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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배울 것이 많다는데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래도 사랑하는 연인이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는 것은 솔직히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장님과 수아도 이제는 결혼을 생각해야지 않을까요?"
키친 마스터 때의 인연으로 수아와 지훈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박성훈은 결혼 얘기를 꺼냈고, 옆에 있던 하마와 강민구는 지훈의 애인이 파리에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때가 되면 하겠죠."
"사장님, 결혼은 남자가 밀어붙여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어떻게든 짬을 내서 수아를 만나고 올 생각입니다."
"여기 일은 걱정 마시고 그렇게 하십시오."
박성훈과 얘기를 나누던 지훈은 레시피 개발을 위해서 요리준비에 들어갔다.
지훈이 오늘 밤에 만들 요리는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매실 갈비찜이었는데 하마가 할 말이 있는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사장님,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습니까?"
"뭐죠?"
"저와 강민구씨가 한동안만 2층 숙소에서 지내면 안 되겠습니까?"
"그건 상관없는데 집에 안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저와 강민구씨는 집에 가봐야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2층 숙소에서 지내면 출퇴근 시간도 아낄 수 있어서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원하시면 그렇게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사장님."
2층에 사람이 살 수 있는 내실을 만든 이유는 주거공간이 필요한 직원들을 위함이었기에 지훈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사이 가스레인지 위에서 펄펄 끓고 있던 작은 솥에서 맛있는 냄새가 피어났다.
"하마야, 갈비찜 다된 것 같은데 갖고 와봐."
"예. 부셰프."
우연의 일치였는지 하마가 오늘 밤에 연습한 메뉴도 갈비찜이었다.
때마침 자신도 갈비찜을 하려고 했던 지훈은 하마의 솜씨도 확인할 겸 시식에 나섰다.
"하마야, 갈비찜에서 중요한 게 뭐라고 했지?"
"첫째는 핏기를 잘 빼야 하고 두 번째는 각종 야채와 소스의 오묘한 배합입니다. 특히 매실청과 통 매실의 사용량이 중요합니다."
"어디 말대로 잘했는지 볼까?"
"아까 핏물 빼는 것은 잘 했다고 하셨잖습니까?"
"짜샤, 하늘같은 부셰프 말에 토 달지 말고 가만히 있어. 어! 제법 맛있는데?"
"그렇죠? 전 냄새를 맡는 순간 맛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자식이 칭찬 한 번 해주니까 오만 해지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아직 손님상에 내놓을 수 없으니까 까불지 마라. 사장님도 한번 드셔보시죠."
성훈의 칭찬에 지훈도 하마가 만든 갈비찜을 맛보았다.
'어! 이 맛이 어떻게 나지?'
"사장님, 이 정도면 제법이지 않습니까?"
"그... 그런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하마의 갈비찜은 음양오행기를 사용하지 않고 만든 자신의 갈비찜보다 맛이 더 좋았다.
보다 확실하게 말하면 음양오행기가 들어간 갈비찜과 비슷한 맛이 났다.
'이 정도의 맛이라면 조금만 손을 보면 손님상에 내놓아도 되겠어.'
하마의 요리 실력에 깜짝 놀란 지훈은 그의 요리를 참조하면 갈비찜과 관련한 레시피를 개발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조리법을 물어봤다.
"야채의 양은 부 셰프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했습니다."
"소스는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소스는 제가 안 만들고 아까 사장님이 만들었던 소스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야! 소스를 새로 만들었어야지. 다시 사용하면 어떡해? 만약 소스만 다시 만들었다면 이것보다 더 맛있는 갈비찜이 나왔을 수도 있잖아?"
"부 셰프님이 어제 낮에 제 짬밥에 소스까지 만드는 것은 무리라면서 안 알려줬잖습니까?"
"아 그랬었지."
하마와 지훈의 대화에 끼어든 박성훈은 소스를 재활용 했다는 말에 살짝 아쉬워했다.
반면 지훈은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느꼈다.
'맞아! 소스야. 내가 만든 소스 때문에 음양오행기가 갈비찜에 들어간 거야.'
하마가 사용했다는 소스는 저녁 늦게 가온누리를 찾은 유병만이 주문한 갈비찜을 요리하면서 만들었던 소스였다.
그리고 그 소스에는 음양오행기가 실려 있었다.
그 말은 요리에 직접 음양오행기를 싣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바보같이, 내가 그 생각을 왜 진즉에 못했지!'
모든 음식에는 간장이나 된장 같은 장류부터 시작해서 각종소스가 들어간다.
그러니 장류와 소스에 음양오행기를 쏟아 부으면 자연스럽게 모든 음식에 음양오행기가 들어가는 셈이었다.
그런데 음식은 정성이라고 생각하는 지훈은 한명 한명의 고객이 소중하기에 지금껏 요리가 나갈 때마다 매번 음양오행기를 주입했다.
덕분에 5개월이 지난 지금은 하루에도 수만 번씩 음양오행기를 사용하다 보니 단전이 야구공만큼 커진 상태였고, 단전이 커진 만큼 음양오행기의 효능도 강해진 상태였다.
'장류를 내가 직접 만들고 각 요리에 들어가는 소스도 미리 만드는 거야. 아! 천연 조미료와 향신료도 내가 직접 만들면 더욱 효과가 좋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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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게 몇 푼이나 한다고?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호텔의 커피숍에는 박철웅이 양복을 입은 사내와 마주하고 있었다.
금테 안경을 착용한 탓에 제법 샤프해 보이는 중년 사내는 간간이 TV에도 나오는 청와대의 인사였다.
"김 수석님, 바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 의원이 당을 위해서 여러모로 애쓰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만나봐야죠."
"수석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영광입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내게 긴히 할 얘기가 뭡니까?"
"실은 부탁이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수석님을 뵙자고 한 것입니다."
"어떤 부탁입니까? 원활한 국정을 위해서는 서로의 협력이 필요한 만큼 얘기해보십시오."
"다음 주 목요일에는 미국의 오바나 대통령이 방한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박 의원이 그 일은 왜 물어보는 것입니까?"
"오바나 대통령의 환영 만찬 때문입니다."
"환영 만찬에 참석을 하고 싶은가 본데 그 자리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비공식 모임이 몇 번 있는 만큼 그 자리에는 다른 의원들과 함께 참석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아니고 환영 만찬을 준비하는 일에 셰프 한 명을 추천하고 싶어서 수석님을 뵙자고 한 것입니다."
박철웅이 청와대의 의전수석을 만나는 이유는 장철우를 일시적으로 청와대에 보내서 환영 만찬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박철웅의 얘기를 들은 의전수석의 표정에는 황당함과 의아함이 동시에 번지고 있었다.
"박 의원이 셰프를 추천하겠다고요?"
"수석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제 아들놈이 외식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그곳의 수석 셰프가 미국의 CIA라는 요리학교 출신으로, 세계 제일의 셰프로 손꼽히는 아드리안 셰프의 제자입니다."
"그러니까 그자를 청와대에 보내서 환영 만찬을 준비하는 일에 포함시킨 후에 이를 홍보하겠다는 것입니까?"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안타깝게 되었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으로서는 외부인을 청와대에 들일 수 없습니다."
"수석님이 나선다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방한이 다음 주다 보니 시간이 촉박해서 내가 나선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수석님, 무례인줄은 알지만 부모로서 아들을 돕고자하는 제 마음을 좋게 봐주시고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나 역시 부모로써 박 의원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상대는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입니다."
"제가 정치경험이 짧다 보니 수석님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대통령은 여러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로 안보가 상대적으로 취약하잖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그게 딱히 어떤 문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박철웅이 여전히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해오자 의전수석은 보다 구체적인 대답을 했다.
그가 했던 얘기를 간략히 정리하자면 청와대에서 열리는 환영만찬은 세세한 메뉴까지 이미 미국에 통보가 된 상태라고 했다.
아울러 방한이 임박한 상황에서 외부인이 청와대에 들어가서 요리를 하게 된다면 미국과 상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문제로 미국과 상의하기에는 여러모로 격이 떨어지는 만큼 난처하다고 했고, 보안을 담당하는 부서에서도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했다.
"고작 요리사 한 명이 들어가는 일로 미국과 상의까지 해야 하는 것입니까?"
"문제의 셰프가 음식에 독이라도 타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박 의원도 아시겠지만 예부터 절대자는 독살의 위험에 시달렸잖습니까?"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자를 추천 하겠습니까?"
"그걸 나는 이해하지만 미국 측에서 이해를 하겠습니까?"
"그래도 명색이 여당의 의원이 추천하는 자인데 그 정도는 믿어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미국 측은 입장이 달라서 곤란하다는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 와서 외부인이 들어온다면 박 의원이 직접 요리를 한다고 해도 난색을 표명할 것입니다."
"수석님, 정말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까?"
"미리 준비를 했다면 모를까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각하께서도 그런 일로 시끄러운 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휴~! 그래도 국회의원이라고 아들 녀석이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데 이 결과를 알게 되면 많이 실망할 것 같습니다."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미리 대비하지 못한 제 불찰이 더 큽니다."
"이번에는 어렵지만 다음번 국빈이 방문할 때는 힘을 써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가 아깝다면 청와대는 어렵더라도 비공식 모임이 열리는 호텔과 접촉을 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쪽은 자신들도 호텔 홍보를 해야 하기에 아예 제안을 꺼내기도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하긴 그렇겠군요."
"아무튼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 내줘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음번 국빈 방문 때는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장담은 못하지만 잊지 않고 기억했다가 외교 수석과 함께 최대한 힘을 써보겠습니다."
"아! 외교 수석님과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만약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그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지금은 워낙 바빠서 어렵겠지만 언제고 자리를 만들어 보죠."
"감사합니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한 박철웅은 다음을 기약하며 의전 수석과 헤어진 후 그 사실을 박현식에게 알렸다.
청와대 합류가 어렵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박현식은 박철웅이 예상했던 것처럼 크게 실망한 눈치였지만 방법이 없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