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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렵다는 거야. 아직 놈들 조직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두 놈을 잡아들였다가는 다른 놈들이 눈치채고 잠적을 해 버릴 거야."
대공 수사는 그 특성상 철저한 보안 수사로 이루어진다. 즉, 같은 정보기관에서 함께 근무하는 요원이라고 해도 부서가 다르면 상황을 알 수가 없다. 이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문제라 어쩔 수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공조수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맹점들 때문에 가끔씩은 정권 상층부에서 의도적으로 사건을 조작해 가짜 간첩단을 만들어 국내의 정치에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튼 지훈을 간첩으로 여기고 그의 뒷조사를 하는 요원들은 중국에 파견된 국정원 5국 7과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림용순 같은 고위 인사가 이지훈을 직접 만나는 이유가 뭘까요?"
"그건 그만큼 이지훈이가 거물이어서 그러는 것 아니겠어?"
"거물요?"
"그래. 내 느낌인데 이지훈은 새롭게 건설되고 있는 여러 개의 간첩단을 총괄하는 총책이 틀림없어."
"팀장님 말씀은 이지훈 밑으로 그가 관리하는 여러 개의 간첩단이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그리고 그중 하나는 문형석이 맡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해."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요원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40대 초반의 요원은 위승환이었다.
정보기관의 특성상 본래의 직위와 달리 마치 회사원처럼 팀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그는 이번 사건을 맡고 있는 5국 7과의 책임자다.
그는 림용순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해 이지훈과 접선하는 것을 보는 순간 지훈을 총책으로 단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림용순은 노동당 제2비서를 맡고 있는 북한의 최고위층 인사다.
"이지훈은 언제 포섭되었을까요?"
"정황상 프랑스에서 몇 년 지냈을 때, 그때 포섭을 당한 것이 분명해."
"그러면 그자가 한국에 돌아온 것이 몇 년 전인만큼 벌써 몇 개의 간첩단을 만들었겠는데요."
얼마 전부터 이지훈을 간첩으로 단정한 5국 7과의 요원들은 그의 과거 행적을 낱낱이 조사해서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하지만 자신들이 직정하고 달려들었음에도 간첩단의 실체를 밝히는 데는 애를 먹고 있었다.
그나마 문형석은 운이 좋아서 박용성과 만나는 장면을 포착해 용케 꼬리를 잡았지만, 아무리 뒤져도 더 이상 의심 가는 자를 찾지 못했다.
그러자 그건 상대가 그만큼 공작을 은밀하게 진행해서 그렇다고 여겼고, 역으로 그것만 봐도 지훈이가 거물급 간첩이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그렇지. 그러니 그놈이 다른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휘하의 간첩단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이라도 파악해야 해."
"팀장님, 보통 일이 아닌데 본사에 연락해서 지원 요청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보안이 생명인 것 몰라? 그리고 이 사실을 본사에서 알게 되면 우리에게 맡길 것 같아?"
"하긴 규모가 어마어마한 만큼 본사에서 직접 처리하려고 하겠군요. 게다가 이지훈은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서 서방 각국의 정상들과 친분이 있잖습니까?"
일반적인 회사도 그렇지만 정보기관의 요원이 공을 세우면 상을 받기 마련이다. 하물며 거물급 간첩을 검거하고 그가 세운 간첩단을 일망타진한다면 위승환을 비롯한 5국 7과의 요원들은 그 공을 인정받아서 출세를 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위승환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라도 이 사건을 마무리할 때까지는 상부에 보고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북한 놈들이 무섭다는 거야. 내 판단대로라면 이지훈은 의도적으로 그들과 친분 관계를 만든 것이 틀림없어."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런 사람들과 친분을 맺다니, 그자도 보통 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지, 보통 놈은 아니지. 하지만 그런 대단한 놈을 잡아낸 우리야말로 대단한 것 아니겠어?"
"맞습니다. 팀장님 같은 분을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걸 알았으면 앞으로 잘해."
"물론입니다."
"말만 그러지 말고 철야 근무도 기쁜 마음으로 서고."
"걱정 마십시오. 이지훈과 관련된 일이라면 3박 4일 근무도 기쁘게 하겠습니다."
"그래야지. 우리 때는 지금과는 달라서 선배가 시키면 불구덩이도 들어갔어. 그리고 우리가 다 그렇게 했으니까 대한민국이 오늘날처럼 번영할 수 있었던 거야."
"맞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야말로 빨갱이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애국자 아니겠습니까?"
"암, 그렇고말고! 우리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은 진즉에 빨갱이에게 먹혔을 거야."
큰 건을 잡았다는 생각에 흡족해진 위승환은 후배 요원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자화자찬을 늘어놨고, 그러는 사이 룸에서 나온 지훈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3. 참나, 누가 못해서 안 나가나?
매장의 규모만큼이나 많은 손님이 매일 찾아오는 베이징 매장은 주방도 많지만 주방 하나하나의 크기도 엄청나게 커서 거의 3백 평에 달한다.
그리고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숫자도 상당한데, 그중에는 마늘을 빻거나 또는 양파를 까거나 오이를 채 써는 것 같은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사람도 많다. 아무튼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다 보니 최용석을 비롯한 한국 셰프들은 중국인 직원들의 얼굴을 모두 다 알지는 못하고, 종종 보는 사람만 기억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직원 중에서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가 두 명 있었다.
"챙겼어?"
"그래. 너는?"
"나도 마찬가지야."
"빠트린 것은 하나도 없겠지?"
"몇 번 확인했으니까 없을 거야."
"이쯤에서 나갈까?"
"나갈 거면 지금 가는 게 좋겠어."
"가자."
일하는 틈틈이 몇 개의 주방을 왔다 갔다 하며 묘한 움직임을 보였던 두 명의 직원은 비닐에 쌓인 뭔가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감췄다. 그러고는 양파 껍질을 비롯한 각종 야채 껍질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담아서 비닐 봉투를 안 보이게 뒤덮고는 낑낑거리며 쓰레기통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들 바쁜 탓인지 그 두 명을 이상하게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그러는 사이 그들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얼마 후 주방에서 사라진 그들은 주차장에 나타났는데, 그들이 나타나기 무섭게 승합차 한 대가 다가와 그들을 태웠다.
"이쪽이야, 빨리 타."
휙-!
"출발해."
재빠른 동작으로 승합차에 오른 두 명의 사내는 조리복을 비롯해서 지금껏 자신들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위생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는지 얼굴을 매만지기 시작했고, 잠시 후에는 그들을 얼굴을 뒤덮고 있던 주름살이 닭 껍질 벗겨지듯 벗겨지더니 20대 후반의 젊은 사내가 나타났다.
"휴~! 이제야 살 만하네."
"아우~! 갑갑해서 혼났네."
"고생들 했다. 확인은 했겠지?"
"전부 확인했습니다."
"어떻게 됐어?"
"얘기 들었던 것처럼 소스와 장류를 비롯해서 양념류와 조미료는 한국에서 가져온 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지훈도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틀림없겠지?"
"틀림없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지금껏 가온누리의 직원으로 변장해서 단순 작업을 반복했던 두 명의 사내는 모용상의 명령을 받고 잠입한 중국 특수부대의 정예 요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언제 어떻게 구했는지 가온누리 베이징 매장에서 사용하는 각종 장류와 양념류 그리고 조미료와 향신료를 챙겨 온 상태였다.
"맛은 어때? 아무래도 한국에서 직접 가져올 정도라면 맛이 좋겠지?"
"대장님, 말도 마십시오."
"대장님이 직접 드셔 보십시오."
"나보고 직접 맛을 보라고?"
"네."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한 자의 제보에 의하면 맛의 비결이 이것들이라더니 맛이 좋은가 보군."
"그건 대장님이 직접 맛을 보시면 압니다."
"어디 먹어 볼까? 이런, 맛이 기가 막히는군!"
"그래서 직접 드셔 보시라고 한 것입니다."
"대장님,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이것들을 마법의 선물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죽 맛이 좋으면 직원들이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마법의 선물이라, 그럴듯해."
부하들의 독촉에 소스와 장류를 직접 맛본 대장은 큰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손톱 사이에 살짝 남아 있는 소스를 허겁지겁 빨아먹고 있었다.
그사이 부하들의 얘기가 이어졌다.
"대장님, 저희도 깜짝 놀란 사실인데, 평범한 음식들도 이것들을 첨가하면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아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들 중에는 비밀리에 이것들을 훔쳐 가는 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것만 첨가하면 맛이 좋아진다니 신기하군. 혹시 이것들을 뭐로 만들었는지 알아냈나?"
"아직 그것까지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만, 성분을 분석하면 나오지 않을까요?"
"그러겠지. 그나저나 이지훈이 요리 대회에 이것들을 갖고 참가하는 것은 틀림없겠지?"
"분명 그렇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모용상이 베이징 매장에 특수부대원을 침투시킨 이유는 중국인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가온누리의 요리 비법을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가온누리에서 일하는 중국인 직원을 포섭해 필요한 정보를 구했고, 각종 양념류와 조미료를 비롯한 소스가 맛의 비법이라는 정보를 얻게 되자 이를 확인하기 위해 특수부대원까지 침투시켰다.
"그렇다면 그자가 갖고 온 조미료나 소스를 바꿔치기하면 음식의 맛을 수준 이하로 떨어트릴 수 있겠군."
"틀림없습니다. 그것들을 바꿔치기할 수만 있다면 이지훈은 날개 잃은 새 신세가 될 것입니다."
"이것으로 이지훈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맛의 비법을 확인한 이상 특수부대의 대장은 대회 진행 요원들의 협조를 받아서 농간을 부릴 생각이었다. 즉, 지훈 몰래 그가 가져온 각종 양념류와 조미료를 비롯한 소스의 내용물을 다른 것으로 바꿔치기할 생각이었다.
"대장님, 북한 쪽은 어떻게 되어 갑니까?"
"그쪽은 생각보다 그리 대단한 실력이 아니어서 무시해도 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다행이군요."
"그래도 아직 대회가 시작된 것은 아니니까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는 마라."
"대장님, 설마 대회장에 잠입하는 것도 우리가 합니까?"
"너희들이 가온누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상 마무리는 깔끔하게 해야지."
"쳇, 그러면 휴가는 그 이후에 갈 수 있는 것입니까?"
"그 일만 깔끔하게 처리하면 바로 보내 주겠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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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특수부대원을 태운 승합차가 베이징 외곽을 이동하고 있을 무렵 두레의 중국 지사에서는 이재철이 유상혁과 전철민을 닦달하고 있었다.
"그런 요리 대회가 열린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초청장을 받아 내야지요."
"죄송합니다."
"저와 유 선배님도 강하게 얘기했지만 한식 분야에는 이미 정해진 사람이 있다면서 워낙 완강하게 거부하는 통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사정이 그렇다고 해도 그걸 받아 내는 것이 두 사람이 해야 할 일 아니오?"
"저희도 노력을 했습니다만 한 명만 참가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통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한 명만 참가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소? 그러면 일본인 요리사는 왜 세 명이나 참가하는 거요?"
이재철이 흥분하는 까닭은 중국 내의 여러 방송사에서 줄기차게 홍보를 하는 세계 요리 대회 때문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세계 요리 대회와 관련한 얘기를 들은 이재철은 두레의 셰프가 대회에 출전만 해도 적지 않은 광고 효과를 얻을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방송사에서 예고 방송을 수시로 내보냈기에 일단 참가만 하면 두레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유상혁과 전철민로 하여금 수완을 발휘해서 초청장을 얻어 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