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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서 그가 투자한 기업은 하나같이 성공했는데, 그 때문에 그가 어떤 기업에 투자를 했다는 소문이 돌면 다른 투자가들도 덩달아서 묻지 마 투자를 할 정도였다.
"인석아, 아무리 그래도 어제 같은 일은 단 한 번으로 족하니까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마."
"죄송해요. 하지만 할아버지도 그 사람 하는 짓을 똑똑히 보셨으니까 오죽하면 제가 그랬는지 잘 아실 것 아니에요?"
"험~! 젊은 친구가 싹수머리가 없기는 했다만, 자꾸 그런 일이 생기면 누가 널 데려가겠어?"
"칫, 나는 결혼 안 하고 할아버지랑 평생 살 생각이니까 상관없어요."
"인석아, 거짓말을 하려면 입에 침부터 바르고 해라. 그리고 정말로 그럴 생각이면 당장 내일부터 일을 배워."
"올해까지는 아무 생각 안 하고 놀겠다고 했잖아요. 대신 내년부터서는 할아버지 밑에서 제대로 일을 배울게요."
어제, 하나뿐인 손녀가 연행되었다는 말에 부랴부랴 경찰서로 달려간 조진산은 그곳에서 박현식을 만났다.
그런데 조진산을 모르는 박현식은 그에게도 무례하게 굴었고, 그건 뒤늦게 달려온 박철웅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나중에 서로의 신분을 확인하면서 원만한 합의를 했지만, 조진산은 박철웅 부자에 대해서 좋지 않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니 기적이 벌어지지 않는 한 지훈이 알고 있는 것처럼 조미정과 박현식이 맺어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인석아, 내년부터는 각오해야 할 거야."
"당연하죠. 그러니 한 달도 안 남은 올해는 절대 부담 주지 마세요."
"알았다."
"고객님, 이쪽 테이블은 어떻습니까?"
"할아버지, 어때요?"
"나는 아무 데라도 상관없다."
"우리, 이쪽에 앉을게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테이블에 앉은 조진산과 조미정은 메뉴판을 보며 음식을 고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뭐 드실래요? 오늘은 제가 쏠게요."
"네가 여기 자주 왔다면서? 제일 맛있는 것 시켜."
"저는 매실갈비찜이 제일 좋았어요."
"그러면 나도 그걸로 시켜."
"할아버지는 불고기 좋아하시잖아요? 이 집 불고기도 아주 맛있어요. 아저씨, 매실갈비찜하고 벌꿀 키위 불고기 주세요."
"사이드 메뉴는 어떤 것으로 하시겠습니까?"
"이것하고 이쪽의 것으로 주세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바로 서비스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문을 마친 조진산과 조미정이 다시금 얘기를 나누는 동안 지훈은 근처의 테이블에서 가온누리를 찾은 이탈리아 대사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할아버지, 저 사람이 여기 사장이자 마스터 셰프예요."
"마스터 뭐?"
"마스터 셰프요. 우리말로 하면 주방장이에요."
"저렇게 젊은 친구가 주방장이라고?"
"젊지만 요리 실력은 끝내줘요. 참! 얼마 전에는 미국의 대통령도 여기를 다녀갔는데, 환상의 맛이라고 극찬했잖아요."
"아! 이 집이 거기냐?"
"네. 그런데 할아버지는 이런 유명한 집도 아직 안 오시고 뭐 하신 거예요? 일도 좋지만 틈틈이 맛집도 찾아다니시면서 식도락도 즐기고 그러세요."
"인석아, 너도 내 나이 되어 봐. 가고 싶어도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닌다."
"에이, 제가 있잖아요? 좋아요! 앞으로는 제가 종종 할아버질 모실게요."
"정말이냐?"
"그럼요. 대신 월급은 두둑하게 주셔야 해요."
"오냐, 두둑하게 줄 터이니 제발 그렇게 좀 하자."
"네. 참, 할아버지 보시기에 저 사람은 어때요?"
"뭐 말이냐?"
"제법 멋져 보이지 않아요?"
"왜, 관심 있냐? 할아버지가 주책이라도 부려서 다리를 놔 줄까?"
"에이, 몇 번이나 봤다고 관심이 있겠어요. 그냥 그렇다는 거죠."
"아닌 것 같은데?"
"됐거든요."
남들 보기에는 부러운 것이 없을 것 같지만 불의의 사고로 아들 내외를 잃은 조진산은 핏줄에 대한 강한 그리움과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유일한 혈육인 손녀가 빨리 결혼해서 여러 명의 아이를 낳아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당사자인 조미정이 결혼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지훈에게 호감을 드러내자 자꾸만 신경이 갔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지훈을 바라보는 손녀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얘가 저 녀석에게 정말로 관심이 있는 것 아냐?'
*3. 장담할 수 있소?
수아가 떠난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더욱 일에 매달렸던 지훈은 이탈리아 대사 부부와 담소를 마치고 주방으로 들어가려다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한 노인과 시선이 마주쳤다.
노인의 눈빛에서 자신을 탐색하는 기색을 느낀 지훈은 그가 왜 저런 눈빛을 보내는지 의아하기는 했지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다가 맞은편의 조미정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아니, 저 여자는!'
다른 시간대에서 미래를 살다 온 지훈은 미정을 바로 알아봤다.
그도 그럴 것이 조미정은 박현식의 아내이기도 했지만 한국 경제계를 암중에서 좌지우지하는 큰손의 손녀였고,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큰손 노릇을 하면서 언론에 종종 등장한 여자였다.
'아! 저 노인이 할아버지인가 보구나.'
조미정을 알아본 지훈은 자신을 계속해서 바라보는 노인이 큰손 조진산임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자신과는 별다른 인연이 닿지 않은 사람이기에 묵묵히 주방으로 향했다.
반면 지훈을 계속해서 살피던 조진산은 그가 자신의 손녀를 보는 순간 흠칫 놀랐던 광경을 목격하고 엉뚱한 오해를 하기 시작했다.
'저 녀석도 우리 미정이에게 관심이 있나 보구나. 괘씸한 녀석, 그래도 사내라고 보는 눈은 있구나.'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한다고 하는데 하물며 하나뿐인 손녀를 예뻐하고 아끼는 것은 당연했다.
그 때문에 가슴속에서 여러 가지 감정이 빠르게 교차하는 것을 느낀 조진산은 점점 멀어지는 지훈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며 그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고객님,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와~아! 밤호박죽이다. 할아버지, 이것도 정말 맛있으니까 드셔 보세요."
"호박죽이 거기서 거기지."
"아니에요. 이건 고소하면서도 달달하고 게다가 얼마나 부드러운데요. 할아버지도 드셔 보시면 그 맛에 반할걸요."
"어디 먹어 볼까?"
"어때요?"
"괜찮은 것 같구나."
"그렇죠? 그리고 여기는 재료를 좋은 것만 사용하는지 아무리 많이 먹어도 속이 편안하고 몸도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사심이 들어가서 그렇겠지."
"무슨 사심요?"
"그런 것이 있다."
처음 올 때부터 종종 이곳을 찾는다는 말을 들었던 조진산은 손녀가 지훈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고 확신했기에 그런 식의 발언을 했다.
한편 주방으로 돌아간 지훈은 주문 들어온 것을 체크하다가 조미정과 조진산이 주문한 목록을 보게 되었다.
'그 영감님이 만성 신부전증으로 돌아가셨지 않나?'
다른 시간대에서 지훈이 조진산을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가 박현식의 처조부였기에 다른 동기로부터 그의 죽음과 관련한 얘기를 들었던 지훈은 서비스 파트의 직원을 불러서 조진산이 주문한 메뉴가 무엇인지 물었다.
'어찌 되었든 그분의 건강 상태를 알고 있는데 모른 척 넘어갈 수는 없어.'
모르면 모를까, 조진산이 만성 신부전증을 앓고 있음을 알고 있는 지훈은 그가 주문한 벌꿀 키위 불고기를 직접 요리했다.
만성 신부전증은 비타민과 칼슘 그리고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먹는 것이 좋은데, 다행히 그가 주문한 불고기는 비타민이 풍부한 키위와 칼슘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표고버섯이 들어갔다.
얼마 후, 음양오행기가 듬뿍 들어간 요리와 마주한 조진산은 미정의 성화에 불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흠~!"
"할아버지, 어떠세요?"
"오~! 맛이 아주 좋구나. 네가 왜 여기를 오자고 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거봐요, 맛이 끝내준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좋은 재료만 써서 할아버지 건강에도 좋을 거예요."
"과연 그렇구나! 어쩜 이럴 수가 있는지, 이토록 맛있는 불고기는 여기가 처음이다."
지훈이 특별히 만든 요리인 만큼 음양오행기가 듬뿍 들어간 불고기는 만선 신부전증에도 아주 좋지만 무엇보다도 맛이 환상적이었다.
그 덕에 불고기를 거의 다 비워 가던 조진산은 옆에서 들려온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조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어! 유 회장, 여기는 어쩐 일이오?"
"저도 조 회장님처럼 늦은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습니다. 회장님도 저처럼 이곳을 종종 찾으시나 봅니다."
"아니오, 나는 손녀의 성화에 오늘 처음 왔소."
조진산에게 먼저 다가와서 알은척을 해 오는 이는 유병만이었는데 둘은 서로를 잘 아는 것 같았다.
"아! 누구인가 했더니 회장님의 손녀분이셨군요."
"미정아, 인사드려라. 신성그룹의 유병만 회장님이시다."
"처음 뵙겠습니다. 조미정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소. 우리 미정 양이 할아버지를 이곳으로 모시다니 아주 큰 효도를 한 것 같소. 조 회장님, 앞으로는 건강을 위해서도 이곳을 종종 방문하십시오."
"유 회장,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이곳을 계속 다니다 보면 제가 그랬던 것처럼 조 회장님도 건강이 좋아지는 효과를 보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 회장은 여기를 다니면서 건강이 좋아졌다는 말이요?"
"물론입니다. 회장님, 혹시 의식동원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약과 음식은 그 근원이 같다는 말이 아니오?"
"맞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젊은 사장이 그것을 실천하는 친구여서 제게는 주치의나 다름없습니다."
지훈에게 생명의 빚을 지면서 그의 능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유병만은 자신보다 연배가 높은 조진산의 건강을 고려해서 가온누리를 자주 찾으라는 권유를 했다.
반면 그의 말투에서 그가 지훈을 잘 알고 있음을 느낀 조진산은 손녀의 일 때문에도 관심이 생겨서 그 부분을 물었다.
"조 회장은 이곳의 젊은 사장을 잘 알고 있나 봅니다."
"어찌하다 보니 인연이 닿아서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말 하면 믿지 못하시겠지만, 제가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이 사장 덕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하하~! 제가 병이 있었는데 이 사장이 해 준 음식을 먹은 덕에 나았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만큼 정성을 쏟아서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든다는 말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맛도 아주 훌륭한 것 같소."
"그렇지요. 맛도 세계 최고지요. 그러니 미국의 대통령도 이곳을 찾아오고, 유럽 각국의 정상들도 이 사장을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미국의 대통령이 이곳을 찾아왔다는 얘기는 나도 들었는데, 유럽의 정상들이 이곳의 젊은 사장을 그리워한다는 얘기는 뭐요?"
"아! 이 사장이 올봄까지는 파리에서 지냈는데, 거기서도 각국의 귀빈들이 프랑스를 방문하면 대통령의 특별 초청으로 대통령 궁에 가서 요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 사실까지 알고 있는 것이, 유 회장은 이곳의 젊은 사장과 아주 각별한 사이인 것 같소. 내게도 소개를 해 줄 수 있겠소? 어찌나 음식이 맛있는지 얼굴을 직접 봤으면 좋겠소."
"그러시겠습니까? 조 회장님도 직접 보시면 느끼시겠지만 이 사장은 요리 실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참으로 반듯하고 그릇이 큰 사내라 여러모로 흡족하실 것입니다. 사실 제 마음 같아서는 항상 제 옆에 두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유 회장이 이곳의 젊은 사장을 아주 좋게 봤나 봅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딸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사위 삼고 싶은 심정입니다."
조진산은 하나뿐인 손녀가 호감을 갖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지훈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 마당에 유병만이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사위를 삼고 싶다는 말까지 하자 더더욱 관심이 생겨서 안달이 났다.
유병만이 찾는다는 말에 다시 홀로 나온 지훈은 조진산과 함께 있는 그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이 사장, 이쪽이오."
"유 회장님, 오셨습니까?"
"이 사장, 오늘은 귀한 분을 소개해 주겠소. 이쪽에 계신 분은 우리나라의 재계를 이끌어 가는 조진산 회장님이고, 그 옆에 있는 아리따운 여성은 조 회장님의 손녀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