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회: 5-2 -->
"명심하겠습니다."
-비법을 찾게 되면 언제라도 좋으니까 바로 알리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고하게.
"들어가십시오."
통화를 끝낸 강민구는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서 바로 옆에 있던 하마에게 OK 사인을 보냈다.
확실한 증거를 확보했다는 생각에 하마가 크게 기뻐하며 강민구와 하이 파이브를 하는 동안 파밀시에테의 사무실에 있던 장철우는 깊은 고민에 잠겼다.
'만약 오픈 날까지 비법을 알아내지 못하면 어떡하지?'
장철우는 아직까지 가온누리에 가 본 적이 없어서 가온누리의 요리를 직접 먹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강민구가 넘긴 레시피만으로는 뭔가가 부족하다는 것은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요리한 음식이 맛이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장안에 소문이 자자하다 못해 오바나 대통령까지 극찬할 정도의 맛은 아니었기에 분명 다른 비법이 있다고 추측했고, 지금에 와서는 소스에 어떤 비밀이 있을지 모른다고 판단했다.
'소스에 비밀이 있다면 다른 뭔가를 첨부했다는 얘기인데, 그게 뭘까?'
계획대로 강민구가 소스의 비법을 알아내면 다행이지만 지금 같은 상태라면 그때까지 못 알아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했고, 그건 지금까지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최상의 맛을 직접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더 늦기 전에 지금부터 내가 직접 요리를 해 보는 게 좋겠어.'
서울지방국세청의 조사 2과 사무실에는 오전부터 묘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저마다 바쁘게 움직이던 그들은 10시 30분 무렵 사전 브리핑을 하자는 최형석 과장의 말에 회의실로 모였다.
"준비는 다 되었겠지?"
"물론입니다."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가온누리를 방문하거든 우선적으로 포스 시스템의 데이터부터 확보해. 그걸 확보해야만 탈루의 증거를 잡을 수 있을 거야."
"염려 마십시오."
"거래처 장부를 비롯해서 그 밖의 장부를 챙기는 것도 잊지 말고, 특히 그만한 규모라면 이중장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 부분도 확실히 뒤지고."
"알겠습니다."
"과장님, 금융 추적 조사를 하려면 통장도 확인해야지 않겠습니까?"
"물론이야. 우리가 확보한 이지훈의 계좌 외에 제3자 명의의 차명 계좌도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니까 그 부분도 간과하지 말고 잘 챙기고."
"알겠습니다."
"과장님, 출발하시죠."
최형석 과장을 비롯해서 여덟 명의 직원들은 한 대의 승용차와 두 대의 승합차를 나눠 타고 가온누리로 향했고, 11시 40분경에 가온누리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 당도했다.
"과장님, 오늘따라 뭔 경찰들이 이렇게 많이 나와 있죠?"
"무슨 단속이라도 하나 보지. 가온누리는 어디야?"
"이 골목으로 반듯이 20미터만 올라가면 됩니다."
"안에 주차장은 있어?"
"주차장은 바로 여기입니다."
"곧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차들이 많군."
"말도 마십시오. 가게의 규모가 상당한데도 예약을 안 하고 가면 자리가 없어서 대기표를 뽑고 기다려야 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그동안 얼마나 빼먹었겠어?"
"그래서 저희가 온 것 아닙니까."
"과장님, 차를 이곳에 주차할까요?"
"됐어, 가게 코앞에까지 몰고 가. 그래야 우리도 일하기 편하지만 손님들도 무슨 일이 생겼는지 눈치챌 것 아냐."
이번의 특별 세무조사는 가온누리를 단단히 손봐 달라는 고위 인사의 부탁으로 이루어졌다. 그 때문에 최형석은 의도적으로 손님이 많은 점심시간에 맞춰서 가온누리를 방문했고, 자신들의 행차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 가온누리 안마당까지 차를 몰고 가게 했다.
이는 가온누리를 찾는 손님들에게 국세청의 특별 조사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리고 이를 통해서 가온누리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함이었다.
"어! 과장님, 누가 다가오는데요."
"뭐 하는 놈이야?"
"복장으로 봐서는 보안 요원이나 경호업체 직원 같은데, 한두 명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역시 구린 데가 워낙 많나 보니 한낱 식당에서 보안 요원까지 두고 있나 보군."
"그런 것 같습니다."
"이지훈, 너는 오늘 죽었어!"
최형석을 비롯해서 국세청 직원들은 모르고 있지만 조금 있으면 박미혜 대통령이 가온누리를 방문한다. 즉, 양복을 입고 이어폰을 꽂고 있는 건장한 사내들은 일반적인 경비업체의 직원들이 아니라 청와대 경호실의 요원들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국세청 직원들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손을 들어 자신들의 진입을 저지하며 다가오자 차의 창문을 내리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당신 뭐야, 빨리 안 비켜!"
"여기는 차가 올라올 수 없는 곳이니 밑에 있는 주차장을 이용하십시오."
"이 사람이 우리가 누구 줄 알고, 이래라저래라 명령이야?"
"이봐, 우리는 공무 수행 중이니까 공무 집행 방해하지 말고 당장 비켜."
"저 역시 공무 수행 중입니다."
"이 사람이 어디서 공무 수행을 사칭해? 당장 안 비켜."
"이봐, 우리는 국세청에서 나왔으니까 겁 없이 알짱거리지 말고 썩 꺼져."
"하여간 가온누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 없네. 이것들, 팬티까지 탁탁 털어야 정신 차릴 거야."
기세등등하게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며 경호 요원을 윽박지른 국세청 직원들은 이만하면 상대가 알아서 납작 엎드릴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상대의 반응은 예상과 너무 달랐다.
"실례하지만, 국세청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당신이 그걸 알아서 뭐하게?"
"이봐, 공무 집행 방해로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당장 비켜."
"무슨 공무인지는 모르겠지만 국가공무원이 이런 식의 태도를 보이다니 상부에 정식으로 보고하겠습니다."
"뭐! 상부에 보고하겠다고?"
"이자가 어디서 협박을 하는 거야?"
"당신, 정말 따끔한 맛을 보고 싶어?"
"당신들, 보자 보자 하니 정말 형편없는 사람들이군. 곧 각하가 당도하실 예정이니 당장 차를 빼시오."
"뭐, 누가 온다고? 대통령?"
"이자가 어디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시부렁거리는 거야?"
"이봐, 확 갈아 버리기 전에 썩 물러나."
"당신들, 내 얘기를 뭐로 들은 것이오? 각하가 당도하시기 전에 먼저 차부터 돌리시오. 그리고 오늘의 일은 정식 절차를 거쳐서 보고를 할 테니 그리 아시오."
"헉!"
"엥!"
좋게 말로 했음에도 상대가 자신들의 신분을 내세우고 위압적인 태도를 보이자, 경호 요원은 자신의 신분증을 꺼내서 그들의 코앞에 내밀었다.
그제야 사내의 정체를 알게 된 국세청 직원들은 깜짝 놀라서 당황스러워하다가 차를 후진하기 시작했다.
"과장님, 우리는 어떻게 될 까요?"
"젠장, 재수에 똥 붙었나, 하필이면 이런 일이 생길 게 뭐야?"
"과장님, 방금 전의 일도 문제지만 근거도 없이 세무조사에 나선 것을 알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일단 차부터 빼."
공무원이 국민들에게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은 큰 문책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통상적으로 특별 세무조사는 무조건 하는 것이 아니어서 신고가 있거나 정황상 탈세의 의혹이 포착되었을 때 진행된다.
그런데 가온누리는 신고가 들어오지도 않았고, 심지어 영업을 시작한 것도 고작 6개월밖에 안 되어서 누가 봐도 지금의 세무조사를 이상하게 여길 것이 분명했다.
"과장님, 위에 보고부터 해서 이 상황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그게 좋겠어."
"과장님, 저쪽에 있는 사람은 청와대의 김기철 비서실장 같은데요."
"과장님, TV에서 본 사람이 맞는데 이러다가 된통 걸리는 것 아닐까요?"
"통화 중이니까 기다려."
외교부 관계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던 김상현 외교수석이 서울국세청에 근무하는 지인과 통화를 하고 있을 무렵, 최형석 과장은 대통령보다 먼저 가온누리에 당도한 김기철 비서실장과 마주했다.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철이오. 듣자니 국세청에서 나왔다던데 어디서 나왔소?"
"서울지방국세청입니다."
"서울지방국세청 어느 부서의 누구요?"
"조사 2과 소속이고 저는 조사 2과장 최형석입니다."
"경호 요원에게 보고 듣기로 공무 수행 중이라던데 어떤 내용인지 들을 수 있겠소?"
"세무조사차 나왔습니다."
"세무조사라는 건 신고 성실도나 신고 소득율에 문제가 있어야만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온누리에 무슨 문제가 있소?"
"그건 아닙니다만……."
"그렇다면 혹시 소득 탈루와 관련한 제보가 들어왔소? 만약 그랬다면 내가 알아보기 전에 확실하게 얘기를 하시오."
"그게 아니라……."
김기철의 질문에 최형석은 할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일은 애초부터 표적 조사로, 무슨 증거나 정황이 있어서 세무조사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막말로 지금의 조사는 이상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이 있는지 들추기 위해서 하는 것이었다.
한편 김기철은 대통령이 중용하고자 하는 지훈을 지켜 주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여겼기에 꼬치꼬치 캐물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결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만약 사안이 중차대할 경우에는 그 사실을 대통령에게 알려서 지훈을 눈여겨보고 있는 대통령의 생각을 바꾸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국세청 직원들이 자신의 눈치만 보는 것이 몹시 수상했는데, 때마침 김상현 외교수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김 실장, 김상현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가온누리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각하께서 얼마 전부터 이곳을 계속 오시고 싶어 하셔서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듣기로 국세청 직원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청와대 경호원들에게 무례하게 굴었다고 하던데 그 일은 모른 척해 주십시오.
"김 수석께서 그걸 어찌 알고 계시는 겁니까?"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국세청 직원들은 내 부탁을 받고 움직였습니다.
"무슨 뜻으로 그런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가온누리의 이지훈이 너무 오만방자하고 안하무인 격으로 굴어서 버릇을 고쳐 줄 생각에 내가 손을 썼습니다.
김상현은 청와대에서 함께 일하는 사이이기에 이 정도로 얘기하면 김기철 비서실장이 이해하고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통령을 수행하고 그의 의중을 실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는 김기철은 김상현의 예상과는 달리 버럭 성질부터 냈다.
그도 그럴 것이 김기철은 김상현이 가온누리에서 권위적인 모습을 보인 일로 대통령에게 따로 불려 가서 한 소리 들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아가 청와대 안팎에서 김상현이 너무 권위적이라는 얘기가 종종 흘러나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오늘 일이 어찌해서 비롯되었는지 바로 간파했다.
"김 수석,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고작 개인적인 은원으로 아무 증거나 정황도 없이 국세청을 움직였다는 것입니까? 그게 각하를 최측근에서 모시는 청와대의 인사가 할 짓입니까?"
-김 실장, 그놈이 오죽 오만방자했으면 내가 그리했겠소? 그리고 내가 아무리 잘못을 했다고 해도 짓이라니, 언사가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당장 사과하세요!
"김 수석, 아마 오바나 대통령 방한 때의 일로 앙심을 품고 이런 일을 꾸민 것 같은데, 제발 분위기 파악 좀 하세요. 내가 각하를 모시고 가온누리를 온 것을 보면 모르겠습니까?"
-허~험! 내가 뭘 모른다는 것입니까?
김기철의 질책에 무안함과 함께 분노를 느낀 김상현은 괜히 흥분해서 덩달아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김기철의 말을 듣는 순간 뭔가가 있다는 생각에 질문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김 수석, 이지훈 씨는 대통령 각하께서 크게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김 실장,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각하께서는 이지훈 씨를 중용할 생각을 갖고 있는데, 각하의 뜻을 알아서 모셔야 할 청와대 인사가 돕기는커녕 재를 뿌려야 쓰겠습니까?"
-한낱 요리사인 그 친구를 각하가 무슨 이유로 중용한다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