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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수석, 이지훈 씨는 오바나 미국 대통령 외에도 반기윤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서 유럽 각국의 정상들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뭐요? 그자가 유럽 각국의 정상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솔직히 한국에서 그만한 사람을 구하기가 쉬울 것 같습니까? 외교를 담당하는 김 수석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제 말이 틀렸습니까?"
-그……그렇소이다.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이지훈 씨의 도움을 가장 많이 받을 인사가 김 수석인데 알아서 챙기지는 못할망정 없는 흠집까지 억지로 내야겠습니까?"
-허~험! 나는 각하께서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말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프랑스의 대통령과 독일의 총리는 이지훈 씨의 말이라면 뭐든 들어줄 정도로 그 친구를 매우 아낀다고 합니다. 그러니 각하가 그 친구를 긴히 쓰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미안하게 됐습니다.
"늦게나마 상황을 파악하신 것 같으니 더 이상의 얘기는 않겠습니다. 여기 일은 내가 마무리할 것이니 김 수석은 국세청의 일에서 손을 떼십시오."
-그러지요. 괜한 분란을 일으켜서 면목이 없습니다.
체면만 구긴 꼴이 된 김상현은 사과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지훈을 중용하겠다는데 그 밑에 있는 자신이 뭐라 나설 순 없었다.
더군다나 그가 유럽 각국의 정상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니 더더욱 할 말이 없었다.
한편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김기철이 김상현과 통화하는 내용을 듣게 된 국세청 직원들은 벌집을 건들었다는 생각에 더욱 좌불안석이 되었다.
그사이 통화를 끝낸 김기철은 국세청 직원들에게 가온누리와 관련한 질문을 했다.
"한 가지만 물읍시다."
"얘기하십시오."
"당신들이 보기에 가온누리가 세금을 탈루한 것 같소?"
"얘기 들으셨겠지만 저희는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가온누리가 세금을 탈루했다는 거요, 안 했다는 거요?"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너무 깨끗합니다."
국세청 직원들의 얘기는 거짓말이 아니었고 그 때문에 그들은 더더욱 가온누리를 의심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그동안 내사한 바에 의하면 가온누리는 깨끗해도 너무 깨끗했기에 믿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가온누리가 이중장부를 통해서 매출을 누락하고 차명 계좌로 증거를 인멸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의중을 알게 된 마당에 자신들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막말로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청와대 비서실장이 오늘의 표적 조사를 문제 삼으면 자신들의 만수무강에 큰 차질이 생길 수도 있었다.
"깨끗하다면 성실 납부자라는 얘기요?"
"그……그렇습니다."
"내가 알기로 성실 납부자는 표창을 하는 제도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지 않소?"
국세청이 움직인 것이 표적 조사임을 알게 된 김기철은 이번 기회에 지훈을 성실 납부자로 만들어서 여론의 주목을 받게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습니다, 있습니다."
"이 사장 같은 성실 납부자가 표창을 받아야지 않겠소?"
"알아보겠습니다."
"오늘 일을 덮으려면 열심히 알아봐야 할 것이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또 봅시다."
*2. 이래서 짝퉁은 짝퉁인 거야!
김기철 비서실장이 개입하면서 세무조사 건은 유야무야되었고 며칠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서 고담의 오픈 날이 되었다.
이제나저제나 세무조사와 관련한 소식을 기다리던 박현식은 궁금함을 참지 못해 아버지에게 그 일을 물었고,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사장님, 어떻게 되었습니까?"
"곧 알아보시겠답니다. 그런데 장 마스터는 아직까지 호텔에 안 갔습니까?"
"놓고 간 것이 있어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늘 오픈은 아무 문제 없는 거요?"
"요리를 제외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강민구는 아직까지도 연락이 없소?"
"오늘 아침에도 통화를 했는데 알아내지 못했다는 대답만 들었습니다."
"고작 그것도 알아내지 못하다니, 쓸모없는 자식."
"사장님, 비록 가온누리와 똑같지는 않겠지만 훌륭한 메뉴를 만들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장 마스터가 있어서 다행이오."
지난 며칠 동안 요리 개발에만 매달렸던 장철우는 가온누리의 레시피를 그대로 활용해서 스스로도 흡족해할 정도의 요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가온누리의 맛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대신 고객들의 호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오픈식에 참석할 내외의 귀빈들 초청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업을 하는 젊은 경영자들과 아버지를 비롯한 여당의 여러 국회의원들이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언론도 부르셨겠죠?"
"물론입니다."
오늘 오후로 예정된 고담의 오픈식과 관련해서 장철우와 얘기를 주고받던 박현식은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의 연락을 받았다.
"의원님이신 것 같은데 어서 받아 보십시오."
"여보세요."
-아비다.
"아버지, 어떻게 됐습니까?"
-일이 묘하게 꼬였구나.
"일이 묘하게 꼬이다니, 세무조사의 결과가 신통치 않게 나온 것입니까?"
-그게 아니라 세무조사를 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왜요?"
박현식 본인도 그렇지만 대한민국에서 사업하는 사람치고 세무조사를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맞았다.
그 때문에 박현식은 이번 일로 가온누리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재기 불능 상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그 상태가 되면 자신이 새로 만든 고담이 가온누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자연스럽게 차지할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세무조사를 하지도 못했다니 크게 실망스러웠다.
-현식아, 당분간은 그 친구와 가온누리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도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대통령께서 그 친구를 눈여겨보고 계신다.
"아니, 고작 그런 놈이나 눈여겨보다니, 대통령은 그렇게 할 일이 없답니까?"
-이놈아, 대통령께서는 그 친구를 크게 중용할 생각이란다.
"말도 안 돼! 이지훈을 어디다 쓴다고요?"
-지난번 오바나 대통령도 그랬지만 유럽 각국의 정상들과 고위 관료를 비롯해서 반기윤 유엔 사무총장도 그 친구와 아주 각별한 관계라고 한다.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아직도 모르겠냐?
기대했던 소식이 들려오기는커녕 오히려 속을 뒤집는 소식만 들려오자 박현식은 부아가 치밀어서 따지듯 되물었다.
그러나 곧이어 들려온 얘기는 그를 달래는 아버지의 설득이었다.
-현식아, 복수에는 때가 있는 법인데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다른 사람을 끌어들일 필요 없이 아버지가 직접 나서면 되잖습니까? 어쨌든 아버지는 이 나라의 국회의원이니까 그 정도의 힘은 있을 것 아닙니까?"
-모르는 소리 마라. 당의 중진들이 발 벗고 나서서 그 친구를 영입하려는 마당에 내가 훼방을 놓으면 난들 정치생명이 무사할 것 같으냐?
"그러니까 그 자식을 국회의원이라도 만든다는 것입니까?"
-돌아가는 분위기가 그렇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내년 지자체 선거 이후 치러지는 보궐선거에 공천을 줄 가능성이 크다.
"허~참! 한낱 요리사를 여의도로 끌어들인다니, 나라 꼴 좋습니다."
세무조사를 당해서 여론의 비난을 받으며 무너질 거라고 예상했던 지훈이가 오히려 국회의원이 된다니, 박현식은 울화통이 터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아들이 젊은 혈기를 못 이기고 사고를 칠까 두려운 박철웅은 계속해서 아들을 다독였다.
-분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러니 당분간은 절대 경거망동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잘못하면 되레 네가 다칠 수도 있다.
"아버지까지 그렇게 얘기하시니 죽은 듯 납작 엎드려 있어야지, 별수 있습니까?"
-미안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놈을 쓰러트릴 기회가 올 것이니 그때를 기다리며 인내해라.
"그때가 언제인데요?"
-현 대통령은 그자를 아끼지만 다음 대통령도 그런다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그 친구가 여의도에 입성한다면 그때는 내가 뭔가를 해 볼 수도 있다.
"휴~우! 알겠습니다."
믿었던 아버지마저도 어렵다는 말에 긴 한숨을 토해 낸 박현식은 힘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장철우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질문을 해 왔다.
"사장님, 설마 이지훈이가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입니까? 아니죠, 그렇죠?"
"아, 짜증 나!"
"이런! 어떻게 그런 놈이 국회의원이 될 수 있습니까?"
"장 마스터, 기분이 거지 같으니까 나중에 얘기하죠."
자신을 놓고 정치권에서 어떤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지훈은 보름 앞으로 다가온 호텔 입점과 관련해서 박성훈과 논의를 하고 있었다.
"주방 쪽 인원은 다 준비되었습니까?"
"지원자가 생각보다 많아서 선착순으로 끊었습니다."
"서비스 파트는 어떻습니까?"
"그쪽도 비슷해서 인원을 나누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교재는 제가 확인했는데 아주 훌륭했습니다."
"수아가 때마침 귀국해서 많이 거들어 준 통에 좋은 교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원래 교재 작성의 책임자는 정미선이었는데, 수아가 귀국하면서 그 일을 거들었고, 덕분에 좋은 교재가 나왔다.
"직원들 반응은 어떻습니까?"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전범석 씨가 아주 좋은 의견을 냈습니다."
"뭔데요?"
"교재에 나온 내용 중 일부를 받침 종이에 여러 언어로 인쇄해서 모든 고객들이 각 메뉴에 담긴 유래나 설화를 알 수 있게 하자고 했습니다."
"여러 언어면 우리말 외에 영어나 중국어 또는 일본어 같은 외국어도 덧붙이자는 것입니까? 그렇게 하면 받침 종이가 무슨 원서처럼 메뉴 설명으로 가득 차지 않을까요?"
"저도 그 얘기를 했더니 받침 종이에는 한 가지의 메뉴만 설명하되 영어와 중국어 그리고 일본어와 우리말로 안내문을 작성하자고 하더군요."
"받침 종이에 한 가지 메뉴만 설명하자고요?"
"무슨 말이냐면 받침 종이의 종류를 우리가 판매하는 메뉴와 동일하게 만들어서 해당 메뉴의 설명이 기재된 받침 종이를 깔아 주자고 하더군요."
의식동원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훈은 이번에 만든 교재에 가온누리에서 사용하는 모든 식자재의 종류를 메뉴별로 열거해서 그 성분과 효능을 기재해 모두가 외우게 했다.
아울러 각 메뉴에 담긴 유래와 설화까지 첨부해서 고객들에게 언제라도 그것을 들려줄 수 있게 했는데, 외국인 고객을 위해서 영어와 중국어 그리고 일본어로 된 설명문도 첨부했다.
그 덕분에 외국어를 잘 못 하는 직원들도 그 내용만 외워서 외국인에게 설명을 할 수 있었는데, 범석은 그것을 아예 받침 종이에 기재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상당히 좋은 아이디어군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서비스 파트의 직원들이 힘들어하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살짝 혼란스럽겠지만 조금 지나면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고객들이 흥미로워할 것입니다."
"좋군요. 인쇄소에 연락해서 새로운 받침 종이를 제작하도록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참! 고담의 일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직원들도 내색하지는 않지만 내심 적잖이 걱정하는 눈치입니다."
"뭘 걱정한다는 거죠?"
"고담도 고담이지만 이번 일로 전국 곳곳에서 우리의 메뉴를 흉내 낸 식당들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고담은 뻔뻔하게도 가온누리의 메뉴를 그대로 베꼈다.
그런데 성훈을 비롯한 직원들은 대대적인 TV 광고를 하는 고담 때문에 다른 식당들까지 가온누리의 메뉴를 대놓고 베끼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확실한 대비책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시오."
"대비책이 있다고요?"
"지금껏 얘기하지 않았는데 실은 가온누리의 모든 메뉴를 특허를 신청해서 얼마 전에 특허를 받았습니다."
"특허를 신청했다고요? 그러면 우리의 비법이 낱낱이 공개될 것 아닙니까?"
예상했던 것처럼 박성훈은 특허를 받았다는 말에 좋아하기보다는 우려의 뜻을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