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121화 (121/219)

<-- 121 회: 4-10 -->

모든 이가 퇴근한 늦은 밤.

가온누리의 주방에는 지훈과 박성훈 그리고 하마와 강민구가 오늘도 변함없이 남아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내 생각이 맞았어!'

지훈이 방금 만든 요리는 허브 비빔밥으로 요리하는 과정에서 음양오행기를 주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맛은 음양오행기를 주입한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이는 비빔밥에 들어간 고추장 소스와 감칠맛을 내기 위해 살짝 뿌린 천연조미료에 음양오행기가 담겨 있어서 그랬다.

더 놀라운 사실은 지금 만든 비빔밥에 사용된 고추장 소스와 천연조미료는 일주일 전에 만든 것들이었다.

'파리에 있을 때 내가 만든 홍삼차는 세 달이 지나도 그 효능이 지속되었어. 그렇다면 천연재료에 스며든 음양오행기는 몇 달이 지나도 효과가 지속된다고 봐야 해.'

마침내 가온누리를 확장할 방법을 찾은 지훈은 기분이 너무 좋아서 술이라도 한잔 할 생각에 박성훈을 바라봤다.

하지만 박성훈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하마를 사정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

"하마야, 그렇게 하면 안 된다니까!"

"잘 하고 있잖아요?"

"신선로는 오방색이 잘 살아야 하고 육수의 맛이 모든 재료의 맛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했잖아?"

"맛이 충분히 우러났잖아요?"

"생선 맛이 너무 강해서 육수 본연의 맛이 사라졌잖아."

"생선이 들어갔으니 생선 맛이 나는 것은 당연하죠."

"내가 그러면 안 된다고 몇 번 얘기했냐?"

"언제는 맛만 좋으면 된다면서요?"

"이게 맛이 좋냐?"

"맛만 있는데 뭐가 어때서요?"

"이게 맛있다고? 안 되겠다. 하마야, 진심으로 충고하는데 더 늦기 전에 다른 일 알아봐라."

"부 셰프,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넌 다 좋은데 그 주둥이가 너무 싸구려라 셰프로서는 전망이 없는 것 같다."

"아이참, 또 왜 그래요?"

"됐다. 난 이만 들어갈란다."

상황으로 보건데 하마가 박성훈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지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사실 하마는 지훈이 보기에도 칼질이 능숙할 뿐만 아니라 요리에 제법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박성훈이 지적한 것처럼 미각이 떨어져서 맛의 미세한 차이를 잘 구별하지 못했는데 이는 셰프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하마연씨, 부 셰프님이 괜한 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마연씨의 열정을 높이 사서 매일 수고해주시는 부 셰프님을 생각해서라도 보다 진지한 자세로 배우십시오."

"죄송합니다."

"사과는 내게 하지 말고 부 셰프님에게 하십시오. 누가 뭐래도 하마연씨의 요리 스승은 부 셰프님입니다. 그리고 요리를 배우는 순간만큼은 부 셰프님을 스승으로 대하십시오."

"죄송합니다. 부 셰프님. 앞으로는 잘하겠습니다."

"아후~! 내가 왜 널 주방으로 끌어들이자고 했는지, 그게 원망스럽다."

"잘못했습니다, 사부! 앞으로는 열심히 하겠습니다."

재빨리 나서서 서먹해진 분위기를 수습한 지훈은 술이나 한 잔 하자며 박성훈을 붙잡았다.

하마도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어서 넉살좋게 사부라 칭하며 성훈의 소매를 잡고 늘어졌다.

"사장님, 안주는 제가 바로 만들겠습니다. 갈비를 구울까요? 제가 갈비 하나는 잘 굽잖습니까?"

"굳이 그러지 말고 하마연씨가 만든 신선로를 가져오세요."

"그 맛없는 것을 먹었다가는 괜히 입맛만 버리지 않을까요?"

"괜찮으니까 그걸로 하죠."

"야! 아까운 음식을 버릴 셈이냐? 그리고 아주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니까 그냥 가져와."

"헤헤~! 알겠습니다."

아까는 화가 난 통에 심한 말을 했던 박성훈은 그게 맘에 걸렸는지 얘기 말미에 가서는 적당히 말을 돌렸고, 어느새 술상이 차려졌다.

"하마야, 아까 내가 한 말을 고깝게 여기지만 말고 잘 새겨들어. 요리사는 진짜 맛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걸 잘 구별해야 해. 그래야 자기 요리에 발전이 있어."

"형님, 저도 제 주둥이가 저렴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어떻게 해야 그걸 바꿀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보 같은 놈, 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바로 옆에 있는데 그걸 왜 몰라?"

"예?"

"사장님이 요리를 하면 그 찌끄레기라도 빨아 먹으면서 네가 한 요리와 맛이 어떻게 다른지 계속 비교해."

"알겠습니다, 사부."

술이 몇 잔 돌면서 분위기가 완연히 좋아지자 지훈은 장류와 조미료 그리고 각종 소스와 향신료를 직접 만들겠다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사장님, 그런 것까지 직접 만들면 좋기는 하겠지만 일이 너무 많아지는 것 아닐까요?"

"우리 가온누리의 맛을 지키기 위해서는 필요합니다."

"맛을 지키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소한 것 하나라도 정성을 쏟아야 최고의 음식이 나오는데 하물며 음식의 기본이 되는 그런 것은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그리고 2호점이 생기면 맛의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여기서 만든 것들을 공급할 생각입니다."

"2호점을 내실 생각입니까?"

"공간의 한계가 있는 만큼 그래야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이후에 생기는 분점도 그것들은 여기서 공급할 생각입니다."

소스는 그렇다고 쳐도 장류와 조미료 그리고 각종 향신료를 직접 만들어야 하는 속사정을 얘기할 수 없는 지훈은 적당한 핑계로 박성훈을 납득시켰다.

"그러면 그것들은 어디에 보관하실 생각입니까?"

"그게 고민입니다. 장독으로 보관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장독을 놔둘만한 곳이 애매합니다."

"굳이 자리를 고르라면 정원 밖에 없잖습니까?"

"저도 그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닌데 그 많은 장독을 정원에 쌓아놓으면 답답하기도 하고 정원의 경관을 해칠 것 같아서 마음에 걸립니다."

"사장님, 바로 옆집이 매물로 나왔던데 그걸 구입하시면 어떻습니까?"

"우리 바로 옆집, 거긴 집이 너무 낡았잖아?"

"아따, 형님! 집은 낡았어도 마당은 여기보다 훨씬 넓으니까 집은 밀어 버리고 장독대를 놓으면 될 것 아닙니까? 그리고 나란히 있으니까 굳이 2호점을 낼 것이 아니라 건물을 새로 지어서 이곳을 확장하면 되잖습니까?"

"오! 그 방법도 괜찮네."

지금까지는 2호점을 내는 것만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옆집이라면 하마의 말처럼 가온누리를 확장하면서 장독대를 놓을 수 있는 공간도 얻을 수 있었기에 일석이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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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가 공인중계업소의 김평오에게 연락을 하면서 옆집을 구매하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게다가 그 일이 노영필에게도 알려지면서 신성 OB파 소유의 신성건설이 철거와 재건축을 맡겠다고 나섰다.

"이 사장, 이번 일은 우리 신성건설이 맡겠소."

"저는 노사장님이 맡아 주신다면 든든해서 아주 좋습니다."

"내가 천년만년이 지나도 끄떡없는 아주 튼튼한 건물을 지어주겠소."

신성건설은 도급 순위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굴지의 건설업체로 이런 작은 공사는 애당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공사를 발주한 사람이 지훈이라면 얘기가 달라져서 회사 내에서 최고의 기술과 경력을 자랑하는 드림팀을 구성해서 이번 공사를 진행할 생각이었다.

"노 사장님, 철거부터 시작해서 시공까지 모든 견적이 나오면 연락 주십시오. 결재는 바로 해드리겠습니다."

"이 사장, 이만한 일로 우리 사이에 돈을 주고받을 필요가 뭐가 있겠소? 회장님의 일도 있고 하니 무료로 지어주겠소."

"노 사장님, 그 일은 이미 지난번에 큰 도움을 받은 만큼 이번에는 제값을 치루겠습니다."

"이 사장, 날 은혜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 생각이오?"

"그게 아니라 이미 충분한 도움을 받았는데 자꾸 이러시면 제가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이미 충분한 도움을 받았다니, 혹시 식자재를 공급하는 거래처가 문제를 일으켰던 그때의 일을 말하는 것이오?"

"맞습니다. 그때도 돈 한 푼 받지 않고 많은 식자재를 공급해주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몇 푼이나 한다고? 이 사장은 우리 회장님의 목숨 값이 고작 그것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만약 이 사실을 알면 회장님이 얼마나 실망하시겠소?"

"액수를 떠나서 번번이 미안해서 그렇습니다."

"이 사장, 별 것도 아닌 일로 시간 허비하지 말고 내 말대로 합시다."

"노 사장님, 절 염치없는 놈으로 만들지 마시고 이번에는 제 뜻대로 해주십시오."

"이 사장, 회장님은 물론이고 날 다시는 안 볼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시오."

"노 사장님, 왜 그러십니까?"

"이 사장, 얘기 끝난 것으로 알고 나는 가겠소. 그리고 정 마음에 걸리면 이번 일은 우리 어머니의 신경통을 낫게 해준 것으로 퉁 치는 게 어떻겠소?"

노영필도 유병만을 통해서 지훈의 신비한 능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달에는 신경통으로 고생하는 자신의 노모를 가온누리로 몇 번 모시고 와서 지훈에게 사정을 알리고 음양오행기가 잔뜩 들어간 음식을 드시게 해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노 사장님의 어머님은 제가 아니었다고 해도 수술을 통해서 완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오? 솔직히 노모가 수술대에 오르면 나와 내 가족들이 얼마나 걱정했을 것이며, 우리 어머니는 또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겠소?"

"그래도 이번 일은 너무 과합니다."

"남자가 한번 결정한 일은 절대 번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신념이오."

노영필을 만난 지훈이 공사대금과 관련해서 훈훈한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무렵 박현식도 돈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유지원, 그래서 내가 레이나를 작업하라고 준 돈을 도박판에 몽땅 꼴아 박았다는 거냐?"

"처음에는 끗발이 좋아서 잘 나갔는데 막판에 올인 당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어."

"그렇게 됐다니, 그래서 어쩌겠다고? 설마 이제 와서 배 째라는 것은 아니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 값은 할 테니까 걱정 하지 마."

"레이나는 씨알도 안 먹혀서 도저히 해볼 수가 없다면서 무슨 수로 돈값을 하겠다는 거야? 설마 우리 회사 광고라도 찍겠다는 거야?"

"그래도 되고."

"뭐! 애가 미쳤나? 너처럼 한물 간 연예인에게 누가 5천씩이나 줘?"

도박에 미쳐서 레이나 몫의 선금까지 몽땅 날려버린 유지원은 레이나를 만나서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레이나의 대답은 변함없는 거부였고, 다급해진 유지원은 도박과 관련한 일까지 털어놓으며 통사정을 했다.

하지만 유지원의 사정이 딱하다고 해서 몸을 팔수는 없기에 레이나는 끝끝내 거절을 하며 계속해서 귀찮게 할 경우에는 회사에 이 사실을 알리겠다고 엄포를 놨다.

결국 레이나를 설득하는데 실패한 유지원은 어쩔 수 없이 박현식을 찾아가서 이실직고했다.

"나와 함께 활동했던 다른 멤버들과 CF를 같이 찍으면 어때? 물론 내가 사정을 설명하면 되니까 걔네들에게 돈을 줄 필요는 없어."

"다른 멤버들도 너처럼 인기 없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그걸로 될 것 같아?"

"그래도 우리를 좋아했거나 우리를 알고 있는 팬들이 지금은 주부가 된 이상, 오히려 파밀시에테 홍보에는 맞아 떨어질 거야."

패밀리 레스토랑을 표방하는 파밀시에테는 주로 가족들이 많이 찾기에 유지원처럼 한물 간 아이돌을 내세우면 주부들의 향수를 자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레이나를 품고 싶었던 박현식으로서는 유지원의 제안이 달갑지 않아서 계속 투덜거렸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약해."

"그렇다면 멤버들과 CF 찍는 것 외에 다른 여자 연예인을 소개시켜줄게."

"다른 여자 연예인, 누구?"

"레이나 친구 예은이는 어때?"

"예은이라면 이지훈과 그렇고 그런 사이잖아?"

"이지훈이가 누군데?"

"그날 모텔 같이 들어가려고 했던 놈!"

"그놈 이름이 이지훈이야? 그런데 현식이 네가 그놈을 어떻게 알아?"

"그냥 아는 놈이니까 신경 쓸 것 없어. 그런데 걔는 가능해?"

레이나를 마음에 품고 있는 통에 예은이가 맘에 안 들었던 박현식은 그녀가 지훈과 끈끈한 사이라는 생각이 들자 갑작스레 욕심이 생겼다.

막말로 예은이을 자신이 차지하면 그때는 지훈에게 복수를 하는 것 같아서 벌써부터 묘한 쾌감이 솟구쳤다.

"걔는 오늘 밤이라도 가능해."

"이번에도 허풍 치는 것 아냐?"

"아니야, 맹세해!"

"좋아, 데려와 봐."

"그걸로 5천은 퉁 치는 거다."

"그것 외에 다른 멤버들과 CF도 찍어야 한다. 물론 돈은 한 푼도 못준다."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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