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151화 (151/219)

<-- 151 회: 5-15 -->

며칠의 시간이 바람처럼 흘러서 어느덧 수요일 오후가 되었다.

이미 사흘 전에 부산 매장에 직원들 대부분을 내려보낸 지훈은 마지막까지 본점에 남아 있던 범석과 용남과 함께 가온누리를 나섰다.

"수철아, 우리 간다."

"범석아, 가서 잘해."

"준호야, 나도 갈란다."

"용남아, 우리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나, 반드시 서울로 돌아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빨리 돌아와."

"알았어."

"이것들아, 잔소리 그만하고 어서 가. 누가 보면 멀리 외국으로 이민이라도 가는 줄 알겠다."

"하마 형님, 잘 계십시오."

"하마 형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이놈들아, 잔소리 말고 사장님 따라서 빨리 내려가."

본점을 떠나기가 싫어서 작별을 핑계로 미적거리던 범석과 용남은 자꾸 떠미는 하마의 등살에 떠밀려서 가온누리를 벗어났다.

잠시 후, 주차장에 당도한 둘은 자신들과 함께 내려가는 두 명의 직원과 함께 지훈의 차에 올라탔다.

반면 지훈은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던 노영필의 차에 올라서 그와 함께 부산으로 내려갔다.

얼마 후, 부산에 당도한 지훈은 바로 부산 매장으로 향한 직원들과 달리 노영필과 함께 하얀 풍차라는 횟집에 들어섰다.

"이 사장, 내리세."

"그분을 여기서 뵙기로 했습니까?"

"아마 오성 형님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실 것이네."

노영필과 함께 가게 안의 방으로 들어간 지훈은 당당한 체구의 중년인과 마주했다.

"오성 형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영필아, 어서 와라. 형님은 잘 계시지?"

"회장님은 잘 지내고 계십니다. 이 사장, 인사드리게. 여기 계시는 형님이 내가 말한 강 회장님이네."

"처음 뵙겠습니다. 이지훈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소. 난 강오성이오. 이지훈 씨 얘기는 형님에게 많이 들었소."

"많이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듣자니 우리 형님의 귀한 생명을 구해 줬다고 하던데 참으로 고맙소."

"제가 한 일은 딱히 없습니다."

"하하~! 병만 형님에게 얘기 다 들었으니 굳이 숨길 필요 없소. 형님 말로는 이 사장이 만든 요리는 맛도 기가 막히지만 하나하나가 보약과도 같으니 이번 기회에 보신을 하라고 했소."

유병만과 강오성은 정을 나눠 온 세월이 상당해서 친형제보다 더 강한 신뢰를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병만은 지훈을 부탁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알고 있는 지훈의 능력을 솔직하게 알려 줬다.

"그건 유 회장님이 절 높이 평가하셔서 그런 것이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하하하~! 암튼 가온누리 부산 매장이 오픈하기만을 기대하겠소. 대신 오늘은 내가 제대로 대접하겠소. 이 사장, 참치 좋아하시오?"

"좋아합니다만 없어서 못 먹습니다!"

"하하하~! 맞는 말이오. 부산은 온갖 먹을거리가 많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면 제대로 된 참치를 먹어 봐야지 않겠소? 때마침 물 좋은 참치가 들어왔다니 조금만 기다리시오."

강오성이 연신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는 사이 소라와 전복 그리고 새우를 필두로 한 싱싱한 해산물이 한 상 가득 차려졌고, 어느새 세 사람의 술잔에는 소주가 가득 채워졌다.

"이 사장, 술은 좋아하시오?"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편입니다."

"주량은 어느 정도이오?"

"형님, 이 사장이 보기와는 다르게 완전히 고래입니다. 아마 앉은자리에서 소주 일고여덟 병은 가볍게 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오! 그 정도의 주량이라면 나와 대작을 할 수 있겠군. 이 사장, 한 잔 합시다."

"회장님, 말씀 편하게 해 주십시오."

"그래도 되겠소?"

"그래야 제가 편합니다."

"그러지, 앞으로는 그렇게 함세."

"형님, 일단 건배부터 하시지요."

"암! 건~배."

강오성을 만난 지훈이 그와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동안 김만수는 상어에게 연락을 했다.

"형님, 만수입니다."

-어떻게 되었어?

"방금 술자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계획대로 거사를 실행할 수 있겠지?

"그건 문제없습니다. 그런데 같이 온 자가 노영필인데 상관없을까요?"

-빌어먹을! 서울에서 손님이 온다더니 노영필이 왔나 보구나. 만수야, 강 회장만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겠지?

만약 강오성과 술을 같이 마신 다른 사람들도 죽게 된다면 그때는 일이 시끄러워질 수 있다.

더군다나 그자가 국내 최대 조직인 신성OB파의 2인자라면 경우에 따라서는 신성OB파의 공격도 받을 수 있다.

그 때문에 상어는 김만수에게 강오성만 콕 찍어서 제거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제가 직접 방에 들어가서 일을 벌이겠습니다."

-만수야, 부탁한다.

"형님, 걱정 마십시오. 무색무취에 맛도 없는 것이 복어 독입니다. 제가 직접 들어가서 권하면 강 회장도 아무 의심 않고 받아먹을 것입니다."

-그래, 너만 믿는다.

"형님, 꼭 성공하십시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나도 근처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으니 걱정 마라. 만수야, 내일 아침이 되면 부산은 내가 장악하게 될 것이고, 그때는 지금의 은혜를 두둑하게 갚으마.

"형님, 그런 소리 마십시오. 저는 형님이 잘되기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너 같은 동생이 내 곁에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다.

"형님, 곧 좋은 소식을 전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래, 기대하마. 역시 너밖에 없다!

살짝 오목한 원형의 커다란 접시 안에는 선명한 붉은색 육질을 자랑하는 참치가 수북하게 담겨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빈 소주병 여러 개가 놓여 있었다.

주량을 자랑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소주가 가득 담긴 잔을 연거푸 비우던 세 사람은 안주 삼아 두툼한 참치를 먹었다.

"영필아, 맛이 어떠냐?"

"형님, 입안에서 살살 녹는 것이 아주 죽이는데요."

"그럴 수밖에, 그게 오늘 아침에 잡힌 참치를 바로 공수해온 싱싱한 놈이라 육질이 살아 있어서 그렇다."

"형님 덕에 물 좋은 참치도 먹어 보고, 제가 부산을 내려오길 잘한 것 같습니다."

"참치가 먹고 싶으면 미리 연락 주고 아무 때라도 내려와라. 아! 다음에 올 때는 형님도 꼭 모시고 와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사장, 참치 맛이 어떤가?"

"회장님 말씀대로 선홍색 육질이 선명한 것이 싱싱해서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손질하신 분의 솜씨가 아주 뛰어난지 육질의 결을 고스란히 살려서 씹는 맛까지 좋습니다."

"하하~! 유명한 셰프라고 하더니 역시 그런 것까지 알아보는군. 여기 주방장이 예전부터 칼질로 유명했던 친구라네."

"제가 보기에도 상당한 실력자인 것 같습니다."

"자! 좋은 사람을 알게 되어서 기분이 좋으니 한 잔씩 마시세."

다시금 술잔을 비운 강오성은 참치와 관련한 얘기를 좀 더 하다가 자신의 건강과 관련한 얘기를 했다.

"회장님, 고지혈증이 심하시다면 식단 관리를 꾸준히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술도 많이 줄이셔야 합니다."

"하하하~! 술은 오늘까지만 실컷 먹고 내일부터는 줄이지. 그나저나 이 사장의 음식을 먹으면 내 고지혈증도 많이 좋아질 수 있는 것인가?"

"식단 관리를 안 하시면 그때뿐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식사량을 줄이면서 시금치와 다시마 그리고 등 푸른 생선을 주로 드시고 육류 섭취는 줄이셔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등 푸른 생선인 참치를 좋아하는 것 아니겠는가?"

"참치도 건강식품이기는 하지만,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전체적으로 식사량을 줄여야 합니다."

"하하하~! 그렇게 하지."

유병만을 통해서 지훈의 능력을 알고 있는 강오성은 그의 요리에 대해서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기에 이것저것 물어 왔다.

그러는 사이 소주가 또다시 두 병 비워졌고, 접시를 든 김만수가 방 안에 들어왔다.

"김 사장, 어서 오게. 여기 있는 이 친구가 이곳의 사장이자 주방장이네. 내게는 좋은 동생이니까 다들 인사를 나누게."

"형님, 저는 일전에 본 적이 있잖습니까?"

"아! 그랬던가?"

"회장님, 노영필 사장님과는 전에 인사를 했었습니다."

"그랬었군. 그러면 이 사장을 소개해 주지. 김 사장, 가온누리라는 한식당을 알고 있는가?"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여기 있는 젊은 친구가 가온누리의 사장이자 세계 최고의 요리사로 불리는 이 사장이네."

"아! 그렇습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만수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지훈이라고 합니다."

"이야~! 이런 분이 오실 줄 알았으면 좀 더 신경을 쓰는 건데 괜히 부끄러운 꼴을 보인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어서 제게는 유익한 자리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요리사에게 그런 말을 듣다니 영광입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아직 경험이 일천한 저는 풋내기에 불과합니다."

방 안에 들어선 김만수와 인사를 나눈 직후 강오성은 그에게도 소주를 권했다.

소주가 가득 든 잔을 단숨에 비운 김만수는 가져온 접시를 살짝 내밀며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회장님, 참치 눈물을 가져왔습니다."

"암! 참치를 먹었으면 당연히 눈물까지 먹어야지. 이 사장, '참치눈물주'를 알고 있는가?"

"얘기는 들어 봤습니다만 먹어 본 적은 없습니다."

"잘됐군, 여기 온 김에 먹어 보게. 비릿한 맛이 풍기기는 하지만 소주에 타서 먹으면 괜찮을 것이야."

"회장님, 제가 제조를 하겠습니다."

"김 사장, 이번에는 참치 눈알을 잘게 다듬지 않은 것 같은데 왜 그런 것인가?"

참치눈물주는 안와 지방이 들어 있는 수정체를 세심한 칼질로 잘게 갈아서 먹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김만수는 복어 독의 발작 시간을 늦출 생각에 손톱만한 크기로 크게 썰어서 가져왔고, 강오성은 처음 보는 모습에 그 연유를 물었다.

"부드러운 지방층이라 이 정도 크기라고 해도 소화에 무리가 없고, 너무 잘게 썰면 술맛을 버리기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했습니다."

"하긴 그렇게 하면 비릿한 맛은 거의 안 나겠군."

"맞습니다. 제가 이렇게 먹어 봤는데 제 입에는 이게 더 좋았습니다."

"알았으니 한 잔씩 돌리게. 주방장이 더 좋다고 하니 이게 더 좋은 거겠지."

몇 마디 나누는 도중에 눈물주의 제조를 마친 김만수는 복어 독이 들어간 잔을 강오성에게 내밀고 지훈과 노영필에게도 잔을 넘겼다.

"김 사장, 자네는 왜 없는가?"

"전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고 드십시오."

"어허, 그럴 수는 없지. 내 잔이라도 마시게."

"아닙니다. 저는 괜찮으니 회장님이 드십시오."

"아니야. 내 잔을 마시게."

복어 독이 든 술잔을 자신에게 내밀자 김만수는 안색이 시퍼렇게 질려서 연신 사양을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지훈이 자신의 술잔을 김만수에게 내밀었다.

꼼짝없이 독을 먹게 된 김만수는 이때다 싶어서 두말 않고 지훈이 내민 잔을 받아들었다.

"이런! 손님이 눈물주를 안 먹을 수는 없지. 이 사장이 내 잔을 받게."

"아닙니다. 회장님이 드십시오."

"나는 종종 먹을 수 있으니, 어서!"

"알겠습니다."

취기가 올라와서인지 강오성은 지훈에게 떠넘기듯이 잔을 넘겼고,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김만수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사이 이번에는 노영필이 강오성에게 자신의 잔을 내밀었다.

"형님, 저는 비위가 약해서 먹기 어려울 것 같은데 형님이 드십시오."

"영필아, 이건 몸에 좋은 거다!"

"그러니 형님이 드셔야지요. 저는 사양할 테니 권하지 마십시오. 대신 벌주로 저는 맥주잔으로 소주를 마시겠습니다."

"이게 얼마나 좋은 건데, 왜 안 먹어?"

"형님, 벌주를 마시겠습니다."

*8. 그렇게는 못 한다니까요!

발밑으로 파도가 출렁거리는 암벽 위에 한 사내가 담배를 급하게 빨아 대고 있었다.

하얀 가운에 앞치마를 걸치고 있는 사내는 하얀 풍차의 사장 김만수였다.

'빌어먹을, 엉뚱하게도 그놈이 그걸 먹으면 어쩌자는 거야.'

강오성을 독살시키려고 했던 계획이 뜻하지 않게 실패로 돌아가자, 김만수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상어 형님이 날 믿고 있을 텐데 어떡하지? 그래,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어.'

뜻하지 않게 강오성을 독살하는 데 실패한 김만수는 이왕 작정한 이상 다시 한 번 강오성을 노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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