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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수철의 그런 반응에 영감은 기다렸던 것처럼 호통을 치더니 나중에는 엉뚱하게도 강민구를 찾았다.
"강민구 셰프는 왜 찾으시는데요?"
"그놈이 날 여기로 불렀으니까 그놈부터 데려와."
"수철 씨, 뭐하는 겁니까? 어서 사과하세요."
"파트장님, 이분이 계속해서 시비를 걸어오잖습니까?"
"이놈아, 내가 언제 시비를 걸었다는 거야? 그리고 음식이 맘에 안 들어서 안 든다고 얘기한 건데 그게 무슨 죄야?"
"손님, 죄송합니다."
"이놈과는 달리 아가씨는 말이 통하는구먼. 가서 강민구라는 요리사를 불러 주게."
손님과 문제가 생기자 재빨리 달려온 이는 변함없이 본점의 서비스를 책임지고 있는 김유경이었다.
그녀는 수철이 그랬던 것처럼 눈앞의 영감이 시비를 걸기 위해 왔다고 추측했지만 우선은 사과부터 시키면서 분위기를 진정 켰다.
그런데 문제의 영감이 강민구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자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주방에 연락을 해서 그를 불렀다.
"영감님, 진짜 오셨네요."
"가자."
"어디요?"
"네놈의 사장을 만나 봐야겠다."
"지금요?"
"빨리 안 가고 뭐 하는 게야?"
"아……알겠습니다."
머뭇거리던 강민구를 닦달하던 영감은 마치 자기 집인 양 앞장서서 주방으로 향했다.
한편 의외의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강민구는 뒤늦게 영감에게 달려갔다.
"영감님이 우리 사장님을 만나서 뭐 하시려고요?"
"그때도 말했지만 궁금해서 못 참겠다."
"뭘요?"
"가 보면 알아."
"어! 영감님, 잠깐만요."
"왜 막고 지랄이야."
*11. 기를 알고 계십니까?
강민구의 제지에도 막무가내로 주방으로 밀고 들어온 영감은 한창 요리에 집중하고 있던 지훈을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사이 부마스터인 동석이 영감을 발견하고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강민구를 바라봤다.
"그게 그러니까……."
"어, 할아버지!"
"엥! 너는 준상이가 아니냐?"
"할아버지가 여기는 웬일이세요?"
"이놈아, 너도 여기에 있었던 거냐?"
"사장님이 절 예쁘게 봐주셔서 그렇게 됐어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동안 어디 계셨던 거예요? 지난번에 살았던 집에 가니까 안 계셔서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나야 오라는 곳은 없지만 갈 곳은 많은 사람이잖니?"
강민구가 영감을 가온누리로 부른 이유는 묘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 당시 느꼈던 느낌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희한하게도 영감이 지훈과 가온누리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그를 불렀고, 마음 한편으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사전 예고도 없이 찾아온 영감이 가게에서 소동을 피운 것 같아서 무척 당황스러웠는데, 그가 준상과도 잘 알고 있다니 의외였다.
한편 영감에게 다가온 준상은 마치 친손자처럼 살갑게 굴더니 지훈을 비롯한 주방의 셰프들에게 영감을 소개했다.
"마스터, 이분은 제게 요리를 가르쳐 주신 분이세요."
"안녕하십니까, 이지훈입니다."
"자네가 여기 주방장인가?"
"그렇습니다."
"할아버지, 여기는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너무 궁금해서 와 봤다."
"오! 우리 마스터가 궁금해서 오셨다면 그 솜씨가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그 반대다."
"엥! 그 반대라고요?"
"준상아, 이 영감님과 아는 사이야?"
"예전에 공사 현장 따라서 지방에 내려갔다가 거기서 알게 되어서 한동안 요리를 배웠어요. 아! 할아버지가 보기에는 이래도 엄청난 요리 솜씨를 가지고 계세요. 그나저나 민구 형은 영감님을 어떻게 알고 계세요?"
"이놈아, 내가 어때서?"
"몰라서 물으세요? 그런데 지금은 어디 계세요?"
"알 것 없다."
민구와 준상으로 인해서 얘기가 중구난방이 되었지만, 지훈은 자신의 요리가 마음에 안 든다는 영감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려서 그를 쳐다봤다.
그의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영감이 얘기를 다시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한 가지만 물어보겠네. 자네, 특별한 재주가 있는가?"
"무슨 말씀이신지요?"
"내가 이 가게의 모든 요리를 먹어 봤는데,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맛이 다 똑같은 게 아주 형편없었어.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래도 맛있다는 거야. 그게 믿기지가 않아."
"어! 나도 그랬는데 할아버지도 그랬어요?"
"준상아, 어른 얘기하는데 버릇없이 끼어드는 것 아니라고 했지?"
"그게 아니라……."
"조용해라. 어서 대답을 해 보게."
"어르신, 방금 모든 요리의 맛이 다 똑같다고 했습니까?"
"분명히 그렇게 말했네. 요리란 것은 모름지기 자기만의 맛, 이를테면 그 특유의 개성과 특징적인 맛이 있는데, 이곳이 요리는 희한하게도 맛이 다 똑같았어."
준상도 얼마 전에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것저것 다른 생각을 하느라 아무렇지 않게 넘겨 버렸지만, 낯선 노인이 정색을 하고 물어 오니 그때처럼 무심코 넘길 수가 없었다.
"요리마다 사용되는 재료가 전부 다른데 맛이 똑같을 리가 있겠습니까?"
"내가 궁금하게 생각한 것이 그 점이네. 대체 무슨 재주로 식자재 고유의 맛을 덮어 버린 것인가?"
"식자재 고유의 맛을 덮어 버렸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인가? 이곳의 요리는 식자재 본연의 맛을 집어삼키는 어떤 특정한 맛이 있네. 난 그게 처음에는 특별한 양념인 줄 알았는데, 여길 와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아서 더 놀랐네."
그때도 짐작했지만 가온누리의 맛이 모두 똑같게 느껴지는 건 음양오행기 때문인 것 같았다.
특히 지난번 복어 독에 중독된 뒤 음양오행기의 힘이 더 강해지면서 더더욱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사실을 실토할 수 없는 지훈은 스스로에게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끝내 비밀을 털어놓지 않았다.
그사이 영감은 지훈을 자극하는 또 다른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이곳의 요리는 겉모양에만 너무 치중한 나머지 우리 음식 고유의 맛도 상실했더군. 솔직히 궁중 요리라고 소개한 설명문을 봤을 때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네."
"영감님, 말씀이 너무 지나치신 것 아닙니까? 우리 사장님은 세계 각국의 정상이 인정한 세계 최고의 요리사입니다."
"그것들 입맛이 비뚤어져서 그런 말을 했겠지. 내가 장담하건대 이곳의 궁중 요리는 모양만 흉내 낸 가짜에 불과하네."
"뭐요?"
안 그래도 정통성 시비에 휘말려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마당에 낯선 영감이 그 부분을 지적하자 지켜보고 있던 동석까지 화를 내며 나섰다.
그 상황에서 유준상은 오히려 영감의 편을 들어서 모두의 눈총을 받았다.
"부마스터님, 할아버지의 궁중 요리 실력은 진짜예요."
"유준상 씨, 지금 무슨 얘기하는 겁니까?"
"정말이에요, 할아버지의 궁중 요리는 최고예요!"
"유준상 씨!"
"준상아, 그만해."
"왜 죄 없는 준상이를 닦달하는 것인가? 설마 나처럼 변변찮은 영감에게 실력에서 밀릴까 봐 겁이 나서 그러는 것인가?"
"뭐요, 이 영감님이 진짜!"
"동석아, 잠깐만."
"지훈아, 왜 그래?"
"영감님, 제대로 된 궁중 요리를 저에게 가르쳐 줄 수 있겠습니까? 만약 가르쳐 주신다면 성심성의껏 배우겠습니다."
"할아버지, 그렇게 해 주세요. 우리 사장님이라면 할아버지의 눈에 찰지도 몰라요."
준상에 이어 영감에게도 모든 요리의 맛이 똑같고 개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게 되자 지훈은 이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게다가 영감이 어떤 특정한 맛이 식자재 본연의 맛을 덮어 버리고 있다고 말하자 마치 음양오행기의 비밀을 들킨 것 같아서 깜짝 놀랐다.
그런 마당에 절대 미각을 갖고 있는 준상이가 영감의 요리 실력을 극찬하자 뭔가를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배움을 청했다.
향긋한 귤 냄새가 피어나는 2층의 내실에는 조금 전까지 주방에서 궁중 요리 시범을 보였던 영감이 귤강차를 사이에 두고 지훈과 마주 앉아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영감을 대하는 지훈의 태도는 공손하기만 했다.
"귤강차에서도 같은 맛이 느껴지다니, 아주 재미있군. 자네, 대체 무슨 재주를 부린 것인가?"
"귤강차에서도 같은 맛이 느껴진다니 선생님에게는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지훈은 영감을 선생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영감이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인 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감의 진정한 신분을 알게 되면 모든 이가 지금의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낯선 영감은 궁중 요리의 대부이자 궁중 요리의 맥을 정통으로 계승한 김상돈이었다.
참고로 김상돈은 맛은 좋지만 모든 요리의 맛이 비슷한 가온누리의 요리에 대해서 상당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고, 자신과 인연이 있는 준상을 받아 준 지훈에 대한 호감도 갖고 있었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자신의 실력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역시 어떤 비밀이 있나 보군. 그게 뭔가?"
"선생님은 기를 알고 계십니까?"
"기?"
"그렇습니다. 저는 음양오행기로 불리는 대자연의 기운을 품고 있어서 요리에 그 기운을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대자연의 기를 요리에 집어넣을 수 있다니 신기하군. 그러면 그 기운 때문에 모든 요리의 맛이 똑같아진 것인가?"
"저는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요리의 맛이 똑같음에도 맛있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대자연의 기가 음식에 들어갔으니 당연히 맛이 좋겠지. 하지만 맛이란 것은 오묘해서 각각의 음식마다 고유의 맛이 나고 그게 서로 어울려야 하는 법이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모든 요리에 대자연의 기를 넣어서 음식 고유의 맛을 해치고 천편일률적인 맛을 내면 어쩌자는 것인가?"
"솔직히 그것까지는 생각지도 못했고 알아차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먹는 이의 건강을 고려해서 모든 음식에 음양오행기를 주입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먹는 이의 건강을 고려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제가 품고 있는 음양오행기는 식자재가 갖고 있는 성분과 효과를 극대화시킵니다. 그래서 때로는 병자에게 약이 되기도 하기에 그 부분을 적극 고려했습니다."
"병자에게 약이 된다고? 아! 그래서 그런 일이 있었나 보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민구란 녀석이 요양원에 종종 음식을 싸 가지고 왔는데, 그 요양원 환자 중에 녀석의 어머니를 비롯해서 병세가 좋아진 환자가 여럿 있었어. 이제 보니 그 일이 자네와 관련이 있었군."
"다른 분은 모르겠지만 민구 씨의 어머니는 제가 의도적으로 식자재를 엄선했을 뿐만 아니라 음양오행기를 듬뿍 담았습니다."
"그 이유는 녀석의 어머니를 치유하려고 그랬겠군?"
"맞습니다. 저는 음양오행기를 이용해서 의식동원을 실천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의식동원을 실천하겠다고?"
"하늘에서 그런 신비한 능력을 제게 줬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건 의식동원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여겼습니다."
끄덕끄덕~!
의식동원과 관련한 얘기가 계속 이어지는 동안 영감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훈의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정색을 하며 요리와 관련한 얘기를 했다.
꽤나 장황하게 이어진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모든 음식에는 고유의 맛이 있고 그 맛을 살리는 것이 요리의 정수란 거였다.
"저도 선생님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하지만 감히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뭔가?"
"음양오행기 때문에 모든 요리의 맛이 똑같게 느껴진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제가 만든 궁중 요리가 모양만 흉내 낸 가짜라는 말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궁중 요리의 법도를 모두 지켰다는 것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가 식자재 때문이라면, 요리는 시대를 반영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