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194화 (194/219)

<-- 194 회: 7-6 -->

하지만 고작해야 일개 성의 중급 간부들밖에 알지 못하는 그들의 능력으로는 대회의 초청장을 얻어 올 수 없었다. 더군다나 대회의 관계자들이 생각하기에 두레는 많고 많은 프랜차이즈 업체 중의 하나로, 요리 대회에 참가할 만큼 명성을 갖고 있는 곳은 아니었다.

"면목 없습니다."

"면목이 없으면 대책을 세워야 할 것 아니오?"

"하지만 대회가 사흘밖에 안 남은 지금은 방법이 없습니다."

"방법이 없다니, 그러면 이지훈이가 한식 대표로 나가는 것을 내가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오? 한낱 요리사에 불과한 자가 참가하는 대회를 TJ그룹의 계열사가 참가하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만 하지 말고 뭔가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해 보시오."

"저희라고 노력을 안 해 본 것은 아닙니다만 대회 관계자와 너무 늦게 접촉한 이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전무님, 아쉽지만 이번 대회는 포기하고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다음 기회라면, 언제요? 요리 대회가 이후에도 열린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대회 홍보를 엄청나게 하는 걸 보면 이후에도 대회를 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불확실한 다음을 기다리라는 말입니까?"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입니다."

"아니요. 난 이번 대회에 반드시 참가해야겠습니다. 중국에선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한 것은 유상혁 씨로 기억하는데 내 말이 틀렸소?"

이번 대회는 중국의 문화가 세계 최고라고 여기는 골수 중화 주의자인 모용상이 자오량을 우승시키고 지훈에게 모욕을 안겨 주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여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자오량을 제외한 참가자들은 그를 빛내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했다. 그러니 두레가 한식을 표방하는 이상 지훈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덩달아서 얻어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내막을 모르는 이재철은 돈을 사용해서라도 대회 참가권을 따내라고 했다.

"전무님의 뜻이 그렇다면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시도만으로는 안 되고 반드시 성사시키시오."

"알겠습니다. 주관 방송사의 관계자와 접촉을 해 보겠습니다."

@

이재철이 유상혁과 전철민을 닦달하고 있던 그 시각 지훈은 예고도 없이 찾아온 리아와 만나고 있었는데, 그녀의 뒤에는 미모를 자랑하는 중국 최고의 여배우 탕린이 자리하고 있었다.

"리아야, 상하이에 있는 것 아니었어?"

"오늘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바로 왔는데 내일 스케줄 때문에 다시 가 봐야 해."

"왜, 무슨 일 있어?"

"신곡과 관련해서 오빠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신곡을 언제 발표하는데? 그것, 여유 있는 것 아니었어?"

"조금 여유는 있는데, 중국 일정이 끝나면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야 해서. 그렇게 되면 시간 내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오늘 왔어."

"그러면 이메일로 보내지, 힘들게 여기까지 왔어?"

"탕린이 자가용 비행기를 내줘서 편하게 바로 왔어. 오빠도 탕린 씨는 알고 있지?"

"당연히 알지."

"인사해, 탕린. 내가 말한 지훈 오빠야."

"안녕하세요. 이지훈입니다."

"리아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요. 탕린이에요."

리아의 소개로 탕린과 인사를 나눈 지훈은 그녀들을 때마침 비워 있는 룸으로 안내했다.

"저녁은?"

"비행기 안에서 충분히 먹었어."

"다시 상하이를 가려면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좋겠지."

바쁜 스케줄에 쫓기는 리아가 안쓰러운 지훈은 그녀가 건네주는 MP3와 이어폰을 받아서 신곡으로 준비 중인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노래는 총 다섯 곡이었는데, 그중 한 곡은 지훈의 기억 속에 자리한 것이었고 다른 네 곡은 생소했다.

'첫 번째가 히트를 한 노래구나.'

회귀 전 미래의 기억을 떠올린 지훈은 가사와 리듬이 온전하게 기억나는 첫 번째 노래를 듣는 순간 그 노래가 히트한 곡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다섯 번째 곡은 낯설기는 하지만 감미로운 멜로디와 청아한 리아의 목소리가 너무 잘 어울리는 것이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다섯 번째 노래도 좋은데 이건 왜 히트가 안 되었을까?'

"오빠, 어때?"

"첫 번째 곡은 귀에 쏙쏙 들어오면서 절로 심금을 울리는 것이 무조건 히트할 것 같아."

"오빠도 첫 번째 곡이 마음에 들어?"

"응."

"또 마음에 드는 다른 노래 없어? 사실 세 곡은 외부에서 받았고 두 곡은 내가 만든 거야?"

"그래, 네가 직접 만든 곡이 어떤 건데?"

"그건 신경 쓰지 말고 오빠 마음에 드는 노래를 골라 줘. 사실 이번에는 두세 곡의 노래를 담은 싱글 음반을 발표할 생각이야."

"그렇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마지막 곡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 그 곡이 마음에 들어."

"정말?"

"응, 첫 번째 곡만 아니었다면 마지막 곡을 골랐을 거야."

"리아, 그건 네가 직접 만든 노래잖아?"

"맞아."

"어! 그 노래를 네가 직접 만들었다고? 정말 대단한데."

지훈의 입에서 마지막 노래가 좋다는 말이 나온 순간 리아와 함께 긴장하고 있던 탕린이 나서서 그 노래가 리아가 만든 곡임을 알려 줬다.

지훈의 칭찬을 받은 리아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잔뜩 흥분한 음성으로 의견을 물어 왔다.

"오빠, 그러면 첫 번째 곡과 마지막 곡으로 갈까? 기획사에서는 아예 다섯 곡을 다 수록해서 미니 앨범으로 가거나 아니면 처음 두 곡만 내자고 하고 있거든."

"난 마지막 노래가 훨씬 좋던데?"

"그래? 그러면 나도 그렇게 할래."

만약 리아가 지훈을 만나지 못했다면 첫 번째 곡과 두 번째 곡이 수록된 싱글 음반이 발표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지훈이 경험했던 다른 시간대의 미래였다.

하지만 지훈을 만나게 됨으로써 첫 번째 곡과 마지막 곡이 수록된 싱글 음반이 발표되었고, 그 두 곡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리아를 위대한 싱어 송라이터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한편 리아의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탕린이 질문을 해 왔다.

"저도 한 가지 물어도 될까요?"

"제가 중국어를 못해서 중국 노래는 잘 모르는데요."

"노래가 아니라 영화거든요."

"영화요?"

"제가 이번에 한국 영화를 함께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결정을 못 해서 갈팡질팡하고 있거든요."

"어떤 영화인데요?"

당연히 중국 노래를 물어볼 거라는 지레짐작에 손사래를 쳤던 지훈은 한국 영화라는 말에 관심을 드러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다른 시간대에서도 영화 관람을 무척 좋아했던 지훈은 한국 영화의 역대 흥행 순위를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나 내용만 들으면 그 영화의 흥행 여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역사 영화로 한국과 일본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대요."

"한국과 일본의 전쟁이 배경이라니, 정확한 시대 배경이 언제인지 알 수 있을까요?"

"조선과 일본이 싸우고 명나라가 원군으로 참전하는 전쟁으로,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해전이 영화의 주 내용이에요."

"해전이라면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영화인가요?"

"맞아요. 저는 그 영화에서 명나라 수군에 속한 여자 무사로 상당히 비중 있는 배역이에요."

"아!"

탕린의 얘기를 듣는 순간 지훈은 어떤 영화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노량 대첩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국내에서는 전무후무한 2,500만 관객을 불러 모으고 중국에서도 대성공을 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 영화의 대성공을 발판으로 이후에는 한국 영화의 세계 시장 진출이 활짝 열렸다.

"오빠, 왜 그래?"

"탕린 씨, 그 영화를 무조건 하십시오. 아! 그 영화의 제작에 저도 참여할 수 있을까요?"

"오빠가 영화 제작에 참여한다고?"

"일단 투자를 하고 싶어. 그리고 당시의 상차림이나 음식과 관련해서 고증을 해 줄 수도 있잖아."

"오빠는 그 영화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네?"

"무조건 성공해! 느낌이 팍 와! 이런 느낌을 가져 본 것은 너의 첫 번째 노래를 들은 이후 두 번째야."

"오! 그 정도로 촉이 왔다면 탕린도 무조건 그 영화에 출연하라고 해야겠네."

"장담하는데 그 영화는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을 비롯해서 미국과 유럽에서도 흥행에 성공하고, 그 영화에 참여한 배우들은 세계적인 스타가 될 거야."

너무도 확신에 찬 지훈의 모습에 탕린은 출연을 결심했다.

한편 그 영화가 전 세계 박스 오피스를 휩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지훈은 투자와 관련한 질문을 했고, 리아와 탕린의 소개로 제작사 관계자와 통화를 해서 추후 약속을 잡았다.

@

며칠의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서 대회 당일이 되었다.

통역 문제를 비롯해서 요리를 도울 조수로 유준상과 최용석을 선택한 지훈은 그들과 함께 대회가 열리는 방송국의 공개 홀을 찾아갔다.

마치 공연장처럼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공개 홀은 방청객으로 가득 찼는데, 요리 대회 시작에 앞서 중국 가수들의 축하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온누리의 이지훈 셰프 님이시죠?"

"그렇습니다."

"3번 대기실로 가십시오."

"대기실은 이쪽으로 가면 나옵니까?"

"안내는 제가 하겠습니다. 아! 이것들은 조리 도구인가요?"

"맞습니다."

"공정한 대회를 위해서 이것들은 저희에게 맡기십시오. 축하 공연이 끝나는 대로 저희가 무대에 맞게 세팅을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참! 미션과 관련한 식재료는 대회가 시작되면 지급됩니까?"

"물론입니다. 대회 시작 전에 모든 참가자에게 일괄적으로 지급할 것입니다."

대회를 진행하는 스태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지훈 일행은 그들의 안내를 받아서 3번 대기실로 갔다.

대기실의 입구에는 중국어와 영어로 참가자를 소개하는 팻말이 붙어 있었는데, 지나가면서 보니 마지막 14번 대기실에는 예상치 못한 참가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장님, TJ의 두레에서도 대회에 참가했는데요."

"그쪽도 초청을 받았나 보지."

"이것, 괜히 자존심 상하는데요."

"그러게요. 저런 '듣보잡'과 경쟁을 해야 한다니, 시작도 하기 전에 기운 빠지는데요."

지훈을 비롯한 다른 참가자와 달리 두레는 뒷돈을 써서 겨우 초청장을 받아 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지훈은 유준상과 최용석의 투덜거림을 무시하고 대기실로 향했다.

"사장님, 북한에서도 참가를 했는데요?"

"명색이 세계 요리 대회이니까 각국에서 참가했겠지."

자오량이 그러는 것처럼 지훈도 많은 참가자 중에서 오직 자오량만 의식했다. 그러나 지훈의 의식은 단순한 경쟁심이 아니라 새로운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잠시 후, 3번 대기실에 당도한 지훈은 스태프에게 받았던 안내 책자를 읽으며 대회 참가자들의 면면을 살피다가 노크도 없이 들어온 고경철과 마주했다.

"남반부 동무, 오늘 열심히 하기요."

"그쪽도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십시오."

"내래 미리 말하지만 이번 대회의 우승은 내가 차지할기요. 그래도 같은 민족인데 놀림을 안 받으려면 2등은 차지해야지 않갔소? 노력하기요."

"이 사람이 뭐라는 거야? 말이면 다인 줄 아나?"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온 고경철이 지훈을 깔보는 태도로 얘기하자 준상이 참지 못하고 쏘아 붙였다.

하지만 고경철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한참을 쫑알거리다가 나갔다.

같은 시각, 공개홀 뒤쪽의 소품실에서는 절대 벌어져서는 안 되는 추악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지훈의 짐은 어디 있소?"

"이쪽이오."

"놈은 지금 어디 있소?"

"아무것도 모른 채 대기실에 있을 것이오. 그보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으니 빨리 처리하시오."

"잠깐이면 되니 기다리시오."

대회 진행 요원의 옷을 입고 지훈의 짐으로 다가간 두 명의 젊은 사내들은 특수부대의 요원들이었다. 그들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지훈이 가져온 각종 양념류와 장류 그리고 향신료를 빈 통에 쏟아붓고는 마트에서 구해 온 다른 것들로 그 안을 채웠다.

"놈이 눈치챌 수 있으니까 병 입구에 묻은 이물질을 닦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