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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와 관련한 정보를 얻으라는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저 같은 문외한은 고작해야 사진을 찍어 오는 것이 전부인데, 그것만으로 도움이 되겠습니까?"
"우리 공화국의 조리사 동무들도 전문가들이니 사진을 보면 뭘 어드렇게 했는지 대번에 알아보지 않갔어?"
"알겠습니다."
그 뒤로도 박용성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린 림용순은 비행기 출발 시간이 임박했다는 재촉을 받고서야 호텔을 빠져나갔다.
*12. 누구 맘대로?
상해에서 사흘을 보낸 지훈은 다시금 북경으로 돌아왔다.
월요일인데도 북경 매장은 수많은 손님들로 가득 차서 다들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다.
'제법 시스템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이제는 안심해도 되겠어.'
오픈 초기만 해도 여러모로 낯설다 보니 호흡이 맞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잦은 실수를 반복했다.
이는 중국의 매장들이 워낙 규모가 컸기 때문인데, 그런 대형 시스템을 운영해 본 경험이 없어서 그랬다. 더군다나 사소한 잔일부터 시작해서 많은 역할을 담당하는 중국인 요리사들이 한식에 익숙하지 않아서 더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지금은 척척 호흡이 맞고 있었다.
"사장님, 언제 오셨습니까?"
"조금 전에 왔습니다."
"상하이 매장은 어떻습니까?"
"그쪽도 잘하고 있습니다."
"요리 학교를 개설하는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시의 관계자와 만나서 적극적인 지원을 해 주겠다는 확답을 받았습니다."
태국은 방콕에 요리 학교가 있는 것처럼 중국에선 북경에 요리 학교가 있었다.
그런데 중국은 땅덩어리가 너무도 컸고 그 인구도 어마어마했기에 지훈은 상해에도 요리 학교를 개설할 생각이었다.
며칠 전에 최용석과 요리 학교와 관련한 얘기를 나눈 것도 그 일 때문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요리 학교를 추가로 건립해 중국인 한식 요리사를 배출했을 때 그들의 진로가 희망적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런 질문들을 했었다.
그래서 요리사를 배출했을 때 가온누리가 아니라고 해도 충분히 취업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자 빠르게 요리 학교의 추가 설립에 나섰다.
이는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한 한식을 세계화시키겠다는 지훈의 포부와도 맞닿아 있었다.
서비스 부분의 책임자인 한국인 직원이 다가와서 VIP 룸의 손님이 지훈을 찾는다는 얘기를 전한 것은 그때였다.
"날 찾는다고요?"
"원래는 최용석 마스터 셰프님을 찾았는데 사장님이 때마침 이곳에 계시다는 말을 듣고는 사장님을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누군지 물어도 될까요?"
"중국에서 무역업을 하고 있는 재일 교포 3세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사장님, 제가 가 볼까요?"
"아닙니다. 최 지사장님은 주방을 지키십시오. 손님에게는 제가 가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참! 그분은 중국어를 하시나요?"
"아니요. 한국말을 아주 유창하게 잘하시니까 의사소통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럼 가 볼까요?"
서비스 직원의 안내를 받은 지훈은 제일교포 3세가 있다는 VIP 룸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제의 VIP 룸의 입구가 있는 곳에는 양복을 입은 세 명의 남자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음식을 먹는 척 하면서 지훈이 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주시했다.
"방금 들어간 사람은 누구지?"
"이곳의 사장 같은데?"
"여기 사장이라면 이지훈 씨?"
"맞아, 얼굴이 그 사람이었어."
"그 사람은 한국에 있는 것 아니었어?"
"오픈 초창기라 그런지 종종 오는 것 같더라고."
"그건 그럴 수 있는데 여기 사장이 박용성을 왜 만나는 거지?"
"우선 지켜보자고."
양복을 입은 세 명의 사내는 중국에서 활약하는 한국 정보기관의 요원들이었다.
참고로 중국은 세계 각국 정보기관의 요원들이 치열한 첩보전을 펼치는 곳이었다.
게다가 국토가 분단된 남한과 북한은 그 특수성 때문에 상당한 숫자의 요원들을 파견해서 상대방에 대한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박용성은 어느 순간부터 대외연락부의 고위 간부라는 사실이 밝혀져서 한국 측 요원들의 집중 감시를 받고 있었다.
같은 시각 VIP 룸으로 들어간 지훈은 박용성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가온누리의 이지훈입니다."
"어! 이지훈 씨,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지훈 씨는 옛날 마스터 셰프 때부터 관심 있게 지켜봤습니다."
"재일 교포 3세라고 들었는데 한국에도 오셨습니까?"
"물론입니다. 무역업의 특성상 일본과 중국만 오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도 많이 가고 있습니다. 특히 요 근래는 한국산 제품을 중국에 많이 팔고 있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하하하~! 제가 마스터 셰프 대회 때부터 이지훈 씨 팬입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의 일도 뉴스를 보고 같은 한국 사람으로서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릅니다."
세계 요리 대회와 관련해서 정보를 얻기 위해 북경 매장을 찾은 박용성은 지훈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많은 조사를 했다. 그래서 지훈의 과거를 언급하며 친근감을 표시했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편안해지자 요리와 관련한 것을 묻기 시작했다.
"무역업을 하시는 분이 요리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제가 먹고살기 위해서 무역업을 하고는 있지만 제 꿈은 제 이름을 내건 한국 음식점을 일본에 차리는 것입니다."
"음식점을 차리시는 것이 꿈이라고요?"
"이지훈 셰프도 언젠가 방송에서 요리를 하는 것이 즐겁고 자신이 요리한 음식을 다른 이가 맛있게 먹을 때 행복을 얻는다고 하셨잖습니까? 저도 요리를 하면 즐겁고 그걸 남과 나눌 때 행복을 느낍니다."
"요리하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시나 봅니다."
"그럼요. 특히 이지훈 셰프처럼 우리의 얼과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궁중 요리를 기회가 된다면 제대로 배우고 싶습니다."
"꿈을 갖고 있다면 언젠가는 이뤄질 것입니다."
"저도 그것만 생각하며 지금은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있는 요리는 어떻게 만드는지 조리법을 알려 줄 수 있습니까? 너무 맛있어서 제가 직접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요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척하며 지훈에게 요리법을 물은 박용성은 그가 알려 준 내용을 노트에 기재하고는 다음에도 요리법을 알려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이틀 후면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내일은 가능합니까?"
"관심이 있으시다면 알려는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또 와서 다른 음식의 요리법을 배우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조만간 한국에 갈 일이 있는데, 그때 한국의 본점을 찾아도 상관없겠습니까?"
"한국의 본점을 찾으시겠다고요?"
"아! 그때는 꼭 요리를 배우기 위해 가는 것은 아니고 업무차 한국에 간 김에 본점의 깊은 맛을 느껴 보고 싶습니다."
"뭐, 찾아오신다면 지금처럼 간략한 설명은 해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그 뒤로도 박용성과 몇 마디 나눈 지훈은 인사를 하고 VIP 룸을 빠져나왔다.
한편 여전히 박용성을 감시하고 있던 한국 정보기관의 요원들은 지훈이 상당 시간 룸에 있었던 점을 주목했다.
"대체 무슨 얘기를 나눴기에 이제야 나오는 거지?"
"어째 감이 이상한데?"
"혹시 이지훈도 감시해야 하는 것 아냐?"
얘기가 길어진 것은 요리와 관련한 설명을 하는 통에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모르는 요원들은 지훈에 대해서도 의심을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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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성을 만난 지훈이 요리와 관련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서울에서는 박현식이 자신의 아버지 박철웅과 마주 보며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현식아, 싱가포르의 일은 어떻게 됐냐?"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모든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흔적이 드러나지는 않았겠지?"
"그쪽의 변호사와 회계사를 고용해서 감쪽같이 처리했습니다."
"나중에라도 한국의 세무 당국에서 눈치를 채고 달려들 수 있으니 깔끔하게 마무리해라."
"그쪽 분야의 전문가를 고용했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싱가포르에는 세계 각국에서 우리 같은 사람이 많이 와 그 부분은 확실하게 보호를 해 주고 있으니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한국의 일이 아직 마무리가 안 된 만큼 일이 끝날 때까지는 방심해서는 안 된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 쪽 일은?"
"싱가포르의 일이 급하기에 그 일을 처리하고 천천히 알아볼 생각입니다."
"일이 생각보다 빨리 진행될 수도 있는 만큼 미국 쪽 일도 속히 알아보도록 해라."
"건물을 사겠다는 업자가 나타났습니까?"
"급히 처분할 생각에 가격을 어느 정도 내렸다."
"푼돈이 아까워서 시간을 끌다가는 통째로 뺏길 수도 있는데 생각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기관에서 매각과 관련한 눈치를 챈 것은 아니겠죠?"
"페이퍼 컴퍼니를 앞에 내세워 거래했으니 세무 당국이 아무리 기를 쓰고 달려든다 해도 한동안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역시 아버지십니다!"
당에서 출당된 뒤, 거센 압력에 못 이겨 의원직을 사퇴한 박철웅은 끝끝내 무소속 신분으로 구청장 선거에 나섰다.
하지만 그 일로 당의 고위 인사들에게 완전히 찍힌 박철웅은 국가 정보기관의 표적이 되어서 사정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탈세와 비리로 엄청난 금액의 벌금을 추징당할 위기에 빠졌고, 심지어는 조부와 증조부의 친일 행각까지 낱낱이 드러나게 되었다.
덕분에 한국에서 박철웅 일가는 파렴치하고 후안무치한 가족으로 소문나서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친일 행각으로 부를 일군 점이 드러난 이상, 용을 쓴다고 해도 정치권에 다시 발을 담갈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철웅은 자신의 재산을 빼돌려서 해외로 도피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가장 덩치가 큰 부동산 두 건은 매각했지만, 아직도 처리해야 할 부동산이 상당수라 골치가 아프구나."
"아버지, 과징금 납부가 계속 미루어지면 출국 금지 조치가 떨어질 수도 있으니, 소소한 부동산은 몇 개 넘겨서 시간을 버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도 조급한 마음에 그리하고 싶은데, 부동산 경기가 예전 같지 않아서 좀처럼 팔리지가 않는다."
"굳이 부동산을 매각할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냐?"
"현물 납부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현물 납부라면 현금이 아닌 부동산으로 추징금의 일부를 갚자는 거냐?"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면 공매로 처분이 될 것이고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매각되어 금액에서 상당한 손해를 볼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시간을 벌 수 있잖습니까?"
"시간을 버는 것치고는 손해액이 상당한데?"
"아버지가 여기 일을 마무리하고 무사히 싱가포르에 가기 위해서는 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차명으로 전환시킨 재산이 드러나면 그때는 추징금 액수가 훨씬 커질 수 있습니다."
"우선은 조금 더 고민해 보자."
"아버지, 재산을 안전하게 해외로 빼돌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나도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이 틀어졌을 때를 생각하면 추징금을 일부라고 해도 현물로 납부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공매를 하면 시세보다는 살짝 저렴한 가격에 매물로 나간다. 정작 문제는 공매는 유찰되는 경우가 태반이고 그럴수록 가격이 계속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즉, 박철웅은 현물로 납부한 부동산이 공매 처분될 경우 시세에 비해서 큰 폭으로 하락한 가격에 매각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만큼 손해를 보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아버지, 우리 집안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험을 해야 합니다. 아니, 필요하다면 연기도 해야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현물 납부를 하기 위해서 국세청을 찾아가실 때 기자들을 불러 모으십시오."
"기자들은 왜?"
"현물 납부를 시작으로 남은 과징금도 성실하게 납부하겠다는 거짓말을 하십시오."
"거짓말을 해서 세무 당국을 속이라는 거냐?"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게 기사화되면 우리 가족이 해외로 뜬 것을 알게 된 후에 분위기가 더 나빠질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