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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박현식의 표정이 이상했다.
'저놈이 수아가 아닌 다른 계집과 놀아난다고? 만약 이 사실을 수아가 알면 어떻게 될까?'
박현식은 여전히 수아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훈이 소중하게 여기는 거라면 뭐든 뺏어버리고 싶은 그는 이 상황을 잘 이용하면 수아를 어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현장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꺼냈는데 아직은 새벽이라 너무 어두웠고, 무엇보다도 지훈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덩치들 때문에 무슨 상황인지 전달하기가 어려웠다.
"지원아."
"왜?"
"저 덩치들 네가 불렀다고 했지?"
"맞아. 네가 손 좀 봐달라고 해서 내가 알고 있는 덩치들을 급히 동원했어."
"저자들에게 연락해서 그냥 물러나라고 해."
"뭐라고?"
"저것들, 그냥 모텔에 들어가라고 해."
"손을 보라고 할 때는 언제고, 왜 그래?"
"사정이 있으니까 어서!"
"알았어."
박현식의 재촉에 유지원이 핸드폰을 매만지며 영업부장의 전화번호를 찾고 있을 무렵 지훈은 덩치들의 앞을 가로막은 채 예은이를 재촉하고 있었다.
"예은아, 빨리 숙소로 돌아가."
"오빠, 어떡하려고?"
"내 걱정 말고 어서!"
"이것들이 장난하나?"
"이봐, 너희들도 남자라면 여자는 보내줘라.."
"이게 잔머리 쓰고 있네. 계집을 보내서 경찰에 신고하려는 것을 모를 것 같아."
"신고가 문제라면 어디가 되었든 너희들이 가자는 곳으로 무조건 따라갈 것이니 여자는 보내주라."
"퍽이나 그러겠다."
"나도 남자다. 남자의 자존심을 걸고 맹세하겠다."
"오빠, 같이 가."
"예은아, 고집부리지 말고 어서 가. 난 민간인이라 괜찮지만 넌 연예인이라 이런 일에 휘말리면 골치 아플 수도 있어."
예은이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그녀의 유혹을 뿌리치려고 했던 지훈에게 지금의 상황은 위기가 아니라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기에 지훈은 우르르 몰려온 덩치들을 핑계로 예은을 보내려고 했는데 그 사정을 모르는 조폭들은 신고를 우려해서 좀처럼 협조를 안 했다.
하지만 그래도 말이 통하는 이가 있었는데, 분위기로 봐서는 그가 덩치들의 우두머리 같았다.
"여자는 보내줘라."
"형님?"
"여자는 볼 일 없으니까 보내줘, 어서!"
"예은아, 내 걱정 말고 어서 가!"
"오빠."
"빨리 가."
머뭇거리는 예은을 억지로 떠밀어 보낸 지훈은 그녀가 다시 올까 싶어서 우두머리에게 앞장서라고 재촉했다.
"형님, 어떻게 할까요?"
"골목으로 데려간다."
"새꺄, 따라와."
"너 새끼, 잔 머리 굴렸다가는 뒈질 줄 알아."
"나도 내가 한 말은 지키는 사람이니까 염려 마시오."
싸움을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음양오행기가 있는 이상 쉽게는 안 당할 것 같은 생각에 덩치들의 뒤를 따르던 지훈은 아직도 자신을 바라보는 예은을 향해서 빨리 가라고 손짓을 했다.
선두에 서서 골목으로 들어가던 우두머리가 핸드폰을 받은 것은 그때였다.
"뭐라고, 그냥 철수하라고?"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생각이 변했다면 할 수 없지."
영업부장에게 전화를 건 이는 유지원으로, 그는 박현식이 시키는 대로 아까의 부탁을 취소했다.
처음부터 이번 일이 썩 내키지 않았던 영업부장은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에 덩치들을 제지시키고는 클럽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돌렸다.
같은 시각, 택시에 오른 예은은 덩치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경찰에 신고했다.
한편 지훈을 계속 주시하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박현식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예은이가 혼자 택시를 타고 사라지자 계획이 틀어졌다는 생각에 욕설을 뱉었다.
"아이, 씨불! 그냥 가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현식아, 왜 그래?"
"계집이 가버렸잖아."
"그게 왜?"
"아후~! 됐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하려면 해야 할 얘기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그게 귀찮고 짜증난 박현식은 설명을 포기했다.
하지만 괜히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서 이번에는 말을 바꿔서 지훈을 호되게 두들겨 패라고 했다.
"이미 나와 버렸을 텐데?"
"기어이 찾아서 조지라고 해."
"다시 조지라고 하라고?"
"그래! 뭐해 후딱 연락 안하고?"
"아... 알았어."
박현식의 변덕에 입장이 난처해진 유지원은 어찌할 바를 몰라서 시간을 끌다가 때마침 근처에 당도한 영업부장에게 다가가서 재차 부탁을 했다.
그러나 다시 몰려간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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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어떤 음모가 펼쳐졌는지 모르는 지훈은 사우나에 들렸다가 시간 맞춰서 가온누리로 이동했다.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부재중 전화가 열 번 넘게 왔는데 전부 예은이의 전화였다.
'걱정을 많이 한 것 같은데 연락을 해줘야겠어.'
전화를 걸어서 예은을 안심시킨 지훈은 평소와 똑같은 시간에 주방으로 내려가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다.
잠을 못잔 통에 몸은 뻐근했지만 손님들을 위해서 즐겁게 요리를 하며 음양오행기를 사용하다 보니 어느새 피로감도 눈 녹듯이 사라졌고, 그러는 사이 저녁 무렵이 되었다.
박현식의 의뢰를 받은 심부름센터에서 동원한 두 패거리가 가온누리의 주차장에 당도한 것은 그때였다.
"대홍아, 여기지."
"맞아."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니까 끝까지 연기 잘해야 한다."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
"범석 형님, 우리는 어디 식구인 척 해야죠?"
"서울 바닥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신성 OB파가 제일 잘 나가니까 거기 식구인 척 해."
"범석아, 그러면 우리는 오성파인 것처럼 행동할게."
"그래. 그리고 손님들이 그렇게 오해할 수 있도록 그 얘기를 큰소리로 떠들어."
"알았어."
심부름센터에서 동원한 이들 여섯 명은 동네에서 어영부영 사고나 치고 다니는 양아치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늘 만큼은 잘나가는 조폭처럼 보이기 위해 다들 양복을 빼입고 온 상태였다.
"범석아, 만약 경찰들이 오면 어떻게 하지?"
"그러니까 아무도 신고 못하게 손님들을 상대로 잔뜩 겁을 줘야지."
"그래도 신고를 하면 어떡해?"
"까짓것 지구대로 끌려가서 조서를 작성하겠지. 하지만 우리가 서로 고발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기껏해야 벌금이나 때리고 말거야."
"영업방해죄면 벌금 액수가 상당하지 않을까?"
"그건 얼마 안 돼. 그리고 벌금은 의뢰자가 처리해준다고 했으니까 걱정할 것 없어."
그 뒤로도 입을 계속 맞춘 이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 범석이 포함된 세 명이 먼저 가온누리로 향했다.
양아치에 불과하지만 제법 잘나가는 조폭 행세를 해야 하기에 잔뜩 무게를 잡고 가온누리에 다가선 이들은 절로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꾸벅 인사를 해오자 깜짝 놀랐다.
그러나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면서 자신들을 향해서 인사를 한 종업원의 머리를 호기롭게 쓰다듬으려고 했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자식, 인사성 하나는 밝구나."
"고객님 예약은 하셨... 엥! 너희들은?"
"헙! 하마 형님."
"형님, 여기는 어떤 일이십니까?"
입구에 서서 범석 일행을 향해서 깊숙이 고개를 숙인 도어맨은 하마였다.
주부습진이 거의 완치되어서 내일부터는 주방 일을 하게 된 하마는 오늘따라 기분이 무척 좋은 상태였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밝고 친절하게 도어맨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평소 안면이 있는 성북동의 양아치 조무래기들을 만나게 되자 솔직히 쪽 팔렸다.
그도 그럴 것이 범석을 비롯한 세 명은 하마가 예전부터 잘 알고 있던 자들로 자신의 기침소리에도 벌벌 떠는 자들이었다.
참고로 범석 일행이 오늘의 일에 동원된 것은 심부름센터에서 가온누리 인근의 양아치 중에서 대상자를 물색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보면 모르냐? 여기가 내 일터다."
"일성건설은 어떡하고요?"
"조직의 오더를 받고 그쪽 일은 정리했다."
"조직의 오더요?"
"그래. 회장님의 특별 지시를 받고 얼마 전부터 여기서 일하고 있다."
"하마 형님, 범수 형님이 언제 사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하셨습니까?"
"무식한 것들, 내가 회장님이라 지칭할 수 있는 분이 어떤 분이겠느냐? 범수 형님이 대단하기는 해도 감히 회장님이란 칭호를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지."
"그러면 혹시 유... 유병만 회장님?"
"맞다."
"오! 형님, 북악파에서 신성OB파로 올라가신 것입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운이 좋았는지 회장님 눈에 들어서 발탁되었다."
"형님, 축하드립니다."
"저희는 형님이 언젠가는 큰물에서 노실 줄 알았습니다."
대부분의 양아치들은 자신들도 정식 조직원이 되어서 폼 나게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무나 조직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양아치들은 속칭 똘마니 역할을 하면서 조폭들을 형님으로 모셨다.
아울러 그 와중에 주워들은 조직의 상황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니면서 마치 자신들도 조폭인 것처럼 행세하고 다니기를 좋아했다.
아무튼 북악파가 신성 OB파의 하부 조직이며 하마가 북악파의 넘버 3임을 잘 알고 있는 범석 패거리는 자신들의 임무도 망각하고 부러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하마를 바라봤다.
"그런데 너희들이 이곳에는 무슨 일이냐?"
"그게 그러니까... , 하도 소문이 자자해서 밥 한 끼 먹어보려고 왔습니다."
하마가 여기서 일하고 있다는 말에 차마 원래의 방문 목적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는 범석은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그럴듯한 핑계를 댔다.
"그랬구나, 잘 왔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을 보고 너희들도 짐작했겠지만 이곳은 회장님이 애지중지 하시는 곳이다."
"유병만 회장님이 이 식당을 애지중지 한다고요?"
"그래. 이곳의 이 사장님께서 회장님의 목숨을 구해줬다."
"여기 사장님이 유병만 회장님의 목숨을 구해줬다고요?"
"맞아."
"그러면 누가 멋모르고 이곳에서 까불었다가는 뼈도 못 추리겠네요?"
"그자는 저승행 특급열차에 몸을 실었다고 봐야지. 그리고 회장님이 내게 지시한 비밀 임무가 바로 그것이다."
"비밀 임무요?"
"회장님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 조직 내에서 인재를 찾으셨고, 내게 비밀리에 이 사장님의 호위를 부탁했다."
"그럼 형님은 일종의 특별요원인 것입니까?"
"그런 셈이지. 난 회장님의 지시를 받아서 신분을 숨긴 상태로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오! 특별요원이라니, 죽이는데요."
"그것도 회장님의 지시를 받고 움직인다는 것 아니냐?"
"역시 하마 형님이십니다."
도어맨부터 시작해서 바쁠 때는 서빙까지 해야 하는 하마는 유병만에게 특별 임무를 받았다는 말로 자신의 역할을 적당히 포장해서 쪽 팔림을 방지했다.
반면 그 내막을 모르는 범석 패거리는 자신들이 호랑이 아가리에 고개를 내밀 뻔 했다는 생각에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