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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 다 한통속이잖아?"
"그러니까 더 이상하죠. 게다가 특허 문제까지 문제 삼으며 헛소리를 했던 요리 전문가도 포함되었는데요."
한식과 궁중 요리의 정통성으로 촉발된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분야로까지 옮겨 갔는데, 그중에는 파밀시에테의 특허침해와 관련된 일도 있었다.
결론만 말하면 파밀시에테가 특허침해를 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 일로 인해서 잘나가던 중견 기업이 몰락했고 이는 많은 실업자를 양산했다면서 그 책임을 가온누리에 돌렸다.
쉽게 말해서 가온누리가 돈에 눈이 멀어서 원만한 해결을 해 주지 않은 통에 파밀시에테가 몰락했다는 식으로 거짓말을 늘어났는데,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사람은 가온누리만 욕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온누리의 매출은 이전에 비해서 제법 감소하고 있는 추세였다.
"하여간 누가 잘된다고 하니까 이때다 싶어서 벌 떼처럼 달려드는 것 아냐?"
"맛으로는 따라오기 어려우니까 그러는 거겠죠?"
"당연하지. 사장님, 갈수록 일이 커지는데 무슨 대책을 세워야지 않을까요?"
"우리까지 나서면 일만 복잡해지지 않을까요?"
"그래도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 억울하잖아요?"
"시간이 흐르면 결국 잠잠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사람들 시각으로는 우리가 이단으로 보일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마냥 모른 척할 수는 없잖습니까?"
"사장님, 저도 하마 형님과 같은 생각이에요. 그리고 음식은 시대를 반영하는 만큼 변하는 것이 당연해서 다른 재료가 사용되는 것은 어느 시대나 그래 왔잖아요?"
"암, 그렇고말고! 명절 때 산적에 햄이나 맛살 또는 피망을 얼마나 많이 사용해?"
"그러니까 문제라는 거죠. 그 사람들 주장은 그런 재료를 쓰면 산적이 아니라는 건데, 그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다들 진정하고 아침이나 먹죠. 그리고 강민구 씨가 어머니에게 간다던데 반찬이라도 몇 가지 싸 줘야지 않겠습니까?"
"사장님, 저도 돕겠습니다."
지금의 사태와 관련해서 그 누구보다 답답한 것은 지훈이었다.
막말로 가온누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주장대로라면 고춧가루를 사용하는 김치도 예전에는 고추가 없었던 만큼 김치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음식은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변하는 것이 당연한데, 마치 자신을 전통을 파괴하는 사람으로 몰아가니 억울했다.
하지만 자신까지 나섰다가는 일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저 벙어리 냉가슴 앓듯 모른 척 넘기고 있었다.
*10. 갖다 버리라고!
최신식으로 지어진 고층 오피스텔에 이재철이 나타났다.
몇몇 부하 직원을 이끌고 23층에 멈춰 선 이재철이 들어선 사무실에는 대한민국궁중요리계승협회라는 커다란 현판이 부착되어 있었다.
"이 전무님, 어서 오십시오."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이 전무님이 후원을 아낌없이 해 주신 덕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전무님,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사무실 안에는 이건을 비롯해서 조선 왕실의 후계자라는 두 명의 노인이 자리하고 있었고, 여러 명의 궁중 요리 전문가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참고로 이곳에 있는 모든 이는 각종 방송과 언론에서 궁중 요리와 한식의 정통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우려스럽다면서 노골적으로 가온누리를 비판했던 인사들이었다.
"정 과장, 사단법인 등록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
"필요조건을 모두 충족해서 해당 공무원과 협의 중에 있는 만큼 사단법인으로 등록하는 데는 아무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단체의 정통성과 권위를 확보하고 어느 정도의 집행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사단법인의 자격을 획득해야 하네. 그러니 그 일을 조속히 마무리해 주게."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만 심사 기간이 소요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면 협회가 정식으로 출범하는 것은 언제쯤이나 가능할 것 같은가?"
"노력은 해 보겠지만 5월 말경에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5월 말이라면 거의 50일이 남았다고 봐야겠군."
"죄송합니다."
"심사 기간이 필요하다는데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사단법인 허가가 나오기 전이라도 언론에 자주 노출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게."
"그럴 생각입니다."
대한민국궁중요리계승협회는 이재철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만들어졌다.
이재철은 이 단체를 사단법인으로 등록시킨 후에 궁중 요리와 관련한 민간 자격증을 발급할 계획이었다.
말 그대로 민간 자격증은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증이 아니었다.
그러나 협회가 힘을 갖고 있으면 국가 자격증 못지않은 공신력을 가지는 법인데, 이를 이용해서 가온누리를 압박할 생각이었다.
쉽게 말해서 궁중요리계승협회가 지훈에게 자격증을 발부하지 않고 이를 근거로 가온누리를 깔아뭉갤 생각이었다.
"정 과장, 분위기가 우리에게 우호적인 만큼 일을 크게 벌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염려 마십시오. 궁중 요리가 아님에도 궁중 요리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고객을 호도하는 식당의 명단을 수일 내로 발표할 생각입니다."
"가온누리는 당연히 들어가겠지?"
"물론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런 법적인 권한도 없는 만큼 언론 플레이를 잘해야 할 거야."
"그것도 이미 입을 맞췄으니 모든 신문에 발표될 것입니다. 다만 방송에서도 그게 뉴스로 나가려면 전무님이 도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방송 쪽은 내가 맡지."
"감사합니다."
궁중요리계승협회에서 실무를 보는 세 명은 전부 TJ의 직원들이었다.
이재철의 명령을 받고 이곳에서 실무를 보는 그들은 철저히 가온누리를 노리고 일련의 작업들을 수행하고 있었다.
물론 이재철이 노리고 있는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하혜정 연구가님, 제가 일전에 부탁한 일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메뉴 개발은 늘 해 오던 것이라 어렵지 않은 만큼 기한 내에 마무리가 될 것입니다."
"제자들을 선발하는 일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그것도 문제없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말씀하신 대회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문화체육관광부의 담당자와 만나서 대회의 개최와 관련해서는 모든 합의를 끝냈습니다."
"그러면 대회는 언제 실시되는 것입니까?"
"궁중요리계승협회가 정식으로 사단법인으로 발족한 후에 대회의 심사를 맡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아무리 빨라도 6월 초순에나 가능하겠군요?"
"애써 보겠지만 그때쯤에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전무님, 원활한 준비를 위해서 이 자리에서 대회 일정을 확정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생각하고 있는 일정이 있습니까?"
"6월 5일이 어떻습니까?"
"괜찮은 것 같습니다."
왕실의 후손을 비롯해서 한식 전문가와 궁중 요리 전문가들을 끌어들여서 자신의 통제하에 있는 궁중요리계승협회를 만든 이재철은 협회가 정식으로 사단법인이 되면 궁중 요리 대회를 개최할 생각이었다.
아울러 대회의 심사를 협회에 맡길 생각이었다.
이는 협회의 권위를 한껏 올리는 것이 주 목표였지만, 대회의 후원을 통한 TJ그룹의 이미지를 재고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 말고도 또 다른 속셈이 있었으니, 자신과 손을 잡은 궁중 요리 전문가들의 제자들을 대회에 출전시키고 그들에게 상을 몰아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언론의 관심이 그들에게 쏠리면 그들 모두를 자신이 며칠 전에 새로 설립한 프랜차이즈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러면 대회는 6월 5일로 예정하고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그런데 김상돈 씨의 근황은 아직 파악이 안 되었습니까?"
"얼마 전에 얘기한 장소는 제가 직접 가 봤는데, 떠난 지 오래였습니다."
"그러면 그분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가요?"
"쉽지는 않지만 그자와 인연이 있는 사람을 계속 수소문해서 접촉하고 있는 만큼 언젠가는 행방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만약 그 사람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일단은 최선을 다해서 찾아보겠지만, 만약 끝까지 찾지 못한다면 아쉽더라도 우리끼리 협회를 끌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분 나이가 있던데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요?"
"솔직히 말하면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궁중 요리의 완벽한 재현을 위해서는 그 사람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재철이 언급한 김상돈은 대한민국 최고의 궁중 요리 전문가였다.
고종 시절 대령숙수의 후손인 그는 궁중의 대령숙수에게 비밀리에 전해지던 '식료찬설'이라는 책자의 소유자이자 궁중 요리의 모든 것을 배운 명실상부한 계승자였다.
막말로 이 자리에 있는 궁중 요리 전문가를 비롯해서 우리나라에서 궁중 요리 전문가임을 자처하는 원로급 인사는 그에게서 궁중 요리를 배웠다.
그러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전문가들은 김상돈을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협회가 엄청난 권위를 가질 수 있다며 그의 영입을 주장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그분을 찾는 노력은 계속하겠습니다. 하지만 끝끝내 못 찾을 수도 있으니 준비하고 있는 일은 계획대로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걱정 마십시오."
평소와 다름없이 일찍 일어나서 다른 이들과 함께 영업 준비를 마친 강민구는 오전 늦게야 가온누리를 벗어난 통에 점심 직전에야 요양원에 당도했다.
"엄마, 나 왔어."
"민구, 왔구나."
"짐은 벌써 쌌네?"
"오늘 퇴원이니까 미리 쌌지. 그것들은 또 뭐야?"
"사장님이 음식을 싸 주셔서 챙겨 왔어."
"미안하게, 매번 올 때마다 음식을 챙겨 오면 어떡해?"
"사장님이 매번 챙겨 주는데 거절할 수가 없잖아. 아직 점심 전이지?"
"지금 나오고 있을걸."
"잘되었다. 가기 전에 여기서 점심 먹고 가자."
"이번에도 바리바리 싸 준 것 같은데, 병실 사람들에게도 나눠 주는 게 좋겠다."
"집에 가면 반찬도 없을 텐데 남은 것은 집으로 갖고 가."
"음식은 나눠 먹어야 정이지. 그리고 네 가게의 음식이 어찌나 맛있던지 다들 있으면 나눠 달라고 아우성이야."
"엄마, 그……그래도……."
어렴풋이나마 지훈의 특별한 능력을 알고 있는 강민구는 지훈이 직접 만든 요리를 어머니에게 오랫동안 대접하고 싶었다.
이는 어머니의 병이 나았다고는 해도 건강에 좋을 거라는 생각에 그랬는데, 그 맘을 모르는 어머니는 민구가 말리기도 전에 그릇을 챙겨서 일어났다.
"아주머니, 이것 좀 드세요."
"뭘 이런 것을……. 저는 괜찮으니까 갖고 가세요."
"아픈 사람일수록 잘 먹어야죠. 이건 우리 아들이 일하는 가온누리라는 아주 유명한 식당의 요리들이니까 아주 맛있을 거예요. 우리 아들이 그곳의 요리사거든요."
"아! 그러시구나. 아드님이 그런 유명 식당에서 근무하면 돈도 잘 벌겠네요?"
"요리를 배운답시고 남들처럼 대학을 못 나와서 예전에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월급을 꽤나 많이 받아 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유명 식당이라 돈을 많이 주나 보네요. 아! 아주머니는 아들이 좋은 직장에 다녀서 남부러울 것이 없겠네요?"
"그럼요. 여기 병원비도 아들이 다 내줬는걸요."
"부럽네요."
"음식은 많이 있으니까 필요하시면 더 얘기하세요."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같은 병실의 환자에게 음식을 나눠 준 어머니는 다른 병실까지 돌면서 음식을 나눠 줬다. 그리고 음식을 나눠 줄 때면 쾌유를 비는 덕담과 함께 가온누리에서 일을 하는 아들의 얘기를 자랑스럽게 했다.
어머니가 음식을 나눠 준다는 핑계로 자신을 자랑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 강민구는 살짝 부끄럽기는 했지만 어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이 좋아서 모른 척했다.
"엄마, 그만하시고 식사부터 하세요."
"그럴까."
"거의 다 나눠 주고 별로 안 남았네요?"
"한 끼만 먹으면 되지. 난 솔직히 안 먹어도 배부르다."
흐뭇한 표정으로 병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어머니를 병실로 데려온 강민구는 자신이 대신 수령한 식사를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