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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작은 방 안에서 노승과 마주한 지훈은 그와 많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 기운을 알아차리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토록 엄청난 생명의 기운을 갖고 있으니 알 수밖에요."
"아까 갖고 있는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다고 하신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당신이 갖고 있는 생명의 기운은 세상과 나눌 때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내가 본 당신의 상태로는 그 힘의 일부분만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 얘기는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알려 주십시오."
"수련을 하셔야죠."
"수련이라면 뭐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호흡을 통해서 몸 안의 기운을 더욱 강하게 하고 더욱 순수한 힘으로 가다듬어야지요."
"호흡요? 숨을 쉬는 것을 얘기하시는 것입니까?"
"설마 호흡법도 모르고 있습니까?"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신기하군요. 호흡법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만한 기운을 얻은 거죠?"
"아! 우연한 일이 생기면서 뜻하지 않게 지금의 기운을 얻었습니다."
지훈의 자신의 상황을 궁금하게 여기는 노승에게 지리산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히 들려줬다. 그리고 음양오행기를 얻은 이후의 변화와 음양오행기가 음식에 주입되면 어떤 효과가 일어나는지 얘기했다.
"그랬군요. 그래서 기운이 그리 거칠었나 봅니다."
"제 기운이 그리도 거친가요?"
"기운이 거칠었기에 내가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호흡법도 모르는 상태에서 기운을 펼칠 수 있다니 아주 신기하군요."
"그게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기운이 분출되었는데 그런 일이 되풀이되면서 나중에는 자유롭게 기운을 분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호흡법은 기를 운용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인데 그걸 모르고 있음에도 기를 분출할 수 있었다니 기적입니다."
"저는 그런 것도 몰랐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런 상황에서 분출된 기운은 의지가 담기지 않은 만큼 금방 소멸되었을 텐데 요리를 통해서 기운을 이용한 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요리가 아닌 그 기운 자체를 직접적으로 이용했더라면 아마 아무런 효과도 못 봤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운을 주입하면 이내 소멸되는데 요리를 하면 기운의 효과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건 당신이 요리를 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이 집중되면서 기운에 의지가 깃들어 그렇게 됐을 것입니다."
"그러면 기운에 의지를 깃들이면 사람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이 갖고 있는 기운에 의지가 깃들게 해야 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기운을 표출해야 합니다."
"스님,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습니까?"
"호흡법을 배워야죠."
"제게 호흡법을 알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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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과 할 말이 있다며 방 안에 남았던 지훈은 자그마치 3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밖으로 나왔다. 그동안 밖에 혼자 있던 미정은 여행을 온 한국 사람들을 만나서 빠이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미정 씨, 많이 기다렸죠? 미안해요."
"지금껏 뭐 하고 있었던 거예요."
"스님에게 배울 것이 있어서 그걸 배웠습니다."
"뭘 배웠는데요?"
"타이 마사지를 배웠습니다."
"타이 마사지요?"
노승은 마치 무협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호흡법과 함께 몸 안의 혈도와 기운의 흐름에 대해서 알려 줬다.
그런데 노승이 알려 준 호흡법은 무협 영화에 일반적으로 나오는 것과는 달리 누워서 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누워 있는 상태에서 마치 마사지하는 것처럼 신체 부위를 일일이 눌러 가며 혈도와 기운의 흐름에 대해서 알려 줬다.
참고로 노승이 지훈의 혈도를 일일이 눌러 댄 까닭은 기의 정확한 흐름을 알려 주기 위함도 있지만 혈도를 막고 있는 탁기를 몰아내기 위함이었는데, 그건 어찌 보면 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추궁과혈과 비슷했다.
"네."
"그걸 왜 배웠는데요?"
"배워 두면 유익할 것 같아서요."
"그걸 배운 사장님도 그렇지만 그 스님도 엉뚱하네요.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것을 가르치는 거죠?"
"제가 마사지를 아주 잘하게 생겼나 보죠."
사실을 그대로 털어놓을 수 없는 지훈은 마사지를 배웠다는 식으로 말을 얼버무렸다. 아울러 오랜 시간을 기다리게 만든 조미정에게 너무 미안해서 어떤 식으로든 그녀의 마음을 풀어 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3시간 넘게 사람을 기다리게 하다니 너무했어요."
"그건 미안합니다."
"미안하면 제 부탁을 두 가지만 들어주세요."
"뭡니까?"
"꼭 들어주셔야 해요."
"그렇게 하죠."
"진짜죠? 먼저 빠이가 무척 아름답다고 하던데 거길 가 보고 싶어요."
"빠이가 어디죠?"
"산속에 있는 작은 도시인데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 많은 사람들이 찾는대요. 여기까지 와서 거길 안 보고 가면 후회한다고 하니까 꼭 가 보고 싶어요."
"그렇게 하죠. 다른 하나는 뭡니까?"
"스님에게 배웠다는 마사지를 제게도 알려 주세요. 밖에서 계속 기다렸던 만큼 저도 배울 수 있는 자격은 충분하지 않나요?"
"마사지를 알려 달라고요? 그건 좀……."
마사지를 배웠다고 얘기했지만 지훈이 실제로 배운 것은 마사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문제를 떠나서 마사지를 알려 주려면 자연스럽게 조미정의 몸 구석구석을 더듬어야 했기에 아무래도 껄끄러웠다.
그래서 곤란하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조미정은 지금의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대놓고 추궁을 했다.
"왜요, 어려우세요? 아! 사장님, 설마 이상한 생각을 하신 것은 아니겠죠?"
"내가 무슨 이상한 생각을 했다는 겁니까?"
"그러면 망설일 필요가 없죠?"
"알려 주면 될 것 아닙니까."
"약속했어요."
빠이를 가겠다는 대답을 받아서인지 본래의 쾌활한 모습을 찾은 조미정은 한국 여행자에게 들었다며 치앙마이 대학 정문 앞에 있는 나모라는 곳으로 지훈을 데려갔다.
옷과 패션 소품을 파는 야시장이 들어선 광장을 중심으로 많은 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선 나모는 젊은 층이 주로 찾는 곳으로 마치 한국의 대학가를 연상시켰다.
"미정 씨, 이곳에는 왜 오자고 했죠?"
"이곳에 태국의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한국 식당이 두 개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어차피 저녁 시간도 되었는데 들어가 보죠."
중국에 가서도 그랬지만 현지답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먼저 자리 잡은 한국 식당을 둘러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통해서 현지인이 선호하는 한국 음식이나 또는 그들이 좋아하는 맛을 보다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여기는 일종의 고기 뷔페네요."
"그러게요. 그런데 손님은 많지 않네요."
"이곳을 알려 준 학생들 말로는 가격이 비싸서 부담스럽다고 하더라고요."
"420바트면 한국 돈으로 13,500원인데 태국의 경제 사정과 학생들이 주로 찾는 장소임을 감안하면 가격이 부담스럽기는 하겠네요."
"아! 방콕에서도 자주 느꼈지만 태국 매장은 가격대를 어디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장님은 어떠세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쏨의 말처럼 태국 사람들이 먹는 데 돈을 아끼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소득수준을 무시할 수는 없었는데, 아무리 태국 현지의 인건비와 임대료가 저렴하다고 해도 음식의 퀼리티를 유지하려면 최소 700바트 이상은 받아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태국의 소득수준을 생각할 때 700바트, 우리 돈으로 23,000원의 가격을 책정했다가는 매출이 형편없을 것 같았다.
"아! 어떡하죠?"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까 방법을 찾아봐야죠. 그나저나 여기서 저녁을 먹을까요?"
"여긴 손님도 없어서 반응을 확인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안쪽에 있다는 다른 한국 식당을 가 보죠."
가격대를 설정하는 일로 고민에 빠진 조미정과 함께 안쪽으로 들어간 지훈은 외부 스피커를 통해 한국 노래를 틀어 주는 K-POP이라는 또 다른 한국 식당을 찾았다.
"사장님, 여기는 분식집 메뉴인데요?"
"그래도 손님은 무척 많은데요."
"어! 가격은 오히려 한국의 분식집보다 비싸요."
K-POP이라는 식당은 떡볶이와 김밥을 파는 것이, 한국의 분식점과 메뉴가 비슷했다. 그런데 대부분 허름한 한국의 분식집과는 달리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쓴 것이 특이했다. 그리고 김밥과 떡볶이의 가격도 오히려 한국보다는 비싸거나 비슷한 편이었는데 손님은 꽤나 많았다.
"김밥이 100바트이면 3,200원인데도 손님은 많네요."
"사장님, 다들 떡볶이도 많이 먹는데요."
"우리도 여기서 저녁을 해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죠."
마치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무섭게 퍼붓던 비는 신기하게도 대략 1시간 만에 뚝 그쳤고, 하늘은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 맑기만 했다.
태국에 와서 열대지방의 우기를 처음 경험해 본 지훈은 매일 저녁이면 마치 알람이 울리는 것처럼 비를 쏟아 내는 하늘을 신기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사장님, 비가 그친 것 같은데 가시죠."
"이번에는 어디로 갈까요?"
"여기서 조금만 내려가면 마야라는 대형 쇼핑몰이 있다던데 그곳의 식당가를 둘러보는 게 어떨까요?"
"마야라면 우리가 치앙마이에 진출할 경우 입점할 쇼핑몰이 아닌가요?"
"맞아요. 쏨의 아버지와 그쪽 업체의 사장이 친해서 어렵지 않게 입점할 수 있다고 했어요."
"여기서 멀지 않으면 상권이 비슷하다는 소리인데 가 봅시다."
나모를 빠져나온 지훈과 미정은 대략 10분 정도를 걸어서 마야라는 대형 쇼핑몰에 당도했다.
작년 겨울에 오픈했다는 마야는 치앙마이에서 교통 체증이 가장 심각한 린컴 사거리에 위치한 통에 주차장으로 향하는 입구가 심각하게 밀려 있는 상태였다.
"사장님, 주차장까지 들어가려면 꽤나 기다려야 하는데도 사람들이 너무 여유롭지 않나요?"
"태국 사람들은 정말 느긋한 것 같네요. 중국이나 우리나라는 이런 상황이면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빵빵거리거나 무작정 끼어들었을 텐데, 너무 다르네요."
"너무 느긋해서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이런 국민성이 오히려 부럽네요."
밀려드는 차들로 심하게 북적거리는 주차장 입구를 지나서 쇼핑몰 안에 들어선 지훈과 미정은 식당가가 자리한 지하로 바로 내려갔다.
지하에는 태국 전역에 자리 잡은 일본 외식 업체의 레스토랑과 뷔페를 비롯해서 스테이크를 주 메뉴로 세계 전역에 진출한 다국적 프랜차이즈도 있었다. 그리고 태국인들이 좋아하는 수끼 전문점도 있었고 안쪽에는 태국 음식을 파는 푸드 코트도 있었다.
"사장님, 어지간한 뷔페나 레스토랑에는 다들 김밥을 메뉴로 내놓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