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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도 마찬가지야. 오빠가 연구 끝에 새로운 재료를 써서 아주 맛있는 요리를 개발했는데 저 사람들은 얘기도 안 하고 훔쳐갔잖아."
"그런 거였어?"
"당연하지. 오빠네 식당의 메뉴는 오빠가 연구를 해서 개발한 새로운 음식인데 자기 맘대로 그걸 베끼면 안 되지."
"그럼 이제는 어떡한다니?"
"오빠가 이럴 때를 대비해서 특허를 받았으니 아까 그 사람들에게 따져야지. 오빠, 아까TJ 호텔이라고 나온 것 같은데 신고부터 해야지 않아?"
"우선은 그쪽과 접촉을 해서 시정을 요구해야지."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했지만 명색이 호텔에서 그런 일을 저지르다니 의외였다.
더군다나 메뉴까지 똑같은 명칭을 썼다는 것이 너무 뻔뻔해서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특허를 받은 이상 그쪽에 연락해서 당당하게 시정을 요구할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이번 일로 예은이에게 피해가 가면 어떡하지?'
어차피 이런 일을 대비해서 특허를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예은이가 CF모델로 기용된 점이 마음에 걸린 지훈은 조치를 취하기 전에 먼저 그녀와 연락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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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가 죽일 놈이에요!
수아의 어머니가 차려준 저녁을 먹은 지훈은 잠시 산책을 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집 밖으로 나와서 예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기 무섭게 전화를 받은 예은은 밝은 음성으로 먼저 인사를 해왔다.
-오빠, 오랜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어?
"나야, 늘 마찬가지이지."
-한동안은 그렇게 통화가 안 되더니 오늘은 오빠가 먼저 연락을 해오다니 무슨 일이래?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는 걸?
"그동안 바빴어. 미안해."
-아냐, 나도 요즘 바쁘게 지내. 오빠, 나 얼마 전에 CF 찍었는데 봤어?
"나도 봤어. 실은 그것 때문에 전화했어."
-어쩐지, 오빠도 봤구나. 나, 예쁘게 나왔지?
"응."
CF를 찍은 게 자랑스러운 예은이는 그 뒤로도 들뜬 목소리로 계속해서 CF와 관련한 얘기를 했다.
반면 지훈은 전화를 하기는 했지만 막상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계속해서 뜸만 들였다.
그사이 예은은 남자친구가 생긴 사실을 자랑스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오빠, 나 남자친구 생겼다.
"그래? 잘 됐네, 축하해."
-고마워, 오빠. 그런데 그 사람도 오빠처럼 외식사업을 해.
"외식사업을 한다면 그 사람도 셰프야?"
-셰프는 아니고 오너야. 이번 CF도 그 사람 회사의 광고야.
"이번 CF가 그 사람 회사의 광고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오빠, 파밀시에테라고 알아?
"파밀시에테?"
-응. 그 회사의 박현식 사장이 내 남자친구야.
"박현식 사장이 네 남자친구라고, 그러면 이번에 맡은 CF가 파밀시에테와 무슨 관련이 있어?"
-맞아. 남자 친구가 파밀시에테에 이어서 고담이라는 새로운 프랜차이즈를 만들었어.
"고담이 새로운 프랜차이즈의 이름이라는 거야?"
-응. 내 남친은 고담을 TJ 호텔에 입점 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매장을 전국으로 확대할 생각이야.
"그... 그랬구나."
조금 전까지 지훈은 TJ 호텔이나 또는 TJ 식품에서 고담이라는 식당을 오픈하고 그곳에서 자신의 메뉴를 베낀 줄 알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박현식의 얘기가 나오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고, 나아가 고담의 소유주가 박현식임을 아는 순간 그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메뉴를 베꼈음을 짐작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예은이의 남자 친구가 박현식이라는 점이었다.
'허참, 일이 묘하게 꼬였네.'
자신과 박현식은 철저히 악연으로 점철된 사이였다.
이는 이번 일만 봐도 확실했다.
그런데 자신과 박현식 사이에 예은이가 끼어든 것이 의외여서 무척 당황스러웠다.
'일을 어떡하지?'
박현식은 밉지만 이번 일에는 예은이가 끼어 있었고, 지훈은 어떤 식으로든 그녀가 상처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예은이 몰래 박현식과 단둘이 만나서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녀석이 하는 짓을 생각하면 법대로 처벌하고 싶지만 예은이를 봐서 이번만은 곱게 넘어가주마.'
특허를 신청한 것은 돈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지훈은 박현식이 잘못을 인정하고 메뉴를 조정하면 이번 일을 모른 척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반면 지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예은이는 언제 한번 함께 만나자는 제안을 해왔다.
"시간이 되면 그렇게 하자."
-오빠, 우리 오빠가 지금은 파리에 있어서 당분간은 어렵고 귀국하면 거기에 맞춰서 시간을 잡을게.
"지금 파리에 있다고?"
-응.
"언제 오는데?"
-아직은 정확히 모르나봐.
"알았어. 다음에 보자."
통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지훈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수아의 부모님과 TV를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잠시 얘기를 나누자며 수아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오빠, 안색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어?"
"알아보니까 내 메뉴를 훔친 이가 박현식이었어."
"뭐! 그 사람이 그런 짓을 했다고? 허~참! 그 사람은 왜 그러고 살지? 오빠, 그 사람이 프랑스까지 날 찾아온 것 알아?"
"그 녀석이 지금 파리에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널 찾아왔다고?"
"귀국 전날 우리 레스토랑으로 찾아와서 날 여전히 좋아한다면서 그때의 일은 오해라고, 오빠가 거짓말을 했다는 식으로 얘기하더라고."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귀신 신나락 까먹는 소리하고 있네. 그래서 뭐라 했어?"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냥 뿌리치고 나와 버렸어."
"여자 친구도 있는 놈이 그런 짓을 해? 그놈,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여자 친구도 있다고?"
"그래. 녀석은 내가 아는 동생과 사귀고 있는 중이야."
"아는 동생, 누구?"
"예은이라고 리아의 친구인데, 두어 번 함께 만났어. 실은 아까 CF에 나온 여자 모델이 예은이여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려고 전화했다가 박현식의 얘기를 들었어."
"오빠가 아는 동생이라면 박현식에 대해서 얘기해줘야 하는 것 아냐?"
"그 문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잘 하는 일인지 모르겠어. 그래서 좀 더 생각해보고 결정해야겠어."
"하긴 그 여자 입장에서는 진심도 몰라주고 괜히 오빠를 오해할 수도 있겠다."
"어머니가 걱정하실 것 같은데 오늘은 그만 들어가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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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가온누리로 돌아온 강민구는 홀로 요리 연습을 하고 있던 하마를 발견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형님, 오늘도 열심히 하시네요."
"어머니는?"
"주무시는 것 보고 왔어요."
"잘했다."
"형님,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는데 솔직하게 대답해주세요."
"뭐?"
"우리 어머니의 병환이 많이 좋아진 일과 사장님과 어떤 관련이 있죠?"
"몰라."
"아이, 왜 그러세요?"
"민구야, 아무 소리 말고 사장님께 잘해. 그리고 아까 내가 했던 말 명심하고 그렇게 해.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다."
"무슨 말이요?"
"어머니를 완치시키려면 사장님이 직접 해준 음식을 아마 한두 번 정도는 더 드시게 해야 할 거야."
"거봐요, 무슨 관련이 있다는 얘기잖아요?"
어머니가 혼자서 걷는 광경을 목격했을 때 강민구는 가슴속에서 뭉클한 것이 치밀어 올랐다.
그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벅찬 감동과 희열이었고, 그 때문에 강민구는 마음속으로 믿지도 않은 신의 이름을 부르며 그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었다.
그런데 아까 낮에 하마의 얘기를 들은 이후부터 머리가 복잡해졌다.
만약 자신의 추측대로 어머니의 병환이 좋아진 까닭이 지훈과 관련이 있다면 자신은 은인을 상대로 천인공노의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었다.
막말로 자신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가며 스파이 노릇을 하는 까닭도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함이었는데, 추측대로라면 더 이상 그 짓을 해서는 안 되었다.
아니, 어머니의 병을 완치시키기 위해서도 더더욱 지훈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데 사람이라면 당장 스파이 짓을 때려치우고 용서를 빌어야만 했다.
"형님, 왜 대답을 안 해요?"
"아후~! 내가 뭐한다고 그런 얘기를 해가지고, 요놈의 주둥이가 방정이야."
"형님, 어디 가세요?"
"이제 연습은 그만하고 쉴 생각이다."
"제 질문에 대답은 해주셔야죠."
"몰라."
자꾸 매달리는 강민구를 뿌리친 하마는 2층으로 올라가서 세면을 마치고는 바닥에 누운 상태로 TV를 켰다.
한편 하마를 따라서 올라온 강민구는 계속해서 보채며 답을 재촉했다.
"형님, 우리 어머니의 병세가 좋아진 것은 사장님과 관련이 있는 것이 맞죠?"
"그래, 임마! 상황 보면 모르겠냐?"
"역시!"
계속해서 보채는 강민구가 귀찮았는지, 아니면 그가 이미 대부분의 사실을 알았다고 여겨서인지 하마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몸 안에 특별한 기를 갖고 있어. 그래서 정성을 다해서 요리를 하며 그 기가 요리에 스며들어서 신비한 효과를 발휘해."
"신비한 효과요?"
"암으로 병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던 유병만 회장님도 사장님 덕에 나았고, 신경통으로 고생하시던 노영필 사장님의 어머니도 사장님이 해준 음식을 드시고 나았어."
"아!"
"민구야, 어디 가서 내가 했던 말을 옮기면 쥐도 새도 모르게 파묻어 버릴 테니까 입단속 잘해라. 알았냐?"
노영필의 신신당부에도 결국 비밀을 실토해버린 하마는 자신의 입방정 때문에 지훈의 비밀이 알려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강민구에게 함구할 것을 강요했다.
반면 마침내 비밀을 알게 된 강민구는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죄책감 때문에 일순 멍해져서 대답도 못했다.
"야, 왜 대답이 없어. 알았어?"
"예."
"내 생각인데 사장님이 기를 자주 사용하면 큰일 나."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나도 노영필 사장님에게 얼핏 들은 얘기인데, 사장님이 기를 계속 쓰면 몸에 이상이 오는 것 같아."
"무슨 이상이요?"
"나도 잘 몰라. 하지만 분명 좋은 일은 아닐 거야. 어쩌면 사장님의 건강이나 수명에 문제가 생길 지도 몰라. 원래 그런 특별한 기운은 그만큼 제약이 있는 법이잖아?"
"그러면 사장님은 몸에 무리가 오는 것을 알면서도 제 어머니를 위해서 음식에 기를 쏟았다는 건가여?"
"그렇다고 봐야지."
강민구로 인해서 지훈의 비밀이 알려질 까봐 겁이 난 하마는 어떻게든 그의 입을 막고 싶었다.
그래서 제 딴에는 머리를 굴려서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강민구는 더더욱 죄책감이 들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지훈은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서 그런 희생을 감수해가면서 그런 은혜를 베풀었는데 자신은 턱밑에서 그에게 비수를 겨누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계속해서 광고가 나오던 TV에서 고담의 CF가 나온 것은 그때였다.
"얼레, 저놈들 봐라?"
'파밀시에테야.'
"민구야, 너도 봤냐? 저놈들 심장에 털 난 놈들 아냐? 어떻게 우리 가온누리의 메뉴를 그대로 따라할 수가 있지."
고담의 광고를 본 하마는 분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며 씩씩거렸다.
하지만 그게 누구의 소행인지 잘 알고 있는 강민구는 더욱 죄스러워서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민구야,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냐?"
"네?"
"저것들이 우리 메뉴를 따라서 했는데 못하게 해야 할 것 아냐? 죽일 놈들, 사람이 저런 짓을 하면 안 되지."
"형님, 죄송해요."
"뭐가?"
"이게 다, 저 때문이에요."
"뭐가 너 때문이라는 거야?"
"저놈들에게 가온누리의 메뉴와 조리방법을 알려준 개자식이 저에요."
"민구야, 그게 무슨 소리야?"
"제가 죽일 놈이에요!"
"이 새끼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은혜도 모르는 나 같은 놈은 사람도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