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126화 (126/219)

<-- 126 회: 4-15 -->

"말씀하십시오."

"두 명의 친한 친구가 있는데 양쪽에서 동시에 부탁을 해온다면 이 셰프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느 한쪽의 부탁만 들어주면 다른 한쪽이 섭섭해 한다는 말인가요?"

"비슷합니다."

오바나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을 염두에 두고 그런 말을 했는데 신문을 통해서 정상회담에 다뤄질 내용을 알고 있던 지훈은 질문의 핵심을 간파했다.

이는 박미혜 대통령도 마찬가지여서 지훈의 대답을 주목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단 한 명의 친구도 잃어서는 안 되겠죠?"

"물론입니다."

"간단합니다. 내 욕심을 버리면 됩니다."

"무슨 뜻이죠?"

"두 친구의 부탁을 모두 들어주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부탁의 내용이 상반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사실을 두 친구도 서로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내 욕심부터 버리겠습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양보를 해가면서 두 친구의 부탁을 최대한 수용한다면, 사정을 알고 있는 친구들도 무리한 부탁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양보한다고 그들도 양보할까요?"

"그들이 친구라면 당연히 양보합니다. 하지만 나는 챙길 것은 챙기면서 어느 한 친구에게만 양보할 것을 강요하면 친구를 잃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일본이 재무장을 해서 군사강국이 되는 것을 원하고 있었고,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시장개방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의 재무장은 미국과 일본의 이해는 맞아떨어지지만 한국에는 위협이 되는 일이었는데, 미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게는 시장개방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건 한국에게만 양보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었는데 지훈은 그럴 경우 친구를 잃게 된다는 경고를 했다.

"이 셰프의 조언은 가슴에 새기죠."

"각하, 정상회담을 진행 중이라고 들었는데 방금 마신 음료를 싸드리겠습니다. 그걸 마시면 피로가 풀리면서 기분 전환도 되고 건강에도 좋은 만큼 많이 드십시오."

"맛도 아주 좋던데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정치인이 아닌 지훈으로서는 최선의 대답을 했다.

그러나 그도 한국인이기에 한국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기를 간절히 원했고, 자신의 유일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음양오행기가 듬뿍 들어간 배숙을 싸줬다.

후일담이지만 정상회담 내내 배숙을 마신 오바나 대통령은 기분이 좋아져서 예상과는 다르게 제법 많은 양보를 했다.

덕분에 큰 어려움을 넘긴 박미혜 대통령은 지훈의 조언이 큰 역할을 했다고 여겨 주위 사람들에게 종종 그 얘기를 했고, 늘 휴대하는 자신의 수첩에 지훈의 이름을 큼지막하게 적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서 지훈이 엉뚱한 일에 휘말리게 된다는 것은 짐작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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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 5일의 방한 일정을 마친 오바나 대통령은 미국으로 돌아갔고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분석하며 이후의 변화를 예측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미국의 시장개방 요구가 생각보다 미미했던 것에 안도를 했고, 짧은 방한 기간 중에 두 번이나 찾은 가온누리에 대해서 궁금하게 여겼다.

특히 직접 음식을 맛 본 박미혜 대통령도 극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더욱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서 이제는 식사시간이 아닐 때도 가온누리는 손님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지훈을 비롯한 가온누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민구야, 별 일 없냐?"

"무슨 일요?"

"어머니에게 어떤 일이 안 생겼어?"

"아무 일도 없는데요."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네?"

"뭐가요?"

"역시 한 번만으로는 무리일까?"

"하마 형님, 대체 무슨 얘기 하는 거예요?"

"그런 게 있어."

"그러니까 그게 뭐기에 형님이 자꾸 우리 어머니의 상태를 물어보시는 거예요?"

며칠 후에 고향으로 내려가는 하마는 틈만 나면 강민구에게 다가와서 그의 어머니에게 어떤 변화가 없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아무 일 없는데 왜 그런 것을 자꾸 물어보냐는 민구의 반문을 받았는데, 오늘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장님이 직접 만든 요리를 먹으면 어떤 식으로든 민구 어머니의 건강이 좋아져야 하는데 왜 안 좋아지지?'

하마의 짐작대로라면 지훈이 직접 요리한 음식에는 특별한 힘이 담겨 있다.

그러기에 자신도 신경통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서 지훈이 직접 만든 요리를 싸가서 처음으로 아들 노릇을 제대로 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신보다 먼저 음식을 싸간 강민구의 어머니에게서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하자 괜히 불안해졌다.

'엄니가 여러 날을 드실 수 있도록 몽땅 싸가지고 가면 될까?'

"하마 형님, 대답 안 해주세요?"

"무슨 대답?"

"왜 형님이 우리 어머니의 상태를 자꾸 물어보는지, 얘기해주시라고요?"

"민구야, 사장님이 싸준 요리를 어머니가 드시기는 했냐?"

"드셨죠."

"네가 직접 봤어?"

"제가 직접 떠먹여 드렸는데 무슨 말이 필요해요."

"저녁에도 그랬어?"

"그랬어요."

"두 끼나 드셨다 이거지, 혹시 하루에 한 끼만 먹어야 효과가 있나?"

"아이참! 형님, 대체 무슨 얘기 하시는 거예요?"

"이상하니까 그렇지."

"뭐가요?"

"그런 게 있으니까 너는 어머니의 건강이 좋아지면 꼭 내게 얘기해라. 참! 음식을 많이 싸갔으니까 그 이후에도 어머니가 오랫동안 드셨겠지?"

"같은 병실에 계시는 분이랑 다른 분들에게도 음식을 나눠줘서 거의 바닥인 상태였어요."

"뭐! 쯧쯧쯧, 그게 어떤 음식인데 다른 사람을 나눠줘?"

"어머니 곁에 계시는 분들인데 함께 먹어야죠."

"바보 같은 새끼, 그 귀한 음식을 남에게 주다니 그래서 네 어머니는 효과를 보지 못했나 보다."

"무슨 효과요?"

"답답한 놈, 하여간 굴러온 복을 차는 것도 재주라니까! 수고해라. 나는 고기를 다듬으러 갈란다."

노영필의 당부 때문에도 세세한 말을 할 수 없는 하마는 정말 아쉽고 안 됐다는 표정으로 강민구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조리대로 이동했다.

'하마 형님이 뭐 때문에 저런 소리를 하지.'

아직까지 하마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강민구는 그가 했던 말을 몇 번이고 곰곰이 되새겨봤다.

그러나 이해가 안 가는 것은 마찬가지였고, 그러는 사이 밀려드는 주문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같은 시각, 강민구의 어머니는 지팡이에 의지해서 요양원 복도를 홀로 걷고 있다가 먼저 아는 체를 해온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머! 아주머니, 이제는 제법 잘 걸으시네요?"

"그러게 말이오. 우리 아들이 다녀간 그날 이후부터 어렵게나마 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되었는데, 지금은 지팡이만 있으면 어디든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소."

"그럼요! 처음 걸음 떼기가 어렵지, 그 이후에는 꾸준히 재활을 하면 지팡이 없이도 혼자서 걸을 수 있어요."

"나 때문에 고생하는 아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그래야죠."

"아드님이 효자인 것 같은데 정말 좋아하겠네요."

"우리 아들은 내가 이 정도로 좋아진 것을 아직 모르고 있소."

"왜요? 무척 기뻐할 텐데 빨리 알리셔야죠."

"그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닌데 좀 더 나아져서, 아들을 깜짝 놀라게 해줄 생각에 아직 말을 안했소."

"아! 그래서 매일같이 연습을 하시는 거예요?"

"아들이 다 다음 주에는 온다고 했는데, 그때는 지팡이 없이도 걸어 볼 생각이오."

"회복속도가 빠른 것이 지금처럼 꾸준히 재활을 하면 가능할 것 같네요. 그럼, 수고하세요."

"신경써줘서 고맙소."

++++++

8. 아무렴 그랬을까?

오바나 대통령의 방한으로 한층 유명해진 가온누리는 이제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봐야 하는 국민명소로 자리 잡아서 지방에서도 많이들 찾아왔다.

게다가 이제는 관광객들에게도 널리 알려져서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찾는 관광코스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따로 피크타임이 없을 정도로 손님들로 넘쳐났는데 그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없어서 발걸음을 돌리는 손님도 속출했다.

"사장님, 별관 공사를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는 24시간 공사를 해서 공기를 십일 이상 단축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다고 해도 앞으로 3주 후에나 영업이 가능하겠군요."

"더 이상은 무리이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럴 때는 하루가 24시간 밖에 안 되는 것이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이때 필요한 인원을 충원하십시오."

"그때 별관이나 2호점 오픈을 예상하고 충분한 인원을 뽑은 것 아니었습니까?"

"그 점도 있지만 지금도 노동 강도가 상당하니 여유 있게 선발하십시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2호점은 머뭇거리지 않고 추진할 생각입니다."

"별관을 확장하면서 자금의 여유가 없다고 하셨잖습니까?"

"가온누리를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바로 코스닥에 등록해서 자금을 확보할 생각입니다."

"주식을 발행하시겠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다른 법인도 회사를 공개하고 주식을 발행하는 방법으로 자금을 끌어들이는데 지훈도 그 방법을 통해서 일정정도의 자금을 융통해서 2호점을 출점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가온누리를 찾는 고객 중에 증권사와 은행의 관계자를 만나서 그 일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장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어디서 오신 분이죠?"

"정확히는 못 들었는데 호텔에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호텔에서 무슨 일로 나를 찾는 거죠?"

"혹시 단체예약인 것 아닐까요?"

"일단 만나보시죠."

자신을 찾는 손님이 있다는 범석의 말에 손님으로 가득 찬 홀로 나간 지훈은 두 명의 남자와 마주했다.

비서로 보이는 한 명은 한국인이었는데 임원으로 보이는 중년인은 은발의 서양인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가 이지훈인데 절 찾으셨다고요?"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는 메르앙 호텔의 한국 사장을 맡고 있는 스코튼 존슨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존슨씨."

스코튼 존슨과 악수를 나눈 지훈은 그가 한국어가 서툴다는 것을 알고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어쩔지 몰라서 통역을 데리고 왔던 존슨은 지훈의 유창한 영어실력부터 칭찬하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존슨씨, 절 찾은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이지훈씨와 좋은 파트너가 되고 싶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좋은 파트너라면 무엇을 얘기하시는 지요?"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겠습니다. 가온누리를 우리 메르앙 호텔에 입점 시켰으면 합니다."

"그 말은 메르앙 호텔에 우리 가온누리 매장을 개설하자는 얘기입니까?"

"그렇습니다. 가온누리는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한국인만이 아니라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도 꼭 가보고 싶어 하는 레스토랑입니다."

메르앙 호텔은 전 세계 곳곳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으로 세계 5대 호텔 체인 중 하나였다.

그러니 그런 호텔에 입점한다면 가온누리의 명성이 상승하는 것은 물론이고 호텔을 찾는 외국인에게 한식의 뛰어난 맛과 우수성을 알릴 수도 있었다.

이는 한식을 세계화 시키고 싶은 지훈에게도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호텔에 입점을 하게 되면 높은 수수료 때문에 호텔 좋은 일만 시켜주고 정작 가온누리는 실익을 못 얻을 수도 있었다.

물론 그 사정을 잘 알고 있음에도 명성과 고급스런 이미지를 얻기 위해 많은 이들이 입점하려고 바동거리는 것도 현실이었고, 박현식도 그런 경우였다.

"가온누리를 높게 평가해주시는 것은 고맙습니다. 그런데 메르앙 호텔이 저희에게 요구하는 조건은 무엇입니까?"

"수수료를 얘기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을 비롯해서 제반의 조건을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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