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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궁중 요리의 정수도 제대로 배웠다.
사실 지훈은 모르고 있지만 김상돈은 식료찬설에 담겨 있는 내용의 상당 부분을 그에게 가르친 상태였다.
이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던 일로, 그가 지훈을 정식 제자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였다.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니니 더더욱 연구에 매진해서 최고의 맛을 찾도록 해라."
"물론입니다. 그리고 다음 달에는 궁중 요리 대회에 참가해서 명예를 회복할 생각입니다."
"방금 궁중 요리 대회라고 했느냐?"
"저도 TV를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궁중요리계승 협회에서 다음 달 5일에 궁중 요리 대회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무슨 협회?"
"궁중요리계승협회라고 했습니다."
"처음 들어 보는 단체이구나."
"알아보니 조만간 사단법인으로 출범하는데, 한식 전문가와 궁중 요리 전문가 들이 꽤나 모여 있는 단체였습니다."
"궁중 요리 전문가라면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하혜정 씨와 이선웅 씨 그리고 전현숙 씨를 포함한 많은 궁중 요리 전문가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전부 모였다고?"
"어! 아시는 분들입니까?"
"인연이 조금씩은 있다. 그나저나 그것들이 한데 뭉쳤다면 썩 좋은 단체는 아니겠구나."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런 것이 있다."
방금 지훈이가 얘기한 세 명의 궁중 요리 전문가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궁중 요리 전문가로 명성을 날리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의 고증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방송에도 자주 출현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이름을 딴 궁중 요리 전문 학원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김상돈에게서 궁중 요리를 배운 자들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김상돈에게 궁중 요리를 배우기는 했으나 품성에 문제가 있거나 실력이 부족해서 중도에 내쳐진 자들이었는데, 하나같이 김상돈의 직전 제자임을 내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는 김상돈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2층 내실로 올라가 버렸다.
때 이른 무더위는 5월 말에도 계속 이어졌다.
사무실로 출근해서 새로 설립한 한식당 프랜차이즈 두레와 관련한 보고를 받고 그와 관한 업무 지시를 내린 이재철은 오후에는 궁중요리계승협회를 찾았다.
"전무님, 어서 오십시오."
"정 과장, 내일로 예정된 출범식 준비는 잘되어 가고 있습니까?"
"무대 설치를 비롯해서 모든 준비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출범식 장소로 제법 큰 체육관을 빌린 만큼 인력 동원에도 차질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 부분은 협회의 임원님들이 신경을 많이 써 주신 덕분에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 요식 업소를 운영하는 사람들 외에 요리를 배우는 학생들도 출범식에 참석을 시키는 것이 어떻겠소?"
"그 부분도 이미 얘기가 되어서 임원님들이 운영하는 궁중 요리 전문 학원의 수강생들을 비롯해서 수도권 소재 여러 대학의 조리학과 학생들도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궁중요리계승협회에는 한식 전문가와 궁중 요리 전문가 외에도 요리 학원 협회와 한국 외식업 중앙회도 산하 단체로 가입했다.
즉, 외식업 협회에 가입한 식당의 주인들도 궁중요리계승협회의 회원인 셈이었기에 협회의 간부들을 그들을 출범식에 동원해서 협회의 세를 과시할 셈이었다.
"잘했소. 그리고 궁중 요리 대회 준비는 어찌 되어 가고 있소?"
"출범식이 열리는 내일까지는 함께 홍보를 하고 출범식 이후에는 대회만 홍보를 할 생각입니다."
"TV 광고도 계속 나가고 있소?"
"물론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뭐요?"
"가온누리의 이지훈이 궁중 요리 대회에 참가 접수를 했습니다."
"이지훈이 우리가 개최한 궁중 요리 대회에 참가한다는 거요?"
"제 딴에는 입상을 해서 가게를 홍보할 목적에 참가를 결정한 것 같습니다."
궁중 요리 대회의 우승자는 상금만 3억이다.
그리고 우승과 준우승자 외에 입상자에게도 최소 수백만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그렇다 보니 식당을 운영하는 많은 이들이 상금을 노리고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한 상태였다.
"하하하하~! 그자까지 출전 신청을 하는 것을 보니 우리가 만든 협회를 비롯해서 요리 대회의 홍보가 아주 잘된 것 같소. 고생했소, 정 과장."
"감사합니다."
"이지훈이 출전을 했다니 아무래도 대회의 규모를 훨씬 크게 키워야겠소."
"전무님, 입상자와 상금을 올리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것도 좋겠지만 이미 발표한 것을 번복할 수는 없으니 요리 대회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올려야겠소."
이재철이 두레라는 새로운 프랜차이즈를 설립하고 궁중요리계승협회를 만든 이유는 지훈을 무너트리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 이유 외에도 한식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사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판단도 큰 몫을 차지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지훈을 무너트리기 위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는 협회가 설립되기 전부터 왕실의 후손을 동원해 가온누리를 공격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런 마당에 겁도 없이 궁중 요리 대회에 참석한 지훈을 절대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대회의 사회를 대장금에 출연했던 이영화 씨에게 맡겨야겠소. 그녀가 사회를 본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큰 화제가 될 것이오."
"그렇기는 하겠지만 이영화 씨를 섭외하려면 적지 않은 개런티를 지급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무조건 섭외를 하시오. 그리고 축하 공연을 핑계로 인기 절정의 아이돌 그룹도 여러 팀 섭외하시오."
"아이돌까지요?"
"그것만이 아니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에서 방송에 출연해서 유명해진 외국인들을 대회에 대거 끌어들이시오."
"그자들에게도 개런티를 지급하라는 것입니까?"
"물론이오. 그래야 모든 방송이 관심을 갖고 달려들지 않겠소. 아! 우리 쪽 방송사에도 연락해서 사전 특집 방송을 내보내고 요리 대회도 촬영해서 방송에 내보내라고 해야겠소."
"이영화 씨가 사회를 보고 아이돌까지 나온다면 방송국도 관심을 갖고 달려들 것입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정 과장은 아직도 모르겠소?"
"예?"
"요리 대회에 가온누리의 이지훈이 참가한다고 하지 않았소? 그러니 이번 기회에 놈을 끝장내야 하오."
"요리 대회에서 탈락을 한다고 가온누리와 이지훈을 무너트릴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자의 뒤에는 정권의 실세가 자리하고 있다고 했잖습니까?"
가온누리에 대한 언론과 방송의 공격이 중단된 것은 김기철의 입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정 과장은 정권의 실세를 언급하며 뭔가를 꾸미려고 하는 이재철의 계획에 우려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이재철은 주먹까지 불끈 쥐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니 더더욱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오."
"전무님, 어떻게 하려고 그러십니까?"
"심사위원들에게 내 뜻을 확실하게 전하시오. 그가 만든 요리를 최악의 요리로 평가하고, 그를 궁중 요리의 정통성을 훼손시키는 이단아로 단정하라고 하시오."
"아예 대놓고 악평을 하라는 것입니까?"
"그렇소. 그리고 그 장면은 TV를 통해 전국으로 방영될 것이오. 아! 좀 더 극적인 효과를 내려면 처음에는 엄청 기대를 하는 것처럼 행동하라고 하시오."
어둠으로 뒤덮인 6월의 밤하늘에는 제법 많은 별들이 반짝였고 이따금씩 바람이라도 불 때면 활짝 핀 접시꽃은 별빛을 잔뜩 머금은 빨간 꽃잎을 살랑거렸다.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붐비는 손님들로 인해 정신없이 요리를 하고 있던 지훈은 주방의 한쪽 벽면에 붙어 있는 시계를 힐끔 쳐다보다가 요리를 끝낸 초계탕을 세 개의 그릇에 옮겼다. 그리고 그중의 한 그릇은 직접 챙겨서 감상돈이 있는 2층의 내실로 가지고 갔다.
"선생님, 입맛이 없다고 하셔서 초계탕을 가져왔습니다."
"바쁠 텐데 번거롭게 이런 수고를 왜 해?"
"때마침 주문이 들어온 김에 같이 했습니다. 한번 드셔 보십시오."
"깨의 고소한 향기가 아주 좋구나."
"깨에는 토의 기운을 집어넣었고 양의 성질을 띠고 있는 닭고기에는 음의 기운을 주입했습니다."
"육수는 어떻게 했느냐?"
"육수에는 잡냄새를 제거하고 초의 시큼함을 줄이기 위해 목의 기운이 담긴 간장을 사용했습니다."
"역시 각각의 기운을 별도로 사용해야만 조화가 이루어지나 보구나. 이 정도라면 조선 최고의 초계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구나."
"아직 스승님에게는 멀었습니다."
"무슨 소리, 솔직히 말하면 넌 처음부터 날 뛰어넘은 상태였다. 다만 음양오행기의 맛이 너무 강한 것이 문제였는데, 그걸 해결한 이상 진정한 세계 최고의 요리사다."
"과찬이십니다."
음양오행기의 기운을 세분화하는 데 성공한 지훈은 연구 끝에 장류와 양념류를 비롯해서 향신료와 소스도 세분화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예전처럼 음양오행기를 통째로 주입하지 않고 요리에 맞춰서 주입하는 기운을 달리해서 음양오행기가 요리 본연의 맛을 잠재우던 현상을 해결했다.
그리고 그 반응은 너무도 뜨거워서 가온누리를 찾은 고객들은 다들 요리가 더 맛있어졌다며 좋아했고, 덕분에 지금은 예전처럼 큰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지훈아, 외국에서 친구가 온다는 날이 오늘이라지 않았느냐?"
"그래서 곧 나가 볼 생각입니다."
"저녁이라 도로가 혼잡할 텐데 어서 출발해라."
"아직은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나가 봐도 됩니다."
"그 친구들도 요리를 한다고 했지?"
"두 사람 모두 중국과 태국에서 유명한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태국 요리도 상당하다고 하던데, 언제 한번 본토의 맛을 봤으면 좋겠구나."
"그 친구들에게 부탁을 해 보겠습니다."
"아니다. 나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그 친구들도 한식에 관심이 많은 만큼 선생님의 요리를 맛보게 되면 고마워서라도 자신들의 요리를 선보이려고 할 것입니다."
"뭐, 그렇다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만큼 나쁘지 않을 것 같구나."
"아마 그 친구들도 무척 좋아할 것입니다. 사실 프랑스에 있을 때도 서로에게 자국의 요리를 알려 주고 그랬습니다."
"좋은 경험을 했구나."
외국에서 온다는 친구는 쏨과 장쉬엔이었다.
미리 연락해서 도착 시간을 서로 맞춘 두 사람은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은 가온누리의 내실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늦기 전에 어서 나가 봐라."
"그러면 저는 씻고 옷을 갈아입겠습니다."
"그렇게 해. 참! 궁중 요리 대회가 모레라고 했느냐?"
"맞습니다."
"대회는 어디서 열린다고 했지?"
"잠실에 있는 실내 체육관입니다."
"대회 시작은 오후 2시라고 했느냐?"
"선생님도 오시게요?"
"내가 그런 곳을 가서 뭐 하게?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다."
이틀 후로 예정된 궁중 요리 대회에서 꼬치꼬치 캐묻던 김상돈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표정으로 초계탕을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지훈은 함께 가자는 말을 하려다가 말고 욕실로 들어갔다.
얼마 후, 세면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지훈은 주차장으로 이동해 한쪽 구석에 세워진 자신의 낡은 승용차에 올랐다.
"형님, 이지훈입니다."
"저놈이 드디어 나왔구나."
"어딜 가는 것 같은데 어찌할까요?"
"무조건 따라가라."
"차가 상당히 낡은 것이, 그대로 들이받아도 될 것 같은데요."
"더 좋은 기회가 생길 수도 있으니 우선은 따라가라. 그리고 박을 때 박더라도 옆에서 운전석을 들이받아야 놈을 확실하게 보낼 수 있다."
주차장 인근의 주택가 골목에는 묵직한 캥거루 가드를 범퍼에 장착한 대형 지프가 주차되어 있었는데, 그 안에는 비밀리에 한국으로 돌아온 상어와 건장한 체구의 젊은 사내가 앉아 있었다.
아울러 이들은 여차하면 자신들의 차로 지훈을 들이받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