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140화 (140/219)

<-- 140 회: 5-4 -->

반면 그가 어떤 점을 걱정하고 있는지 익히 알고 있는 지훈은 웃는 낯으로 얘기를 이어 갔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의 비밀을 실토하고 걱정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레시피가 공개된다고 해도 우리의 맛을 흉내 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물론 완벽하게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얼추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장류와 조미료를 비롯해서 향신료와 소스까지 흉내 낼 수는 없기에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될 것입니다. 부사장님도 잘 아시지만 입맛처럼 정직한 것은 없잖습니까?"

"어쨌든 특허를 이미 받은 이상 그 얘기를 해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특허를 받으면 고담을 응징할 수 있는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그자들은 우리의 명성을 시기한 나머지 아예 메뉴의 명칭까지 똑같이 사용했는데, 그건 특허권 침해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형사 고발은 물론이고 민사 고발까지 할 수 있습니다."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알려지면 우리의 메뉴를 따라 하려고 했던 다른 사람들도 간담이 서늘해서 감히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특허를 획득한 것이 지금의 상황에서는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겠군요.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 공개된 레시피를 기반으로 명칭은 다르겠지만 우리의 메뉴를 흉내 낸 식당들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그것까지는 막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메뉴 개발에 힘쓰는 이가 나오거나 아니면 우리의 시스템을 배우려는 이가 나오면 그것 또한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얘기하셨던 한식의 세계화를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최소한 식당만이라도 같은 그릇을 쓰는 우리의 식습관을 고치면 한식은 더 빨리 퍼져 나갈 것입니다."

"아무튼 이번 일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니 근심거리를 해결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고담에 대한 행동은 언제쯤 하실 생각이십니까?"

"수아가 출국한 이후에 할 생각입니다. 아! 고담의 마스터 셰프가 장철우던데 알고 계셨습니까?"

"그 썩을 놈이 이번에는 고담으로 옮겼습니까?"

"고담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파밀시에테에서 새로 만든 프랜차이즈가 고담입니다."

"파밀시에테가 고담을 만들었다고요? 그놈들은 남이 잘되면 따라서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부사장님이 예전에 당했던 것 이상으로 앙갚음을 해 줄 것이니 기대하십시오."

파밀시에테와 은원이 있는 박성훈은 고담의 실체를 알게 되자 어이없어하다가 앙갚음을 해 주겠다는 지훈의 말에 별안간 주먹을 불끈 쥐며 강하게 흔들었다.

그건 철저한 응징을 해 달라는 부탁이었기에 지훈도 그리하겠다는 뜻으로 불끈 쥔 주먹을 함께 흔들었다.

이틀의 시간이 지났고, 고담이 문을 열었음에도 가온누리는 변함없이 손님들로 넘쳐 났는데 지훈의 어깨는 축 처졌다.

"수아야, 지금 나가야지?"

"아직 7시인데 벌써?"

"10시 비행기라며? 지금 나가서 티케팅하고 짐 부치고 여유 있게 준비해야지."

"수아야, 지금 나갈 거니?"

"혜미야, 가기 싫은데 어떡하지?"

"그러면 가지 말고 우리와 함께 있자."

"그래도 가야지."

"수아야, 잘 다녀와."

"동석 오빠, 우리 오빠 잘 부탁해."

"수아야, 가려고?"

"지훈 오빠가 여유 있게 나가자고 하네요."

2주간의 휴가 일정을 마친 수아가 지인들과 석별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을 무렵 TJ호텔에 입점한 고담은 오픈 사흘째를 맞이해서 제법 많은 손님들로 붐비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고담을 찾은 손님들은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이는 TJ호텔에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많이 머무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아빠, 어떠세요?"

"이번에 느낀 점이지만 한국 음식은 어딜 가든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것 같구나. 여기도 괜찮은 것 같고."

"나는 그래도 얼마 전에 갔던 식당이 여기보다는 훨씬 맛있는 것 같아요."

"어디?"

"미국 대통령이 두 번이나 찾았다던 식당요."

"아, 거기!"

"아빠는 어때요? 아빠는 여기가 더 맛있는 것 같아요?"

"무슨 소리냐? 나도 그 식당이 훨씬 마음에 든다."

장철우의 요리 실력도 보통이 아니기에 고담을 찾은 고객들은 대부분 만족스러워했다.

하지만 가온누리와 똑같은 메뉴를 서비스하다 보니 가온누리를 가 본 사람들은 고담과 가온누리를 비교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같이 고담이 못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런데 매장의 가장 안쪽에 자리한 VIP룸에서는 아까부터 두 여자가 툴툴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뭔 맛이 이래?"

"참나, 이런 형편없는 맛으로 장사를 할 생각을 하다니 용기가 가상하다야."

"내가 이래서 이런 싸구려 호텔은 오지 말자고 했잖아?"

"TV에서 계속 광고를 해 대니까 맛도 괜찮을 줄 알았지."

"안 되겠다. 입맛만 버리는 것 같아서 난 그만 먹을래."

"나도 마찬가지야."

"아, 짜증 나!"

"미정아, 이럴 줄 알았으면 네 말대로 처음부터 가온누리를 갔어야 했나 봐."

"그러게 말이야. 거긴 맛도 좋지만 유기농 야채를 쓰는 것인지 먹고 나면 피부도 좋아지는데, 여긴 맛도 없고 야채도 푸석거리는 것이 다시 올 데가 아닌 것 같다. 아쉽지만 그냥 가자!"

"미정아, 나가기 전에 귤강차로 입가심만 하고 가자. 그래도 귤강차라면 기본은 하지 않을까?"

"그것도 형편없을 것 같은데?"

"아무렴 하나부터 열까지 형편없겠어? 그래도 명색이 호텔인데 한 가지는 괜찮은 게 있을 거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명품으로 도배한 두 명의 여자는 얼마 전부터 가온누리를 자주 찾는 고객이었다.

그녀들이 가온누리를 자주 찾는 이유는 맛도 좋지만 이상하게도 가온누리의 음식을 먹으면 속이 편안해지면서 변비가 해결되고 피부가 좋아지는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가온누리와 똑같은 메뉴에 혹해서 찾은 고담은 일단 맛이 떨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가온누리에 길들어진 그녀들의 미각을 충족시켜 주기에는 이곳의 요리가 너무 수준 이하였다.

"고객님, 부르셨습니까?"

"여기 귤강차 두 잔 갖다 줘."

"귤강차 두 잔 말입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바로 서비스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음식을 많이 남기셨네요?"

"아가씨,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여긴 너무 맛이 없다. 우리는 가온누리와 똑같은 메뉴를 서비스한다기에 거기와 무슨 관련이 있어서 그만한 맛을 낼 줄 알고 왔는데, 먹어 보니까 너무 아냐. 솔직히 말하면 사기당한 기분이야."

"죄송합니다, 고객님. 다음번에는 더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됐어. 우리가 이곳을 다시 찾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맛에 실망한 두 여자는 서비스를 하는 여직원을 향해서 짜증이 난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하대를 했다.

직원은 속이 상했지만 끝까지 미소를 유지하며 룸을 나갔고, 얼마 후에는 그녀들이 주문한 귤강차를 가져왔다.

"아후~! 가온누리에 비해서 향기가 너무 약하잖아?"

"맛도 형편없어. 음식도 맛이 없더니 고작 차 한 잔도 제대로 못 끓이면서 무슨 배짱으로 손님을 받지?"

"이래서 짝퉁은 짝퉁인 거야!"

"미정아, 여기는 정말 두 번 다시 올 곳이 못 되는 것 같다."

"내가 그래서 그냥 가자고 했잖아?"

"나는 이 정도로 형편없을 줄은 몰랐지."

"에이, 기분 나빠."

"어마!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고담의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든 것인지 두 명의 여자는 여직원이 옆에 있음에도 싫은 소리를 연신 해 댔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한 여자가 성질을 부리더니 홧김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귤강차를 그대로 쏟아 버렸다.

그런데 의도한 것인지, 실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소파 하나가 귤강차를 뒤집어써서 척척하게 젖어 버렸다.

"뭐가 어쩌고 어째?"

"이 계집애가 어디서 언성을 높이는 거야?"

"손님, 저희 매장의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알겠지만, 소파를 의도적으로 망치시면 어쩝니까?"

"이 여자, 말하는 것 좀 봐? 내가 일부러 그랬다는 거야?"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거짓말까지 하십니까?"

"이 여자가 어디서 손님에게 눈을 부라려?"

"손님도 손님다워야지요!"

어떤 경우에도 참아야 하지만 서비스를 하는 직원도 인간이다 보니 성질이 폭발했다.

게다가 오픈 첫날부터 이런 식으로 가온누리와 비교하는 고객이 상당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적잖게 쌓여 있던 상황이라 더욱 그랬다.

결국 서비스 여직원과 한바탕 입씨름을 벌인 두 여자는 씩씩거리며 사장을 찾았고, 얼마 후 때마침 고담에 머무르고 있던 박현식이 룸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무조건 사과부터 하면서 고객을 진정시켜야 할 박현식은 여자들의 막말에 흥분해서 더욱 사태를 키우고 말았다.

"사장이 뭐 같으니까 밑에 것들도 뭐 같네."

"가온누리의 메뉴를 카피했으면 최소한 거기 맛의 절반은 따라가야지, 이런 형편없는 맛으로 장사를 하다니 배짱도 좋아."

"당신, 뭐라 했어?"

"왜, 내가 틀린 말 했어? 메뉴는 따라서 했지만 맛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나 보지?"

"이것들이 어디서, 당장 나가!"

"흥! 제발 있어 달라고 사정해도 나갈 셈이니까 사과부터 해."

"사과는 무슨, 당장 꺼져!"

"뭐! 꺼져?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어디서 막말이야."

박현식은 물론이고 그와 싸우고 있는 미정이라는 여자도 모르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지훈이 경험했던 다른 시간대의 미래에서 부부로 맺어지는 관계였다.

참고로 부모님과 오빠를 일찍 잃은 미정은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그녀의 할아버지는 한국의 경제를 암중에서 좌지우지하는 큰손이었다.

아울러 미정과 결혼한 박현식은 그녀 할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정치와 재계의 실력자들과 두터운 친분을 맺고 쑥쑥 커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시간대와는 너무도 다른 만남을 한 이들은 서로를 향해 인상을 찌푸리며 날 선 고성을 내뱉다가 결국은 경찰서로 함께 연행되었다.

그런데 고담의 한쪽 구석에서는 그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몇몇 여자들이 있었다.

사이버 공간에서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는 그녀들은 꽤나 지명도가 있는 파워 블로거들이었다.

"맛집 기행 왔다가 이런 장면을 보다니, 대박인데."

"야! 여기가 무슨 맛집이야? 난 내 블로그에 고담을 오면 무조건 후회하니까 절대 오지 말라고 할 거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그 생생한 증거로 방금 전의 사진을 올릴 거야."

"나도 그래야겠다. 그리고 제목은 아까 그 여자들이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해야겠어."

"뭐?"

"이래서 짝퉁은 짝퉁이다."

"큭큭, 그것 좋다."

늘 그랬던 것처럼 폭풍처럼 밀려드는 손님들로 정신없었던 가온누리가 살짝 한가해진 저녁 8시 30분경, 손녀와 할아버지로 보이는 1남 1녀가 들어섰다.

"할아버지, 여기예요."

"여기가 그렇게 맛이 좋아?"

"할아버지도 여기 음식을 먹어 보면 내가 어제 왜 그토록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인석아, 난 그 집도 못 가봤는데 무슨 수로 맛을 비교한다는 것이냐?"

"할아버지, 고담은 갈 필요도 없어요. 그냥 여기 음식을 드시면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동에 흠뻑 빠져서 마냥 행복해지면서, 이후에는 할아버지도 이곳을 자주 찾게 될 거예요."

"맛이 아무리 좋기로서니 아무렴 행복한 마음까지 들까?"

"할아버지, 아직 안 드셔 보셨으면 말을 마세요."

머리가 허옇게 센 노인의 손을 잡아끌며 앞장서는 젊은 여인은 어제저녁에 고담에서 난리를 피웠던 조미정이었다.

그리고 연신 흐뭇해하는 얼굴로 조미정을 따라가는 노인은 한국을 대표하는 큰손 조진산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불과 10여 분 만에 수천억 원의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조진산은 일반인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어지간한 기업가라면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재계의 거물이었다.

그런데 그가 그토록 유명해진 배경에는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점도 있지만 워낙 투자의 귀재란 점도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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