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130화 (130/219)

<-- 130 회: 4-19 -->

강민구와 통화를 끝낸 장철우는 울화가 치밀어서 계속 씩씩거렸고, 박현식은 왜 그러냐며 연유를 물었다.

"사장님, 가온누리가 메디앙 호텔과 컨티넨탈 호텔에 입점한다고 합니다."

"장 마스터, 장난합니까?"

"저도 장난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말도 안 돼! 그놈이 무슨 수로 그런 최고의 호텔에 입점한다는 것입니까?"

사실을 알게 된 박현식의 반응도 장철우와 다르지 않아서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하게 부정을 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또 뭔데요?"

"기가 막히게도 놈은 입점과 관련해서 딸랑 12%의 수수료만 부담하기로 했답니다."

"그건 거짓말입니다. 절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저도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은데 사실이랍니다."

"이런 개자식! 제깟 놈이 뭐라고 그런 짓을 해."

장철우가 그랬던 것처럼 속에서 천불이 난 박현식은 지훈을 향해서 쌍욕을 해댔다.

그러나 욕설을 퍼부어봐야 믿기지 않은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기에 더 공허하기만 했다.

"사장님, 우리도 이 사실을 알리고 TJ측과 재협상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솔직히 38%는 너무 부담됩니다."

"이미 얘기를 끝낸 마당에 얘기를 다시 하자는 거요?"

"가온누리는 초특급 호텔에 12%의 수수료만 지불하는데 그보다 못한 TJ 호텔에 38%의 수수료를 지불하는 것은 너무 억울한 것 같습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회사의 대표로써 이미 약속했던 내용인데 그걸 뒤늦게 문제 삼으면 TJ측에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겠소?"

"그러면 2년 후, 계약기간을 연장할 때 수수료 요율을 조정한다는 특약을 꼭 삽입하십시오."

"그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보겠소."

"휴~! 이렇게 된 것, 새로운 브랜드는 철저히 가온누리를 겨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애초부터 그러려고 이번 일을 추진한 것 아니오? 그보다 강민구는 어쩌고 있답니까?"

"아직은 알아내지 못했다고 해서 무조건 10일 안에 알아내라고 닦달을 했습니다."

"장 마스터, 12월 초에 입점하려면 시간이 없으니 그 친구보고 서두르라고 하세요."

"제가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그래서 강민구씨를 닦달했고, 그래야만 가온누리를 무너트릴 수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기분은 꿀꿀하지만 놈의 맛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만 있다면 최후의 승리는 우리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저는 지금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뭐 말입니까?"

"직접 메주를 쒀서 간장이나 만드는 놈이 어떻게 그런 맛을 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이 와중에 여자를 만나겠다고 파리까지 간다고 하는데, 그런 놈에게 밀린다는 것이 너무 자존심 상합니다."

지훈을 알기 전까지 장철우는 본인 스스로를 천재로 여겼고, 세계 제일의 셰프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기에 자신에게 패배감을 안겨준 지훈이가 너무 싫었고, 그를 무너트릴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어라고 노력함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격차가 더 커지는 것 같아서 답답함과 함께 절망감이 엄습해 와서 괴로웠다.

그렇게 장철우가 힘들어하고 있을 무렵 박현식은 그가 했던 말이 계속 뇌리에 맴돌았다.

'그 자식이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파리를 간다고? 혹시 수아가 지금도 파리에 있는 것 아냐? 아! 그래서 놈이 예은이를 만나고 다녔을까?'

어쩌면 수아가 파리에 혼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박현식은 가슴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훈과 떨어져 있는 지금이야말로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장 마스터, 놈이 파리를 간다고 했습니까?"

"그러니 더 얄밉잖습니까? 누구는 죽어라고 일만 하는데 그 자식은 여유 있게 연애나 하러 다니고."

"그러니까 수아가 지금 프랑스에 혼자 있다는 겁니까?"

"어! 사장님이 수아를 어떻게 아십니까?"

"놈이랑 나는 같은 학과를 다녔다고 말했잖습니까?"

"참! 그러셨다고 했죠?"

"저는 먼저 나가봐야겠습니다."

"어디 가시게요?"

"이럴수록 더욱 열심히 뛰어야 놈을 무너트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저도 다시 힘내서 반드시 놈을 쓰러트리고 말겠습니다."

더욱 열심히 뛰겠다는 말에 힘을 얻은 장철우가 오른 주먹을 움켜쥐며 각오를 다지는 사이 밖으로 나온 박현식은 잘 알고 지내는 기자에게 전화를 해서 수아의 연락처를 알아봐달라고 했다.

박현식으로부터 동석과 혜미의 연락처를 받은 기자는 취재를 가장해서 그들로부터 수아의 근무처와 집주소를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박 사장님, 주소와 근무처는 바로 문자로 보내겠습니다.

"이 기자, 감사합니다. 그런데 수아 혼자 파리에 있답니까?"

-얘기 들어보니 김수아씨는 좀 더 배우고 싶은 생각에 혼자만 파리에 남았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김수아, 내가 가마.'

수아에 대한 박현식의 마음은 사랑이 아니라 광적인 집착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박현식은 자신이 파리까지 찾아가면 그녀가 감동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아울러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단 한번만이라도 수아를 향한 자신의 절절한 마음을 고백하고 싶었다.

그리고 혼자만의 외국 생활로 외로워하는 지금이라면 수아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다고 여겼다.

'만약 그래도 안 된다면 그때는......'

집착이 무서운 것이 바로 이 점이었다.

박현식은 자신의 모든 계획이 틀어지면 그때는 강제라도 수아를 욕보이겠다고 다짐했고, 자신에게 철저히 유린당한 수아의 모습을 지훈에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에 TJ와의 계약을 비롯해서 광고 계약까지는 마무리 해야겠어."

한식당을 표방한 새로운 브랜드는 철저히 가온누리를 겨냥하고 있었다.

때문에 박현식은 TJ 호텔에 입점하는 새로운 브랜드도 알릴 겸 대대적인 TV 광고를 통해서 가온누리와 똑같은 자신들의 메뉴를 널리 홍보 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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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내린 비는 황량해진 상태로 힘겹게 나무에 붙어 있던 많은 나뭇잎들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대부부의 잎사귀를 잃어버리고 앙상해진 나무가 이따금씩 불어오는 아침 바람에 부들부들 떨고 있을 무렵 가온누리 안에서는 요란한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사장님, 법인 설립을 축하드립니다."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이 도와줬기에 가능했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십시오."

"아닙니다, 사장님. 저희가 더 고맙습니다."

"사장님,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난주에 예고했던 것처럼 가온누리를 법인으로 전환한 지훈은 지금껏 고생했던 모든 직원들의 직급을 한 단계씩 올려줬고, 전체적인 급여와 복리수준도 향상시켜줬다.

덕분에 동종업계에서는 최고 수준의 급여와 복지를 누리게 된 직원들은 감사의 마음과 함께 가온누리의 가파른 성장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언젠가 얘기한 적 있지만 저는 가온누리를 한국 최고의 식당으로 성장시키면서 동시에 외국에도 진출해서 한식을 세계화 시키는데 앞장 설 생각입니다."

"사장님, 외국에도 진출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늦어도 내년 1월에는 주식을 코스닥에 상장해서 자금을 마련하게 되면 국내의 매장을 확대할 생각이고, 그 이후에는 외국 진출을 적극 고려하고 있습니다."

"외국이면 어디를 얘기하시는 겁니까?"

"중국과 미국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온누리의 명성은 중국에도 널리 알려줘서 중국의 모든 관광책자에는 한국을 방문하면 반드시 가온누리를 가봐야 한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도 중국의 방송사들이 수시로 가온누리를 취재하고 있을 정도로 중국 내에서 가온누리의 열풍은 상상을 초월해서, 오직 가온누리를 오기 위해서 한국을 찾는 이도 상당했다.

그러니 시장의 안착 문제를 생각했을 때 중국은 빼놓을 수 없는 시장이었다.

반면 세계 각국의 모든 음식이 모이는 미국은 그야말로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기에 무조건 도전해야 했다.

"사장님, 그러면 외국에서는 외국인 셰프가 요리를 하는 것입니까?"

"나중에는 그럴 수 있겠죠. 저는 그 나라의 셰프들이 우리의 음식을 만들 때, 쉽게 말해서 외국인이 한식 요리사가 되기를 희망하고 그럴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졌을 때 한식이 세계화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아니라면 우리가 외국에 가야 한다는 것입니까?"

"그래야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가서 성공을 하고 한식을 널리 알려야만 많은 외국인들이 한식을 좋아하고 덩달아서 많은 이가 한식 요리사가 되기를 희망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그때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요리를 배우겠네요?"

"저는 반드시 그런 날이 오게 만들 것이며, 그때가 되면 요리학교도 만들 생각입니다."

"오~! 상상만 해도 멋진데요."

"지금은 상상이지만 우리가 노력하면 그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사장님, 외국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도 외국으로 진출할 수 있을까요?"

"가능은 합니다. 사실 한국에 있는 외국인 셰프 중에서 한국어를 알고 오는 사람은 거의 전무합니다. 그러니 우리라고 못할 것이 없죠. 다만 지금부터서 틈틈이 외국어를 공부해 두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장님, 외국에 가면 조건은 더 좋겠지요?"

"그 문제는 상황을 봐가며 조정해야겠지요. 하지만 대기업처럼 급여 외에 거주 공간과 체재비는 지불할 생각입니다."

"사장님, 외국 근무는 셰프들만 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한식에는 많은 역사와 사연이 담겨 있는 만큼 그것을 알릴 사람도 필요하고, 그 일은 서비스를 맡고 있는 사람이 최우선적으로 담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서비스 파트의 직원들도 셰프들처럼 외국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까?"

"저는 매장의 관리를 위해서도 서비스 파트의 직원을 함께 보낼 생각입니다. 단 서비스 파트의 직원은 해당 언어에 능숙하고 우리 음식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장님, 저는 중국에서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야, 넌 중국어도 못하잖아?"

"배우면 되지. 그리고 중국 손님들을 계속 상대하다 보면 실력이 늘 것 아냐?"

"그러면 난 미국을 갈래."

"네 정도 영어실력으로는 무리일걸?"

"나도 배우면 되지. 그리고 지금은 얼마나 많이 늘었는데?"

"그래도 미국에서 사는 것과는 다르지."

많은 외국인들이 가온누리를 찾다 보니 서비스를 담당하는 직원들도 자연스럽게 간단한 회화는 구사할 수 있어서 범석 일행도 주문 정도는 척척 받았다.

하지만 해외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로는 부족하기에 지훈은 특별한 지원책을 내놨다.

"아직은 시간이 있는 만큼 준비를 하십시오. 만약 외국어를 배우고 싶은 분이 있다면 배우십시오. 회사에서 학원비를 지원하겠습니다."

"학원비를 지원해주면 아침반 강의를 받아볼까?"

"난 무조건 받을래."

"나도!"

평소에 비하면 조회시간이 길어졌지만 지훈은 직원들과 비젼을 공유하기 위해서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

이 자리를 통해서 가온누리가 단순한 음식점이 아니라 함께 꿈을 키워가는 평생직장임을 깨달은 직원들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자기계발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지훈이 직원들을 뽑을 때 굳이 젊은 사람만 뽑은 것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그랬다.

아무튼 무척 길었던 조회가 끝나자 직원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미래를 그리며 부푼 희망에 잠겼다.

하지만 큰 회의에 빠진 이도 있었는데 바로 강민구였다.

'주임 월급이 이 정도라니.'

경력이 일천한 탓에 파밀시에테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평사원 대우를 받았던 강민구는 이번에 주임으로 승진했다.

그런데 평사원 때도 가온누리가 파밀시에테보다 더 많은 월급을 줬는데 주임으로 승진한데다가 급여 수준이 오르다보니 그 격차가 훨씬 커졌다.

'이건 파밀시에테의 대리 급여보다 더 많잖아.'

월급쟁이에게 최고의 직장은 뭐니 뭐니 해도 월급을 많이 주는 곳이다.

게다가 이곳은 분위기가 좋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전망이 보였다.

심지어 주식이 상장되면 많은 양은 아니지만 직원들에게도 주식을 나눠준다고 했다.

'난 어떡해야 할까?'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파밀시에테가 아니라 바로 가온누리로 입사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만 된다면 자신도 남들처럼 가온누리의 진정한 식구가 되어서 같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박현식의 돈을 받은 이상, 싫어도 스파이 노릇을 해야 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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