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137화 (13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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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는 오늘 죽었어!

생각보다 도로가 막힌 탓에 밤 10시가 넘어서야 가온누리에 당도한 지훈과 수아는 불이 꺼진 가게를 지나쳐서 2층 내실로 올라갔다.

내실의 거실에는 초조한 표정의 강민구가 하마와 함께 소파에 앉아 있다가 지훈이 들어서자 벌떡 일어섰다.

"하마연 씨, 잘 있었죠?"

"사장님, 오셨습니까."

"가게는 별일 없었죠?"

"있었습니다."

"무슨 일요?"

"사장님이 계실 때보다 더 많은 고객들이 찾아왔고, 다들 만족스러워했습니다."

"좋은 일이네요."

"처가를 방문하신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좋은 시간 보내고 왔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까 하마연 씨는 오늘이 휴무일이지 않나요?"

"다른 직원과 일정을 조정해서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하마의 휴무일이 오늘임을 기억한 지훈이 그것과 관련한 질문을 하는 사이 강민구는 긴 한숨을 토해 냈다.

그걸 본 지훈이 의아함에 왜 그러냐고 질문을 하려던 찰나, 강민구가 먼저 할 얘기가 있다며 다가왔다.

"무슨 얘기인데요?"

"여기서는 얘기하기 그렇고 1층으로 내려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빠, 나는 씻어야겠다."

"역시 사모님, 눈치가 보통이 아니십니다."

"저는 개의치 말고 편하게 얘기하고 오세요."

강민구의 표정에서 심각한 기색을 느낀 수아는 씻겠다는 핑계로 자리를 비웠고, 세 남자는 1층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가게의 테이블을 차지한 지훈은 맞은편에 앉은 강민구와 하마를 번갈아 보면서 무슨 일인지 재차 물었다.

"사장님, 놀라지 마십시오."

"알았으니까 얘기해 보세요."

"민구가, 그러니까 민구가 알고 보니……."

"사장님, 죽을죄를 졌습니다. 전 파밀시에테에서 가온누리로 침투시킨 스파이입니다."

강민구를 대신해서 얘기를 하려고 했던 하마가 차마 얘기를 못 하고 자꾸 얼버무리는 동안 강민구의 폭탄 발언이 터져 나왔다.

"강민구 씨,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가 지은 죄가 있기에 용서해 달라는 말은 않겠습니다. 하지만 잘못했다는 사과는 꼭 하고 싶습니다."

"강민구 씨, 파밀시에테의 스파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장님도 아시겠지만 이 녀석의 어머니가 투병 중이잖습니까? 그래서 파밀시에테에서 돈을 준다고 유혹해서 이 녀석을 우리 가게로 의도적으로 침투시켰다고 합니다."

"사장님, 저는 가온누리에서 일하기 직전에 파밀시에테에서 일했습니다."

"스파이라는 것은 무슨 뜻이죠?"

"사람이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되는 건데, 저는 가온누리의 레시피를 파밀시에테에 넘겼습니다."

"우리 레시피를 파밀시에테에 넘겼다고요?"

"죄송합니다."

"사장님은 아직 모르시나 본데, 고담이라는 한식당이 TJ호텔에 입점합니다. 거기의 메뉴가 우리와 똑같습니다. 그리고 그 식당이 파밀시에테에서 만든 새로운 프랜차이즈랍니다."

"그게 다 저 때문입니다."

고담과 파밀시에테의 관계는 지훈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박현식은 단순히 메뉴만 흉내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맛의 비법까지 훔치려고 했던 것 같았다.

'박현식, 너란 놈은 정말로 어쩔 수 없구나.'

너무도 모질게 이어지는 악연에 지훈이 고개를 흔드는 사이 강민구는 잘못을 빌기 시작했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저를 경찰에 넘기시고 파밀시에테를 고발하십시오."

"사장님, 민구를 용서해 주면 안 되겠습니까? 이놈도 좋아서 한 일이 아니고, 투병 중인 어머니 때문에 그런 짓을 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하마연 씨, 진정하세요. 나는 강민구 씨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강민구 씨, 파밀시에테에 넘긴 레시피는 어떤 거죠?"

"주방에서 사용하는 레시피를 기본으로 하고 제가 직접 배운 것들을 첨부했습니다."

"레시피를 이미 넘긴 마당에 이제 와서 진실을 고백하는 이유는 뭐죠?"

"사장님이 직접 해 주신 음식을 드신 어머니의 병환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게 어쨌다는 거죠?"

"사장님, 저도 노영필 사장님에게 얘기를 들어서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강민구 씨에게 들려줬습니다."

"사장님께서는 제 어머니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 가며 그런 은혜를 베푸셨는데, 저는 그런 못된 짓이나 하고 있었다니……. 저 같은 놈은 천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감정이 복받쳤는지 강민구는 얘기 도중에 흐느끼기 시작했고, 그간의 일을 남김없이 고백했다.

반면 하마와 강민구가 음양오행기와 관련한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살짝 놀랐던 지훈은 그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 많지 않다는 점에 안도했다.

사실 그 정도의 비밀은 비밀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걱정보다는 이런 일까지 꾸민 박현식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박현식, 더 이상의 용서는 없다. 나도 이번만큼은 철저히 잔인해지겠다.'

예은과의 관계 때문에 어지간하면 조용히 끝내려고 했던 생각을 바꿔서 다시는 박현식이 허튼짓을 하지 못하도록 처절한 교훈을 안겨 주기로 작정한 지훈은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강민구 씨, 고담의 오픈 날이 언제죠?"

"12월 6일로 알고 있습니다."

"장철우는 계속해서 다른 비법을 밝혀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최소한의 단서라도 알아내라고 닦달하고 있습니다."

레시피가 노출되었음에도 장철우가 똑같은 맛을 내지 못하는 것은 음양오행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강민구가 아무리 알아내려고 해도 알아낼 수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시간을 며칠 더 끌 수 있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난 고담이 계획된 날짜에 오픈해서 우리와 똑같은 메뉴로 영업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장님, 어쩌시려고요?"

"그자들이 우리와 똑같은 메뉴를 서비스한다고 해도 그 맛은 절대 흉내 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자들이 똑같은 메뉴를 서비스하면 우리에게도 적잖은 타격이 올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러겠지만 입맛처럼 정직한 것이 없는 만큼 오히려 우리와 비교되기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놈들을 더 철저히 응징할 수 있습니다."

상황으로 보건대 박현식은 지훈이 특허를 받은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실 새로운 메뉴로 성공을 거둔 사람은 비법의 노출을 우려해서 특허를 신청하지 않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였다.

막말로 지훈도 음양오행기가 없었더라면 특허를 신청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아무튼 특허를 받은 이상, 고담이 똑같은 메뉴로 영업을 한다면 특허권 침해가 분명했기에 박현식을 궁지로 몰 수 있었다.

"사장님, 더 철저히 응징할 수 있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때가 되면 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민구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사장님, 저는 어떻게 되도 상관없으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강민구 씨, 늦게라도 진실을 고백해서 고맙습니다."

"사장님, 민구를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

"남자가 눈물까지 흘려 가며 사과를 하는데, 같은 남자라면 용서를 해야지 않을까요?"

"역시 사장님이라면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아닙니다, 사장님. 저 같은 놈은 천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제가 한 짓을 경찰에 신고하면 파밀시에테가 가온누리의 메뉴를 따라서 하는 건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일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 강민구는 용서해 주겠다고 했음에도 가온누리를 걱정해서 처벌을 자청했다.

그 모습을 통해 강민구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음을 재차 확인한 지훈은 말없이 그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새벽 내내 굵은 비를 토해 냈던 하늘은 오전부터는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호수처럼 잔잔하기만 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손님맞이에 분주하던 지훈은 청와대에서 나왔다는 경호부서의 직원과 마주했다.

"각하께서 12시 10분에 오신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혹시 동행해서 오시는 귀빈도 있습니까?"

"아닙니다. 식사는 각하만 드실 것입니다."

"각하께서 어떤 메뉴를 원하시는지 미리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그것까지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기존의 메뉴만으로 각하를 모시겠습니다. 참! 각하가 따로 원하시는 테이블은 있습니까?"

"각하께서는 국민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테이블을 홀에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지훈이 청와대의 직원과 얘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강민구는 주방 밖에서 장철우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 옆에는 이전과 달리 하마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강민구 씨, 시간이 많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습니까?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 마스터님의 예상과 달리 이 사장의 움직임에서 별달리 이상한 기색은 없었습니다."

-강민구 씨, 그게 무슨 말이지?

"가온누리에서는 제가 지난번에 보내 드린 레시피대로만 요리를 하고 있을 뿐, 장 마스터님이 예상한 것처럼 숨기고 있는 또 다른 비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강민구 씨, 그건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

"그래서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저도 이곳에서 요리를 하고 있습니다만, 레시피 이외의 것은 첨가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객들은 다들 만족스러워하고 있는데 장 마스터님만 아니라고 하니 의심이 갑니다."

-무슨 의심이 간다는 거야?

"제가 가온누리에서 요리 비법을 빼내면 받기로 한 돈을 주지 않으시려고 그러시는 것 아닙니까?"

-강민구 씨,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아무렴 내가 고작 1,000만 원을 아끼려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다는 거야?

"1,000만 원이 결코 적은 돈은 아니기에 저는 자꾸 그런 생각이 듭니다."

강민구는 통화 도중에 자신이 했던 짓과 그 대가로 돈을 받기로 한 사실을 상세하게 언급했다.

이는 파밀시에테에서 의도적으로 자신을 가온누리에 침투시켰음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쉽게 말해서 강민구는 자신과 장철우의 통화 내용을 빠짐없이 녹음하고 있었다.

반면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장철우는 강민구가 괜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돈을 지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파밀시에테로 복귀하면 바로 승진을 시켜 주겠다는 얘기를 주절거렸다.

"정말 그렇게 해 주시는 것입니까?"

-미치겠네. 그렇게 해 준다니까! 강민구 씨도 알고 있겠지만, 이번 일은 사장님 결재까지 받은 거잖아?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가온누리의 비법이나 찾아내.

"한 가지만 더 얘기하겠습니다."

-뭐?

"확인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얼마 전에 주임으로 승진했습니다."

-그래서?

"이곳 주임의 월급이 파밀시에테 대리의 월급보다 많습니다. 그러니 그 점도 감안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뭐! 거기 주임의 월급이 우리 회사 대리보다 더 많다고?

"거짓말 아닙니다."

-좋아! 거기보다는 더 많은 월급을 줄 테니까 최대한 빨리 비법이나 훔쳐.

"비법은 그때 넘긴 레시피가 전부인데 또 다른 뭐가 있다니 정말로 답답합니다."

-그럴 리가 없어. 분명 놈이 숨기고 있는 비법이 있을 거야.

"하지만 그게 전부이고 굳이 다른 것을 찾자면 장류나 조미료 그리고 향신료만 다릅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때도 얘기했지만 가온누리는 그런 것들도 직접 만들어서 씁니다. 아! 소스도 사장님이 직접 만든 것만 사용합니다."

-소스도 놈이 만든 것만 사용한다고? 혹시 거기에 어떤 비법이 숨겨 있는 것 아냐?

"그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소스를 만드는 레시피는 이미 제가 넘겼지 않습니까?"

-아냐, 분명 놓치고 있는 것이 있을 거야. 소스를 놈이 직접 만든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내 추측이 틀림없다면 그 과정에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이 틀림없어. 그러니까 앞으로는 소스 만드는 과정을 눈여겨 봐.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장류와 조미료 만드는 것도 지켜보고.

"알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제는 불과 며칠밖에 안 남았으니까 한시도 한눈을 팔아서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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