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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하루가 지났고 새 날이 밝았다.
고담의 일로 머릿속이 많이 복잡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던 지훈은 오후 5시 무렵에야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수아의 고향집을 나섰다.
"엄마, 잘 있어."
"수아야, 때 되면 돌아와."
"알았어요. 아빠, 저 갈게요."
"자주 연락하고."
"그럴 게요."
"아버님. 어머님, 올라가겠습니다."
"지훈이도 항상 건강하고, 둘이 연락 수시로 하고."
"네."
"아버님, 설날에 시간되면 저라도 내려올게요."
"바쁠 텐데 뭐 하러 하."
"그때는 가게 문을 닫으니까 괜찮아요."
"운전 조심하고."
"네. 건강하세요."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서울로 향한 지훈은 고속도로에 진입한 직후, 박현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아직 비행기 안에 있던 박현식은 핸드폰의 전원을 끈 상태였기에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
'아직 귀국 전인가?'
특허를 받은 이상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자신이었기에 여유가 있는 지훈은 박현식이 아직 귀국을 안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음을 기약하며 전화를 끊었다.
같은 시각 국세청 산하 서울지방 국세청에서는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박 계장, 자료는 확보했는가?"
"사업개시일이 올해 5월 28일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모든 자료를 확보했습니다."
"자료를 살펴봤을 때 의심 가는 점이 뭐야?"
"기본적으로 매출 누락은 모든 사업장이 하는 만큼 가온누리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매출누락을 하는 것은 가온누리도 마찬가지겠지만 사법처벌까지 하려면 그 액수가 상당해야 할 텐데 어떨 것 같아?"
"가온누리의 매출이 상당한 이상 매출누락을 통한 탈루액도 상당하지 않겠습니까? 짐작이지만 그 정도라면 언론에서도 흥미를 갖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것입니다."
"매출이 상당하다고?"
"신고 된 금액이 하루 8천만 원이 넘습니다."
"상당하군. 그 정도면 부가세도 장난을 쳤을 것 같은데?"
"그 부분도 조사 중입니다."
"거래처와 미리 입을 맞췄을지 모르니 그 부분도 잘 챙겨."
"염려 마십시오. 그리고 비용에도 수작을 부린 것 같습니다."
"수작이라니?"
"직원들의 임금액이 동일 업종하고 비교해봤을 때 턱없이 높고 그 숫자도 상당합니다."
"숫자가 상당하다면 고용하지 않은 사람도 고용을 한 것처럼 위장했다는 거야?"
"아무래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가지가지 했군."
이곳에 모인 국세청 직원들은 가온누리를 표적으로 삼아서 비밀리에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는 이들이었다.
물론 이들이 움직이게 된 배경에는 청와대의 김상현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들은 그동안 가온누리가 신고한 자료들을 샅샅이 뒤지며 의심이 가는 부분들을 찾았고, 나름대로 가온누리를 충분히 엮을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원산지 표시는 어때?"
"과장님, 그건 우리 쪽 담당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쨌든 원산지 표시를 어기면 그것도 범죄행위인 만큼 적당히 흘리면 언론에서 때려줄 것 아냐?"
"그러면 그 부분도 넌지시 확인을 해볼까요?"
"그렇게 해.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이번 일은 아주 높은 곳에서 부탁을 해온 일인 만큼 남김없이 샅샅이 까발려야 할 거야."
"그런 일이라면 우리가 전문 아닙니까, 걱정 마십시오."
"과장님, 가온누리는 저도 가봐서 잘 아는데 맛은 정말 기가 막힌데 어쩌다가 찍힌 거랍니까?"
"어린놈이 장사가 잘 되니까 보이는 것이 없어서 기고만장하고 까불다가 찍혔겠지."
"대체 누굴 건드렸기에 기자들도 들썩인답니까?"
"엄청 높은 곳에서 움직인 것만 알지, 자세한 것은 나도 몰라."
"아무튼 언론까지 달라붙었으니 소문이 자자한 가온누리도 한방에 훅 가겠네요."
"그러니 세금을 제대로 내야지. 우리는 세금을 탈루한 범죄자를 때려잡는 일이니까 괜히 사정 봐줄 생각은 말고 확실하게 탁탁 털어."
"물론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장사하는 사람치고 털어서 먼지 안 나온 놈이 있으면 제가 이 두 손으로 장을 지지겠습니다."
"그것 외에 이상한 것 없어?"
"과장님, 조사한 김에 건물 매입과정도 뒤져 볼까요?"
"왜 뭐가 이상한 거라도 있어?"
"서류를 살펴보니까 시세에 비해서 대략 10억 가까이 싸게 구입한 것으로 신고 했습니다."
"10억이면 취득세만 따져도 얼추 3천만 원을 탈루 했다는 소리인데, 그것도 뒤져. 다시 말하지만 뭐 하나라도 이상한 게 나오면 인정사정 봐주지 말고 달라 들어."
"알겠습니다. 그런데 놈을 철저히 무너트리려면 언론에도 미리 흘려줘야지 않을까요?"
"이미 준비하고 있으니 자네들은 신경 쓰지 마."
"역시 치밀하시군요. 그런데 이만하면 우리가 행차해야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위에서 빨리 움직이라고 닦달해서 내일은 뜰 생각이니까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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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넘게 운전한 끝에 톨게이트를 통과한 지훈이 수아와 함께 가온누리로 향하고 있던 늦은 저녁 무렵, 부랴부랴 귀국한 박현식은 아버지 박철웅을 만나고 있었다.
"프랑스의 일은 잘 보고 왔느냐?"
"기대와는 달리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사업이란 것이 매번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닌 만큼 너무 실망하지 마라."
"잘 알고 있습니다."
박현식은 유능한 셰프를 구하겠다는 핑계로 자신의 갑작스런 파리 행을 설명했다.
그 때문에 정확한 사실을 모르는 박철웅은 마음을 잡고 열심히 일을 하는 아들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김상현과 있었던 일을 들려줬다.
"그렇게 되면 우리 측 셰프가 청와대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까?"
"그건 무조건 가능할 것 같고 경우에 따라서는 국빈이 너의 매장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저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아버지,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더 도와주십시오."
"물론이다. 나도 힘닿는 데까지 널 도울 것이다. 그리고 기쁜 소식이 한 가지 더 있다."
"뭡니까?"
"청와대의 김상현 외교수석이 가온누리를 아주 안 좋게 생각하고 있더구나."
"그분이 가온누리를 안 좋게 보다니, 무슨 일이 있어답니까?"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오바나 대통령이 가온누리를 방문한 일과 관련해서 어떤 문제가 생긴 것 같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서 국세청을 움직였다고 들었다."
"국세청이요?"
"그래. 이미 얼마 전에 지시를 내려서 비밀리에 가온누리에 대한 내사에 들어갔고 조만간 공론화 시킨다고 들었다."
"국세청이 나섰다면 놈도 끝장이라고 봐야겠군요."
"김상현 수석이 작정하고 일을 벌인 이상, 놈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빠져 나가지 못할 것이다."
"큭큭, 듣던 중 제일 반가운 소리입니다. 짐작이지만 놈이 그렇게 어이없이 무너지면 제가 새로 만든 고담이라는 프랜차이즈가 어렵지 않게 가온누리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아가 한국에 왔고, 그녀가 지훈과 함께 고향에 내려갔다는 말에 박현식의 기분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다만 아버지 앞이라 드러내지 않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청와대의 고위 인사가 지훈을 무너트릴 계획을 꾸미고 있다니, 앓던 이가 빠지는 기분이어서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비슷한 시각, 청와대의 대통령 집무실에서는 박미혜 대통령이 업무를 보다 말고 수첩을 뒤적이고 있었다.
"각하, 왜 그러십니까?"
"지난번에 갔던 가온누리가 자꾸 생각나는군요."
"얼마 전에도 그곳을 얘기하시더니, 그곳의 음식이 입에 딱 맞으셨나 봅니다."
"맛도 훌륭했지만 이지훈씨를 만나면 뭐랄까, 괜히 유쾌해지고 활기가 솟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아주 젊은 친구이던데 각하가 좋게 보셨나 봅니다. 내일 점심 식사는 그곳으로 잡을까요?"
"그렇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 옆에는 그의 그림자이자 실세 중의 실세로 불리는 김기철 비서실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훈과 관련해서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던 그는 책상 위에 펼쳐진 대통령의 수첩에서 지훈의 이름을 발견했고, 그의 이름 옆에 별이 4개 그려진 것을 발견했다.
'별이 4개!'
박미혜 대통령은 여자라서 그런지 꼼꼼하고 섬세한 성격이었는데 인상 깊은 사람과 만나면 그 사람의 이름을 수첩에 적는 버릇이 있었고 별의 개수로 그 사람을 평가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평가 기준으로는 별 4개가 최고였다.
'각하가 그 친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기에 별 4개를 매겼지?'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기에 그 누구보다 대통령을 잘 알고 있는 김기철은 대통령으로부터 별 4개의 평가를 받은 이들은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모두 중용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 때문에 야당이나 언론으로부터 수첩인사니 또는 정실인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도 일개 셰프에 불과한 지훈을 대통령이 어찌해서 그리 높게 평가하고 있는지 의아했다.
그사이 대통령의 입에서 새로운 얘기가 흘러 나왔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오바나 대통령만이 아니라 반기윤 사무총장과 프랑스의 홀란드 대통령도 이지훈씨를 그렇게 아낀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 얘기는 신문에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유럽 각국의 정상들과 고위 각료들도 그와 좋은 관계를 나누고 있다고 하더군요."
"프랑스만이 아니라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그 친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요?"
"오바나 대통령에게 그렇게 들었습니다."
"일개 요리사가 그만한 인맥을 갖고 있다니 놀랍군요. 혹시그만큼 요리 실력이 뛰어나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각국 정상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을까요?"
"각하는 그 친구가 어떤 비범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한번만 만나봐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 친구를 만나면 유쾌해지고 활기가 솟구치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과 프랑스에서는 영웅이잖습니까?"
"예전 지하철 테러 때의 일을 얘기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하긴! 그때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프랑스에서는 그 친구 때문에 우리나라와 우리 기업의 인지도가 많이 좋아져서 매출 증진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지요, 맞습니다."
"아무튼 자꾸 관심이 가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가온누리에만 매어있게 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친구입니다."
외교란 것도 따지고 보면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건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의미였는데 오바나 대통령을 비롯해서 유럽 각국의 정상들과 깊은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점은 결코 적지 않은 자산이었다.
그러니 대통령은 지훈을 외교부의 고위 관료로 발탁해서 그 풍부한 인적자산을 나라를 위해서 사용하게 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아서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또 다시 외국의 국빈이 방한을 한다면 그때는 지훈의 화려한 인적 자산을 충분히 활용할 생각이었다.
'가온누리에만 매어있게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어쩐지 별이 4개더니, 각하는 그 친구를 크게 중용하고 싶어 하구나.'
박미혜 대통령이 지훈을 중용하고 싶어 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솔직히 세계 각국의 정상들을 비롯해서 고위 각료들과 친분을 나누고 있는 인사가 국내에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뛰어난 요리 실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일구고 있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들일 수는 없어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도움을 받겠다고 정리했다.
반면 미처 그것까지 간파하지 못한 김기철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지훈을 중용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여겼다.
더 정확히 말하면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한 이상,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나서서 멍석을 깔아야겠다고 작정했다.
'조만간 당의 중진들을 만나서 각하의 뜻을 알려야겠어. 젊은 피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제격일거야. 아! 내일, 그 친구를 만나면 각하의 의중을 넌지시 알려줘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