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175화 (175/219)

<-- 175 회: 6-14 -->

"좋아!"

"난 한국말 할 줄 아는데?"

"그래, 한번 해 봐?"

슬픔을 잊기 위해서 알코올의 힘을 빌리기로 한 미정은 어느새 네 병째의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옆에는 꼴이라는 젊은 태국 남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꼴, 한국말 잘하네. 어디서 배웠어?"

"혼자서 배웠어요. 그리고 아는 말 또 있어요."

"뭔데?"

"당신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나도 알아."

취기가 올라서인지 본래의 쾌활함을 다시 찾은 미정은 꼴에게 농담까지 하며 맥주를 들이켰고, 그사이 아궁이에는 모닥불이 틱틱 소리를 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가끔씩 말을 걸어오던 주위의 사람들이 분주하진 것은 그 직후였다.

"불을 피웠으니 다들 시작해야지."

"바라던 바야."

"아! 좋구나."

"미정도 피울래?"

"나? 담배, 끊었는데?"

"오늘 슬픈 일이 있었다면서? 한 모금만 빨아. 기분이 많이 좋아질 거야."

신기하게도 술을 마시다 말고 바닥에 누운 주위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곰방대처럼 생긴 파이프를 이용해서 담배를 피웠고, 꼴은 미정에게도 권했다.

예전에 흡연을 했던 미정은 사양했지만 꼴의 계속된 권유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담배를 피웠는데,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만 빨았음에도 몸과 마음이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같은 시각, 지훈은 미정을 찾기 위해서 다운타운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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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시간이 지났음에도 미정이 자리한 바에는 손님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들어왔다가 다들 바닥에 드러누워서 뭔가를 피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다시 나가 버렸다.

반면 꼴을 비롯한 태국 남자들과 어울린 미정은 어느 순간부터 독한 위스키를 연신 마시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파이프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미정, 어때?"

"기분 좋아."

"내가 그럴 거라고 했잖아."

"꼴, 고맙다. 한잔할래?"

"다 같이 마시자."

"좋지."

알코올 때문인지 미정은 연신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술자리를 주도해 갔다.

그런데 독한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미정과 달리 꼴을 비롯한 태국 남자들은 모든 태국인들이 그러는 것처럼 콜라와 소다 그리고 물로 희석해서 마시고 있었다. 그러니 시간이 흐를수록 미정만 취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가 계속해서 피워 대는 담배는 여느 평범한 담배가 아니라 대마였다.

"미정, 화장실 갔다 올게."

"빨리 갔다 와."

미정의 맥주잔에 위스키를 절반 넘게 따라 준 꼴은 옆에 있던 모셋이라는 친구와 함께 화장실로 갔다.

"꼴, 이쯤에서 약을 먹이자."

"이미 취한 것 같은데 굳이 약을 먹일 필요가 있을까?"

"한국 여자들은 술은 같이 먹어도 잠은 같이 안 자는 경우가 있는데 무슨 소리야? 그리고 약을 먹어야 확실하게 발목을 잡지."

한국 내 최고의 여행 사이트인 '태국사랑'에도 가끔씩 올라오는 내용인데, 꼴과 그의 친구들은 빠이를 거점으로 삼아 여행 온 외국인 여자에게 접근해 대마와 헤로인을 먹이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저항 능력을 상실한 여자들을 유린한 후에는 마약을 한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위협해 돈을 뜯어내는 아주 악질적인 자들이었다.

참고로 태국인과 많은 웨스턴 들 사이에서 한국 여자는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쉽게 섹스할 수 있는 무척 쉬운 여자로 알려진 지 오래였다.

아울러 빠이에는 꼴을 비롯해서 한국 여자들을 집중적으로 노리는 자들이 다수 있었고, 그들은 너무도 쉽게 몸을 주는 한국 여자들과의 경험을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삼아 떠들고 다녔다.

"약은 술에 탈까?"

"처음에는 술에 타고 약효가 나타나면 코로 흡입하게 하자."

"너무 많이 쓰는 것 아냐?"

"괜찮아, 안 죽어."

"그래도 약을 너무 많이 먹이면 환각이 너무 강해서 시끄러워질 수 있어."

"한두 번 해 봐? 그리고 오토바이가 가게 앞에 있으니까 반응이 나타나면 바로 데려가면 괜찮아."

"알았어."

"저 여자 돈도 많은 것 같은데 잘해."

"오늘 밤은 행운이 찾아왔으니까 다 잘될 거야."

작당을 하고 돌아온 꼴과 모셋은 옆에 있던 웨스턴 남자들과 낄낄거리며 술을 마시고 있는 미정에게 다가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절반 넘게 들어 있던 위스키는 말끔하게 비워진 상태였다.

"미정, 갔다 왔어."

"어서 와."

"잔이 비었네. 한잔 따라 줄게."

"OK!"

미정의 잔을 넘겨받은 꼴과 모셋은 빠른 손놀림으로 위스키를 따름과 동시에 마약을 섞어서 그녀에게 넘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미정은 건배를 하자는 꼴의 말에 잔을 강하게 부딪쳤고, 이내 마약이 든 위스키를 말끔하게 비웠다.

그사이 바닥에 누워서 대마를 나눠 피며 볼썽사나운 스킨십을 계속 해 대던 웨스턴 커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름한 옷에 장발을 하고 있는 것이 히피로 보이는 그들은 남자의 낡은 배낭 안에서 꾸깃꾸깃 접힌 종이 뭉치를 꺼내서 주섬주섬 풀기 시작했다.

"이봐, 벌써 하려고?"

"우리는 이미 뜨거워져서 그만 들어가야 할 것 같아."

"빠이의 밤은 무척 길다는 것을 잊은 거야?"

"지금 들어가도 내일 아침까지 즐길 수 있으니 신경 꺼."

수없이 접혀 있던 종이를 다 풀어 헤친 순간 하얀 가루가 나타났고, 웨스턴 커플은 익숙한 동작으로 그 가루를 코에 털어 넣어서 흡입했다.

"미정, 우리도 할까?"

"뭘?"

"저것?"

"저게 뭔데?"

"술보다 더 좋은 거야."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하얀 천사."

꼴과 미정의 대화가 영어로 이루어지다 보니 근처에 있던 웨스턴이 그들의 대화를 알아듣고 끼어들었다.

하지만 이미 술과 마약에 의식을 뺏긴 미정은 마약을 뜻하는 은어인 '화이트 엔젤'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자 지금이 기회라고 여긴 모셋은 어느 틈에 하얀 가루가 제법 쌓여 있는 검지를 미정의 코에 갔다 댔다.

"뭐야?"

"들이켜 봐."

"뭔데?"

"빨리!"

"흐흡!"

모셋의 재촉에 헤로인을 직접 흡입한 미정은 점점 환각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미정의 이름을 부르며 지훈이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미정 씨."

"어! 사장님이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어요?"

"무슨 술을 이렇게 마셨어요?"

"그러게, 내가 왜 마셨을까요?"

"안 되겠어요. 숙소로 돌아가요."

"헤헤헤, 우리 딱 한 잔만 같이 하고 들어가요."

"당신 뭐야?"

미정에게 마약을 먹인 꼴과 모셋은 갑작스레 나타난 지훈이 그녀를 데려가려고 하자 인상을 쓰며 제지했다.

한편 곰방대와 하얀 가루 그리고 바닥에 누워서 해롱거리는 여럿 웨스턴을 통해서 상황을 대충 짐작한 지훈은 꼴과 모셋을 밀쳐 내고는 미정을 부축했다.

"난, 이 여자의 남자 친구다."

"뭐?"

"이……이런!"

"더 할 말이 없으면 비켜 주시지. 미정 씨, 가요."

"사장님, 좋은 밤이에요."

"알았으니까 가요. 많이 취해서 안 되겠어요."

"나, 하나도 안 취했거든요!"

비틀-!

"조심해요."

*7. 뭘 잘했다고 다시 와?

감미로운 재즈 음악과는 다르게 바의 분위기는 흉흉했다.

어떻게든 미정을 유린해서 욕정을 해소하고 다음 날 돈을 뜯어낼 생각이었던 꼴과 모셋은 그녀를 업고 가는 지훈을 죽일 듯 노려봤다.

"꼴, 다 잡은 먹잇감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거야?"

"그럴 수는 없지. 너, 총 있냐?"

"귀찮아서 안 가져왔어."

"바보같이, 어쩔지 모르니까 갖고 왔어야지."

"술과 약에 취한 여자를 상대하는 일이라 당연히 총이 필요 없을 줄 알았지."

"빌어먹을!"

"넌?"

"돈이 없어서 얼마 전에 팔았다고 했잖아."

"젠장!"

태국은 개인의 총기 소지가 가능해서 어렵지 않게 총을 구할 수 있다. 그래서 로컬들이 주로 다니는 술집에는 가드들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고, 총을 맞아도 구급차를 불러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여자를 상대하는 일이라 총을 갖고 오지 않은 꼴과 모셋은 다 잡은 사냥감을 이대로 놓칠 수가 없어서 바의 종업원을 불러 지훈의 뒤를 미행하게 했다.

"모셋, 넌 총을 가져와."

"넌 어쩌려고?"

"난 친구들을 부를게."

"총이 있는데 다른 놈들을 굳이 부를 필요가 있을까?"

"한국 남자가 끝까지 저항할 수도 있잖아?"

"알았어."

지훈과 미정의 숙소를 쳐들어가기로 마음먹은 꼴과 모셋이 오토바이를 타고 어딘가로 사라지는 동안 지훈은 환각 상태에 빠져서 큰 소리로 웃어 대는 미정을 업고 방갈로로 돌아왔다.

"미정 씨, 정신 좀 차려 봐요."

"호호~! 나, 안 무겁지? 새털처럼 가벼웠지?"

"안 무거웠어요."

"큭큭, 내가 한 몸매 하는 편이잖아."

"우선 씻으세요."

"같이 씻을까?"

"미정 씨!"

"싫어? 짜샤, 내가 깨끗이 씻어 줄게."

"아! 큰일 났네."

미정이 술과 마약에 취했음을 알고 있는 지훈이 어찌할 바를 몰라서 당황하는 사이 미정은 입고 있던 옷을 훌러덩 벗기 시작했다.

"어……어!"

순식간에 민소매 티를 벗어서 휙 집어 던진 미정은 지훈이 깜짝 놀라는 사이 핫팬츠까지 벗었다.

"야! 이리 와 봐."

"미정 씨."

"내 가슴 어때, 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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