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129화 (129/219)

<-- 129 회: 4-18 -->

"형님, 부탁이 있습니다."

"뭐?"

"저희들은 호텔에 가지 않고 이곳에 남고 싶습니다."

"호텔로 가면 팁도 꽤 나올 텐데?"

"그까지 팁은 원치도 않습니다. 그러니 이곳에 계속 남게 해주십시오."

"임마, 아무리 싫어도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그래서 형님에게 부탁하는 것 아닙니까? 만약 이곳에 남을 수만 있다면 더더욱 일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범석 일행이 이곳에 남고자 하는 이유는 하마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방의 막내나 마찬가지인 자신에게는 그만한 힘이 없어서 범석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이걸 어떡한다?'

사실대로 자신은 그만한 힘이 없다고 얘기하면 간단히 끝낼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사내 체면에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던 하마는 궁리 끝에 자원자를 중심으로 뽑고 만약 인원이 부족하면 그 이후에는 근무평점으로 선발한다고 했다.

"근무평점이요, 여기에 그런 것이 있습니까?"

"이것 봐라? 여기도 엄연히 회사인데 그런 것이 있지. 그러니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일해서 근무평점을 잘 받아. 그러면 아무래도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해줄 거야."

"알겠습니다."

"시간이 두 달도 안남은 만큼 잘해."

"거기서 방울 소리가 날 정도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도 부사장님과 김유경 대리에게 얘기를 해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감사합니다, 형님."

만족할만한 대답은 못 들었지만 최소한의 방법을 찾은 범석은 대홍과 동생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근무평점이요?"

"범석 형님, 그게 뭡니까?"

"무식한 새끼, 넌 그런 것도 모르냐?"

"왜 그러십니까? 제가 이래봬도 상고 나온 놈입니다."

"이놈아, 난 전문대 합격은 했던 사람이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형님, 그런데 근무평점이 뭡니까?"

"뭐긴 뭐야? 근무를 열심히 하는지 아니면 적당히 요령 피우고 농땡이를 부리는지 확인하는 거지."

"그걸 누가 평가하는데요?"

"김 대리를 비롯해서 높은 사람이 하지, 누가 해?"

"헉! 김유경씨가 그런 평가를 한다고요? 흐미, 전 그런 줄도 마르고 사석에서는 반말하고 그랬습니다."

"멍청한 놈, 어쩌자고 그런 짓을 해?"

"제가 나이가 더 많으니까 그랬죠."

"이놈아, 회사도 조직이나 마찬가지여서 무조건 서열이야. 너, 범수 형님이 회장님 친위대 상호 형님에게 말 올리는 것 알지?"

"그게 왜요?"

"실은 범수 형님이 두 살 형이야. 그래도 서열에서 밀리니까 깍듯하게 형님으로 모시잖아."

"그랬습니까?"

"자고로 회사도 조직이나 마찬가지여서 서열이 중요하니까 앞으로는 그러지 마. 그리고 인수 너는 김 대리에게 반말한 것 만회하려면 더 열심히 일 해."

"예!"

나이 상관없이 먼저 입대한 이가 선임 대우를 받는 군대처럼 조폭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족보가 꼬이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튼 이곳에 남기 위해서도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하는 범석 일행은 그 이후부터서는 절박한 심정으로 꾀부리지 않고 오직 일만 열심히 했는데 주방에도 똑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호텔로 발령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그전에 모든 비밀을 풀면 다행이지만 만약 풀지 못한다면... ,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에 남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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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술을 마신 통에 회사에 늦게 출근한 박현식은 장철우를 불러서 간밤의 일을 들려줬다.

"TJ호텔에 입점하기로 한 것입니까?"

"TJ 그룹의 이재철 전무를 만나서 최대한 빠른 시일에 입점하기로 합의를 했소."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다른 호텔에 비하면 살짝 아쉬운 감이 있지만 한국에서라면 TJ 그룹의 위상이 있는 만큼 잘된 일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우리가 호텔에 입점을 하면 한동안은 장 마스터가 거기를 맡아줘야겠소."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TJ 그룹과는 과거의 불미스런 일이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키친 마스터와 관련해서 악성 유언비어를 퍼트린 죄로 법의 처벌을 받은 장철우는 그때의 일이 마음에 걸려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사실 그 일만 아니었다면 그도 박현식과 함께 이재철을 만나려고 했었다.

"그 일은 말끔하게 해결했으니 걱정할 필요 없소. 게다가 이재철 전무도 이지훈을 싫어하는 눈치가 역력했소."

"이재철 전무가 이지훈을 싫어하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세한 사정은 묻지 못했지만 그도 이지훈을 싫어하는 것은 분명했소. 짐작이지만 이 전무는 놈을 뚜랑주르로 끌어들이려다가 실패한 것 같았고, 그 일로 놈을 고깝게 여기는 것 같았소."

"우리로서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군요. 거기다가 그때의 일까지 말끔하게 해결했다니 다행입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회사의 대표라면 그 정도 일처리는 해야 하는 것 아니겠소? 그나저나 강민구는 아직도 연락이 없는 것이오?"

"어제 통화를 했을 때는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그자에게 연락해서 서두르라고 하세요. TJ 호텔에 입점하기 위해서는 가온누리의 비법을 낱낱이 알아야 합니다."

"역시 그 조건을 제안하셨나 보군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소? 그리고 그래야만 놈을 제대로 물 먹이면서 우리로서는 또 하나의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런칭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소?"

"물론입니다. 강민구를 담당하는 것은 앞으로도 제가 맡을 것이니 사장님께서는 새 브랜드를 만드는 문제와 TJ 호텔과의 일을 마무리 해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소."

한식당인 만큼 파밀시에테가 아닌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야 하는 박현식은 자신과 깊은 관계에 있는 예은을 제법 비중 있는 모델로 내세우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예은의 인지도가 많이 떨어지는 만큼 또 다른 연예인도 함께 기용할 생각이었는데 어쨌든 그 사실만으로도 생색을 낼 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흐뭇해졌다.

"사장님, 그런데 입점 예정일은 언제입니까?"

"그쪽에서는 늦어도 12월 첫 번째 주에 입점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소."

"12월 초면 채 한 달도 안 남았군요."

"그래서 서두르라고 한 것이오."

"알겠습니다."

일정이 촉박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 장철우는 곧장 강민구에게 문자를 날렸다.

혹시나 호텔로 발령받을까 싶어서 일만 열심히 하던 강민구는 문자의 발신인을 확인하고는 은근슬쩍 자리를 비웠다.

"저 자식, 이번에도 문자를 확인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바로 밖으로 나가네."

"애인이 연락을 했나 보지."

"그렇다고 매번 창고로 가서 통화를 할 필요는 없잖습니까?"

"연인끼리 사랑의 밀어를 나누려면 아무래도 주위의 눈치가 보이니까 그러겠지."

"그게 더 신경 쓰이니까 문제죠."

"하마, 네가 신경 쓸 일이 뭐가 있는데? 혹시 질투 하냐?"

"질투라니요? 부 사장님, 절대 그런 것 아니니까 오해 마십시오!"

지난번 레시피가 반쪽자리로 드러난 이후 조바심이 난 장철우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강민구에게 연락했다.

그 덕에 강민구는 지금처럼 일하다 말고 창고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일이 반복되다 보니 주방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엉뚱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특히 그 누구보다 강민구와 붙어 다니는 하마는 괜한 시샘을 하며 투덜거렸다.

"아니기는 뭐가 아냐? 딱 보니까 그렇구먼. 그렇게 샘나면 투덜거리지 말고 새끼 좀 쳐달라고 부탁해."

"그런 것 아니라니깐요!"

상황을 오해하고 있는 박성훈이 하마를 놀리고 있을 무렵, 창고 안으로 들어간 강민구는 숨죽여가며 장철우와 통화를 했다.

"또 무슨 일입니까?"

-강민구씨, 어떻게 됐어?

"아직 입니다."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려? 혹시 임무를 망각하고 성의 없이 하는 것 아냐?

"그런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뭔가를 알아내야지?

"이 사장이 계속해서 장류와 조미료를 만드는 통에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짓을 지금도 계속한다고?

"말도 마십시오. 메주 건조가 끝나자마자 그걸 이용해서 간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메주 건조를 며칠 만에 끝냈다고? 그놈, 미친 것 아냐?

"저도 그게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몇 년 전에 4일 만에 메주 숙성을 끝내는 방법이 개발되었다면서, 특허까지 받은 방법으로 만들어서 맛이 더 좋다고 했습니다."

-메주 숙성하는 것도 특허를 받는다고?

"저도 몰랐다가 이번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장님이 특허청을 다닌 것도 그 일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미친 놈, 할 일이 더럽게 없나 보네.

메주의 빠른 숙성과 관련해서 그 방법을 개발해낸 농민이 몇 년 전에 특허를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훈이 특허청과 변리사 사무실을 다닌 이유는 가온누리의 메뉴를 특허받기 위함이었고, 메주의 빠른 숙성 방법은 그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내막을 모르는 강민구는 자신의 추측을 사실처럼 얘기했고 어차피 그런 일에 관심 없던 장철우는 TJ 호텔을 거론하며 재촉했다.

"우리 회사도 호텔에 들어간다고요?"

-그래. 다음 달 첫 주까지 TJ 호텔에 입점해야 하는 만큼 서둘러야 해.

"TJ 호텔이요?"

-맞아. 세계적인 호텔에 비하면 살짝 부족하지만 가온누리 같은 영세한 업체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지.

장철우는 호텔에 입점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며 의도적으로 가온누리를 깔아뭉갰다.

그러나 마치 반박이라도 하듯이 바로 이어지는 강민구의 대답을 들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 가온누리가 메디앙 호텔과 컨티넨탈 호텔에 입점한다고? 지금 농담하는 거지?

"농담이 아니라 사실인데요."

-이런, 언제 입점하는데?

"12월 크리스마스 전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촌것이 어떻게든 호텔에 입점할 생각에 수수료를 몽땅 퍼주기로 했나 보군.

"12%로 세계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12%? 말도 안 돼. 절대 그럴 수는 없어!

"그게 두 호텔이 서로 경쟁하는 통에 그렇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흥! 그래봐야 얼마 못가서 쫓겨나고 말거야. 아니, 우리가 먼저 똑같은 메뉴를 출시하면 계약이 파기될 수도 있어. 그러니 자네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속히 비법을 알아내. 알겠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이 아니라 무조건 10일 안에는 알아 내!

"노력은 하겠지만 10일을 넘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이 파리를 가시게 되면 시간을 못 맞출 수도 있습니다."

-놈이 파리를 언제 가는데?

"그것까지는 모르지만 조만간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강민구씨, 내말 똑똑히 들어! 지금부터서는 잠 한 숨 못자는 한이 있더라도 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서 반드시 비법을 알아내. 그게 당신도 살고 우리도 살 수 있는 길이야.

부러움에 천불이 난 장철우는 괜히 강민구를 닦달했고, 급한 사정을 알게 된 강민구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약속했던 요양원 방문을 다음으로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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