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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용순와 함께하고 있는 사내들은 북한에서 고르고 골라 온 세 명의 요리사들이었다. 아울러 이들은 모용화가 그러는 것처럼 지훈을 최고의 우승 경쟁자로 여기고 전력 탐색차 베이징 매장을 찾은 상태였다.
"고경철 동무, 그만하기요."
"비서 동지, 죄송하게 되었습네다. 숙소로 돌아가거든 김형직 동무의 자아비판을 엄혹하게 진행하겠습네다."
"자아비판도 좋지만 연습을 하는 것이 좋지 않갔어?"
"맞습네다. 내래 생각이 짧았습네다. 시정하겠습네다."
"기래야지. 내 말 알아들었음 기렇게 하라우."
"물론입네다. 전투적으로 연습해서 비서 동지를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네다."
괜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큰일을 치를 뻔했던 김형직이 남 몰래 한숨을 내뱉는 사이 림용순은 다시금 요리에 대해서 물었다.
하지만 고경철이 나서서 뭐라 했던 것을 기억하는 다른 두 명의 요리사는 이 정도 실력은 충분히 이길 수 있다며 승리를 확신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내래 동무들만 믿갔어."
"비서 동지, 반드시 우승 트로피를 당과 국방위원장 동지에게 바칠 것이니 걱정 마시라요."
"기렇고 말고! 자, 동무들도 어서 들기요. 자고로 음식은 식으면 맛이 없는 것 아니갔서?"
우승을 자신하는 고경철의 패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림용순은 흡족한 표정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사이 눈치만 보고 있던 세 명의 요리사들도 조심스럽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는데 김형직과 박상욱은 음미하듯 먹었다.
한동안 음식을 맛있게 먹던 림용순이 자리를 비운 것은 그때였다.
"비서 동지, 어디 가십네까?"
"내래 잠깐 일 보고 바로 올 것이니 동무들은 개의치 말고 먹으라우."
"다녀오시라요."
림용순이 자리를 뜨자 그때까지 경직된 자세로 있던 김형직과 박상욱이 긴장이 풀렸는지 한숨을 토해 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낱 요리사에 불과한 이들이 당 서열 15위의 고위 간부와 한공간에 있었으니 엄청난 정신적 압박감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고경철 동무, 맛이 이상하지 않소?"
"기게 무슨 뜻이오?"
"음식이 맛나기는 하는데, 내 입에는 재료의 맛이 아닌 다른 맛도 함께 느껴지는 것 같소."
"다른 맛이라니 뭐가 어드렇다는 것이오?"
"뭐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내 생각에는 요리를 할 때 재료와 잘 어울리는 특별 소스나 양념을 첨가한 것 같소."
박상욱은 북한 자체 선발전에서 2위를 한 요리사로, 일본에서 살다가 어찌하다 보니 북한으로 넘어간 자였다. 그래서 다른 요리사와는 달리 이북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유준상처럼 절대 미각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의 절대 미각에는 요리에 사용된 본연의 재료에서 우러나오는 맛 외에도 다른 맛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뜻으로 얘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희한하게도 너무 잘 어울려서 음식의 맛과 풍미를 더하고 있었기에 그 부분에 대한 대비를 하자는 뜻으로 말을 꺼냈다.
하지만 고경철은 박상욱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다.
"기게 어쨌다는 것이오?"
"조선 음식의 기본은 장맛 아니겠소? 그런데 이 정도의 깊은 맛을 우려낼 정도라면 우리도 충분한 대비를 해야 할 것 같소."
"기렇다고 한들 이 정도 실력으로는 일없소."
"하지만 이 요리들은 그자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그보다 못한 자가 만든 것 아니오? 그럼에도 이만한 맛을 낼 수 있다면, 그자의 실력은 이보다 월등하다고 봐야 할 것이오."
"박상욱 동무는 남반부 아새끼에게 내가 진다는 것이오?"
"그것이 아니라 대비를 하자는 것이오. 그자의 밑에 있는 요리사가 이만한 실력을 갖고 있다면 그자는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는지 예상하기가 어렵소."
"동무래, 그따위 패배주의가 만연해 있어서 항상 2등인기요. 하지만 주체 정신이 투철한 나는 반드시 우승을 할 것이니 동무는 지켜보기요."
"고경철 동무, 그자는 미국의 대통령과 프랑스의 대통령으로부터 극찬을 받은 세계 정상급의 요리사요."
"이 동무래, 일본에서 살다 왔다고 하더니 패배주의만이 아니라 썩어 빠진 사대주의에도 찌들어 있구먼. 내래 분명히 말하지만 돌아가면 당에 동무의 사상 검열을 의뢰하갔어."
절대 미각을 갖고 있는 박상욱의 미각에 가온누리 북경점의 맛은 참으로 오묘했다. 재료 본연의 맛이 풍부하게 우러나면서도 또 다른 맛과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
이는 음양오행기를 세분화해서 사용하며 음양오행기가 요리의 재료와 잘 어울린 덕에 그렇게 되었는데, 그 사실을 모르는 박상욱은 그 점이 신비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리의 맛도 좋지만 묘한 만족감과 행복감을 안겨 줬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 요리를 만든 이가 자신들과 겨루는 당사자가 아니란 점이다. 즉, 자신들과 겨루는 이지훈은 이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요리도 혁명 사업이며 혁명 정신과 주체 정신으로 무장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고 여기고 있는 고경철은 오묘한 맛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승리를 낙관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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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매장에 당도한 지훈은 밀려드는 주문 때문에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 셰프들을 도울 생각에 요리복으로 갈아입고 주방으로 향하다 리아와 마주쳤다.
"어, 오빠!"
"리아야."
"오빠, 한국에 있는 것 아니었어?"
"조금 전에 왔어."
"히힛, 여기서 우연히 오빠를 보니까 너무 기분 좋다. 그동안 베이징 매장하고 상하이 매장을 갈 때마다 오빠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 했었는데 갈 때마다 없어서 섭섭했어."
"네가 몇 번 왔다는 얘기는 들었어. 그런데 언제까지 중국에 있는 거야?"
"다음 주 목요일까지인데, 내일 바로 상하이로 가서 거기서 이틀 동안 있을 거야. 오빠는 상하이 안 가?"
"난 가더라도 일요일이나 갈 것 같아."
"아! 그때 나는 광저우에 있는데."
"상하이에 이어서 광저우까지 가다니, 중국에서도 인기가 엄청난가 보네?"
"당연하지! 참, 오빠, 시간 나면 노래 한번 들어 주라."
"신곡 준비 중이니?"
"응, 그러니까 이번에도 오빠가 도와줘."
"능력은 없지만 네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렇게 해 줄게."
지훈이 알고 있는 미래대로라면 리아가 발표하는 노래는 계속 큰 히트를 하게 된다. 그렇기에 굳이 들어 볼 필요는 없지만, 자신이 호평을 하면 리아가 자신감을 갖는다는 것을 알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헤헤, 고마워."
"고맙기는. 신곡을 가장 먼저 들을 수 있으니 내가 영광이지. 참! 주문은 했어?"
"아직."
"먹고 싶은 것 있어?"
"오빠가 직접 요리를 하려고? 와~우! 얼마 만에 오빠가 해 준 요리를 먹는 거지?"
"내가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 줄 테니까 기대해."
"오빠 실력이야 내가 잘 알지."
우연치 않게 리아를 만난 지훈은 환한 표정으로 그녀와 얘기를 계속 주고받았다.
리아의 일행으로 보이는 중국의 유명 연예인 몇 명이 다가온 것은 그때였는데, 그들 중에는 지훈도 이름을 알고 있는 중국 최고의 가수 허장강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지훈 셰프죠?"
"그렇습니다."
"리아에게 종종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닙니다. 중국 최고의 스타를 만나게 되어서 제가 영광입니다. 저도 허장강 씨의 노래는 아주 좋아합니다."
"제 노래가 좋다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기회가 되신다면 언제 제 노래도 골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리아가 얘기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저는 요리라면 모를까 노래에 대해서는 문외한입니다."
유창한 영어로 먼저 알은척을 해 온 중국 연예인들은 리아에게 얘기를 들었는지 자신들의 노래도 골라 달라는 부탁을 했다. 하지만 한국 노래라면 모를까, 중국 노래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는 지훈은 그들이 기분 상하지 않게 거절을 했다.
화장실을 다녀온 림용순이 바로 옆을 지나간 것은 그때였는데, 그는 중국의 유명 연예인을 알아보고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그게 계기가 되어서 지훈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잠시 후, 본래의 룸으로 돌아온 림용순은 고경철을 비롯한 요리사들에게 지훈이 이곳에 있음을 알렸다.
"비서 동지, 그러면 이 요리들은 그자가 직접 만들었다는 것입니까?"
"요리복을 입고 있었으니 그러지 않았갔어?"
"다행이군요."
지훈을 봤다는 말에 가장 큰 반응을 보인 것은 박상욱이었다. 이는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자신이 맛본 요리가 지훈이 직접 만든 것이라면 한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에 그랬다.
반면 처음부터 자신만만하던 고경철은 지훈이 있다는 말에 그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고경철 동무, 그자를 만나자고 했소?"
"그렇습네다. 만나서 그자의 기를 팍 꺾어 놓는 것이 좋지 않겠습네까?"
"기선 제압을 하겠다는 기요?"
"그렇습네다."
"아주 좋소, 잠깐만 기다리기요."
고경철의 부탁을 수락한 림용순은 서비스를 하는 직원을 호출해서 지훈과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주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지훈은 림용순 일행의 룸을 찾았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시오, 이지훈 동무."
"저를 찾는다고 해서 왔습니다."
"동무, 그리 놀라지 말기요."
"동무, 우리는 북조선에서 왔습네다!"
들어가자마자 북한 특유의 억양과 함께 동무라는 말이 들려오자 지훈은 깜짝 놀랐다. 그런데 상대는 자신들이 먼저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히더니 지훈의 깜짝 놀란 반응이 재미있는지 껄껄 웃었다.
"북한에서 오신 분을 만난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 많이 놀랐습니다. 실례했다면 죄송합니다."
"우리래 리해하고 있으니 신경 쓰지 말기요."
"동무, 그것이 다 미제가 우리 조국을 갈라놓아서 기렇게 된 것 아니갔소? 기러니 날래 통일이 되어야 하는데, 남반부 위정자들은 반통일 작태를 반복하고 있느니 심히 유감이오."
"통일을 갈구하는 마음은 남북이 다 같으니 언젠가는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될 날이 있겠지요."
"남반부 인민들의 애끓는 마음을 위정자들이 알아야 할 것인데, 같은 동포로서 너무 뼈아프오."
"좋은 날이 오겠지요. 그런데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대회에서 만나기 전에 서로 안면이나 익힐 생각에 불렀으니 오해 말았으면 좋겠소. 난 옆에 있는 고경철 동무를 도와서 요리 대회에 참가하는 박상욱이오."
"요리 대회라면 혹시 이번 주 토요일에 열리는 세계 요리 대회를 얘기하는 것입니까?"
"기렇소. 내래 그 대회에 참가하는 공화국의 조리 영웅이자, 대회의 우승을 차지할 고경철이오."
딴에는 기선 제압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고경철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우승을 차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유치한 도발에 기죽을 리 없는 지훈은 반갑다는 말과 함께 선전을 당부하기까지 했고, 계속되는 고경철의 도발을 대수롭지 않게 가볍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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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용순의 룸에 들어간 지훈이 그들 일행과 얘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매장 한쪽 구석에서는 두 명의 사내가 문제의 룸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한 림용순의 행적을 미행하고 있는 한국 정보기관의 요원들이었다.
"여기를 찾을 때부터 이상하더니 결국은 이지훈이가 림용순을 만나는군."
"팀장님, 한국에서도 박용성과 접촉을 했다던데, 이 상태라면 이지훈을 바로 끌고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럴 거였으면 한국에서 처리했지."
"그러면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한국에서 암약하는 간첩단의 실체를 더 밝혀야 해."
"일단 문형석이 드러났잖습니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그거야 놈들을 안가로 데려가서 조사를 하면 다 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