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168화 (168/219)

<-- 168 회: 6-7 -->

"뭔데?"

"지훈, 할 얘기 있으면 해."

"태국과 중국에 규모는 그리 크지 않더라도 교육장을 항시 운영하면 어떨까?"

"무슨 교육장?"

"현지의 셰프들에게 한식을 알려 줄 수 있는 조리 시설을 갖춘 교육장을 갖추고 싶어."

"지훈, 3주 만으로는 교육 시간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거야?"

"당연히 그렇지. 그리고 그곳에서 계속 교육생을 배출한다면 매장을 늘릴 때마다 셰프들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잖아?"

"사장님, 교육장을 항시 운용하면 여러모로 좋기는 하겠지만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까요?"

"초기 시설비와 임대료를 부담해야겠지만 교육생들에게 월급을 주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 큰돈은 안 들 것 같은데. 쏨, 내 생각이 어때?"

"나는 대찬성이야. 그리고 그렇게 해서 셰프만 확보할 수 있다면 매장을 빠르게 태국 전역으로 확장할 수 있을 거야."

"장쉬엔은?"

"나도 찬성. 그런데 교육장을 상시 운영할 거라면 단순히 교육만 시키는 것이 아니고 애초에 교육기관으로 인가를 받아서 졸업장이나 수료증까지 발급하는 게 어떨까?"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그런데 그게 가능해?"

"우리 아버지가 누구인지 잊었어? 충분히 가능해. 그리고 그렇게만 되면 오히려 수강료까지 받을 수 있을 거야."

"그건 우리 태국도 마찬가지야. 아마 정식 교육기관이 되면 많은 태국 사람들이 한국 요리를 배우려고 할 거야."

현지인 출신의 한식 요리사를 배출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한식의 세계화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지훈은 아예 단순한 교육장이 아닌 교육기관으로 설립하자는 장쉬엔과 쏨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후일담이지만 이 요리 학원은 태국과 중국만이 아니라 가온누리가 진출하는 모든 나라에 세워졌고, 외국인들에게 한식을 교육시키는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나아가 외국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프랑스의 르꼬르동 블루와 미국의 CIA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최고의 명문 요리 학교를 서울에 세울 수 있었다.

"현지답사 때 그 부분도 확인할 수 있게 해 줘."

"적당한 건물을 선정해 놓을 테니까 걱정 마."

"그럼, 또 논의를 해야 할 내용이 뭐가 있지?"

"자본금을 비롯해서 경영과 관련한 문제는 처리가 되었고, 그 밖의 문제는 상황 봐 가면서 조율하면 될 것 같은데."

"쏨은 어때?"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면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고 술이나 마실까?"

"좋지!"

"우리의 사업이 번창하기를 기원하며 건배하는 게 어때?"

"지훈, 오래간만에 프랑스식으로 해 볼까?"

"좋아. 아 보트르 쌍떼!"

"아 보트르 쌍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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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과 제주도까지 다녀온 쏨과 장쉬엔이 한국을 떠난 지 2주가 지나면서 6월 하순이 되었다.

매년 그러는 것처럼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장마로 한반도가 푹 젖어 들고 있을 무렵 지훈은 기말고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모교를 찾았다.

"이 교수님, 잘 계셨습니까?"

"지훈이구나, 어서 와라."

"교수님은 그대로시네요?"

"너처럼 속 썩이는 놈이 없으니 좋아질 수밖에 없지."

"교수님, 이 세상에 저 같은 제자가 또 어디 있다고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인석이, 학교 때는 안 그러더니 이제는 많이 유들유들해졌네?"

"형님, 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너무한 것 아닙니까?"

"얼레? 이게 나이 좀 들었다고 얼렁뚱땅 맞먹으려고 하네. 날도 궂은데 오래간만에 집합 한번 해 볼래?"

"교수님, 왜 그러십니까?"

거리감 없이 지훈과 담소를 나누는 이는 작년부터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영호였다.

그는 회귀 전 다른 시간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교수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몇 년 빨리 학교로 돌아온 상태였다. 아울러 오늘의 자리는 그가 불러서 만들어졌다.

"까불지 마라."

"네, 선배님."

"장사는 잘되냐?"

"선배님을 비롯해서 많은 선후배 동문들이 사랑해 주신 덕분에 밥은 먹고 살고 있습니다."

"썩을 놈, 지난 달에 궁중 요리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는 얘기는 나도 들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십니까?"

"바쁜 놈 불러서 미안한데, 후배들을 위해서 네가 몇 가지를 도와줬으면 좋겠다."

"뭡니까?"

"네놈 때문에 한식에 대한 관심이 너무 높아졌다."

"좋은 일 아닙니까?"

"그렇기는 한데 너도 알다시피 대학에서 한식을 가르칠 만한 한식 전문가가 많은 편은 아니잖아. 특히 궁중 요리는 더더욱 그렇고, 그래서 네가 시간을 내줬으면 좋겠다."

"특강을 하라는 겁니까?"

"특강보다는 2학기에 강의 하나를 개설하면 안 될까?"

"형님, 왜 그러십니까?"

"인석아, 너만 잘 먹고 잘 살래? 후배들도 먹고살아야지."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당장 하반기에는 중국과 태국으로 진출해야 해서 상당 기간 떠나 있어야 합니다."

"그때는 휴강했다가 나중에 보강을 해 주면 되지."

"형님, 살려 주십시오."

"인석아, 그러게 누가 궁중 요리를 그렇게 잘하래? 어쨌든 너 때문에 궁중 요리에 대한 요구가 많으니까 네가 무조건 책임져."

"형님,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합니다!"

"몰라. 궁중 요리 전문가를 구하지 못하면 나도 옷 벗어야 하니까 네가 책임져."

"형님, 그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 아! 저 말고 더 훌륭하신 분이 있습니다."

"누구?"

"제게 궁중 요리를 가르친 김상돈 명인은 어떻습니까?"

"그분이 와 주신다면 땡큐지. 그런데 그분이 선뜻 수락하실까?"

"요 근래 부쩍 무료해하시는 것 같은데, 얘기를 하면 넘어오실지도 몰라요."

"지훈아, 부탁한다. 아니, 후배들을 위해서도 그분을 잘 설득해 봐라."

강의를 해 줄 궁중 요리 전문가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여러모로 바쁜 지훈을 강제로 데려올 수는 없어서 투정 삼아 억지를 부렸는데, 만약 김상돈을 초빙할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노력은 해 볼게요."

"야! 무조건 수락을 받아 내야지,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선생님이 싫다고 하시면 제자 된 입장에서 강요는 못 하죠."

"그러지 말고 같이 설득해 보자."

"아무 때라도 오세요."

"좋다. 오늘 저녁에 가마. 가면 밥은 공짜로 주는 거지?"

"아무렴 형님께 돈 받겠습니까? 오시면 잠도 재워 드릴 수 있습니다."

"약속했다?"

"네."

"그리고 온 김에 이것도 서명해라."

"뭔데요?"

"실습 동의서 및 실습 현장 계약 체결서다. 애새끼들이 가온누리에서 실습을 하고 싶다고 악다구니를 계속 질러 대는 통에 견딜 수가 없을 정도이다."

조리학과는 다른 학과와는 달려서 마치 간호학과처럼 현장 실습을 많이 하는데, 그 기간이 제법 길다. 그리고 취업이 확정된 경우에는 일정 정도의 수업 일수만 채우면 출석을 인정해 준다.

"형님, 혹시 실습에 그치지 않고 아예 우리 회사에 취직하겠다는 학생은 없나요?"

"왜 없겠냐? 오히려 너무 많아서 문제다."

"숫자는 상관없으니 전부 실습생으로 제게 보내 주십시오. 문제만 없다면 전부 채용하겠습니다."

"그 말 진짜냐? 나중에 딴소리하면 절대 안 된다."

"걱정 마십시오."

국내 매장을 늘리고 중국과 태국에 진출하기 위해서도 셰프가 많이 필요한 것이 가온누리의 실정이었다. 그래서 조만간 대대적으로 인원을 선발할 예정이었는데, 후배들을 실습생으로 받아들이고 미리 교육시킬 수 있다면 여러모로 효과적이었다.

"아무리 실습이어도 애들 월급은 제대로 주는 거겠지?"

"염려 마십시오. 그리고 나중에 정식 사원이 되면 실습 기간도 경력으로 인정해 주겠습니다."

"OK, 콜!"

"형님, 그런데 방학 때부터 실습을 하면 안 될까요? 우리 때도 학비 마련을 위해서 실습을 그때부터 나가고 그랬잖아요?"

"그래 주면 더 좋지. 기말시험 끝나고 바로 시작할까?"

"감사합니다."

*4. 그런 사이 아니야!

10일 넘게 이어졌던 장마는 7월 초가 되면서 뚝 그치더니 대신 태양이 살인적인 열기를 뿜어 대기 시작했다. 무더위의 시작과 함께 두 개 대학의 조리과에서 무려 일흔 명의 실습생들을 받아들인 가온누리는 이들을 서울과 수도권에 산재해 있는 열다섯 개의 매장으로 분산, 배치했다.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취업을 보장해 줄 뿐만 아니라 실습 기간도 근무 연도에 포함시켜 준다는 말에 실습생들이 기뻐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보다 기뻐한 것은 실습생임에도 불구하고 급여를 정식 사원의 85퍼센트 수준으로 지급하는 점이었다. 이는 최저임금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다른 실습 현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더군다나 가온누리는 다른 업체에 비해서 급여 수준도 높았다. 쉽게 말해서 가온누리로 실습을 나온 실습생들은 다른 업체의 정식 사원보다 더 많은 돈을 실습비로 지급받는 셈인지라 다들 만족스러워하며 열심히 일을 배웠다.

한편 실습생을 받아들임으로써 해외 진출에 필요한 인력을 여유 있게 확보한 지훈은 기존 직원을 대상으로 중국과 태국으로 진출할 지원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준상아, 넌 중국 안 갈래?"

"고민 중이에요."

"고민할 게 뭐가 있어? 내가 너라면 무조건 중국으로 가겠다."

화교 출신의 유준상은 중국어에 능숙했다. 그렇다 보니 그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그가 중국으로 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고, 유준상 본인도 그 문제를 긍정적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하마 형님은 중국을 가고 싶으세요?"

"중국어는 한마디도 못하는 내가 중국 가서 뭐 해?"

"지원자들은 회사에서 무료로 어학 교육을 시켜 준다고 하잖아요."

"야! 영어를 배우는 것도 골 아파 죽겠는데 여기서 중국어까지 배우면 아마 머리가 터져 버릴 거다."

"그러면 태국은 어떠세요?"

"거긴 너무 덥지 않을까?"

"그런 것을 일일이 따지면 어떻게 외국에 나가요? 그리고 중국도 더운 지방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러냐?"

"형님은 그냥 한국에 계시는 게 좋겠네요."

"야, 그런 소리 말아! 나도 외국에 꼭 나가고 말 거야."

"나가서 뭐 하게요?"

"나는 그 무엇보다 외국인들에게 한국 요리를 가르쳐 주고 싶다. 너도 알겠지만 난 늦게 요리를 시작했고, 지금도 배우고 있는 입장이잖아? 그래서 내가 느낀 것을 그들에게 알려 주고 싶어."

"그러면 언어는 필수잖아요?"

"그게 문제야. 내가 손재주는 타고나서 요리는 쉽게 배웠는데 머리가 나빠서 좀처럼 언어를 못 배우니……."

"형님, 태국어는 쉽다던데요."

"쉬워 봐야 외국어지."

"그게 아니라 태국어는 문법이 너무 간단해서 한 달만 빡 세게 배우면 누구라도 회화가 가능하대요."

"에이, 아무렴 그럴까?"

"정말이에요. 그리고 요리는 몸으로 보여 주는 거라 어느 정도의 회화 실력만 있으면 충분히 요리를 가르칠 수 있을 거예요."

"그 정도라고?"

"분명 그렇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정 못 믿겠으면 일단 태국어를 배우면 되잖아요."

"태국 근무를 지원 안 해도 태국어를 배울 수 있을까?"

"지원 여부와 상관없이 언어는 누구나 조건 없이 배울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그래? 일단 신청부터 할까?"

"얼른 신청하고 오세요."

외국 근무자에게는 월급과 별도로 상당한 금액의 체류비를 지급하기로 했다. 즉, 외국 근무자는 현지 생활을 체류비로 해결하며 월급을 고스란히 모을 수 있기에 많은 이들이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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