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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보통이 아닌데?"
"저런 움직이라니, 고수가 틀림없어."
"대단해. 저 상황에서 어떻게 저런 식의 움직임을 보일 수가 있지?"
"예상은 했지만 역시 한국에도 비전을 이은 고수가 존재하고 있었어."
"안 되겠어. 저자가 버티고 있는 한, 얼마 못 가서 모두 쓰러지고 말 거야."
"곧 우리가 나가야 할 것 같으니까 저자의 움직임을 확실하게 눈에 새겨 둬."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지만 깨끗하게 끝내려면 협공을 해야 할 거야."
상어가 아까부터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지훈의 움직임만 살피던 그자들은 탄성까지 터트리며 계속해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는 사이 노영필과 강오성도 저마다 서너 명을 쓰러트리며 자리를 굳건히 지켰고, 다른 다섯 명도 제 몫을 충분히 해냈다.
덕분에 어느새 양쪽의 숫자가 얼추 비슷해졌고, 상어는 초조한 마음에 통역을 내세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안 되겠소. 아무래도 당신들이 나서 줘야겠소."
"알았으니 부하들을 뒤로 물리시오."
"뭐라고 하는 거냐?"
"자기들이 나설 테니 부하들을 물러나게 하랍니다."
"다들 물러나라."
"다들 뒤로 빠져."
야쿠자 조직에서 보낸 세 명의 용병이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서자, 용케 지금까지 버티고 있던 상어의 부하들이 썰물 빠지듯 뒤로 물러났다.
한편 일행들을 보호하듯 최선두에서 싸웠던 지훈은 세 명의 사내가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 대며 다가오자 감히 얕잡아 볼 수가 없어서 바닥에 떨어져 있던 쇠 파이프를 집어 들었다.
"오성 형님, 야쿠자들인 것 같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형님, 야쿠자들이 나타난 걸 보니 저자가 야쿠자들과 모종의 협약을 맺은 것 같습니다."
"영필아, 쪽팔리더라도 우리도 뭐를 들어야만 할 것 같다."
"저놈들은 제가 맡을 것이니 형님은 빠져 있으십시오."
"아냐,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 이번은 쉽지 않을 것 같구나."
"두 분 모두, 뒤로 물러나십시오. 저자들은 제가 맡겠습니다!"
"이 사장, 그만하면 됐으니까 우리에게 맡기게. 분위기로 봤을 때 저자들은 칼을 제대로 익힌 야쿠자들이 틀림없네."
"저놈들이 야쿠자들이라고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
"이 사장, 뒤로 물러나게. 아무리 이 사장이라고 해도 혼자서 저들 모두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네."
"강 회장님, 칼질은 제가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잊은 것입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깔끔하게 마무리하겠습니다."
지훈이 강오성을 비롯해서 노영필과 몇 마디 나누는 사이 세 명의 야쿠자들이 검을 치켜든 채 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이야야~악!"
"아우~욱!"
"끼야아~악!"
"새끼들, 주둥이 닥치지 못해!"
"이 사장, 조심하게."
세 명의 야쿠자는 저마다 삼 보의 간격을 유지한 채 달려들었는데, 노리는 방향이 각각 달랐다.
먼저 정중앙의 사내는 그대로 검을 내려칠 생각인지 검을 쥔 양손을 고개 너머로 넘긴 상태였다.
아울러 좌우의 다른 두 명은 목과 허리를 벨 생각인지 검을 늘어트린 채 다가왔는데, 기합성이 높아질수록 달리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반면 쇠 파이프를 검처럼 든 지훈은 동상처럼 꼼짝도 안 했는데, 세 자루의 검이 달빛을 반사하는 순간 반원을 그리며 쇠 파이프를 휘둘렀다.
채~챙. 챙! 퍽!
쇠파이프와 장검이 연달아 마주친 순간 세 개의 불꽃이 터져 나오며 어둠을 불살랐다.
동시에 쭉 뻗어 나온 지훈의 오른발이 정면에 자리하고 있던 야쿠자의 아랫배를 사정없이 가격했다.
체중과 함께 음양오행기가 실린 발차기에 정통으로 맞은 야쿠자가 마치 축구공처럼 바닥을 사정없이 구르는 사이 좌우에 있던 두 명의 야쿠자들이 검을 내리그었다.
"칙쇼!"
"빠가야로~!"
여전히 쭉 뻗어 있는 오른발이 꼼짝없이 토막 나겠다는 생각에 노영필과 강오성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순간, 지훈의 몸이 허공으로 높게 솟구쳤다.
아니, 솟구쳤다 싶은 순간 피겨 선수처럼 몸을 비틀며 빠르게 회전을 했고, 동시에 달빛을 받은 뭔가가 섬뜩하게 번뜩이더니 잘 익은 수박 통 쪼개지는 소리가 연거푸 들렸다.
퍼~퍽! 쩌-억!
"컥~!"
"악~!"
회전력과 함께 음양오행기가 실린 쇠 파이프에 두개골을 얻어맞은 두 명의 야쿠자들이 썩은 짚단 무너지듯 쓰러진 순간, 회전을 마친 지훈이 바닥에 착지했다.
그 순간, 어느 틈에 일어난 또 한 명의 야쿠자가 등을 보이고 있는 지훈을 향해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자의 검이 지훈의 등에 닿기도 전에 노영필이 휘두른 쇠 파이프가 그자의 머리를 가격했다.
"오, 영필이, 아직 살아 있네?"
"형님, 아직 팔팔합니다."
한밤의 활극이 끝난 해변은 잠잠한 파도 소리만 메아리처럼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반란을 획책했던 상어 패거리를 제압한 강오성은 속속 들이닥친 친위대와 함께 현장을 정리했다.
그런데 상어는 언제 도망친 것인지 아예 사라지고 없었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상어부터 찾아라."
"이 일대를 샅샅이 뒤져 봤지만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놈의 차가 안 보이는 것이, 이미 도주를 한 것 같습니다."
"쥐새끼 같은 놈!"
"회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곳곳에 애들을 보낸 이상 조만간 흔적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김만수라는 자는 붙잡았습니다."
"그자는 어디 있느냐?"
"영도의 창고로 데려갔습니다."
"회장님,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우리 방식으로 응징을 할 것이네."
"설마 죽이는 것입니까?"
"고민 중이네."
"회장님, 제가 주제넘게 나서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그자에게는 최대한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죽이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이 사장이 그렇게 얘기하니 그자의 목숨은 살려 주겠네. 하지만 앞으로는 회칼을 영원히 잡을 수 없을 것이야."
"이 사장이 생각하기에는 그것도 잔인해 보여서 차라리 법의 처벌을 받게 하고 싶겠지만, 목숨을 살려 준 것만 해도 형님이 큰 은혜를 베푼 것이네. 평범한 사람은 모르겠지만 이 바닥에도 나름대로 룰이란 것이 있으니까, 이 사장이 이해를 해 주게."
조폭들의 세계에도 불문율이란 것이 있다.
그 불문율에 의하면 배신을 한 자에게는 처절한 보복을 가하는 것이 당연했고, 지훈도 어느 정도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 한마디 했는데, 더 이상 나서는 것은 지나친 참견인 것 같아서 죽이지는 않겠다는 말에 모른 척 넘어갔다.
그사이 야쿠자를 비롯해서 여전히 쓰러져 있는 상어 패거리들이 어딘가로 옮겨졌고, 해변에는 피가 달라붙어 있는 모래만이 이 자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말없이 얘기하고 있었다.
"이 사장, 오늘 일은 진짜 고맙네. 두 번이나 날 살려 주다니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네."
"저도 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쳤을 뿐입니다. 그나저나 상어란 자를 놓친 것이 마음에 걸리는데 괜찮겠습니까?
"놈이 부산 바닥에 있다면 결국에는 잡힐 것이네."
"야쿠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감히 우리 일에 끼어든 이상 그에 상응한 응징을 가해서 놈들에게 경고의 뜻을 확실하게 전달할 생각이네."
"이전에도 야쿠자들이 오늘처럼 직접적으로 개입한 적이 있습니까?"
"내가 알기론 이번이 처음이네."
"그렇다면 상어란 자가 끌어들였겠군요?"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에 어떻게든 상어를 잡아서 놈들과의 관계를 단절시킬 생각이네."
지훈으로서도 야쿠자의 개입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술자리를 함께하면서 강오성이 조직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려고 하는지 알고 있기에 그를 믿고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지훈도 한 발 끼고 말았지만, 이번 일의 마무리는 그의 몫이 아니라 강오성의 몫이었다.
"어쨌든 못다 한 대작은 계속해야지 않겠습니까?"
"형님, 그렇게 하시죠. 한바탕 거칠게 움직였더니 목이 칼칼한 것이 맥주 생각이 절로 납니다."
"그래, 가자. 오늘은 기분이 더러워서라도 마셔야겠다."
싸워 이겼다지만 배신으로 인해서 벌어진 일인 만큼 강오성의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다.
그리고 그걸 잘 알고 있는 노영필은 강오성의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술 한잔하자고 했고, 강오성은 그 자리에서도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지훈에게 했다.
하지만 처음 같은 흥은 나지 않아서 금방 끝나고 말았다.
광활한 바다를 앞마당 삼은 가온누리 부산점에는 색색의 만국기가 걸려 있었고, 5층이나 되는 주차 빌딩은 빈자리가 안 보일 정도로 수많은 차들로 메워졌다.
이틀 전 활극을 주도했던 지훈이 부산을 대표하는 명사들과 나란히 서서 색색의 테이프를 커팅하는 순간, 우렁찬 함성, 박수 소리와 함께 오색의 종이꽃이 하늘을 수놓았다.
"이 사장,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강 회장님."
"오늘은 드디어 이 사장의 솜씨를 맛볼 수 있는 것인가?"
"부족한 재주나마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가온누리 부산점의 오픈식에 강오성이 참석한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했다.
막말로 지훈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죽었을 그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가온누리 부산점을 홍보했다.
덕분에 오픈 행사에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몰려와서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그중에는 부산과 경남 지역의 국회의원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훈과 인사를 나누며 얘기 말미에 앞으로 잘해 보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이는 새나라당 내부에 지훈이 조만간 입당할 것이며 전략 공천을 받아서 보궐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즉, 새나라당의 국회의원들은 이번 기회에 대통령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지훈과 인사를 나누고 안면을 트기 위해 가온누리 부산점을 찾았다.
하지만 그 내막을 모르는 지훈은 뭔가가 이상하기는 했지만 부산점과 관련한 얘기라고 여기고 웃는 낯으로 그들을 대했다가 강오성으로부터 엉뚱한 얘기를 들었다.
"이 사장, 정치를 할 생각인가?"
"누가요?"
"이 사장이지, 누구긴 누구겠는가?"
"제가 정치를 한다고요? 에이, 그런 일 없습니다."
"이 사장, 섭섭하게 나에게도 숨길 생각인가? 부족하지만 힘껏 도와줄 테니 얘기만 하게."
"제가 그런 일을 왜 숨기겠습니까? 전 정치에는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혹시 새나라당 고위 인사와 얘기를 나눈 적 없는가?"
"가게를 찾아오신 분들이 여러 분 계서서 가벼운 인사를 나눈 적은 있지만, 정치와 관련한 얘기는 나눈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그런 얘기를 왜 하신 것입니까?"
"형님, 어디서 무슨 얘기를 들었기에 그런 얘기를 하시는 것입니까?"
강오성이 뜬금없이 정치 얘기를 해 오자 지훈은 의아한 마음에 그런 얘기를 왜 하는지 물었고, 바로 옆에 있던 노영필도 궁금한지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런데 곧이어 들려오는 강오성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나와 친분이 있는 이 지역 국회의원들 말로는 이 사장이 6월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할 것이라고 하지 뭔가?"
"제가 보궐선거에 출마한다고요?"
"다들 그렇게 알고 있던데, 아니라는 건가?"
"강 회장님,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정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직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왜 갑자기 그런 얘기가 흘러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듣기로는 대통령이 이 사장을 눈여겨보고 중용할 생각을 갖고 있다던데, 그 일과 관련해서 아는 게 없는가?"
"대통령 각하를 몇 번 뵙기는 했지만 그런 얘기를 나눈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와전된 얘기인 것 같으니 신경 쓰지 말게."
"요리만 하는 제가 출마를 한다는 엉뚱한 소문이 떠돈다니, 갑자기 소문의 출처가 궁금해지는군요."
"정치권이란 것이 워낙 이런저런 얘기가 많은 곳이라 하루에도 수많은 소문이 떠도는 법이라네. 시간이 지나면 절로 잠잠해질 것이니 마음에 두지 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