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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상어와 김만수가 보통 사이가 아니란 것을 강오성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번 일의 배후로 그를 지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만수야, 너는 지금 어디냐?
"형님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자리를 피했습니다."
-잘했다. 한동안은 잠수를 타다가 상황이 종료되면 연락해라.
"형님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렇게 된 것, 가만히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으니 먼저 움직일 생각이다.
"형님, 그렇다면 제가 가서 강 회장의 움직임을 감시할까요?"
-가게 안에 들여보낸 애들이 있으니 네가 움직일 필요는 없다.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던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상어는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하들을 이끌고 하안 풍차로 향했다.
비슷한 시각, 지훈을 통해서 상황을 파악한 강오성은 하얀 풍차의 홀에서 대기하고 있던 호위대를 불러서 상황을 알리고 심복들을 소집하게 하는 한편 상어에게 연락했다.
하얀 풍차로 가는 도중에 강오성의 전화를 받은 상어는 능청스럽게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상어냐, 어디냐?"
-해운대 쪽에 있는데 무슨 일이십니까?
"상어야, 다 알고 있으니까 모른 척하지 마라."
-회장님, 무슨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이놈~! 끝까지 모른 척할 셈이냐? 때가 되면 네가 차지할 자리이거늘, 그리도 내 자리가 탐나더냐?"
-회장님, 무슨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제가 바로 가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내가 어디 있는지는 너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기다리고 있을 테니 빨리 와라."
-회장님, 어디 계신지 알려 주셔야 찾아갈 것 아닙니까?
"훤히 다 알고 있으니 굳이 애쓰지 마라. 기다리겠다."
뚝-!
강오성은 기다리겠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때까지 강오성의 통화를 지켜보던 노영필은 초조한 표정으로 우선은 자리를 피하자고 했다.
하지만 강오성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며 반대의 뜻을 분명하게 피력했다.
"영필아, 여기서 내가 자리를 옮기면 우리 식구끼리 처절한 내전이 펼쳐지고 부산은 아수라장이 되어서 많은 이가 피를 흘리게 될 것이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이 자리에서 끝낼 생각이다."
"하지만 오늘의 일을 계획한 놈은 상당한 전력을 이끌고 몰려올 것입니다."
"나 역시 친위대를 불렀다."
"하지만 놈들은 미리 준비한 이상, 그 전에 몰려올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막아 내야지. 몸 몇 곳에 구멍이 날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간결하게 끝내기에는 여기가 딱 좋다. 아마 놈이라면 날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직접 올 것이다."
"형님의 생각은 알겠지만 그때까지 버티는 것은 무리입니다."
"내 사주에 80세는 넘긴다고 했으니, 이 자리에서 죽지는 않을 것이다. 영필아, 어서 이 사장을 데리고 여기를 떠나라."
부산을 장악하고 있는 최대 조직인 오성파가 내전에 휩싸이게 되면 많은 인명 피해가 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강오성이 걱정하는 것은 내전만이 아니어서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의 영향력하에 있는 부산 지역 내 다른 조직의 이탈을 우려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호시탐탐 한국을 노리고 있는 일본 야쿠자 세력이 부산에 진출하는 것도 경계하고 있었다.
참고로 한국의 폭력 조직보다 훨씬 빨리 합법의 영역에 진출한 야쿠자 조직은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국내 조직에 대한 영향력을 야금야금 증대시키고 있었다.
아울러 그들의 최종 목표는 한국의 폭력 조직을 자신들의 휘하 조직으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유병만과 함께 그들의 계획을 잘 알고 있는 강오성은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오늘의 일을 최대한 조용히 끝낼 생각이었다.
"이 사장, 미안한데 혼자 가야 할 것 같소."
"영필아, 무슨 짓이야? 어서 가라!"
"형님, 죄송합니다. 형님을 두고 저만 갈 수는 없습니다. 이 사장, 늦기 전에 빨리 떠나시오."
이곳에 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노영필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도 떠날 수가 없어서 자리에 남을 생각이라 지훈에게 떠나라고 했다.
그런데 지훈의 대답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노 사장님,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는데 벌써 술자리를 끝낼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사장, 그게 무슨 말인가?"
"저도 남겠습니다."
"이 사장, 이건 우리 같은 사람들의 일이니 어서 떠나시오. 오늘은 치기 어린 시절의 주먹 다툼 같은 것은 아니니 어서!"
"강 회장님의 목숨을 제가 한 번 구해 준 이상, 저 또한 본의 아니게 이번 일에 연관되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편하기 위해서라도 아예 마무리를 지어야겠습니다."
지훈의 말은 결코 틀린 게 아니었다.
만약 이 자리에서 강오성이 죽게 되고 오늘의 일을 꾸민 사람이 오성파를 장악하게 되면 그자는 이곳의 일을 덮기 위해서라도 지훈을 제거하려고 들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오늘의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강오성을 도와야 했고 어찌 되었든 독을 먹고 죽을 고생을 한 이상, 그 앙갚음을 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내다운 강오성을 돕고 싶었다.
"이 사장, 이건 단순한 주먹다짐이 아니라 회칼과 몽둥이가 난무하고 피가 튀기는 전장이오. 마음은 고맙지만 어서 떠나시오. 만약 이 사장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무슨 낯으로 회장님을 볼 수 있겠소?"
"노 사장님, 잊으셨습니까? 총을 든 강도도 물리친 저입니다. 절대 짐이 되지는 않을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이 사장, 마음은 고맙게 받을 테니 어서 가게."
"강 회장님, 빨리 끝내고 아직 결판을 보지 못한 대작을 마저 하시죠. 도전을 받아 준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나중에 하면 되니까 어서 가래도."
"의리 없이 그렇게는 못 한다니까요!"
물결이 쉼 없이 넘실거리는 바다 위에는 잘 익은 달이 은은한 빛을 내리쬐고 있었다.
주위를 뒤덮은 잔잔한 어둠에 동화된 파도 소리가 끊이지 않아서 마냥 아름답기만 한 바닷가 외딴 모래사장에 어울리지 않게도 수십 명의 사내가 여덟 명의 사내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회장님, 도망친 곳이 고작 여기였습니까? 어릴 적에 바닷가에서 놀았다고 하더니 아마도 헤엄쳐서 여기를 빠져나갈 생각이었나 봅니다."
"상어야, 조용히 끝낼 생각에 이곳으로 왔는데,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다."
"아주 맘에 듭니다. 그러고 보면 회장님도 남들 앞에서 배에 구멍 나는 것은 쪽팔렸나 봅니다?"
"상어야, 이곳이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다만, 독을 쓴 것은 너답지 않았다."
"곱게 독을 드셨으면 이렇게 얼굴 붉힐 일도 없고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 밤에 꽤나 모아 온 것이, 준비를 많이 했나 보구나?"
"명색이 회장의 자리에 오르는 일인데 신경 좀 썼지요."
"달빛이 좋은 것이 끝을 내기에는 좋은 날이구나."
"회장님, 뒤는 봐 드릴 터이니 곱게 다리 하나 끊고 얌전히 물러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건 그간의 정을 생각한 저의 마지막 배려입니다."
"때가 되면 물러날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만, 오늘은 아닌 것 같다."
"회장님, 그렇게 고집을 부리다가는 곱게 못 죽습니다. 그래도 시체는 온전해야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를 것 아닙니까?"
"자식, 말이 많은 것이 겁이 많이 나는가 보구나? 사내자식이 계집처럼 주저리주저리 떠들지 말고 덤벼라."
상어가 데려온 숫자는 얼추 마흔 명에 육박했는데, 반면 강오성 일행은 노영필과 지훈 그리고 서울에서 함께 내려온 두 명의 신성OB파 조직원을 포함해도 여덟 명밖에 안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강오성의 친위대가 몰려오리라는 것을 익히 예상하고 있는 상어는 머뭇거리지 않고 공격 명령을 내렸다.
"애들아, 보내 드려라."
"죽여!"
"담가 버려!"
수적 우위를 앞세운 상어 패거리는 쇠 파이프나 몽둥이를 휘두르며 쇄도했다.
그 상황에서 누구보다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은 지훈이었다.
먼저 정면에서 달려온 두 명의 덩치를 향해서 주먹을 연거푸 뻗어 무력화시킨 지훈은 용수철처럼 제자리에서 튀어 오르며 또 한 명의 덩치를 발차기로 쓰러트렸다.
'왜 이렇게 날렵해졌지?'
속히 떠나라는 강오성과 노영필의 말을 끝까지 거부했던 배경에는 조폭 정도는 가볍게 해치울 수 있다는 충분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몸을 놀려 보니 평소에 비해서 움직임이 빨라졌을 뿐만 아니라 기운까지 넘쳐 났다.
그리고 단전의 음양오행기가 훨씬 빨리 반응했다.
'어쨌든 잘된 일이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또다시 네 명의 조폭을 쓰러트린 지훈은 자신을 지나쳐서 강오성에게 쇄도하는 두 명의 사내를 향해서 몸을 날렸다.
별다른 준비 동작 없이 바로 몸을 날렸음에도 2~3미터의 거리를 가볍게 뛰어넘어서 그 둘을 쓰러트린 지훈은 날카로운 파공성이 등 뒤에서 들려오자 상체를 숙이며 뒷발차기를 했다.
붕~!
"퍽!"
"컥!"
"내 허락 없이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더냐?"
"빌어먹을!"
"안 되겠다. 저 자식부터 처리해."
"아예 숨을 못 쉬게 담가 버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훈에게 제압당해서 혼절을 한 조폭의 숫자가 열 명에 달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어의 부하들은 지훈을 쓰러트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는지 일곱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그런데 그들은 언제 빼 들었는지 저마다 번뜩거리는 회칼을 꺼내 든 상태였다.
"이놈,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까불기는 어려울 것이다."
"네놈의 배때기를 아예 바람구멍으로 도배해 주마."
"까불지 말고 덤벼라."
"죽어."
슉-!
"어딜!"
"빠각-!"
휙~!
"개자식, 여기도 있다."
"머저리 같은 놈들, 칼은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다."
"크악~!"
회칼을 꺼내 든 그들은 하나같이 지훈의 배를 노리고 쑤시고 들어왔다.
그러나 날아 차기에 이어서 팽이처럼 회전을 하며 연속 돌려차기로 세 명을 연거푸 쓰러트린 지훈은 그들 사이를 파고들며 손발을 부지런히 놀렸는데, 그때마다 비명 소리와 함께 거구의 덩치들이 픽픽 쓰러졌다.
'역시 빨라졌어.'
음양오행기를 몸에 품게 되면서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힘과 속도 그리고 반사 신경을 소유하게 된 지훈이다.
그러나 지금의 움직임은 또 달라서 이전보다 훨씬 빨라지고 강해진 것이 여실히 느껴졌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현상은 복어 독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맞아! 복어 독을 해독하면서 단전만 더 커진 것이 아니라 혈도까지 더 크게 확장된 것이 틀림없어.'
긴박한 상황에서 몸을 놀리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인데 음양오행기의 흐름과 수발이 이전에 비해서 훨씬 자유롭고 빨라졌다. 그건 단순히 단전이 커진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음양오행기의 통로라고 할 수 있는 혈도가 확장된 통에 이렇게 된 것 같았다.
'그래, 그게 틀림없을 거야!'
이전과는 다르게 혈도를 따라서 시원하게 흐르는 음양오행기가 자신을 더욱 강하게 해 주고 있음을 깨달은 지훈은 아까 독을 해독할 때 혈도에서 전해졌던 고통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고통이 단순히 독을 해독하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혈도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마냥 그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서 눈앞의 덩치들을 상대로 부지런히 손발을 놀렸다.
*9. 그것들 다 한통속이잖아?
자신의 휘하에서 날고 긴다는 부하들만 엄선해 데려온 상어는 어렵지 않게 강오성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생전 처음 보는 젊은 사내가 움직일 때마다 자신의 부하들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쓰러지자 마냥 지켜볼 수 없어서 초조한 시선으로 옆에 있는 세 명의 사내를 바라봤다.
건장하다 못해 둔해 보이는 체구를 갖고 있는 다른 조폭들과 달리 날렵한 체격을 갖고 있는 세 명의 사내는 독사의 부하가 아니라 그와 관련을 맺고 있는 야쿠자 조직에서 보내온 일종의 용병들이었다.
아울러 그들이 옆에 끼고 있는 가늘고 기다란 물체는 쇠 파이프가 아니라 날이 퍼렇게 선 일본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