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185화 (185/219)

<-- 185 회: 6-24 -->

"림용순 비서, 이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 줘서 고맙소."

"형제국의 고위 당국자들과 우의를 다질 수 있어서 저도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림 비서, 한잔합시다."

"좋지요."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번영을 위해서 건배~!"

"건~배!"

"건배!"

오늘의 자리는 비밀리에 베이징을 방문한 북한 노동당의 제2비서인 림용순이 마련한 것이었다.

6일 전 베이징에 당도한 그는 중국의 실권자들과 여러 차례 비밀 회동을 가졌다. 그래서 식량과 유류 그리고 시멘트와 비료를 비롯해서 중국으로부터 많은 경제적인 원조를 받아 내는 데 성공했다. 즉, 오늘의 자리는 그에 따른 답례의 의미가 강했는데, 장소가 가온누리로 결정된 까닭은 중국의 고위 인사들이 이곳을 강력히 원해서 그렇게 되었다.

참고로 림용순은 경제적인 내용만 얘기하기 위해 중국을 찾은 것은 아니어서 핵무기를 비롯한 미국과 관련한 내용도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장린 상무위원님, 합의된 지원 품목이 조속히 당도할 수 있도록 중앙당 차원에서 힘을 써 주십시오."

"식량과 의약품을 비롯한 생필품은 해상을 통해서 조속히 지원을 하겠소. 하지만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원을 결정한 이상, 북조선 인민들에게 고루 나누어 줘야 할 것이오."

"물론입니다."

"아! 림 비서, 정말 약속대로 해 줘야 하오. 두만강 국경에서 이탈자가 변함없이 속출하면, 우리도 국제사회에서 여러모로 불편해지니 신경 좀 써 주시오."

"알겠습니다."

군부의 장성이 방금 얘기한 이탈자는 탈북자를 뜻했다.

사실 북한과 중국의 국경 지대는 경비가 삼엄해졌다고는 하지만 변함없이 탈북자가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처럼 식량 사정이 열악해지는 겨울에는 그 숫자가 대폭 증가했고 그만큼 사살자도 증가했는데, 사살자가 증가할수록 중국도 입장이 난처해졌다.

"림 비서, 약속대로 핵실험은 당분간 안 하는 것이지요?"

"우리 공화국도 우리 민족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핵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압력이 증가하면 자위권 차원에서라도 핵실험을 재개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지금 이라크에 발목이 잡혀서 당분간은 북조선에 대한 압박을 가하지 못할 것이오."

"하지만 남조선 군대와 함께 전쟁 훈련을 강행한다면 우리로서는 대응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연례적인 훈련이잖소?"

"우리 공화국에 대한 침략 훈련을 매년 반복적으로 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미사일을 날릴 생각이오?"

"전쟁 훈련을 계속한다면 우리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림 비서, 미사일을 자꾸 날려 대면 일본이 그걸 핑계로 무장을 서두른다는 것은 생각도 않소?"

"그 부분은 국방위원장 동지께서도 생각이 있는 만큼 걱정을 안 하셔도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이 우리가 로켓을 발사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떻게든 무장을 할 거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닙니까?"

"자, 오늘은 좋은 자리인데 그런 머리 아픈 얘기는 나중으로 미룹시다."

지구상에서 북한과 가장 밀접한 나라는 중국이다. 하지만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서로 대립되는 부분도 있어서 지금처럼 의견 충돌을 벌일 때도 많았다.

아무튼 다시금 복잡한 정치 문제가 언급되자 누군가 나서서 중재를 했고 분위기는 다시금 일상적인 얘기로 넘어갔다.

"림 비서, 이곳의 음식 맛은 어떻소?"

"조선 요리의 정수가 펼쳐져서 그런지 아주 좋습니다."

"나 역시 이곳의 음식이 아주 만족스럽소. 솔직히 옥류관과 해당화도 훌륭하지만 이곳의 음식보다는 못한 것 같소."

북경에는 북한 음식점이 몇 곳 있는데, 그중에서도 옥류관과 해당화가 아주 유명했다. 두 곳 모두 북한 정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가격이 상당한데, 선발된 미녀들이 서빙을 하고 거문고 연주 같은 각종 문화 공연도 펼쳐진다.

"남조선에서 자랑하는 요리사라고 하더니 솜씨는 제법 있는 것 같습니다."

"듣기로 미국의 대통령은 물론이고 유엔 사무총장과 유럽 각국의 정상들이 극찬을 한다지요?"

"그 얘기는 나도 들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명성을 가진 요리사들이 그자를 세계 최고의 요리사로 손꼽는다고 들었습니다."

장쉬엔을 통해서 지훈에 대해서 알고 있는 장린은 그의 요리 솜씨를 극찬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들은 얘기가 있는지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 상황에서 장성 중 한 명이 누가 뭐라고 해도 세계 최고의 요리는 중국 요리라는 주장을 펼쳤다.

"맞습니다. 거대한 대륙을 배경으로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중국 요리야말로 세계 최고의 요리이고, 중국 최고의 요리사가 세계 최고의 요리사입니다."

"물론이지요."

"하지만 그 사실을 우리만 알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내 말이 그겁니다! 미국과 러시아는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 중국 요리점이 있는데 어찌해서 작은 나라에 불과한 대한민국의 요리사가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난 그 점보다는 중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노래에 열광하는 사실이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계 문화의 근원은 중국입니다."

"맞습니다. 문자나 의복부터 시작해서 건축과 음식에 이르기까지 우리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은 나라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한류 열풍이 거센 것은 중국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중화사상에 심취한 이들은 한국 문화에 열광하는 중국의 젊은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들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그 상황에서 중국 요리가 세계 최고라고 했던 장성이 엉뚱한 제안을 했다.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인데, 세계 최고의 요리사를 선발하는 경연 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요리 경연 대회요?"

"그렇습니다. 각 지역 요리를 대표하는 명인들을 초청하고 이곳의 요리사를 비롯해서 나름대로 이름을 날린다는 요리사들을 모두 불러서 대회를 여는 것이지요."

"이곳 가온누리의 요리사가 보통 실력이 아닌데, 그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수천 년을 이어 온 중화요리의 저력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내가 아는 요리사가 있는데, 아주 신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만큼 당연히 1등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용상 사령관의 주장대로 요리 대회를 개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저도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림 비서, 뭐요?"

"그 대회에 우리 공화국의 요리사도 출전을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다들 찬성한다면 우리도 출전자를 내겠습니다."

"하하하~! 아주 볼만한 대회가 될 것 같은데, 개최를 하는 것으로 결정하겠습니다."

"찬성입니다."

@

달만 외로이 떠 있는 칙칙한 밤하늘에 짙은 회색의 구름들이 모여드는 것이 금방이라도 함박눈이 내릴 것 같았다.

매장의 현관까지 나와서 장린을 비롯한 중국의 고위 인사들을 배웅한 지훈은 다시금 주방으로 들어가려다 장린과 마주했다.

"이 사장, 훌륭한 요리를 먹을 수 있어서 너무 만족스러웠네."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장쉬엔과는 종종 연락을 하고 있는가?"

"아까도 제가 상하이 매장을 방문하는 문제로 통화를 했습니다."

"상하이에도 가 볼 생각인가?"

지훈은 중국어를 할 줄 몰랐다. 하지만 장린이 영어에 능통하기에 둘의 대화는 영어로 이뤄지고 있었다.

"온 김에 거기도 가 볼 생각입니다."

"가서 장쉬엔을 만나거든 베이징에 한번 오라고 말을 전해 주게. 녀석이 다 컸다고 이제는 자꾸 밖으로만 돌아서 아내가 무척 섭섭하게 여기고 있다네."

"꼭 전하겠습니다."

장쉬엔은 북경에도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지만 상해에도 레스토랑을 두 개나 운영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상해의 매출이 훨씬 높았다.

하지만 그 문제를 떠나서 그녀 스스로가 북경을 답답하게 여겼고, 초현대적이고 북경에 비해서 자유로운 상하이를 훨씬 더 좋아해서 아예 그곳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사실 북경이 중국의 수도라고는 하지만 상하이가 더 번화해서 대부분의 중국 젊은이들은 상해를 더 선호했다.

"참! 조만간 세계 요리 대회가 열릴 것 같네."

"세계 요리 대회요?"

"중국 내의 여러 요리 명인들을 비롯해서 북한의 요리 명인들도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네."

"세계 요리 대회라면 저마다 자국의 요리를 해서 그 맛을 평가받는다는 것입니까?"

"각국의 요리가 다른 만큼 그렇게 되겠지. 대신 대회이니만큼 우열을 가리기 위해서 식재료를 지정할 것 같더군."

"재미있겠군요. 그런데 세계 요리 대회라면 중국과 북한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셰프들도 참가를 하는 것입니까?"

"아마 그렇게 되겠지."

"저도 참가를 할 수 있습니까?"

"당연히 이 사장에게도 초청장이 갈 것이라네."

"대체 누구누구가 초청을 받는 것입니까?"

"대회의 개최만 결정 났을 뿐 아직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네. 하지만 세계 각국의 셰프를 일일이 초청하기는 어려운 만큼 중국 내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외국인 셰프를 초청할 것 같네."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요리 대회의 개최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만약 초청장이 오지 않는다면 개별적으로라도 참가를 하고 싶습니다."

"이 사장과 가온누리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대회를 준비하는 만큼 초청장은 반드시 갈 것이네. 그리고 이 사장이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없어서 고사했다는 식으로 떠들 것이야."

"더더욱 대회에 참가해야겠군요."

중국인의 자존심이 유별나다는 것은 지훈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과 가온누리를 시기하는 사람이 대회를 준비한다는 말을 듣게 되자 그냥 넘길 수가 없어서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물어봤다.

지훈의 질문에 장린은 대회가 결정된 과정을 설명했고 얘기 말미에 모용상 사령관이 단단히 믿고 있는 중국인 셰프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자오량 셰프라면 예전에 장쉬엔에게 얼핏 들은 적이 있습니다. 청나라 말기에 황궁의 특급 요리사를 배출한 가문의 후예라고 들었습니다."

"맞네."

"실력이 대단하다는 말을 들어서 언제 뵙고 싶었는데 그 분도 대회에 참석하시는 것입니까?"

"그가 있기에 이번 대회가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당연히 참석을 하겠지."

"오! 잘되었군요."

"그게 꼭 좋아할 일만은 아니네."

가온누리는 한국의 궁중 요리를 표방한다. 그런데 중국에도 황궁 요리의 맥을 이어 온 자가 여럿 있었다. 장린이 말한 자오량 셰프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오량은 청국의 속국에 불과했던 조선 궁중 요리의 맥을 이은 지훈이 연 가온누리가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점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모용상 사령관에게 그런 불만을 토로했고, 자신이 지훈과 겨루면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즉, 갑작스레 개최가 결정된 요리 대회의 배경에는 자오량과 모용상의 밀담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지훈은 중국 최고의 요리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자오량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황궁 요리의 맥을 이은 분과 함께할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승패를 떠나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사장은 대회를 좋게만 생각하고 있는데, 자오량 셰프는 호의만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는 자신이 맥을 이은 황궁의 요리가 세계 최고라고 여기고 있고, 이 사장을 꺾어서 자신이 세계 최고의 요리사임을 증명하고 싶어 하네."

"제가 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아닌데 저를 이긴다고 해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 사장은 겸손해서 그 사실을 부정하지만 이미 어마어마한 명성을 얻고 있는 만큼 자오량 셰프의 판단도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네."

"어쨌든 저로서는 황궁 요리의 정수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상무위원님 말씀대로 대회 참가를 거부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나 역시 이 사장의 대회 참가는 어쩔 수 없다고 여기고 있네. 다만 이 사장처럼 대회의 의미를 좋게만 여기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뿐이네."

"저는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장린의 얘기는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