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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에 의해서 6인석 테이블에 나란히 앉게 된 범석 패거리는 음식을 앞에 두고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휴~! 범석아, 오늘 일은 어쩌면 좋냐?"
"어쩌기는? 조용히 찌그러져 있다가 얌전히 돌아가야지."
"그래야겠지?"
"대홍 형님, 당연한 것을 왜 물어보십니까?"
"대홍 형님은 우리 얘기를 듣고도 그런 말을 하십니까? 여기 사장님과 유병만 회장님이 아주 특별한 관계라는데 까불었다가는 어떤 일을 당할 것 같습니까?"
"늘씬 두들겨 맞겠지."
"고작 그걸로 끝나겠습니까?"
"대홍 형님, 어쩌면 산 채로 수장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운이 좋은 경우이고 재수 없으면 장기며 눈알까지 털리고 개밥 신세가 될 수도 있습니다."
"누가 그걸 모르냐?"
"알고 계시면 숨소리도 크게 내지 말고 밥만 먹고 곱게 돌아가야죠."
"나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면 착수금 받은 것을 토해내야 하니까 그렇지."
입구에서 하마와 마주했을 때부터 이번 의뢰는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막말로 신성 OB파가 버티고 있는 가온누리를 상대로 겁도 없이 까불었다가는 그대로 용궁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선불 형식으로 먼저 받은 착수금이 문제였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돈을 써버린 상태였기에 착수금을 돌려주고 싶어도 돌려줄 수가 없었다.
"우리 잘못도 아닌데 착수금은 왜 돌려줍니까?"
"일을 시작도 못 했으니 돌려줘야지."
"그러면 지금 먹고 있는 밥값도 우리가 부담해야 합니까?"
"솔직히 그럴 수는 없지."
"그러면 밥값을 제외하고 토해내면 될 것 아닙니까?"
"돈이 있어야 토해내지."
"돈을 받았으면 남아있을 것 아닙니까?"
"무식한 새끼, 유흥주점의 술값은 공짜냐?"
"그건 형님들이 기분 좋게 내신 것 아니었습니까?"
"소주라면 모를까, 우리가 돈이 어디 있다고 그런 술을 사."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쩝, 일단 밥이나 먹자."
"형님, 이 판국에 밥이 넘어갑니까?"
"그럼 이 비싼 것들을 안 먹을 거야?"
"그래도 무슨 대안을 만들어야 할 것 아닙니까?"
"대안이 어디 있어? 그냥 사실대로 얘기하고 우리가 반쯤 죽어 나온 통에 착수금을 치료비로 쓰겠다면 그것들이 뭐라 할 거야?"
"오! 그것 좋은데요."
"어때, 맛있지?"
적당한 핑계거리를 찾았다는 생각에 히죽거리던 범석 패거리의 대화는 하마의 출현으로 중단되었다.
"아주 죽이는데요."
"하마형님, 가온누리가 그토록 유명한 이유를 알겠습니다."
"내가 힘 좀 써볼 테니까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해."
"아닙니다, 형님."
"지금도 만족합니다."
"없습니다."
"많이들 먹어. 그나저나 너희들은 요즘 뭐하고 사냐?"
"별다른 것 없이 예전처럼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놀고 있다고?"
"형님도 아시겠지만 저희들은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기술도 없잖습니까?"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저희들도 죽겠습니다."
"너희들 내 밑에서 일할래?"
"형님 밑에서요?"
"그래. 여기서 서빙을 하는 게 어때?"
직원을 한차례 추가로 뽑았지만 손님들이 매일같이 밀려들다 보니 지금 있는 직원만으로는 빠듯해서 휴무일도 제대로 못 챙겨주는 실정이었다.
그러다보니 지훈은 서비스 부분은 물론이고 셰프까지 추가로 뽑을 생각에 얼마 전에 구인광고를 낸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서빙을 직업으로 생각하는 이는 극히 드물어서, 아르바이트로 서너 달 생각하고 오는 사람은 많지만 직업으로 생각하고 오는 사람은 전무했다.
덕분에 서비스 부분의 직원은 좀처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희들보고 서빙을 하라고요?"
"그래. 여기는 임금수준도 괜찮고 4대 보험도 다 넣어줘. 그리고 이후에 분점이 생기면 그때는 승진도 할 수 있어."
"그래도 그렇지, 이 나이 먹고 서빙을 하기는 그런데요?"
"무식한 새끼들, 아까 내 얘기는 뭐로 들은 거냐? 여기 있으면 유 회장님을 비롯해서 조직의 큰 형님들을 수시로 볼 수 있다."
"그 말은 저희가 그분들의 눈도장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까?"
"그래, 회장님께 너희들을 내 동생이라고 소개해주마."
"하겠습니다."
"형님, 시켜만 주십시오."
"너희들은?"
"저희들도 하겠습니다."
"생각 잘 했다. 사장님께 말씀드려서 오늘 저녁에 면접을 볼 테니까 빨리 이력서 써 서 가져와."
"알겠습니다."
가온누리에 있으면 조폭이 되고자 하는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범석 일행은 하마의 제안을 수용했다.
얼마 후, 이력서를 쓰기 위해 밖으로 나온 그들은 심부름센터에 연락해서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가온누리와 신성 OB파의 관계를 털어놨고, 계획대로 자신들이 반쯤 죽어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 방법이 통했는지 심부름센터는 착수금 반환 얘기는 언급도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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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늘만큼 땅만큼!
하루의 시간이 흐르면서 범석 패거리의 일은 박현식에게도 전해졌다.
심부름센터를 통해서 지훈과 유병만의 관계를 알게 된 박현식은 양아치를 보내서 장난을 치는 방법으로는 지훈을 골탕 먹일 수 없겠다는 생각에 적잖이 낙담을 했다.
"빌어먹을 새끼, 그런 사람과의 인연은 언제 만든 거야? 아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날 밤, 그냥 쥐어터지게 놔두는 건데."
자신의 계략이 번번이 실패한 통에 심통이 난 박현식이 투덜거리고 있을 무렵 잔뜩 흥분한 장철우가 들어왔다.
"사장님,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무슨 때가 왔다는 거요?"
"그놈이 신입 셰프들을 구하고 있답니다."
"그게 정말이오?"
"직원들이 얘기하는 것을 제가 우연히 듣고 구인 사이트를 통해서 확인했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됐어?"
장철우가 얘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린 박현식은 바짝 붙어 앉으며 위장 침투시킬 셰프가 준비되었는지 물었다.
"이미 준비해뒀습니다."
"누구요?"
"이자입니다."
들어올 때부터 작정을 하고 왔는지 장철우는 사진이 부착된 입사지원서를 내밀었다.
"강민구?"
"세 달 전에 우리 회사에 입사한 자로 서울 소재의 요리 전문학교를 졸업한 자입니다."
"이자와 얘기는 어디까지 진행되었소?"
"비밀유지 때문에 자세한 얘기는 하지 못했습니다만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더니 어떤 일이든 하겠다는 대답을 받았습니다."
"그자를 믿을 수 있겠소?"
"어머니가 병환 중이라 돈이 급해서, 돈 때문에도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부르시오."
"그러실 줄 알고 미리 불렀습니다."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강민구는 지훈이 경험했던 다른 시간대에서도 박현식의 심복이 되어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던 자였다.
심지어 그는 죄를 저지른 박현식을 대신해서 거짓 자술을 해서 옥살이를 대신 한 적도 있었다.
물론 미래를 경험하지 않은 박현식이나 강민구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시간이 비틀렸음에도 그때의 질긴 인연은 이번에도 이어지는 것 같았는데, 강민구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병치레를 하고 있는 어머니 때문이었다.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그의 어머니는 온갖 막일을 하면서도 강민구를 지극 정성으로 키웠는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강민구는 효심이 대단했다.
즉, 어머니의 병간호 때문에도 돈이 많이 필요한 강민구는 그 사실을 알고 접근해온 장철우의 제안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똑똑~!"
"들어와요."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사장님, 이 친구가 제가 얘기한 강민구 셰프입니다."
잠시 후, 강민구와 마주한 박현식은 넉넉해 보이는 미소를 그리며 그에게 차를 권했다.
입사한지 불과 몇 개월밖에 안된 강민구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라벤더 차를 훌쩍였다.
"강 셰프, 향기가 좋죠?"
"그런 것 같습니다."
"듣자니 어머니의 병수발을 하고 있다면서요? 그리고 그 덕에 은행에 빚까지 있다고 들었는데 맞는가요?"
"맞습니다."
"셰프 초봉으로 어머니 병간호까지 하려면 무척 힘들겠네요?"
"어머니에게 좋은 치료를 받게 하고 싶은데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러지 못하는 것이 마음 아픕니다."
"어머니가 앓고 있는 병이 뭐죠?"
"만성당뇨와 뇌졸중을 앓고 있어서 거동이 불편합니다."
"뇌졸중이면 중풍을 말하나요?"
"그렇습니다."
"힘들겠군요."
"저는 괜찮은데 어머님이 힘들어하시는 것이 괴롭습니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은 뭐든 하겠다는 말을 장 마스터에게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물론 그만한 대가는 지불하겠습니다."
"돈을 더 벌수만 있다면 뭐든 할 생각입니다."
"그 일이 불법이더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누군가를 헤치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리고 강 셰프가 일만 제대로 하면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방금 불법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일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니요, 그 일을 들었을 때는 절대 거절할 수 없습니다. 장 마스터,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을 불러오세요."
불법을 저지르라는 말에 놀란 강민구가 질문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이미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던 박현식은 마치 다른 지원자가 있는 것처럼 얘기하며 대화를 중단했다.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장 마스터님 말씀대로 어머니의 치료비를 주시겠다면 어떤 일이든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일을 하겠다면 천만 원을 먼저 지급하고 일을 깔끔하게 끝내면 추가로 천만 원을 지급하겠습니다."
"사장님, 제가 해야 할 일이 뭡니까?"
"강 셰프, 혹시 가온누리라고 들어봤습니까?"
"얘기는 들어봤습니다."
"강 셰프는 가온누리에 취업을 해서 그곳의 레시피를 확보해야 합니다."
"거긴 한식당이라 우리와는 취급하는 메뉴가 다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굳이 그곳의 레시피가 필요합니까?"
"다 쓸데가 있어서 그러니 그것까지는 강 셰프가 몰라도 됩니다."
"사장님, 그러면 제가 거기 있는 동안 우리 회사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서류상으로는 우리 회사에서 퇴사를 한 것으로 처리됩니다. 하지만 급여는 인상된 금액으로 계속 지급할 것입니다. 아울러 그 일을 성공하면 치료비를 지급하는 것 외에 승진을 시켜 주겠습니다."
"강민구씨, 사장님은 한번 눈에 든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보듬고 가시는 분이네. 내가 장담하는데 자네가 만약 이번 일을 성공한다면 그때는 출셋길이 열린 것이나 마찬가지네."
"강 셰프, 이 일을 하겠습니까?"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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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의 강력한 추천과 가온누리에서 뼈를 묻겠다는 말에 지훈은 범석 일행을 직원으로 채용했다.
그렇게 가온누리의 새 식구가 된 범석 일행이 근무를 시작한 첫 날 저녁, 강민구는 다른 세 명과 함께 채용 면접을 봤다.
채용 면접은 지훈을 비롯해서 박성훈과 정미선이 함께 진행했는데 그들은 네 명의 지원자가 모두 맘에 드는 눈치였다.
하지만 가끔씩 강민구를 바라보는 지훈의 표정에는 망설임이 언뜻 언뜻 보였다.
'저 사람은 박현식과 인연이 이어진 사람인데 어떻게 해서 내 앞에 나타난 것일까?'
지훈이 다른 시간대에서 푸드 스타일리스트와 푸드 테라피스트로 활동했을 때 박현식은 돕지는 못할망정 사사건건 방해를 하며 훼방을 놓았다.
그런데 박현식의 지시를 받고 앞장서서 그 일을 진행했던 자가 강민구였고, 그 때문에 지훈은 종종 언성을 높이며 그와 얼굴을 붉히며 싸울 때가 많았다.
즉, 다른 시간대에서 미래를 살다온 지훈은 자신과 악연으로 얽혔던 강민구를 바로 알아봤다.
'많은 것이 바뀐 만큼 저자와 나와의 인연도 바뀌었을까?'
절벽에서 추락을 하지 않으면서 지훈의 인생은 다른 시간대와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확 바뀐 상태였다.
그렇다면 자신과 강민구의 악연도 바뀔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러나 많은 것이 바뀌었음에도 박현식과의 악연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불안했다.
즉, 강민구는 박현식과 인연이 이어진 사람이기에 어딘지 모르게 께름칙했다.
'내가 저 사람을 뽑았을 경우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할 수 있을까?'
악연을 모르고 있다면 모를까,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마당에 강민구를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막말로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또는 박현식의 농간이 또 벌어진다면 그때는 강민구 탓으로 돌리거나 그를 의심할 것 같았다.
'뽑아서 남 몰래 끙끙 앓을 바에는 차라리 뽑지 말자.'
많은 고민 끝에 강민구를 채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지훈은 마지막으로 입사 동기를 물었다.
어쩌면 너무도 흔한 질문에 세 명의 지원자는 마치 모범 답안 같은 대답을 내놨다.
그런데 제일 마지막에 자리한 강민구의 대답이 의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