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171화 (171/219)

<-- 171 회: 6-10 [내가 무슨 이상한 생각을 했다는 겁니까?] -->

*5. 내가 무슨 이상한 생각을 했다는 겁니까?

치앙마이에서 이틀을 머물면서 북부와 동부의 실력자들과 교류를 나누며 사실상 답사를 마친 지훈은 태국 북부를 대표하는 유명한 사찰인 도이수텝을 찾았다.

국민의 대부분이 불교 신자인 태국은 곳곳에 불교 사원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도이수텝은 그야말로 북부 제일의 사원으로 태국인들에게는 신성시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치앙마이의 많은 연인들에게 도이수텝은 꼭 가 봐야 할 장소이면서도 은근히 피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 이유는 도이수텝 내의 작은 방 안에서 늙은 노승이 봐 주는 점괘가 아주 신통하다는 소문이 나서 그랬다.

도이수텝에는 10여 년 전부터 젊은 연인들이 약간의 성의 표시를 하면 노승 한 분이 심심풀이로 커플의 미래 운을 봐 주는데, 아주 신통하게도 정확하게 맞힌다고 했다. 게다가 연인들 중에 바람을 피우거나 양다리를 끼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까지 알아내 상대방에게 얘기를 해 준다고 했다.

그러니 연인들은 앞다퉈 도이수텝을 찾는 경우가 많았는데, 죄를 지은 사람은 노승의 점괘가 무서워서 온갖 핑계로 도이수텝 방문을 회피했다.

"사장님, 저쪽에 태국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이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도 가 봐요."

"무슨 방 앞인 것 같은데 뭐가 있을까요?"

"가 보면 알죠. 빨리 오세요."

도이수텝 경내를 둘러보고 뷰포인트에서 치앙마이 전경을 감상하고 나오던 조미정은 여러 사람이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작은 방을 발견했다.

가만 보니 방 안에는 짙은 주황색의 가사를 걸친 노승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앞에는 젊은 남녀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늙은 노승은 뭐라고 중얼거리며 종이가 가득 찬 깡통을 사정없이 흔들다가 유독 도르라진 종이를 꺼내서 커플에게 내밀었는데 척 보기에도 점을 치는 것 같았다.

"점을 치나 봐요."

"그런 것 같네요."

"우리도 볼까요?"

"점을 보자고요?"

"여기까지 왔는데 재미삼아 보는 거죠. 사람들도 꽤나 있는 것이 제법 용한 것 아닐까요?"

"하지만 우리는 태국어도 모르는데 점을 본다고 한들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그냥 재미로 보는 건데 어때요?"

"미정 씨, 내 생각에는 점을 보고 나면 무슨 뜻인지 몰라서 더 궁금해질 것 같은데요."

"그것도 재미죠. 우리도 여기서 대기해요."

중국에 이어서 태국 답사도 성공적으로 끝난 탓인지 조미정은 마치 여행자처럼 살짝 들떠 있었다. 반면 점을 미신이라고 여기는 지훈은 썩 내키지 않아서 미적거렸는데 옆에 있던 태국 커플이 서툰 영어로 얘기를 걸어왔다.

"영어도 있어요."

"네?"

"스님이 영어를 할 수 있고 종이에도 영어가 쓰여 있어서 아무 문제 없어요."

"사장님, 영어도 있다는데 우리도 봐요."

"저 스님은 아주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어요."

"어떤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는데요?"

"저 스님의 점은 사랑의 미래를 알 수가 있어요. 그리고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조언까지 있어서 아주 유명해요."

"저 스님이 유명한 분이라고요?"

"그럼요. 치앙마이 사람들은 저 스님을 다 알아요."

"사장님, 유명한 분이라는데 우리도 봐요."

바로 앞의 커플이 스님에 대해서 설명을 하자 주위에 있던 다른 태국인들도 나서서 거들었다. 그들 중에는 교복 차림의 대학생 커플도 있었는데, 그들은 유창한 영어로 점괘가 정확하니 점을 보라고 권유했다.

주위의 모든 태국인들이 추천을 해 댄 통에 조미정의 제안을 더 이상 거부하지 못한 지훈은 차례를 기다리다가 스님 앞으로 다가갔다.

"싸와디 캅."

"싸와디 카."

스님 앞으로 다가간 지훈과 미정은 몇 마디 알고 있는 태국어로 인사를 나눴고, 스님은 영어로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한국, 멋있는 나라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스님, 기부금은 여기에 내면 되죠?"

"고맙습니다."

"우리도 점을 봐 주세요."

"그러지요."

영어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눈 스님은 깡통을 들어 올리다 말고 지훈을 유심히 바라봤다.

스님의 시선과 마주한 지훈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모든 것이 까발려지는 기분에 휩싸였다.

"남자분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네……네?"

"맞아요. 이 사람은 세계 최고의 요리사예요."

마치 끝이 안 보이는 심해처럼 깊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노승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오자 지훈은 깜짝 놀라서 말까지 더듬으며 반문했다. 반면 아무것도 모르는 조미정은 노승의 말을 임의대로 해석해서 지훈을 세계 최고의 요리사라고 소개했다.

인자하다 못해 너무도 편안한 느낌의 미소를 그리던 노승이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것은 그때였다.

"요리라,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스님?"

"사람에게 기쁨과 행복 그리고 건강을 안겨 주다니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갖고 있는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무척 안타깝군요."

"네?"

"언제고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요."

"스님, 좀 더 자세히 얘기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찌 생각하면 노승의 얘기는 지극히 평범했다. 하지만 나이답지 않게 맑고 깊은 노승의 두 눈을 본 지훈은 그가 음양오행기의 비밀을 알아차렸다고 여겼다. 아울러 갖고 있는 능력을 온전히 못 쓰고 있다는 그의 말을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내게 시간을 내줄 수 있나요?"

"그럼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우선 점부터 보겠습니다."

"스님, 어떤 점을 봐 주시는 거예요?"

"여자분에게는 원하는 대로 사랑의 점이 나오겠지만 남자 분에게는 뭐가 나올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음양오행기를 모르고 있는 조미정은 지훈과 노승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이해하는 만큼만 받아들였고, 그것보다는 사랑의 미래를 알고 싶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소원대로 자신과 지훈이 연결될 수 있는지 그게 더 궁금했기에 점을 치겠다는 말에 주목했다.

작은 방 안에는 잘 말려진 종이 뭉치가 알루미늄 캔과 충돌하면서 나는 경쾌한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은은하게 울려 퍼졌고, 그 아래로는 마치 주문을 외우는 것 같은 노승의 잔잔한 목소리가 연신 피어났다.

투-툭!

대략 3~4분 정도 깡통을 흔들었을 때 빽빽하게 꽂혀 있던 종이 뭉치 사이에서 두루마리처럼 잘 말려진 종이 하나가 튀어나왔고, 스님은 그걸 꺼내서 조미정에게 건넸다.

"스님, 제 것만 나왔나요?"

"바라보는 이가 다르니 하나만 나왔나 봅니다."

"네?"

"여자분은 이걸 갖고 나가 주시면 좋겠네요. 나는 남자분과 몇 마디 더 나누고 싶네요."

"사장님, 저만 먼저 나가라는데요?"

"미정 씨, 미안한데 조금만 기다려 줄래요?"

"그럴게요."

노승의 축객령에 조미정이 밖으로 나가는 사이 따라 일어선 스님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태국 사람들에게 뭐라 얘기하더니 방문을 닫았다. 태국어로 얘기했기에 노승의 뭐라고 했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지금껏 기다리고 있던 태국인들이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것이 더 이상 점을 볼 수 없다고 한 것 같았다.

한편 혼자서만 밖으로 나온 미정은 둘둘 말린 종이를 풀어서 그 안에 쓰인 글을 읽었다.

아까 들은 대로 종이에는 태국어와 영어가 동시에 표기되어 있어서 그 뜻을 이해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흘러가는 구름을 어찌 잡을 수 있을까? 아프고 힘들더라도 빨리 마음을 비워라.

"뭐야, 안 된다는 소리잖아?"

영어로 쓰인 첫 줄을 해석한 조미정은 마음을 비우라는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끼면서 다음 줄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내 것이 될 수 없으니 가지려고 하면 나만 더 아프다.

"치~잇! 무슨 점이 이래? 태국에서는 엄청 유명하다고 하더니 이제 보니 순전히 헛소리만 늘어놨네."

두 번째 줄을 해석한 미정은 계속해서 비관적인 점괘가 나오자 입술을 삐쭉이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만큼 미련이 많았기에 다음 줄도 계속해서 읽었는데 결론은 인연이 아니니 포기하라는 내용만 나와 있자 종이를 뭉개 버렸다.

'어! 뒤에도 뭐라고 적혀 있네.'

홧김에 종이를 버리려고 했던 조미정은 뒷면에도 뭔가 쓰여 있는 것을 보고 다시 펼쳐서 읽었는데, 놀랍게도 거기에는 묘안을 뜻하는 영어가 쓰여 있었다.

파이, 빠이를 가면 나와 그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당하기 힘든 고난과 시련에 휘말려서 위험에 빠질 수 있으니 가급적이면 가지 마라.

"파이, 빠이가 뭐지? 무슨 지명인가?"

뒷면의 글을 읽은 조미정은 처음에는 무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앞에 나왔던 점괘가 놀랍게도 딱 들어맞았기에 신기한 마음에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묘안에 나온 파이나 빠이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아까 자신들에게 말을 걸었던 대학생 커플에 다가가서 물어봤다.

"미안한데, 이게 무슨 뜻인지 알려 줄 수 있나요?"

"아! 빠이예요."

"빠이요?"

"치앙마이에서 3시간쯤 떨어진 산속에 있는 작은 도시인데 너무 아름다워서 많은 외국인들과 태국인이 찾는 관광지에요."

"빠이라고요? 고마워요."

"저, 그런데 빠이를 가실 건가요?"

"왜요?"

"거기가면 위험하다는데 가지 마세요."

대학생 커플은 조미정이 내민 묘안을 전부 읽었기에 빠이를 가지 말라는 충고를 했다.

그러나 빠이를 가면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는 말에 조미정은 반드시 빠이를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하늘도 그녀를 도와주는 것인지 주말인 내일과 모레는 별다른 일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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