관련한 클레임은 발생하지 않았답니까?"
"놈이 무슨 수를 썼는지 평소와 차이가 없어서 그런 클레임을 제기한 고객은 없었다는 군요."
"그런 차이도 모르다니, 그곳을 찾는 손님들의 수준도 알만 합니다."
"촌스럽게 한식을 찾는 손님들이면 뻔 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이번 일로 놈이 크게 당황해하는 꼴을 기대했는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신성 OB파의 적극적인 개입을 모르는 박현식과 장철우는 운이 좋아서 가온누리가 이번 일을 용케 넘겼다고 여겼다.
그런데 계속해서 아쉬워하는 장철우와는 달리 박현식은 또 다른 농간을 꾸미는 것인지 묘한 미소를 그렸다.
"장 마스터, 너무 낙담하지는 마십시오. 그 방법이 안 되면 다른 방법으로 놈을 물 먹이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장님, 따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이번에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을 펼칠 생각입니다."
"고전적인 방법이요?"
"사람을 사서 놈의 가게에서 진상을 부릴 생각입니다."
"진상이라면 괜한 트집을 잡겠다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척 봐도 조폭 같은 이들이 몰려가서 진상을 부리면서 난동을 피우면 손님들이 얼마나 불안해하겠습니까?"
"난동을 피우면 그자가 경찰을 출동시키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겠죠. 그래서 선뜻 신고를 못하게 만들 생각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손님들끼리 서로 싸우게 할 생각입니다."
"동원한 조폭들을 이용해서 일반 손님을 건들겠다는 것입니까? 그건 효과는 좋겠지만 조폭들이 큰돈을 요구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조폭들에게 당한 손님들과의 합의도 결국은 우리가 부담해야지 않을까요?"
"그러니 처음부터 두 패를 동원해야죠."
"두 패를 동원한다면 서로 짜고 싸우게 하겠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분위기만 험악하게 하고 실상은 다친 사람이 안 나오는 거죠. 그러니 합의할 필요도 없고 고작해야 경범죄 처벌에 그치겠지만 가온누리는 상당한 피해를 볼 것입니다."
"오! 그것 괜찮은 방법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적당히 각색해서 기사화하면 놈에게 적잖은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노리는 것도 그 부분입니다. 마치 가온누리를 조폭들의 소굴로 기사를 쓰면 그곳을 찾는 고객들의 발걸음도 자연스럽게 뜸해질 것입니다."
"조폭들의 소굴이라니, 그것 참 괜찮은 생각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그 방법을 쓰는 거였는데 괜히 엉뚱한 일에 힘을 뺀 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괜찮은 방법을 찾았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으면 됩니다."
장철우와 대화를 마친 박현식은 심부름센터에 전화해서 일을 맡기고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이는 호텔의 관계자와 만남을 주선해주기로 한 부분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는데 전화를 받은 이는 보좌관이었다.
"아버지는 어디 가셨습니까?"
-의원님께서는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거기에 참석하셨습니다.
"아버지와 꼭 통화할 내용이 있는데 언제쯤 전화하면 통화가 가능할까요?"
-다음 달로 예정된 오바나 대통령의 방한과 관련된 회의라 회의가 많이 늦어질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다음 달에 방한합니까?"
-언론에도 수차례 보도가 되었는데 아직 모르고 계셨습니까?
"그러고 보니 TV에서 관련 기사를 본 것 같습니다."
-의원님 나오시면 박 사장님이 전화 하셨다고 전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얘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던 장철우는 박현식의 입에서 미국 대통령의 방한 얘기가 나오자 문득 멈춰 서서는 뭔가를 한참 생각했다.
그러더니 박현식의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바짝 다가와서 질문을 했다.
"사장님, 미국의 오바나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합니까?"
"다음 달에 방한을 한다고 합니다."
"잘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적극 이용해야 합니다."
"무슨 말이죠?"
"미국 대통령이 방한을 하면 식사를 한국에서 드실 것 아닙니까?"
"당연히 그러겠죠."
"제가 그분의 요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장 마스터가 그분의 요리를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제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고 동시에 파밀시에테도 홍보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 점을 잘만 활용하면 호텔 입점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을 우리 매장으로 초청하자는 건가요?"
"그럴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솔직히 그건 무리일 것입니다."
파밀시에테는 고급과 정통을 표현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가족 모임에는 결코 부족하지 않은 장소였다.
그러나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을 초청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기에 장철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죠?"
"미국의 대통령이 방한하면 청와대에서 식사를 하지 않을까요?"
"모든 끼니를 그곳에서 해결하지는 않겠지만 최소 한 번 정도는 드시겠죠."
"의원님의 힘이면 제가 한시적으로 청와대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게다가 저는 미국이 자랑하는 CIA 요리학교 출신이고 오랜 미국 생활로 누구보다 미국인의 입맛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에도 전속 셰프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 의원님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들어간다고 해서 마스터 셰프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청와대에 들어가게만 해달라는 것입니까?"
"단 한 가지 메뉴라도 좋습니다. 제가 오바나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서 청와대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특별초청을 받았다는 명목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장철우의 말대로 그가 청와대에 들어가서 요리를 한다면 이는 파밀시에테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였고, 호텔 입점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
다만 보궐 선거를 통해 여의도에 처음 입성한 아버지가 그만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였는데 일단 만나서 얘기는 꺼내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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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처의 돌연한 공급 중단으로 큰 위기에 빠졌던 가온누리는 새로운 거래처를 확보하면서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일이 박현식의 농간임을 알고 있는 지훈은 그때의 일을 교훈삼아 정식으로 공급계약서를 작성했고, 계약서에 일방적인 공급 중단과 관련한 페널티 조항을 삽입해서 다시는 그런 농간에 휘말리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를 했다.
"사장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이요?"
"J&J 식품의 영업이사인데 사장님을 꼭 뵙겠다고 합니다."
"어디 계시죠?"
"홀에 계십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J&J 식품은 캔류를 비롯한 가공식품과 맛살이나 동그랑땡 같은 냉장과 냉동식품을 만드는 대기업이었는데 가온누리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는 회사였다.
하지만 가게까지 찾아와서 할 말이 있다는 말에 지훈은 그가 있다는 테이블로 다가가서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를 찾는다고 해서 나왔습니다."
"혹시 이지훈 사장님 되십니까?"
"그렇습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J&J의 영업이사 한승훈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가온누리의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사장님을 찾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가온누리의 음식 맛을 칭찬했던 한승훈은 어느 순간 업무제휴와 관련한 얘기를 꺼냈다.
그가 말한 업무제휴란 자신들의 제품 중에 프리미엄 제품군에 가온누리의 상표를 사용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는 가온누리의 명성이 워낙 대단하기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가온누리의 상표를 쓰겠다는 것이었는데 지훈은 거절했다.
"이 사장님, 상표를 그냥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인 만큼 가온누리에도 적잖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 가온누리를 높이 평가해서 그런 제안을 해주시는 것은 고맙습니다만 저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혹시 거절하시는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전 음식만큼은 건강해야 하며 최고의 식자재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J&J는 위생적이고 건강한 식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공식품은 그 특성상 여러 가지 화학 첨가물이 들어간 만큼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가온누리와는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제조과정에서 화학 첨가물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인체에는 무해합니다."
"죄송합니다만 그 문제로 한 이사님과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사장님, 제가 어떻게 하면 수락을 하시겠습니까?"
"죄송하지만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고 해도 가공식품에 우리 가온누리의 상표를 빌려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 말씀은 그 어떤 회사와도 계약을 안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지금은 모르고 있지만 다른 시간대에서 미래를 살다온 지훈은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각종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가온누리의 상표를 쓰고 싶다는 한승훈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런데 한승훈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는지 또 다른 제안을 해왔다.
"이 사장님의 뜻이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그럼 가맹점 사업을 함께 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가맹점이라면 프랜차이즈를 하자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저희 J&J에서 자금과 마케팅 그리고 가맹점 관리를 담당하고, 이 사장님의 가온누리를 전국에 오픈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온누리의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J&J라면 제가 아니더라고 해도 충분히 프랜차이즈 사업을 펼칠 수 있을 텐데 굳이 저와 손을 잡으려는 이유가 뭡니까?"
"그거야 가온누리의 음식이 워낙 맛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희 회사는 가맹점이 국내에서 자리를 잡는다면 이후에는 해외에도 진출을 할 생각입니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가온누리의 음식을 맛보게 하고 싶은 것은 지훈도 원하는 바였다.
그러나 굳이 그 일을 대기업과 손잡을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대기업은 그 무엇보다도 이윤추구를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기에 그들과 손을 잡았다가는 맛과 건강을 함께 추구하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직까지는 가맹점을 모집했을 경우 맛의 퀼리티를 보장할 자신이 없었다.
무슨 말이냐면 가온누리가 이토록 사랑받는 배경에는 음양오행기의 효능이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는데 가맹점이 개설될 경우 그곳의 음식에까지 음양오행기를 퍼부을 자신이 없었다.
"죄송합니다만 그 제안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사장님, 당장 대답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만큼 좀 더 심사숙고를 해보시지요."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제 대답은 변함없습니다."
"혹시 그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