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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현식이 예전의 일을 상세히 얘기하자 무조건 잡아뗄 수가 없어서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 가며 당시의 상황을 변명했다.
"그러니까 그 녀석은 애인이 따로 있고 너하고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거야?"
"맞아. 리아가 지훈 오빠와 친해서 나도 알게 된 거야. 그리고 그 오빠가 곡을 고르는 능력이 탁월해서 그 일로 만났어."
"그놈이 곡을 고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리아도 그렇고 레이나도 지훈 오빠가 골라 준 곡을 선택했는데, 그게 다 히트했어. 그래서 그 일로 만났을 뿐 나와 지훈 오빠는 아무 사이도 아냐."
"허~참!"
박현식이 예은에게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그녀가 지훈의 애인이거나, 애인이 아니더라고 해도 최소한 몸을 섞은 밀접한 사이라고 여겼기에 그랬다. 즉, 박현식은 예은을 차지하면 지훈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렇게 했는데, 이제 보니 순전히 자신만의 착각이었다.
그리고 그걸 알게 된 순간 예은에 대한 관심이 눈 녹듯 사라졌고, 그동안 헛짓만 했다는 생각에 화가 솟구쳤다.
결국 그날 둘은 대판 싸웠고 그간의 계산된 만남을 정리했다.
언론에서 워낙 대대적인 보도를 한 통에 가온누리의 모든 직원들은 고담이 특허권 침해로 고소당한 일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 일이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배경에는 조진산과 유병만의 영향력이 강하게 자리했다.
아무튼 언론의 보도를 접한 가온누리의 직원들은 이번 일로 고담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TJ호텔은 고담과의 계약 파기를 발표했다.
비슷한 시각, 휴무일을 맞이해서 어머니를 찾았던 강민구는 지훈이 싸 준 음식을 어머니에게 대접하고 있었다.
"민구야, 가온누리면 네가 일하고 있는 곳이지?"
"네."
"거기가 요즘 계속해서 뉴스에 나오더라."
"나쁜 사람들이 우리 가게를 상대로 흉악한 수작을 부려서 그렇게 됐어요."
"어쨌든 너희 가게는 아무 문제 없는 거지?"
"그럼요."
"그나저나 그 사람들은 그런 짓을 왜 했다니?"
"양심이 없는 사람들이라 그랬겠죠."
"사람이 그러면 못 쓰지. 민구야, 너는 그러면 안 된다."
"그럼요."
"참! 다음 주에는 퇴원을 했으면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니?"
"퇴원요?"
"그래, 이제는 잘 걸을 수 있는데 굳이 돈 들여 가면서 이런 곳에 있을 필요가 뭐 있어?"
"에이, 아직은 안 돼요."
"안 되기는 뭐가 안 돼. 의사 선생님도 나 정도면 집에서 재활을 해도 된다고 했어."
지난주에도 지훈이 직접 요리해 준 음식을 먹은 강민구의 어머니는 아직 느리기는 하지만 거동을 하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더욱 회복된 상태였다. 그래서 아들의 부담을 덜어 줄 생각에 퇴원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강민구가 강하게 반대했다.
"민구야, 나는 괜찮다니까."
"내가 보기에는 아직 멀었어요."
"그래도 집에서 충분히 재활할 수 있어."
"엄마, 내가 한동안 바빠서 집에도 못 들어가. 그러니까 조금만 더 있어. 병원비도 내가 미리 냈어."
"언제?"
"아까. 말 들어 보니까 미리 낸 병원비는 환불도 안 된다고 하니까 무조건 조금 더 있어."
"인석아, 왜 그랬어?"
"엄마가 여기 있으면서 많이 좋아졌잖아? 그러니까 조금만 더 있으면 분명히 완치될 수 있을 거야."
"병원비 아까워서 어쩐다니?"
"엄마 건강이 좋아지는데 아까울 게 뭐가 있어? 그리고 한동안 못 올 거야."
"왜?"
"아까 바쁘다고 그랬잖아."
"많이 바빠?"
"우리 회사가 매장을 새로 내고 외국에도 진출할 생각이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어쩌면 내가 외국으로 나갈지도 몰라."
어머니는 모르고 있지만 어머니의 병이 좋아진 것은 순전히 지훈의 덕이었다.
그리고 그걸 알고 있는 강민구는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자수를 할 생각이었다. 즉, 오늘의 만남은 작별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찾아올 수 없다는 구실을 대고 있었다.
"네가 외국을 간다고?"
"그래, 그것도 승진해서 가는 거야."
"오! 우리 아들, 성공했네."
"내가 나만 믿으라고 했잖아?"
"난 우리 아들을 계속 믿었어. 민구야,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 알고 있지?"
"나도 알고 있으니까 걱정 마."
"그래, 우리 아들 장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를 안심시킨 강민구는 요양원을 나선 후에 경찰서를 찾아가서 자수를 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였는지 해당 경찰서에는 중앙신문의 김주빈 기자가 있었다.
예전에 키친 마스터 결선 참가자들의 뒤풀이를 취재하고 그들의 요리 봉사를 기사화했던 그는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지훈과 관련 있는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흥미가 생겼다.
"강민구 씨, 저는 중앙신문의 김주빈 기자입니다. 이번 일과 관련해서 잠시 인터뷰를 했으면 하는데, 시간을 내줄 수 있습니까?"
"제게 무슨 얘기를 듣고 싶은 것입니까?"
"왜 자수를 하는 것인지 궁금해서 그러는 겁니다."
"그거야 이지훈 사장님에게 너무 죄스러워서 그렇습니다. 사장님께서는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냥 덮겠다고 하시는데, 제가 괴로워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지훈 사장이 강민구 씨가 한 짓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실토를 했습니다."
"아무 말 안 했으면 몰랐을 텐데 왜 실토를 했죠?"
"사장님은 저를 비롯해서 모든 직원을 가족처럼 대해 주십니다. 그렇다 보니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그랬습니다."
"그러면 이지훈 사장이 강민구 씨의 죄를 덮어 준다고 했습니까?"
"사장님은 사실대로 말해 줘서 고맙다면서 제가 한 짓과 관련해서는 절대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건 사장님이 특허권 침해만 문제 삼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겁니다."
강민구와 인터뷰한 김주빈은 그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을 기사화했고, 이는 특허권 침해와 관련한 일과 연결되면서 많은 이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서 사람들은 지훈과 가온누리에 대해서 더 좋게 생각하게 되었고, 반대로 박현식에 대해서는 크게 분노하며 가뜩이나 좋지 않게 보던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다.
*5. 이 녀석, 엄청난데!
여러 개의 책상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경찰서를 찾은 지훈은 담당 형사를 만나서 강민구와 관련한 진술을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강민구 씨가 넘긴 것은 특허를 출원할 때도 공개한 내용들인 만큼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사업상의 기밀이 아니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시기상으로 보면 아직 공개가 되기 전에 미리 유출을 한 만큼 혐의는 충분합니다. 그러니 이지훈 씨가 문제를 삼으면 처벌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처벌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공개된 내용들인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될 게 있겠습니까?"
"참 의외군요. 이런 일이 생기면 피해자는 어떻게든 처벌을 원해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다니 저로서도 당황스럽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는 강민구 씨가 중요한 기밀을 유출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당사자인 제가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알겠습니다."
피해자인 지훈이가 기밀을 유출당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상 강민구의 죄는 성립될 수가 없었고, 그는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김주빈 기자에 의해서 다시금 기사화되어서 세상에 알려졌다.
훈훈한 미담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진심으로 잘못을 빌고 이를 조건 없이 용서해 준 강민구와 지훈의 사례가 화제가 되는 만큼 박현식에 대한 비난 여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폭등했다.
그리고 비난 여론이 폭등하는 만큼 TJ호텔은 부담감 때문에라도 고담의 강제 철수에 돌입했다.
그 상황에서 박현식이 선택한 대안은 물귀신 작전이었다.
그는 각서를 공개하며 가온누리의 비법을 요구한 것은 TJ호텔도 마찬가지라고 했고, 이 일로 인해서 그들은 아무도 승자가 될 수 없는 진흙탕 싸움에 돌입했다.
연예 관련 보도를 전문적으로 하는 패스파인더라는 인터넷 매체의 기자가 유지원을 만난 것은 그 무렵이었다.
"김 기자님, 돈은 주시는 것입니까?"
"유지원 씨가 확실한 기삿감을 토해 내면 바로 지급하겠습니다."
"정말 줘야 합니다."
"그건 걱정 마시고 큰 것 한 방을 털어놓으십시오."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여자 연예인의 스폰과 관련한 일입니다."
"여자 연예인의 스폰이라면 성상납을 말하는 것입니까?"
"대가를 받고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이니까 성상납은 아니고 매매춘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거라면 기삿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그러면 돈부터 주십시오."
"은지원 씨 우리가 돈 가지고 장난하는 것 봤습니까? 그랬으면 우리가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 같습니까? 돈은 확실히 지급할 테니까 어서 얘기하세요."
"얼마나 줄 수 있습니까?"
"몸을 판 여자 연예인이 누구냐에 따라서 금액이 조정됩니다. 그리고 여자 연예인과 매매춘을 한 남자가 누구냐에 따라서도 금액이 조정됩니다."
"인기가 없으면 지급되는 돈이 적다는 건가요?"
"그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얼마를 줄 수 있습니까?"
"인기 없는 여자 연예인이라면 500을 드리겠습니다."
"500만 원은 너무 적은 것 아닙니까?"
"인기가 없으면 대중의 관심이 낮은 만큼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상대 남자가 유명인이라면 최대 2,000만 원을 드리겠습니다."
여전히 도박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유지원은 빚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난 상태였고, 이제는 잦은 빚 독촉에 시달리는 상태였다.
하지만 한물간 자신의 벌이로는 빚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궁리 끝에 연예인의 사생활을 캐는 언론에 기삿감을 팔고 있었다.
"유명인이라면 어떤 것을 기준을 말하는 것입니까?"
"간단합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기업의 남자이거나 고위 공직자, 정치인이면 파급력이 큰 만큼 더 많은 돈을 줄 수 있습니다."
"저기, 만약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요 근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남자라면 얼마를 줄 수 있겠습니까?"
"그건 사안을 자세히 알아야 액수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혹시 박현식을 아십니까?"
"그 사람이 누구죠?"
"왜 있잖습니까, 레스토랑 사장인데 특허권 침해를 비롯해서 TJ호텔과 문제가 있어서 요즘 언론에 종종 나오는 사람인데, 모르세요?"
남자가 유명인이라면 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순간 유지원은 박현식을 떠올렸다. 그래서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생각에 그의 이름을 언급했는데, 기자가 눈을 빛내며 관심을 드러냈다.
"아! 그 사람이라면 알고 있습니다. 이번 일에 그 사람도 연루되었나요?"
"맞습니다. 그 친구의 일이라면 얼마를 줄 수 있습니까?"
"1,000만 원을 드리겠습니다."
"애걔, 고작 1,000만 원요? 너무 적은 것 아닙니까? 그놈 아버지가 국회의원인데 더 주셔야죠."
"그 사람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고요?"
"작년 보궐선거에 여당의 후보로 출마해서 당선되었습니다."
"좋습니다. 1,500만 원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약속한 겁니다."
"알았으니까 어서 얘기를 하십시오."
돈 때문에 박현식을 팔기로 작정한 유지원은 그와 예은의 관계에 대해서 쭉 얘기했다.
아울러 자신이 몰래 찍어서 갖고 있던 여러 장의 사진과 음성 파일을 넘겼다.
거기에는 박현식과 예은의 첫 만남 때의 사진부터 두 사람이 다정한 모습으로 호텔로 들어가는 사진도 있었고, 스폰과 관련한 대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이 정도면 어떻습니까?"
"충분하군요."
"돈은 언제 줍니까?"
"지금 바로 입금하겠습니다."
"바쁘니까 빨리 주십시오."
그날 저녁, 박현식과 고담 그리고 예은과 박철웅은 각종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를 휩쓸었고, 박현식은 다음 날 수많은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면서 경찰서에 출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