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165화 (16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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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지훈도 궁중 요리의 맥을 정통으로 계승한 김상돈의 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가르침을 준 선생이 바로 그 명인이었다니 충격이 상당했다.

한편 김상돈 옆에 있는 하혜정 일행은 계속해서 두레와 TJ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생각도 못 한 질문을 받았다.

"하나만 묻자."

"말씀하십시오, 선생님."

"가온누리를 죽기 살기로 물고 늘어진 이유가 뭐냐?"

"선생님도 가온누리를 알고 계십니까?"

"아니까 물어보는 것이다."

"선생님, 가온누리는 궁중 요리를 표방하고 있지만 국적 불명의 퓨전 요리를 하는 식당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퓨전 요리를 궁중 요리로 소개해서 고객을 끌어모으는 것은 기만행위입니다."

"가온누리를 퓨전 요리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뭐냐?"

"단적인 예로 비빔밥에 허브가 웬 말입니까?"

"또?"

"불고기에 키위를 넣어서 요리합니다."

"그 정도면 말을 안 합니다. 심지어 맥적에도 허브를 갈아서 만든 향신료를 집어넣습니다."

"그래서 퓨전 요리라는 것이냐?"

"당연한 것 아닙니까?"

"한 가지만 묻자. 비빔밥이 뭐냐?"

"온갖 야채와 고기 고명을 넣고 고추장으로 비비는 것 아닙니까?"

"허브는 야채 아니냐? 그리고 거기는 된장에 밥을 비볐냐?"

"하지만 허브는 우리 것이 아니잖습니까?"

"웃기는구나. 궁중에서도 비빔밥을 만들 때면 철에 따라서 다른 채소를 사용했는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그리도 까댄 것이냐?"

"하……하지만 어쨌든 우리 것이 아니잖습니까?"

"답답한 것들, 고작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그리도 심하게 물고 늘어졌느냐?"

"선생님, 진정하십시오. 협회 설립에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TJ그룹에서 궁중 요리 전문점을 표방하는 두레라는 프랜차이즈를 설립했습니다."

"TJ그룹의 많은 지원을 받았는데 그들의 최대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가온누리를 협회에서 까대야 면이 서지 않겠습니까?"

"선생님,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도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김상돈의 추궁에 하혜정과 전현숙이 나서서 변명을 하는 동안 다른 임원들이 나서서 TJ그룹과 협회의 관계를 설명했다.

사실 그들은 하혜정과 전현숙을 돕는 척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당시의 상황을 알려서 그들과 김상돈 사이를 떨어트려 놓는 것이 진짜 목표였다.

아무튼 다른 임원들 덕분에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알게 된 김상돈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여전히 변명을 하는 하혜정과 전현숙 그리고 이선웅과 김미자를 나무랐다.

그런데 얘기 말미에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을 했다.

"하지만 지금의 가온누리는 그때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뭐가 다르다는 것입니까?"

"너희들은 새로운 재료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국적 불명의 퓨전 요리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가온누리야말로 궁중 요리의 맥을 정통으로 이었다."

"선생님, 가온누리가 어찌해서 궁중 요리의 맥을 정통으로 이었다는 것입니까?"

"저 역시 선생님의 그 말씀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심사를 앞두고 있는 마당에 김상돈이 가온누리를 극찬하고 나서자 하혜정 일행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지고 들었다.

그들의 반발에 김상돈은 새로운 재료를 썼다고는 하나 조리법을 그대로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본연의 맛을 지키고 있는 이상, 궁중 요리의 정통을 가장 확실하게 계승했다고 했다.

"선생님이 그걸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선생님은 그자가 조리하는 것을 직접 지켜보시지 않았을 텐데 어찌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난 그 아이가 대회를 준비할 때부터 지켜봤으니 잘 알고 있을 수밖에."

"대회를 준비할 때부터 지켜보셨다고요?"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아이는 나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유일한 직전 제자야."

"네?"

"선생님!"

"오! 선생님, 드디어 제자를 받아들이신 것입니까?"

"더 이상의 얘기는 무의미할 것 같으니 자네들이 직접 심사에 나서 보게."

"알겠습니다, 선생님."

"제자를 받아들였다니, 축하드립니다."

"김 숙수, 방금 제자를 받아들였다고 했는가?"

"그렇습니다. 그 아이로 인해서 궁중 요리의 맥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그동안 적당한 제자를 구하지 못해서 그리도 안달을 하면서 팔도를 유람하더니 마침내 구했나 보군. 축하하네."

하혜정 일행을 제외한 다른 심사위원들은 김상돈이 직전 제자를 구했고, 그에게 모든 것을 물려줬다는 말에 기뻐했다. 특히 왕실의 후손들은 왕조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궁중 요리의 맥이 고스란히 이어지게 되었다는 말에 눈물까지 흘려 가며 기뻐했다.

하지만 이재철과 관련이 있는 이건은 똥 씹은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그사이 심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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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보다 조금 지체된 심사가 시작되었다.

열네 명의 심사위원은 연단에 자리하고 있는 김상돈을 의식해서 스무 명의 결선 진출자들이 정성껏 차린 수라상을 바라보며 음식 하나하나를 음미하듯 살피기 시작했다.

"박 선생님, 어떻습니까?"

"색의 대비가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 일단 모양은 제대로 살린 것 같군요."

"저는 색의 대비도 너무 아름답지만 정갈하고 깔끔하면서도 단아한 멋이 잔뜩 풍기는 것이 예술 작품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거야말로 제대로 된 상차림이지 않겠습니까?"

"명인에게서 모든 것을 물려받았다고 하더니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임금님이 드시는 수라상이라는 것은 맛만 중요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수많은 법도가 있는 궁중에서의 상차림은 여러 가지 격식이 있어서 요리를 놓는 위치부터 시작해서 요리를 접시에 담는 방법에도 일정한 원칙과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세세한 것을 모두 알고 있는 이는 김상돈이 유일했다.

물론 많은 궁중 요리 전문가들이 고문서를 통해서 상당 부분 재현을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문헌에 의지해서 고증을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김상돈에게 제대로 배운 지훈은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재현했고, 그의 상차림을 본 심사위원들을 맛을 보기 전에 이미 감탄을 했다.

"상차림 평가가 끝났다면 이제는 맛을 평가하겠습니다. 아직 평가를 끝내지 못한 분들이 계신다면 2분 안에 끝내 주십시오."

"상차림 평가는 끝났습니다."

"심사를 떠나서 어서 맛을 보고 싶습니다."

"다들 상차림 평가는 끝난 것 같은데 굳이 2분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바로 다음 심사에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찬성입니다."

"다들 그렇다면 바로 맛을 심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궁중 요리 대회는 상차림과 맛, 이렇게 두 가지 부분에서 평가가 이루어진다.

그중 상차림은 모양과 색 그리고 향기를 평가하고 맛은 말 그대로 맛으로 평가를 한다.

그런데 상차림은 눈에 확 드러나는 만큼 심사위원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적어서 하혜정 일행은 어쩔 수 없이 지훈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왕실의 후손들이 감격해서 눈물까지 흘리고 있는 마당에 낮은 점수를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었다.

"다들 잘 알고 계시겠죠?"

"상차림은 어쩔 수 없었지만 맛에서는 계획대로 해야죠."

"명인이 있어서 다들 부담스럽겠지만 눈 딱 감고 자기 할말만 하십시오."

"물론입니다."

이번 대회는 대상을 누가 차지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방송을 통해서 가온누리를 폄하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하혜정 일행은 작정을 하고 평가에 나섰다.

잠시 후, 아직까지 감탄에 젖어 있는 다른 심사위원을 밀쳐 가며 지훈의 상에 바짝 다가선 하혜정 일행은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국물을 맛보았다.

"헉!"

"와~우!"

"세……세상에."

"우리도 맛을 보지요."

"그러시죠."

하혜정 일행이 맛을 본 것을 시작으로 다른 심사위원들도 심사를 위한 맛보기에 나섰다.

그런데 가장 먼저 맛을 본 하혜정 일행의 표정이 이상했다. 원래대로라면 떫은 감을 먹은 것처럼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드러내야 하는데 음식을 먹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감탄이 터져 나왔다.

특히 뒤늦게 이들과 뜻을 함께하기로 한 김미자는 탄성까지 터트렸고, 그 모습은 TV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혔다. 장담하건대 지금의 반응은 결코 그들이 의도한 게 아니라 절로 몸에서 피어난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맛이…….'

'이미 얼굴에 드러나 버린 이상 이번은 그냥 넘어가야 해.'

'아! 이를 어떡하지.'

세상은 변해도 맛은 정직한 법이다. 지훈의 음식을 맛본 순간 자기도 모르게 격한 반응을 보인 하혜정 일행은 뒤늦게 자신들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표정을 바꾸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맛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 다른 음식을 맛보기 시작했고, 그사이 다른 심사위원들의 감탄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이건 천상의 맛이오."

"뒷맛까지 고소하다니 절로 감탄사가 나올 지경이오."

"수많은 사람들이 가온누리를 극찬하더니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소."

예전에도 지훈의 맛은 최고였다. 하물며 음식에 맞게 음양오행기를 세분화해서 사용한 지금은 최고의 맛과 함께 행복감까지 안겨 주고 있었고, 이는 심사위원들의 표정에 잘 드러나고 있었다.

한편 독한 마음으로 또 다른 요리를 맛본 하혜정 일행은 자신들의 표정이 드러날까 싶어서 아예 고개를 들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건이 초를 치고 말았다.

"이 선생님, 왜 그러십니까?"

"어렸을 적, 궁에서 지낼 때 그때 먹었던 맛이 납니다. 제가 투정을 부릴 때면 어머니가 대령숙수에게 부탁해서 이 요리를 가져오시곤 하셨는데 그때의 맛이 고스란히 납니다."

"하~아! 나 역시 이 맛을 기억합니다."

"살아생전에 이 맛을 다시 보다니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1960년대에 궁에 갈 때면 영친왕비께서 종종 음식을 내주시곤 했는데 그때의 맛이 꼭 이랬습니다."

"맞아요. 그랬었죠."

궁중 요리는 맛도 중요하지만 전통도 무척 중요한 법이다. 그런데 왕실의 후손들이 예전 궁에서 맛보았던 맛과 똑같단 말을 하는 순간 지훈의 요리는 전통을 계승한 본연의 맛이 되고 말았고, 그것보다 더한 극찬은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하혜정 일행도 더 이상 농간을 부리지 못하고 조용히 한쪽 구석으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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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를 끝내고 스튜디오를 빠져나온 리아는 현관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형 승합차에 부랴부랴 올랐다.

"리아야, 수고 많았다."

"삼촌, 잠실에 있는 체육관으로 빨리 가 주세요."

"리아야, 그게 무슨 말이야? 체육관으로 가면 다른 스케줄은 어떡하고?"

"스케줄보다 거기를 가는 게 급해요."

"대체 체육관은 왜?"

"지훈 오빠가 거기에 있대요."

"이지훈 씨?"

"삼촌, 시간이 없어요. 빨리 가 주세요."

"리아야,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정된 스케줄은 계획대로 진행해야지."

"삼촌, 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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