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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재기를 도와준 상어와의 의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여겼다.
한편 독이 든 술잔을 들이켠 지훈은 술을 삼키기 무섭게 혀가 찌릿찌릿 저려 오면서 단전의 음양오행기가 심하게 들썩거리는 것을 느꼈다.
'왜 이러지?'
지금까지 뭔가를 먹은 직후에 음양오행기가 절로 들썩거린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그건 프랑스 유학 시절 클럽에서 마약이 든 샴페인을 먹었을 때 그런 반응이 나타났었다.
그 때문에 지훈은 술잔에 마약이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음양오행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대체 왜 이러지?'
지난번에는 절로 치솟은 음양오행기가 몸 안을 떠돌기는 했지만 고통을 안겨 주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달궈진 바늘로 온몸을 쑤시는 것 같은 통증이 계속 이어지면서 음양오행기의 움직임이 갈수록 폭발적으로 변하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엄청난 고열 때문에 정신까지 혼미해지는 것이 금방이라도 혼절을 할 것 같았다.
'안 되겠어. 나가서 시원한 바다 바람이라도 맞아야겠어.'
몸 안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자 당황한 지훈은 적당한 핑계를 대고 밖으로 나갔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원한 바다 바람을 맞으니 펄펄 끓어올랐던 열기는 조금 내려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했고 바위에 걸터앉기 무섭게 단전에서 치솟은 음양오행기가 온몸을 일주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
"큭!"
고통이 워낙 극심했기에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 냈던 지훈은 몸 안을 돌고 있는 음양오행기가 식도 부근에서 맹렬하게 회전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식도를 따라서 회전하던 음양오행기가 다시금 단전으로 돌아가는데 통증은 식도 부위와 단전 그리고 음양오행기가 지나치는 혈도에서 동시에 전해진다는 사실도 간파했다.
'아무래도 마약은 아닌 것 같은데 뭐지?'
고통 때문에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살기 위해서 무섭게 회전하는 음양오행기를 제어하기 시작하던 지훈은 어느 순간부터 무아지경에 빠졌다.
그사이 지훈의 몸에서는 아지랑이 같은 것이 분출되기 시작했고 찰나지만 바위에 앉아있던 그의 몸뚱이가 두둥실 떠올랐다가 다시 내려갔다.
"우웨~웩, 퉤!"
음양오행기를 제어하는 데 성공한 지훈이 거친 소리와 함께 내뱉은 것은 가래처럼 찐득찐득한 덩어리였다.
그건 다름 아닌 복어의 독이었다.
"저게 뭐지?"
자신이 복어 독을 먹었음을 모르는 지훈은 바닥에 달라붙어 있는 끈적끈적한 액체가 이번 소동의 주범임을 알아차리고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그게 참치 눈알을 이루고 있는 안와 지방임을 깨닫는 순간 새로운 의문에 빠졌다.
'분명 몸에 안 좋은 성분이 들어와서 음양오행기가 반응을 보인 것이 틀림없어. 하지만 얼마나 안 좋은 것이 들어 있었기에 생전 처음 겪어 보는 극도의 고통을 안겨 줬을까?'
본인이 요리사인 만큼 참치 눈알의 성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토록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줄 정도라면 인체에 극히 해롭다는 것을 의미했는데, 자신이 알기로 참치 눈알에는 그토록 유해한 성분은 들어 있지 않았다.
'참치가 부패해서 그럴까? 아냐, 오늘 막 잡은 참치를 공수해 왔다고 했으니까 그럴 리는 없어. 아마 독을 먹었다고 해도 이토록 끔찍한 고통을 경험하지는 않을……. 설마 독?'
자신을 지독한 고통에 빠트린 정체불명의 성분을 추측하던 지훈은 문득 독을 떠올렸다.
그리고 독을 떠올린 순간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참치 눈알에는 독이 들어 있지 않아. 그렇다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참치 눈알에 독을 넣었다는 얘기인데, 김 사장이 그럴 이유는 없잖아?'
자신이 마셨던 눈물주는 원래 강오성 회장이 마시기로 되어 있던 잔이었고, 만약 그가 그걸 마셨다면 그는 꼼짝없이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김만수가 강오성을 노리고 그런 짓을 했다고 추측할 수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김만수가 그런 짓을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김만수는 단골 고객인 강 회장을 아끼고 챙겨 주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그냥 넘기기에는 께름칙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참치 눈알에는 독이 들어 있지 않은 만큼 이건 우연한 사고일 리가 없어. 그러니 차분하게 잘 생각해 봐야 해.'
이번 일을 꾸민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참치 눈알에 독이 들어 있다면 그건 의도적으로 꾸민 짓이라고 봐야 했다.
'아무래도 이상해.'
아까의 상황을 떠올린 지훈은 눈물주를 직접 제조한 사람이 김만수였고, 그가 문제의 잔을 강오성에게 받은 순간 기겁을 하며 강하게 손사래를 쳤던 사실을 떠올렸다.
'맞아! 분명 평범한 모습은 아니었어.'
김만수의 당시 모습이 몹시 부자연스러웠음을 떠올린 지훈은 그가 독이 든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또는 독을 주입한 당사자라면 그런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순간 강오성과 노영필이 여전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깨닫고 부랴부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 사장, 속이 안 좋다더니 괜찮은가?"
"찬 바람을 쐬고 왔더니 지금은 괜찮습니다."
"이 사장, 주량이 제법 강하다고 해서 밤새워 대작을 하려고 했는데 벌써 나가떨어지다니 실망이네."
"회장님,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는데 너무 성급하신 것 아닙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소리인가?"
"물론입니다. 제가 한 잔 올리지요. 장담하는데 먼저 코가 비뚤어지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회장님이 될 것입니다."
"도전을 하겠다니 받아 주겠네."
다시 방 안으로 들어온 지훈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며 은밀한 시선으로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에 새로 들어온 음식이 있는지 살폈다.
'다행히 아무것도 없구나.'
새로 들어온 음식이 없음을 확인한 지훈이 강오성의 빈 잔에 술을 따르고 있을 무렵 김만수가 구수한 냄새를 가득 피워 올리는 냄비를 갖고 들어왔다.
"회장님, 생선뼈로 우려낸 맑은국을 가지고 왔습니다. 시원한 국물로 속을 풀어 가면서 드십시오."
"고맙네, 김 사장."
무와 미나리를 함께 넣은 맑은국을 가져온 김만수는 은연중에 지훈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것도 모른 척 가만히 앉아 있던 지훈은 자신의 안색을 살피는 김만수의 시선을 느낀 순간 그가 오늘의 일을 꾸민 범인임을 알아차렸다.
아울러 그가 가져온 국물에도 독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국물 한 숟가락을 떠서 맛을 봤다.
찌릿찌릿-!
'역시 이번에도 독이 들었구나.'
"형님, 이 사장이 허겁지겁 국물부터 떠먹는 것이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살살 봐줘 가면서 대작하십시오."
"허허~! 아무래도 그래야겠네. 이보게, 우리도 국물을 맛보는 것이 어쩌겠는가? 아주 시원해 보이는 것이 절로 마음이 동하지 않는가?"
"그러게 말입니다. 먼저 드십시오."
독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서 지훈이 맛을 보는 사이 노영필과 강오성도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막 냄비에 숟가락을 집어넣으려고 할 때 지훈이 그들의 숟가락을 쳐 내며 입안에 있던 국물을 뱉어 냈다.
"이 사장, 이게 무슨 짓인가?"
"노 사장님, 국물을 드시면 절대 안 됩니다."
"이 사장~!"
"노 사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너무도 무례한 행동에 노영필이 호통을 치는 동안 지훈은 노영필을 제지하고는 맞은편의 김만수를 노려보며 한마디 했다.
"김 사장님부터 드시지요."
"이 사장, 그게 무……무슨 말이오?"
"몰라서 묻습니까? 여기 있는 국물은 김 사장님이 혼자서 다 드십시오."
"이 사장, 정말 왜 그러는가?"
계속되는 지훈의 이상행동에 노영필이 재차 언성을 높인 순간 지훈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얘기가 튀어나왔다.
"노 사장님, 이 국물을 먹었다가는 병풍 뒤에서 향냄새를 맡으며 젯밥을 먹게 될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김 사장님, 끝까지 숨길 셈입니까? 왜 우리를 죽이려고 한 것입니까?"
"그……그게 무슨 소리요?"
"끝까지 모른 척하실 셈입니까? 왜 독이 든 음식을 자꾸 가져오는 것입니까?"
후다닥~!
지훈의 입에서 독이 언급된 순간 김만수는 다리를 다친 사람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재빠른 몸놀림으로 방 안을 빠져나갔다.
그때까지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던 강오성과 노영필은 김만수가 사라지고 나서야 놀란 눈으로 지훈을 바라봤다.
"이 사장, 이 국물 안에 독이 들어 있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이 국물을 증거로 넘기면 경찰들이 이 안에 독이 들어 있음을 밝혀 줄 것입니다."
"허~! 김 사장이 그런 짓을 왜?"
"아무래도 회장님을 노리고 일을 꾸민 것 같습니다."
독이 들어 있던 아까의 눈물주가 애초에 강오성을 위해서 제조한 것임을 떠올린 지훈은 김만수가 그의 목숨을 노리고 이런 짓을 꾸몄음을 알아차렸다.
한편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린 노영필은 자신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온 부하들을 불러서 김만수를 데려오게 했다.
하지만 김만수는 이미 사라지고 난 후였다.
"형님, 김 사장이 이런 짓을 할 정도라면 누가 형님을 노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영필아, 오래간만에 부산까지 왔는데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 면목이 없다."
"이게 왜 형님 잘못이겠습니까? 저와 이 사장은 괜찮으니까 우선 이곳을 피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연장 갖고 장난칠 생각이었으면 진즉에 했을 것이니 안심해라."
"형님, 그래도 일단은 몸부터 피하시지요."
"영필아, 여기는 부산이고 난 강오성이다. 나만 믿어라! 그런데 이 사장은 국물 안에 독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가?"
"명색이 셰프인데 그 정도를 알아차리지 못하겠습니까? 내 추측이 정확하다면 이 국물 안에는 무색무취의 복어 독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아까부터 독의 종류가 무엇인지 궁금하게 여겼던 지훈은 수족관 안을 활기차게 헤엄치고 있는 몇 마리의 복어를 보는 순간 자신이 먹었던 독이 테트로도톡신임을 확신했다.
"복어 독이라니, 먹었다면 꼼짝없이 죽었을 수도 있었겠어. 이 사장, 정말 고맙네. 자네야말로 내 생명의 은인이네."
"제가 용케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아까 허겁지겁 국물을 떠먹은 것도 혹시 독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인가?"
"사실대로 말하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장은 처음부터 김 사장을 의심하고 있었던 것인가?"
"처음부터는 아니고 눈물주를 먹고 나서 알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실은 제가 마셨던 눈물주에 복어 독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잔은 원래 제 것이 아니라 회장님 것이었기에 김만수가 회장님을 노리고 있다는 추측을 하게 되었습니다."
"눈물주에 독이 들어 있었다면, 이럴 게 아니라 속히 병원부터 가야겠군."
"아닙니다. 저는 복어 독에 내성이 있어서 괜찮습니다."
"독에도 내성이 생길 수 있는가?"
"어릴 적에 복어 독에 중독되었다가 살아난 뒤로 그 이후에는 복어 독을 먹어도 아무렇지 않게 되었습니다."
간혹 말기 암 환자 중에 복어 독을 치료제로 써서 암을 극복한 경우가 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지훈은 적당한 핑계를 대며 상황을 얼버무렸다.
지훈이 강오성과 노영필에게 상황을 알리고 있을 무렵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허둥지둥 하얀 풍차를 빠져나간 김만수는 상어에게 연락을 했다.
-만수구나, 어떻게 됐냐?
"형님, 죄송합니다. 실패했습니다."
-실패를 했다고?
"엉뚱한 놈이 끼어드는 바람에 일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다. 오늘은 실패했다고 해도 다시금 기회가 올 것이니 그때는 반드시 성공시켜라.
"형님, 다음번 기회는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모르는 상어는 무척 아쉬워하면서도 다음을 기약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김만수의 얘기를 듣는 순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