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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수수료 몇% 올려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 푼돈에 만족해서 경쟁업체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애초부터 오늘의 만남이 싫었던 이재철은 강한 거부 반응을 드러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상황을 염두에 뒀던 박현식은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전무님, 저희가 입점 시키고자 하는 브랜드는 가온누리 같은 현대적인 한식당이기에 건강한 식탁을 찾는 고객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한식당이라고 해서 고객들의 요구를 무조건 만족시킬 수는 없는 법입니다."
"저도 명색이 외식업체를 경영하고 있는데 그걸 어찌 모르겠습니까? 저는 무조건 성공할 확신이 있기에 전무님을 뵙자고 청한 것입니다."
"글쎄요? 나는 더 할 얘기가 없어서 이만 일어나봐야겠습니다. 오늘 찻값을 내가 계산하지요."
"전무님, 제 얘기를 조금만 더 들어보십시오! 저는 가온누리와 똑같은 맛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수수료도 파격적으로 38%를 지불하겠습니다."
"방금 뭐라 했습니까?"
"수수료를 38% 지급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세계적인 호텔 브랜드에 입점할 때와 동일한 조건입니다."
"그 얘기 말고 그 전에 뭐라고 했죠?"
"가온누리와 똑같은 맛을 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게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가온누리의 명성은 이재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박현식이 가온누리와 똑같은 맛을 낼 수 있다고 하자 자기도 모르게 관심이 생겨서 그 부분을 되물었다.
"똑같은 맛을 어떻게 재현하겠다는 거죠?"
"사업상의 비밀이라 더 이상은 얘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요 근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가온누리와 똑같은 맛을 낼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설마 이지훈 셰프를 스카우트 했다는 건가요?"
만약 파밀시에테가 이지훈을 스카우트 했다면 참으로 엄청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면 그때는 계약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현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사업상의 이익을 떠나서 자신에게 오늘의 위기를 안겨준 이지훈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참 잘 나가고 있는 그를 어떻게든 뭉개 버리고 싶은 것이 이재철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지훈을 무슨 수로 스카우트 하겠습니까? 하지만 가온누리의 맛은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습니다."
"이지훈씨가 없음에도 그 맛을 재현할 수 있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사업상의 비밀이라 더 이상의 언급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만약 TJ 호텔에 입점하게 된다면 맛으로 확실하게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강민구가 레시피만 입수하면 맛을 똑같이 재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박현식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거듭해서 큰소리를 쳤다.
그 모습을 본 이재철은 박현식이 지훈은 아니더라도 가온누리의 핵심인사를 스카우트 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토록 자신감을 보인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묘하게도 구미가 당겼다.
"정말로 가온누리의 맛을 100% 재현할 수 있겠습니까?"
"요리는 사람의 손길이 가는 만큼 100%까지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은 가온누리의 맛과 같다고 느낄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 맛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파밀시에테가 아닌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서 입점하겠다고 했습니까?"
"한식당을 표방하는 만큼 그럴 생각입니다."
"아까 38%의 수수료를 지불하겠다고 하셨는데 맞습니까?"
38% 수수료는 한국에 진출한 세계적인 호텔 브랜드가 받아가는 요율이었다.
반면 TJ 호텔 같은 국내 업체들은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만큼 23%가 최대였는데 박현식은 다급한 나머지 38%까지 불렀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저는 TJ 호텔에 입점하는 것을 시작으로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이고 전국에 매장을 낼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가온누리보다는 박 사장의 브랜드가 한식당을 대표하게 되겠군요."
"반드시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아울러 이번 오바나 대통령의 방한처럼 다음에도 국빈이 방한을 한다면 그때는 제가 데리고 있는 셰프를 청와대에 보내서 한식을 대접하게 만들 생각입니다."
"외국의 정상이 방한을 하면 박 사장의 셰프를 청와대에 보내겠다고요?"
"이미 청와대의 고위 인사와 그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재철은 가온누리와 똑같은 맛을 낼 수 있다고 했을 때부터 구미가 당겼다.
게다가 박현식의 새로운 프랜차이즈가 한식당을 대표하게 되면 지훈을 엿 먹일 수 있겠다 싶어서 마음이 급격하게 기울었다.
그런 마당에 외국 정상의 방한과 관련해서 청와대의 고위 인사와 미리 얘기를 나누었다는 말을 듣게 되자 결심을 굳혔다.
"아주 좋군요. 아! 그걸 차라리 우리 호텔의 매장으로 초청하면 어떻겠습니까?"
"이번 가온누리처럼 말입니까?"
"맞습니다. 나도 거들겠습니다."
"전무님이 도와주신다면 저도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장소를 옮겨서 좀 더 상세한 얘기를 해볼까요?"
"같은 남자인데 술 한 잔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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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이 종료된 가온누리의 홀에는 지훈이 성훈 부부와 마주 앉은 채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하마는 주방에서 강민구로부터 요리를 배우고 있었다.
"사장님, 긴히 하실 얘기가 뭡니까?"
"부 사장님과 부 마스터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얘기 하십시오."
"아까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호텔의 사장님들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 얘기는 들었습니다."
"이 사장, 무슨 얘기인데 자꾸 뜸을 들여?"
"메디앙 호텔과 컨티넨탈 호텔에 가온누리를 입점 시키기로 했습니다."
"뭐! 언제?"
"이 사장, 정말이야?"
"12월 크리스마스 직전에 입점하기로 했습니다."
"오! 축하합니다."
"이 사장, 매장이 늘어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메디앙 호텔과 컨티넨탈 호텔은 수수료가 만만치 않을 텐데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그것들만 좋은 일 시켜주는 것 아닐까?"
세계적인 호텔에 가온누리가 입점한다는 말에 성훈은 반색을 하며 기뻐한 것에 반해 호텔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는 정미선은 높은 수수료를 들먹이며 걱정했다.
"수수료는 12%만 지불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엥! 정말?"
"너무 낮아서 믿기 어렵겠지만 그렇게 합의했습니다."
"두 곳 다?"
"네."
"오! 그러면 거저나 마찬가지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수수료가 고작 12%라니, 너무 잘 됐다."
이제야 계약조건을 알게 된 정미선은 연신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뒤늦게 기뻐했고, 지훈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그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사이 마냥 좋아하기만 하던 성훈 부부는 호텔에 입점을 하게 되면 인원을 어떻게 가를 것인지 물었다.
"두 분이 호텔을 맡아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동안 함께 일했던 두 분에게 생이별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는 하지만, 두 분 말고는 맡길 사람이 없습니다. 사실 두 분이 있었기에두 곳과 계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호텔을 맡으라고요?"
"두 분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두 분이라면 충분합니다."
"이 사장, 요리를 하는 것은 문제없지만 우리가 이곳의 맛을 지킬 수 있을까?"
"그 문제와 관련해서는 따로 생각한 방법이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어떤 방법?"
"장류와 천연 조미료 그리고 향신료와 소스는 이곳에서 공급을 할 생각입니다. 맛의 기본이 되는 그것들을 함께 사용한다면 사실상 맛의 차이는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맛을 지킬 수 있을까?"
"지금껏 잘해왔잖습니까?"
"그래도......"
"혹시 지금까지와는 달리 두 분이 떨어져서 지내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렇습니까?"
"그거야 집에 가면 지긋지긋한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일도 아니지. 다만 가온누리의 명성에 먹칠을 할까봐 그게 걱정스러워."
"뭐! 지긋지긋해? 그게 하늘같은 신랑에게 할 소리야?"
"지금 그게 문제야? 자기는 가온누리의 명성을 지킬 자신이 있어?"
"자신은 없지만 입점을 하기로 한 이상, 무조건 해야 할 것 아냐? 자신 없다고 안하면 누가 해?"
"그건 부 사장님 말이 맞습니다. 그리고 부 셰프님 실력이라면 충분합니다."
매장을 맡는다는 것은 그곳의 주방을 책임진다는 의미였다.
그 때문에 성훈 부부는 적잖은 부담을 느끼는 눈치였는데 지훈은 그들 부부를 격려하면서 자신감을 듬뿍 실어줬다.
"우리 남편 말대로 상황 때문에도 어쩔 수 없네. 그런데 한꺼번에 두 개의 매장을 오픈하면 적지 않은 숫자가 그쪽으로 옮겨야 할 것 같은데 여기는 어떻게 할 거야?"
"사람을 더 뽑아야죠. 그리고 프랑스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을 불러들일 생각입니다."
"몇 번 왔던 동석이와 혜미?"
"네."
귀국 후 호텔에 취직한 동석과 혜미는 가끔씩 시간을 내서 가온누리를 찾은 적이 있었고, 그 와중에 성훈 부부를 비롯해서 가온누리 식구들과 인사를 나눴다.
"사장님, 그 친구들은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바로 정리하고 올 수 있을까요?"
"호텔에 입점하는 일은 생각도 못했지만 2호점을 내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하고 있었기에 지난달에 이미 얘기를 나눈 상태입니다."
"그러면 언제쯤 합류합니까?"
"이달 중으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어찌 되었든 딱딱 맞아 떨어졌으니 다행입니다."
"아!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에는 파리를 다녀 올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호텔에 입점을 하게 되면 더 바빠질 것 같으니까 그 전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제 생각에도 그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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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 짓을 지금도 계속한다고?
가온누리가 메디앙 호텔과 컨티넨탈 호텔에 입점하기로 한 사실은 빠르게 퍼져서 다음날에는 모든 식구가 알게 되었다.
그 덕에 주방 인원은 다들 적잖이 설레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세계적인 호텔에서 일하고 싶은 것은 당연해서 그 자체만으로도 적잖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이는 강민구도 마찬가지여서 마음속으로 파밀시에테와 가온누리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의 임무를 자각한 순간 자신은 절대로 가온누리의 식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미련을 버렸다.
한편 서비스 파트 직원들도 설레며 좋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는 호텔에 입점하기 전에 가온누리가 법인으로 전환되며 기존의 직원들을 전부 승진시키겠다는 지훈의 발표 때문에 그랬다.
그리고 몇몇 직원은 최고급 호텔이 갖고 있는 이미지나 또는 호텔과 관련한 환상 때문에 자신들도 호텔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어서 호텔에 가기를 싫어하는 이도 있었으니 바로 범석 일행이었다.
"범석 형님은 호텔로 가고 싶으십니까?"
"나는 죽어도 싫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석 형님, 그런데 서비스 파트에서도 제법 많은 직원이 호텔로 옮긴다는데 우리도 그곳으로 발령을 받으면 어떡하죠?"
"자원자 중심으로 근무지를 조정한다고 했으니까 지원을 안 하면 여기 남아있을 수 있을 거야."
범석 일행은 신성 OB파 고위 간부의 눈에 들어서 어엿한 조직원이 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호텔로 옮기게 되면 신성 OB파 고위 간부의 눈에 들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니 이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곳에 남고자 했다.
"범석 형님, 세상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미리 손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뭘 어떻게 하자고?"
"하마 형님에게 부탁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형님, 그렇게 하시죠? 하마 형님은 부사장님과 호형호제 하는 만큼 그 정도의 힘은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범석아, 내 생각도 같다. 어쩔지 모르니까 하마 형님에게 우리의 뜻을 미리 얘기하는 게 좋겠다."
"그럴까?"
동생들에 이어서 친구인 대홍까지 불안해하자 범석은 하마를 만나서 얘기를 꺼냈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