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173화 (173/219)

<-- 173 회: 6-12 -->

"그건 우리만이 아니라 일본 사람들도 김밥을 먹어서 그럴 거예요."

"그 점도 있겠지만 한국 식당을 찾은 태국인들도 김밥을 많이 먹는 것 같던데, 우리도 김밥을 메뉴에 포함시켜야지 않을까요?"

"김밥이라. 나쁘지는 않은 것 같네요."

"참! 아까 떡볶이도 많이 먹던데 그것도 포함시킬까요?"

"다른 분이 잘하고 있는데 따라 하기는 그렇죠."

"그런가요?"

"어! 사장님, 여기는 가격이 550바트인데도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요?"

"왜 그럴까요?"

방콕도 그랬지만 대형 쇼핑몰에 입점한 식당들은 투명한 통유리로 한쪽 벽을 장식해서 안팎에서 서로를 볼 수 있게 했다. 그 덕에 지훈과 미정은 굳이 식당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손님들이 어떤 요리를 먹고 있으며, 음식의 양이나 플레이팅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일본 외식 업체의 뷔페는 520바트라는 상당한 가격을 받고 있음에도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조금 전에 들렸던 한국 식당과 비교가 되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또 다른 브랜드의 일본 외식 업체의 레스토랑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아무래도 여기는 뷔페라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차이가 너무 나는데요. 그리고 저기 있는 레스토랑은 뷔페가 아닌데도 손님들로 가득한데요."

"그러면 대형 쇼핑몰과 야시장이라는 입지 조건의 차이 때문이지 않을까요?"

"그것도 이유가 되겠죠. 하지만 오히려 유동 인구는 거기가 더 많았고, 나모 내에 있는 다른 식당들은 제법 붐볐잖아요."

"그러면 맛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렇게 단정 지으면 더 이상 답이 없으니 좀 더 살펴보죠."

주위의 식당가를 둘러본 지훈은 푸드 코트로 향했고 여전히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일본 식당을 바라보던 조미정은 뒤늦게 부랴부랴 따라왔다.

"여기는 가격이 저렴하네요."

"그래도 명색이 대형 쇼핑몰에 입점한 가게들이라 동네의 음식점보다는 훨씬 비싼 것 같네요."

"아무래도 자릿세 때문에 그렇겠죠. 그런데 이렇게 밥만 먹으면 맛이 있을까요?"

"밥과 반찬을 구별해서 먹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습관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반찬 없이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어요. 어머! 저 사람들은 흰밥을 익은 망고만으로 먹고 있어요."

"방콕에서도 그런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못 봤어요?"

"전 오늘이 처음이에요. 정말 신기하네요."

"태국의 문화인데 존중해 줘야…… 아!"

"왜 그러세요?"

"미정 씨, 다시 저쪽으로 가 봅시다."

"무슨 일로 그러시는데요?"

"확인할 게 있어요."

얘기를 하다 말고 푸드 코트를 빠져나간 지훈은 어느새 대기 손님들이 늘어선 일본 외식 업체의 레스토랑을 찾았다.

"사장님, 여기는 왜 오신 거예요?"

"미정 씨, 여기는 가격이 어떤 것 같습니까?"

"아무래도 일본 식당이라 그런지 제법 가격대가 높은데요."

"그러면 이 가게를 찾은 손님들이 전부 일본인이거나 관광객으로 보입니까?"

"아뇨, 거의 다 태국 사람인 것 같은데요."

"음식은 뭘 먹는 것 같습니까?"

"저마다 한 가지씩의 메인 요리를 시키고 생선이나 전골 같은 사이드 요리를 시킨 것 같은데요."

"그걸 합치면 개인당 얼마의 비용이 청구될까요?"

"정확히 계산을 해 봐야겠지만 얼추 500~600바트는 나올 것 같은데요."

"만약 우리가 무료로 공급하는 사이드 메뉴와 몇 가지 밑반찬을 제외하면 가격을 얼마나 낮출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사이드 메뉴와 밑반찬을 제외하면 얼추 300바트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태국 가격은 결정 난 것 같은데요."

"아!"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는 반찬이란 개념이 없다. 즉, 지훈은 밑반찬과 사이드 메뉴를 없앰으로써 가격을 맞추자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반찬이란 개념이 없는 나라라면 그렇게 서비스를 한다고 해도 그 누구도 문제 삼지 않을 것 같았다.

아울러 한국에서는 무료로 제공하는 사이드 메뉴를 유료로 판매한다면 결국 가격을 낮추는 것이 아닌 만큼 음식의 퀼리티도 지킬 수 있었다.

*6. 나, 하나도 안 취했거든요!

여행자를 실어 나르는 미니버스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3시간 가까이 달린 끝에 빠이에 도착했다.

어젯밤부터 인터넷을 뒤지며 숙소를 비롯한 관련 정보를 파악한 미정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온 빠이 시내 지도를 살피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미정 씨, 이쪽에 게스트 하우스가 여러 개 있는 것 같은데 들어가 보죠."

"사장님, 여기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강변에 풍광 좋은 방갈로가 있다고 하는데 거길 얻죠."

"방갈로요?"

"아침에 눈을 떠서 창밖을 내다보면 물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 그렇게 아름답대요. 그리고 방 안에는 캐노피까지 달려 있어서 무드가 좋다는데요."

"뭐, 그럽시다."

어차피 이번 빠이 여행은 3시간을 혼자 기다리게 했던 일에 대한 사과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 때문에 지훈은 미정이 하자는 대로 따라갔다.

잠시 후, 강변에 자리 잡은 방갈로를 얻은 미정은 지훈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트윈 침대가 자리한 방갈로에는 작은 냉장고와 TV 그리고 에어컨과 커피 포트가 자리하고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화장실 겸 욕실이 딸려 있었다.

"사장님, 오토바이를 탈 줄 아세요?"

"어느 정도는 타는 편입니다."

"다행이네요. 여기서는 오토바이가 필수거든요."

"오토바이를 빌리자는 건가요?"

"그래야 근처의 온천이랑 빠이 캐넌도 가고 폭포도 가죠."

"미정 씨도 오토바이를 탈 수 있어요?"

"저는 못 타니까 사장님 뒤에 매달려 가야죠."

"큭큭, 그래서 다행이라고 한 겁니까?"

"네."

"그런데 한 방을 같이 사용해야 하는데, 불편하지 않겠어요?"

"달랑 하룻밤인데 그 정도는 일도 아니죠. 그리고 주말이라 예약이 꽉 차서 빈방도 없다는데요."

"아! 빈방이 없답니까?"

"주말에는 태국 사람들도 이곳을 많이 찾아서 방이 더 이상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지금은 한국 사람들도 많이 와서 우리 말고도 한국 손님이 여러 명 있대요."

"내가 보기에는 우리나라의 흔한 시골과 비교해서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많은 이들이 몰려온다니 신기하네요."

"지금은 그렇지만 사장님도 내일 이곳을 떠날 때는 빠이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걸요."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아! 오늘 밤에는 마시지를 알려 주셔야 해요. 설마 약속을 잊은 것은 아니겠죠?"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헤헤, 배도 고픈데 씻고 나갈까요?"

"난 금방 끝나는데 나부터 할까요? 그래야 미정 씨도 편하죠."

"그렇게 하세요."

조미정의 양해를 구하고 먼저 씻은 지훈은 그녀가 씻는 동안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방갈로 밖으로 나가서 수심은 얕지만 유속이 제법 빠른 강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햇살이 뜨거워서 그런지 강변에는 여행을 온 몇몇 웨스턴만 있어서 한산해 보였다.

"딱히 볼 것도 없는데 뭐가 아름답다는 걸까?"

어젯밤 쏨에게 빠이 여행을 알리면서 함께 갈 것인지 물었을 때 그녀는 약속이 있어서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빠이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니 잘 보고 오라고 했는데, 자신이 보기에는 빠이가 딱히 좋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돌아다니다 보면 알 수 있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강변을 따라서 계속해서 걷던 지훈은 두 명의 웨스턴과 태국인이 강변의 꽃을 따서 손바닥으로 비빈 후에 종이에 싸서 잎담배를 하는 것을 봤다.

'담배를 저렇게 종이에 싸서 피우네.'

한국에서는 거의 사라졌지만 태국은 아직도 담배 가루와 담배용 종이를 곳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저런 식으로 담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튼 그들이 잎담배를 핀다고 여긴 지훈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그런데 담배를 계속 피워 대는 그들의 행동이 참으로 이상했다. 괜히 이유도 없이 낄낄거리는 그들은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아! 혹시 대마를 피운 것 아냐?'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무심코 넘겼던 지훈은 이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그사이 지훈을 발견한 웨스턴 한 명이 다가왔는데 장발에 온통 수염으로 뒤덮인 그는 전형적인 히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헤이, 어디 가는 거야?"

"보시다시피 산책을 하는 중이야."

"어디서 왔어?"

"코리아, 너는?"

"난 벨기에 사람이야. 좋은 건데 너도 피울래?"

"됐어. 난 담배를 원래 안 피워."

"이건 담배보다 더 좋은 거야?"

"알아. 하지만 싫어."

"뭐 싫다면 어쩔 수 없고, 그런데 계속해서 강변을 따라서 내려갈 거야?"

"고민 중이야."

"강변을 따라 계속 내려가는 걸 보니 혹시 헤로인을 찾는 거니?"

"전혀!"

"괜찮아. 요즘은 한국 여자들도 많이 좋아하는 것 같던데. 이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마당에 코끼리 똥이 쌓여 있는 집이 제법 많이 나올 거야. 거길 가면 그걸 쉽게 구할 수 있을 거야."

지훈의 예상대로 히피로 보이는 웨스턴들과 태국인은 대마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곳에서는 대마만이 아니라 아편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참고로 산골에 자리한 조용한 시골 마을에 불과했던 빠이는 20여 년 전부터 유럽의 젊은 예술가들과 히피가 모여들면서 관광지가 된 특이한 도시였다.

그들이 모여들게 된 배경에는 시간마저 느리게 가는 빠이의 고즈넉함도 한몫했지만 대마와 아편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빠이에는 고산족으로 표현되는 이수족이나 라후족 같은 여러 소수민족이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고 있었고, 그들은 아주 예전부터 양귀비를 약재로 사용했다. 그리고 1990년대 말까지 인근의 골든트라이앵글에 자리를 잡았던 마약왕 쿤사를 통해서 아편을 판매했고, 그런 전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강력한 단속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도 태국 북부의 산골에서는 양귀비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덕분에 빠이에 장기 거주하는 웨스턴들의 상당수는 자신들이 직접 대마와 양귀비를 기르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코끼리 똥이야말로 양귀비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거름이었다.

"설명은 고마운데 난 그런 것이 필요치 않아."

"그러면 강변은 왜 따라 걷는데?"

"그냥 걷고 싶어서 걸었을 뿐인데 이제는 돌아가야겠어."

"가겠다고? 친구, 다음에 보자."

"그래, 좋은 시간 보내."

히피와의 대화를 통해서 평범한 여행자들은 모르는 빠이의 어두운 뒷면을 확인한 지훈은 방갈로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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