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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보다는 훨씬 힘들겠지만 더 많은 보수를 준다는 말에 지원했습니다."
"강민구씨, 돈 때문에 우리 가온누리에 지원했다는 건가요?"
"저는 병든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기껏해야 전문학교를 졸업한 제가 받을 수 있는 돈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병간호를 해야 하는 제게는 한 푼이 소중합니다. 한 가지만 약속드리자면 다른 곳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 만큼 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강민구씨, 어머니는 현재 병원에서 요양 중이신가요?"
"병원비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서 집에서 요양 중입니다."
"어떤 병을 앓고 계신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만성당뇨와 뇌졸중을 앓고 계십니다."
"뇌졸중이면 거동이 불편하시겠네요?"
"전에는 꼼짝도 못하셨는데 지금은 어렵게나마 자리에서 겨우 몸을 일으킬 정도로 회복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거동이 불가능합니다."
"쯧쯧,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돈 때문에 지원을 했다는 말에 살짝 실망을 했던 박성훈은 강민구의 사정을 알게 되자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훈을 바라봤다.
말은 안하지만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리고 있는 그의 표정에는 4명의 지원자를 모두 뽑자는 뜻이 감돌고 있었다.
'어머니의 병 수발을 들고 있다고? 그래서 박현식이 시키는 일은 뭐든 다 했던 것일까?'
만약 가정환경을 듣지 않았다면 지훈은 아까 결정한 것처럼 강민구를 제외한 다른 세 사람만 선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려서 그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건 박성훈과 의견이 같다는 의미였고 그 뜻을 알아차린 박성훈은 대뜸 잘해보자는 말을 했다.
"저희, 합격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출근은 언제부터 하면 됩니까?"
"내일부터 나올 수 있겠습니까?"
"가능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강민구씨는 어떻습니까?"
"저도 괜찮습니다."
"사장님, 오늘로써 필요한 인원은 전부 뽑은 것 같은데 회식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오늘 바로요?"
"따로 날 잡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바로 하죠. 여러분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상관없습니다."
"술 먹고 놀자는 건데 좋습니다."
이번에는 서비스 파트에서 9명, 주방에서 6명의 셰프를 뽑았는데 필요한 인원보다는 많은 숫자였다.
이는 언제고 2호점을 낼 것을 대비한 포석이었는데 가장 중요한 레시피 개발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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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보름의 시간이 흐르면서 달이 바뀌어서 11월이 되었다.
어느덧 가온누리를 오픈한지 5개월이 된 지훈은 2층에 마련된 자신의 방에서 통장의 잔고를 확인했다.
'43억이라, 이 돈을 어떻게 쓰지? 2호점을 위해서 남겨둘까, 아니면 리아의 돈부터 갚을까?'
지금의 가온누리를 오픈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무 조건도 내 걸지 않고 투자를 해준 리아의 도움이 가장 컸다.
때문에 지훈은 리아가 원한다면 그녀의 투자금액을 최우선적으로 상환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녀가 투자한 금액과는 별도로 10억을 답례로 줄 생각이었는데 그리되면 2호점 오픈은 내년 하반기로 미뤄야 했다.
'어차피 법인도 설립해야 하는 만큼 리아를 만나봐야겠어.'
가온누리의 매출도 매출이지만 회사다운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법인으로 전환해서 주식회사 체제로 가는 것이 현명했다.
그런데 그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서는 리아의 투자금액을 어찌할 것인지, 확실한 결론을 내야 했다.
'한국에 들어왔다는데 문자를 보내봐야겠어.'
리아에게 문자를 보낸 지훈은 통장을 다시 서랍 속에 집어넣고는 계속해서 실패를 반복하는 레시피 개발을 고민했다.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폰에서 리아의 신곡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여보세요."
-오빠, 나야.
"어! 촬영 중인 것 아니었어?"
-잠시 쉬는 시각이야. 그런데 무슨 일이야?
"만나서 할 얘기가 있는데 시간 낼 수 있겠어?"
-지금 하고 있는 촬영이 끝나면 곧장 새벽 비행기로 중국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중요한 일이야? 중요한 일 아니면 지금 얘기하면 안 돼?
"그게 실은 투자금 때문에 전화했어."
-투자금이 왜?
"가온누리를 법인으로 전환할 생각인데 네가 투자한 금액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난 또 뭐라고? 그건 오빠 맘대로 해.
"뭐?"
-오빠 덕에 번 돈이니까 오빠가 알아서 해.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성장한 리아는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벌고 있었다.
덕분에 지금은 지훈에게 투자한 28억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고 심지어는 돌려받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리아야, 당장 급하지 않으면 그 돈은 자본금에 편입할까? 실은 내년 상반기에는 2호점을 낼까 싶거든."
-2호점? 좋지. 그렇게 해!
"그러면 너를 우리 회사의 주주로 등재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한 서류가 많은데 준비할 수 있겠어?"
-오빠, 번거롭게 그러지 말고 오빠가 전부 투자한 것처럼 해. 그리고 나중에 정말로 큰돈을 벌면 알아서 챙겨줘. 아! 혹시 투자금이 더 필요하면 얘기해.
"아냐, 지금도 자금은 충분해."
-오! 우리 오빠, 성공했나 보네?
"가온누리가 얼마나 유명한지 몰라서 그런 말을 해?"
-헤헤, 알아. 참! 오빠, 나 이번에 유럽 갔을 때 수아 언니 만났어.
"정말?"
-응. 그런데 오빠가 걱정한다고 이 말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는데, 실은 언니가 많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었어.
"뭐, 언제? 어디가 어떻게 아팠는데?"
다른 시간대에서 수아가 위암으로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한 사실을 알고 있는 지훈운 그녀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에 깜짝 놀라서 심장이 벌렁거렸다.
사실 수아가 프랑스에 혼자 남겠다고 했을 때, 적극 반대했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는데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을 들은 순간 그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내가 오빠에게는 알리라고 했는데 역시 말 안했나 보네. 처음에는 단순한 몸살 감기인줄 알았는데 일종의 열병이었데.
"지금은 괜찮은 거겠지? 아까 통화 했을 때도 별 말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해서 생각지도 못했어."
-내가 언니 만났을 때는 이미 많이 좋아진 상태였어.
"아! 모르고 있었어."
-오빠는 애인이 그런 것도 모르고 있으면 안 되지. 가뜩이나 언니 혼자서 외롭게 지내던데 한 번씩 시간 내서 가봐. 알았지?
"응. 그럴게."
한국에 있을 때부터 틈만 나면 위에 좋은 요리를 수아에게 해줬던 지훈은 음양오행기만 믿고 어느 순간부터 안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병원에 입원까지 했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걱정이 되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리아의 말처럼 최대한 빠른 시일에 프랑스를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아! 가게는 어떡하지?'
프랑스를 가게 되면 최소 며칠간은 가게를 비워야 했는데 그리 되면 요리의 맛이 변할 수밖에 없었다.
함께 일하는 성훈도 모르고 있지만 가온누리에서 나가는 모든 요리에는 지훈의 음양오행기가 실려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레시피를 빨리 완성해야 해.'
사람의 입맛처럼 정직한 것이 없어서 장맛만 변해도 알아차리는 법이다.
하물며 모든 요리의 맛이 변한다면 그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뿐이어서 자신이 없다고 해도 지금의 맛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오빠, 시간이 다 되어서 나 들어가 봐야해.
"그래, 수고하고."
-오빠, 다음번에는 시간 내서 찾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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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와 통화를 끝낸 지훈은 곧장 수아에게 전화를 걸어서 몸 상태를 물었다.
걱정과 염려가 가득 담긴 지훈의 음성을 들은 수아는 아무렇지 않다며 너스레를 떨었는데 그럴수록 지훈의 마음만 급해졌다.
"수아야, 끼니 잘 챙겨먹어. 특히 아침 거르지 말고."
-그러고 있어.
"내가 없다고 아무 거나 먹지 말고."
-걱정 마.
"외롭고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파리에 한 번 갈게."
-오빠, 나는 정말 괜찮아. 가게 일로 많이 바쁠 텐데 굳이 나 때문에 그럴 필요 없어.
"네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래."
-정말, 얼마만큼?
"하늘만큼 땅만큼!"
-피~이! 거짓말?
"거짓말 아냐.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다 준다고 해도 너하고는 절대 안 바꿔."
-오랜만에 오빠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까 기분은 좋다.
"내가 자주 연락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나도 미안해.
"앞으로는 아프면 무조건 전화해, 알았지?"
-응.
"수아야,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어떻게든 올해 안에는 파리에 갈 수 있도록 해볼게."
-오빠, 올해는 내가 바쁠 것 같은데 내년에 오면 안 돼?
"안 돼! 한번 맘먹었을 때 가야지, 안 그러면 시간 내기가 어려워져. 그리고 네가 보고 싶어 미치겠어."
-그건 나도 그래. 하지만 이곳 스케줄을 조정해야 하니까 최소 10일 전에는 미리 연락해줘.
말은 안했지만 수아는 11월 하순 무렵에는 2주의 휴가를 받아서 한국을 다녀갈 생각이었다.
즉, 아무 연락도 없이 가온누리를 방문해서 지훈을 놀라게 해줄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알았어. 사랑해, 수아야."
-나도 사랑해. 오빠, 한국은 밤일 텐데 그만 자야지?
"그래야지."
-잘 자, 오빠. 꿈에서 만나자!
수아의 깜짝 이벤트를 모르는 지훈은 통화를 끝내기 무섭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주방으로 향했다.
올해 안에 파리로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반드시 레시피를 개발해야 했기에 머뭇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사장님, 다시 나오셨네요."
"부 사장님, 밤 12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안 갔습니까?"
"하마가 요리를 알려 달라고 어찌나 성화인지 이렇게 붙잡혀 있습니다."
"하마연씨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내일을 위해서 충분한 휴식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체력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주방에는 박성훈을 비롯해서 하마가 있었고 그 옆에는 강민구도 있었다.
하마와 강민구는 2주 전부터 근무가 끝나면 지금처럼 박성훈에게서 요리를 배우고 있었다.
참고로 하마는 손재주를 타고난 것인지 경력이 일천함에도 칼질만큼은 베테랑 셰프마냥 능숙했다.
"강민구씨는 집에 어머니 혼자 계실 텐데 이렇게 늦게까지 있어도 괜찮습니까?"
"하마 형님의 도움으로 어머니를 경기도의 요양원에 입원시켰기에 괜찮습니다."
"하마연씨 도움으로 어머니를 요양원에 입원시켰다고요?"
"하마가 강민구씨에게 돈을 빌려줬데."
공교롭게도 강민구가 일을 시작한 날이 하마가 주방 일을 시작한 날이었다.
그리고 그게 인연이 되어서 하마는 강민구를 비롯해서 새로 들어온 셰프들과 친해졌는데, 아무래도 일이 서투른 하마를 강민구가 챙겼다.
쉽게 말해서 강민구는 박성훈과 마찬가지로 하마에게는 요리 스승이었다.
"강민구씨 돈이 필요하면 가불이라도 해달라고 얘기하지 그랬어요?"
"이제 막 들어왔는데 가불 얘기를 하기가 그렇지."
"사장님, 죄송합니다."
하루빨리 정식 요리사가 되고 싶은 하마는 자신을 챙겨주고 틈틈이 요리의 기본을 알려주는 강민구가 너무 고마워서 선뜻 돈을 빌려줬다.
반면 가온누리의 요리 비법을 알아내야 하는 강민구는 매일 밤마다 주방에서 뭔가를 하는 지훈을 감시할 수 있는 구실이 필요했다.
그 와중에 하마가 지훈의 승인 하에 매일 밤마다 남아서 요리 연습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남기 위해서 그런 상황을 의도적으로 연출했다.
"아닙니다. 그런 사정을 미리 챙기지 못해서 내가 미안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급한 일이 생기면 꼭 먼저 얘기해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은 무슨 일이세요."
"수아와 통화를 하다가 가슴이 답답해서 내려왔습니다."
"수아가 왜요?"
"얼마 전에는 많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더라고요."
"저런! 수아도 파리에 혼자 있으면 외로울 텐데 이만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