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134화 (134/219)

<-- 134 회: 4-23 -->

하마와 얘기를 마친 강민구가 그가 했던 말을 곰곰이 되씹고 있을 무렵, 박철웅은 청와대의 의전 수석 김평오와 외교 수석 김상현을 만나고 있었다.

"박 의원, 인사를 나누시죠. 이분이 외교와 관련해서 청와대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김상현 수석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박철웅입니다."

"박 의원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당에서 아주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지요?"

"부끄럽습니다. 아직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하나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모르고도 배우지 않은 사람이 부끄러워해야지, 그게 왜 부끄러운 일입니까? 저는 박 의원처럼 의욕을 갖고 열심히 하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저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철웅이 이들을 만나는 이유는 아들 박현식 때문이었다.

참고로 박현식은 오바나 대통령이 가온누리를 두 번이나 방문한 통에 가온누리의 명성이 더욱 치솟게 되자 울화통을 참지 못해서 아버지에게 하소연을 했다.

덕분에 예전부터 박현식의 말만 믿고 지훈을 좋지 않게 여기고 있던 박철웅은 자신도 울화통이 터져서 분주하게 움직였고 오늘의 자리를 마련했다.

"김 의전에게 듣기로 박 의원이 내게 부탁할 일이 있다고 들었는데 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미리 얘기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제 아들 녀석이 외식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박 의원의 아들이 외식 사업을 하고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파밀시에테라는 프랜차이즈 업체를 설립해서 수십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고담이라는 새로운 프랜차이즈를 만들어서 며칠 후에는 호텔에 입점을 합니다."

"수십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면 회사의 규모도 상당하고 우수한 셰프들도 많이 보유하고 있겠군요?"

"물론입니다. 미국에서 명성을 날렸던 셰프를 비롯해서 세계 제일의 요리학교라는 미국 CIA출신 셰프들도 많이 데리고 있습니다."

"그런 아들이 있다니 많이 부럽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아서 아비로서 많이 돕고자 합니다."

"부모가 자식 챙기는 것은 인지상정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일과 나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김상현은 이미 의전 수석 김평오를 통해서 박철웅이 뭘 부탁하고자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른 척 능청을 떨고 있었는데, 이는 박철웅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해서 반대급부를 챙기고자 함이었다.

"아들이 외식업체를 운영하다 보니 아무래도 그쪽에 관심이 많은데 얼마 전에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가온누리라는 영세한 식당에 오바나 대통령이 방문을 하는 것을 보고 많이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아! 그런 일이 있었지요."

"아들 녀석이 한식을 표방하는 새로운 프랜차이즈를 설립하고 호텔에 입점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아들은 이번처럼 국빈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보다 국제적이고 세련된 한식을 대접해서 우리나라의 품격을 높이고자 합니다."

"그 얘기는 아드님이 운영하는 업체로 외국의 국빈을 모셔달라는 건가요?"

"그러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게 안 되면 아들이 데리고 있는 셰프를 청와대에 파견시키고자 합니다. 아들 말로는 그 친구가 세계 제일의 셰프인 아드리안 셰프의 수제자인 만큼 청와대의 셰프들에게 결코 밀리지 않을 거라고 하더군요."

"외부의 셰프가 청와대로 초청된 경우가 과거에도 있기는 있었죠."

"저도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아서 이런 부탁을 해봅니다. 그리고 장담하건데 가온누리라는 영세한 업체보다는 모든 면에서 월등히 앞설 것입니다."

"가온누리의 일은 나도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을 방문한 국빈이 그곳을 찾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아니, 내가 나서서 그 일을 막을 것입니다."

김상현의 기억 속에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고 고집을 부린 지훈은 참으로 오만방자하고 무례한 사람이었다.

나아가 미국 측 인사가 있는 자리에서 자신에게 무안을 준만큼 복수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가온누리에 대한 반감이 노출되었다.

'이지훈, 그딴 식으로 날 물 먹여! 이놈, 그날의 수모는 몇 배로 갚아줄 것이니 두고 봐라.'

지훈은 그때의 일을 이미 잊은 상태였지만 김상현은 여전히 독을 품고 있었다.

이는 제이슨을 통해서 당시의 사정을 알게 된 오바나 대통령이 박미혜 대통령에게 그때의 일을 얘기한 통에 그렇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때의 일과 관련해서 대통령에게 한 소리를 들은 김상현은 더욱 분노해서 기필코 수모를 갚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한편 김상현의 말투에서 가온누리에 대한 반감을 감지한 박철웅은 기회다 싶어서 몇 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 김 수석님도 가온누리의 젊은 셰프가 인간적으로 덜 여문 친구라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경험하셨나 봅니다."

"물론이오. 그런데 박 의원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는 것이오?"

"제 아들 녀석과 그 친구가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다녀서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랬습니까? 그렇다면 그 친구는 아주 예전부터 오만방자했나 봅니다."

"타고난 인간성이 어디 가겠습니까? 이런 자리에서 그 친구 얘기를 하는 것이 유쾌하지는 않지만 인간성에 아주 문제가 많은 친구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나도 그 친구를 만나봤는데 참으로 오만방자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작자였습니다."

지훈에게 앙갚음을 하려고 마음먹고 있던 김상현은 박철웅이 자신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고 나서자 신이 나서 더더욱 지훈을 욕했다.

그러다 보니 그 자리는 지훈을 비방하는 자리가 되었고, 아무 사정도 모르는 의전 수석은 두 사람의 얘기만 듣고 덩달아서 지훈을 나쁘게 여겼다.

"원래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인데 그 친구는 알량한 재주만 믿고 까부는 것이 얼마 못가서 큰 화를 당하겠습니다."

"김 의전, 세상사가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조만간 그 친구가 고꾸라지는 날이 곧 올 것입니다."

"김 외교가 그리 말할 정도라면 내가 거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아무렴 그만한 친구를 손보는데 김 의전까지 나설 필요가 있겠습니까? 때마침 세무서에 아는 인사가 있어서 그 친구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세무서요?"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세금을 꼬박꼬박 내야하고, 그렇지 않았다면 법의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세무서가 염라대왕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친구가 김 외교에게 단단히 밉보였나 봅니다."

"김 의전, 내가 오죽 불쾌하고 속상했으면 그랬겠습니까?"

"김 수석님, 외교 수석님 말씀대로 그 친구는 한번 혼이 나봐야 정신을 차릴 것입니다."

"박 의원이 그리 말할 정도면 그 친구가 얼마나 안하무인인지, 안 봐도 알겠습니다."

뜻밖에도 지훈의 일로 김상현과 의기투합한 박철웅은 그의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 받았을 뿐만 아니라 덤으로 지훈에 대한 세무조사를 알게 되어서 많이 유쾌해졌다.

아무튼 세 사람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얘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김상현과 김평오의 자동차 안에는 잘 포장된 사과 박스 한 개가 나란히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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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구를 통해서 수아가 한국에 입국했음을 알게 된 장철우는 국제전화를 해서 박현식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때까지 파리에 머물면서 수아의 아파트와 라트니엘 드 뽀이도퀴시를 번갈아가며 서성였던 박현식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귀국을 서둘렀다.

같은 시각, 수아와 함께 그녀의 고향집을 방문한 지훈은 미래의 장인. 장모님과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수아야, 어지간하면 한국으로 돌아와."

"아직은 안 돼."

"이것아, 안 되기는 뭐가 안 돼? 프랑스의 요리 학교도 졸업했다면서 이제는 돌아와서 지훈의 일을 거들어."

"엄마, 난 한국에 돌아와도 오빠하고는 같이 일 못해."

"같이 일을 못 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는 한식당을 하는데 나는 정통 프랑스 요리밖에 못해서 같은 일을 할 수가 없어."

"지훈이는 너처럼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웠어도 한국 식당을 잘만 하고 있는데 너는 왜 못한다는 거야?"

"오빠는 프랑스에 가서도 처음부터 한식을 염두에 두고 요리를 배웠지만 난 정통 프랑스 요리만 생각해서 달라."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인데 뭐가 다르다는 거야?"

"그런 게 있어."

지훈은 르꼬르동 블루에 있을 때부터 한식의 세계화를 염두에 두고 요리를 배웠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훈은 서양 사람들의 입맛과 문화를 잘 알아야만 한식을 세계화 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그들의 장점을 수용하겠다는 측면에서 요리를 배웠다.

이는 가온누리에서 허브와 허브를 이용한 각종 향신료를 사용하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었다.

반면 철저히 프랑스 요리를 배우는데 주안점을 뒀던 수아는 귀국 후에도 정통 프랑스 스타일의 요리를 하고 싶어 했다.

"이것아, 기다리는 사람도 생각해줘야지. 네 생각만 하면 어떡해?"

"어머니, 저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아가 자신의 재능을 활짝 꽃 피우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언제까지 서로 떨어져 있을 거야?"

"수아도 프랑스에서 아예 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때가 되면 돌아오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가 언제냐고?"

"길어봐야 몇 년이겠죠."

"몇 년이라니,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어머니, 저는 정말로 괜찮으니까 너무 재촉하지 마세요."

누구보다 수아의 귀국을 기다리는 이는 지훈이었다.

그러나 수아가 자신 때문에 재능을 썩히는 것을 원치 않기에 몇 년 정도는 참고 기다려줄 생각이었고, 수아를 대신해서 괜히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예비 장모님을 설득했다.

때마침 켜져 있던 TV에서 고담의 광고가 흘러나온 것은 그때였다.

'어! 예은이가 나오네.'

우연찮게 TV로 시선을 돌렸던 지훈은 예은이가 나오는 모습에 광고를 주목했다.

그런데 광고 끝 무렵에 나오던 화면을 보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고, 그건 옆에서 TV를 같이 보던 수아도 마찬가지였다.

"오빠, 저기 메뉴가 가온누리와 똑같아."

"그... 그러게."

"토시 하나도 다르지 않는 것이 메뉴를 완전히 베꼈네."

"수아야, 왜 그래?"

"엄마, 누가 오빠 식당의 메뉴를 그대로 베낀 것 같아요."

"메뉴를 베끼다니, 다른 식당에서 지훈의 식당과 똑같은 음식을 만든다는 말이야?"

"응."

"음식점은 다 그렇잖아?"

"그건 이미 널리 알려진 음식이나 그렇고, 오빠의 메뉴는 오빠가 고생 끝에 새롭게 개발한 메뉴이니까 저렇게 무단으로 따라서 하면 안 되지. 엄마, 저건 도둑질이야!"

"음식을 따라서 한다고 도둑질이라니, 난 이해를 못 하겠다."

"엄마, 아빠가 수박을 아주 크고 달게 재배하는 방법을 몇 년 간의 연구 끝에 알아냈는데, 다른 사람이 몰래 그 방법을 훔쳐 가면 좋아? 엄마 말대로라면 어차피 수박은 다른 사람들도 재배하고 있으니까 그냥 넘어가는 게 맞겠네?"

"그러면 안 되지. 그게 아무리 탐이 나도 당연히 말을 하고 허락을 받은 후에 배워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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