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 회: 6-1 [흐미, 아까워서 어쩔꼬?] -->
*1. 흐미, 아까워서 어쩔꼬?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잡한 도심을 힘겹게 빠져나가서 자동차 전용 도로에 올라선 지훈은 액셀러레이터를 지그시 밟으며 속도를 높였다.
"형님, 여기는 속도를 마음껏 올릴 수 있는 구간인데 확 밀어 버릴까요?"
"미친놈, 여기는 다른 차들이 너무 많아서 안 돼. 그리고 뒤에서 추돌을 해 봐야 놈을 죽인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으니까 계속 뒤따라가."
운전을 하고 있는 불곰은 육중한 자신들의 지프를 철석같이 믿는 것인지 무조건 들이받자고 했다.
하지만 보다 확실한 기회를 노리는 상어는 불곰의 의견을 묵살하며 계속 뒤를 따르게 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놈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따라가 보면 알겠지."
"어디 한적한 시골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도 그거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훈의 차를 미행하던 상어 일행은 어느 순간 지훈이 인천공항으로 향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형님, 아무래도 인천공항으로 가는 것 같은데요?"
"아까 차에 탈 때 짐은 없었지?"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놈이 출국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누군가를 마중 나가는 것이 분명해."
"형님, 다리에서 밀어 버릴까요? 바다로 빠트리면 그때는 알아서 수장되는 것 아닙니까?"
"난간이 튼튼해서 쉽지 않을 거야. 그리고 다리에 들어서면 우리도 도망갈 데가 없어."
"그러면 어떡하자고요?"
"놈이 주차를 하고 걸어 나오는 그때를 노린다."
"알겠습니다."
약간의 망설임 끝에 장소를 결정한 상어는 계속해서 지훈의 차를 미행하게 했다.
그러는 사이 마침내 인천공항에 들어선 지훈은 주차장에 진입했다.
"형님, 예상대로 주차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근처에서 대기하다가 놈이 걸어 나오면 그때 밀어 버려!"
"알겠습니다."
지훈이 주차하는 것을 목격한 상어와 불곰은 근처에서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제법 흘렀음에도 지훈의 모습이 안 보였다.
"형님, 왜 안 나오죠?"
"다른 길로 간 것 아냐? 내려서 살펴보자."
여전히 시동을 켠 상태에서 정차 중이던 상어와 불곰은 지훈을 찾기 위해서 차 밖으로 내렸다. 그리고 자신들이 기다리고 있는 쪽이 아닌 반대쪽으로 가고 있는 지훈을 발견했다.
"형님, 저쪽으로 가는데요?"
"빨리 차를 몰아."
"알겠습니다."
다시금 차에 오른 상어와 불곰은 차를 몰아서 지훈에게 접근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나타난 여러 대의 차가 앞과 뒤를 막아선 통에 재빨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저것들 뭐야?"
"저 무식한 새끼들, 운전을 이따위로 하면 어쩌자는 거야."
"빌어먹을 새끼들, 차 안 빼!"
앞을 가로막은 승합차 때문에 차를 움직일 수 없게 되자 화가 난 불곰은 급한 마음에 운전석의 창문을 내리고 악을 질렀다.
그 순간 승합차의 양쪽 문이 열리며 쇠 파이프나 몽둥이를 든 건장한 사내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헙! 혀……형님?"
"불곰아, 어서 차를 몰아."
"놈들 차가 앞을 막고 있는데요?"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여기를 빠져나가야 해. 그냥 밀어 버려, 어서!"
"아……알겠습니다."
갑작스레 나타난 괴한들의 정체는 그동안 상어의 행방을 찾고 있던 오성파의 조직원들이었다.
아울러 본능적으로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린 상어와 불곰은 달려드는 그들을 피해서 차를 몰았다.
쿵~!
"안 멈춰."
"이 새꺄, 내려!"
쾅-! 콰~쾅! 퍽-!
쇠 파이프와 몽둥이로 무장한 오성파의 조직원들이 상어와 불곰이 탄 지프를 가격하고 있을 때 불곰은 액셀러레이터를 있는 힘껏 밟으며 앞을 막고 있는 승합차를 밀었다.
다행히 모두가 다 내린 통에 운전자가 없는 승합차는 한쪽이 심하게 일그러진 상태에서 지프가 미는 대로 한쪽으로 밀렸고, 불곰은 그 틈을 이용해서 빠져나갔다.
"놈이 도망간다."
"빌어먹을, 다 내리면 어쩌자는 거야."
"잔소리 말고 어서 타기나 해."
"빨리 쫓아."
오성파 조직원에 쫓긴 상어와 불곰은 주차장 출구의 차단기를 그대로 부수고 도주했고, 그 뒤를 세 대의 차가 뒤쫓았다.
한편 반대편 인도를 통해서 공항으로 다가가던 지훈은 밤의 적막을 깨고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난 쪽을 바라봤다.
"저런 정신없는 놈들, 외국인들도 많이 있는 공항에서 저런 짓을 하면 어쩌자는 거야?"
따지고 보면 공항에서 이런 황당한 소동이 벌어진 것은 지훈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사정을 모르는 지훈은 조폭들의 다툼이라고 단정해서 쓴소리를 내뱉은 뒤 입국장으로 향했고, 얼마 후에는 먼저 도착한 장쉬엔과 만났다.
"장쉬엔, 어서 와."
"지훈, 잘 있었어?"
"나야 그대로지. 그런데 장쉬엔은 훨씬 예뻐졌네, 살도 빠진 것 같고?"
"다이어트를 했지. 보기 좋아?"
"응, 미모가 확 도드라져 보여. 참! 인터넷에서 사진 보니까 쏨도 훨씬 예뻐졌던데?"
"말도 마. 쏨은 가슴을 다시 수술해서 이제는 완전히 글래머가 됐어."
"큭큭, 글래머가 되는 게 쏨의 소원이었잖아?"
"그렇기는 한데 너무 커서 은근 부러워."
"그러다가 장쉬엔도 수술하는 것 아냐?"
"진지하게 고민 중이야. 만약 내가 예정보다 더 한국에 머무르게 된다면 강남의 성형외과에 있을 거야."
"설마 그것 때문에 한국을 찾은 것은 아니겠지?"
"아니라고는 말 못 할 것 같아."
"뭐! 진짜?"
"농담이야."
그 이후로도 장쉬엔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지훈은 대략 30분 후에 당도한 쏨과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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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이 끝난 가온누리에는 쏨과 장쉬엔의 입국을 환영하는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파티에는 지훈과 함께 유학 생활을 했던 동석과 혜미도 참석했고 내실에서 함께 생활하는 강민구와 유준상 그리고 하마와 김상돈도 참석했다.
그런데 트랜스젠더를 처음 본 김상돈은 아무래도 쏨이 이상했는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질문을 했다.
"지훈아, 저쪽의 태국 사람은 남자냐, 여자냐?"
"여자예요."
"여자라고? 그런데 목소리가 왜 저래?"
"원래는 남자여서 그래요."
"원래는 남자였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 성전환 수술을 했어요. 태국에는 쏨처럼 성 정체성에 문제가 있어서 수술을 통해 성별을 바꾼 사람이 많아요."
"성별을 바꿨다면 지금은 여자가 됐다는 것이냐?"
"네."
"헉! 좋은 것을 달고 나왔는데 그걸 잘라 버렸다고?"
"그런 셈이죠."
"흐미, 아까워서 어쩔꼬?"
아무래도 나이가 있어서 보수적인 김상돈은 혀까지 차며 쏨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잠시 김상돈과 대화하던 지훈은 쏨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초지종을 알리고 그녀의 양해를 구했다.
이전에도 한국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쏨은 이해한다며 흔쾌히 넘겼다.
"지훈, 그런데 저분에게 어떤 요리를 배운 거야?"
"선생님은 궁중 요리의 전문가야. 그래서 나는 선생님에게 궁중 요리를 배웠어."
"오! 지훈에게 궁중 요리를 알려 줄 정도라면 저분의 실력도 엄청나겠는걸."
"당연하지."
"선생님, 우리에게도 한국의 궁중 요리를 가르쳐 주세요."
"지훈아, 뭐라는 거냐?"
"제 친구들이 선생님께 궁중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데요?"
쏨과 장쉬엔의 대화는 프랑스어로 이루어졌다. 그렇다 보니 지훈과 동석 그리고 혜미를 제외한 다른 사람은 대화를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중간에 통역을 해 줘야 했다.
"너의 친구들이라는데 그 정도는 해 줘야지."
"선생님이 알려 주시겠대."
"정말?"
"오!"
"그런데 선생님은 중국 요리와 태국 요리에도 관심이 많으셔."
"그건 우리가 알려 주면 되지."
"맞아. 아, 너무 좋다."
다들 요리를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쏨과 장쉬엔은 한국의 궁중 요리를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크게 만족했다.
그런데 하마를 바라보는 쏨의 눈빛이 이상했다. 어찌하다 보니 하마 바로 옆에 자리한 쏨은 그가 안 되는 영어를 섞어 가며 얘기를 할 때면 유독 큰 반응을 보이며 두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러는 사이 대화의 내용은 가온누리로 옮겨 갔다.
"지훈, 가온누리 매장이 여러 개라면서?"
"응, 의외로 장사가 잘되어서 매장을 늘렸어."
"서울만이 아니라 지방에도 있다며?"
"그렇게 됐어. 너희들은?"
"난 상해와 북경에만 매장이 있어. 그런데 쏨은 태국 전역에 매장이 있대."
"태국 전역에?"
"쏨의 아버지가 적극 지원해 줘서 지금은 일흔 개 정도 되는데, 앞으로도 계속 매장 수를 늘릴 생각이래."
"오! 쏨, 성공했네?"
"내가 프랑스에 있을 때도 얘기했잖아? 태국 사람들은 먹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아무튼 축하해."
"축하한다, 쏨."
"고마워. 하지만 매장이 많은 것보다는 태국과 중국에서도 유명한 지훈의 가온누리가 대단하지."
"쏨, 가온누리가 중국과 태국에서도 유명해?"
"그럼! 태국 사람들 중에도 가온누리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한국을 다녀오면 가온누리에서 식사를 하는 인증 사진을 자랑삼아 인터넷에 올리기도 해."
"하긴 요즘 태국 사람들도 자주 오더라."
"태국에서도 가온누리가 유명하다니 기분 좋은데."
"사장님,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겁니까?"
"우리 가온누리가 태국에서도 아주 유명하다네요."
"오! 정말요?"
"태국 사람들이 이곳을 어찌 알고?"
"관광객들이 다녀간 뒤로 인터넷에 사진과 글을 올리나 봐요."
"태국에서도 유명하다니 기분은 좋구나."
쏨의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이번에는 장쉬엔이 중국에서도 유명하다고 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중국 관광객이 가온누리를 찾고 있음을 잘 알고 있는 가온누리 식구들은 장쉬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장쉬엔의 입에서 중국과 태국 진출을 권유하는 말이 나온 것은 그때였다.
"태국과 중국에 진출해 보라고?"
"그래. 나와 쏨이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잖아. 특히 태국은 쏨이 그랬던 것처럼 태국 전역에 매장을 낼 수 있어."
"지훈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해 보는 게 어때?"
"태국과 중국부터 진출을 하자고?"
"미국보다는 여러모로 조건이 좋잖아?"
쏨과 장쉬엔의 권유에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동석이었다.
그는 그 두 사람을 파트너 삼으면 믿을 수 있고, 그렇게 해서 해외 진출의 경험을 쌓은 후에 미국 시장을 진출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지훈도 그 얘기에 동의했다.
"장쉬엔, 파트너라면 공동 법인을 설립하자는 거야?"
"맞아. 중국 같은 경우는 단독으로 진출해도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어. 하지만 중국은 애국심이 높아서 단독으로 진출하면 의외의 변수가 생길 수 있어."
"지훈아, 대기업도 중국에서는 합작 법인을 많이 설립하던데 그래서 그런 것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지. 쏨, 태국은 어때?"
"태국은 무조건 태국 기업과 합작을 해야 해. 우리 나라는 아직 시장 개방이 안 되었거든."
"무조건 합작을 해야 한다고?"
"응, 사실 나는 지훈의 한국 요리를 먹기 위해서도 무조건 가온누리를 유치하고 싶어."
"지훈아, 이건 좋은 기회인데 해 보자."
지훈도 그렇지만 동석도 한식을 세계화시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훈을 설득했고, 꼭 그의 설득이 아니라고 해도 지훈도 안정적으로 해외 진출을 할 수 있는 이번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장류와 양념류 그리고 소스와 향신료만 안정적으로 공급해 주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