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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 줘 봐."
"여보시오, 누가 올 수 있으니 서두르시오."
"다 되었소."
"그것들은 밖으로 갖고 가서 버리시오."
"그럴 생각이니 걱정 마시오."
"당신도 잘 알고 있겠지만 그 누구에게도 지금의 일을 발설하지 마시오."
"입도 뻥긋 안 할 것이니 그 일이라면 걱정 마시오."
순식간에 내용물을 바꿔치기하는 데 성공한 두 명의 요원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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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길었던 축하 공연이 끝나고 대회가 시작되었다.
진행 요원의 안내를 받아 대회가 열리는 무대로 나간 지훈 일행은 사회자의 소개에 맞춰서 인사를 했다.
열네 팀이나 되는 참가자를 소개하며 제법 수다를 떨었던 사회자는 예정에도 없던 개인기를 보여 달라고 했다.
"준상아, 뭐라는 거냐?"
"개인기를 보여 달라는데요."
"무슨 개인기?"
"일종의 장기 자랑이죠."
"장기 자랑? 이게 무슨 예능인가?"
뜬금없이 개인기를 요구하는 말에 지훈이 실소를 터트리고 있을 무렵 몇몇 참가자가 노래를 하거나 중국의 연예인을 흉내 냈고, 방청객에서는 웃음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북한의 고경철이 나서서 쌍칼질을 보여 주겠다고 한 것은 그때였는데, 도마를 펼치고 두 개의 식칼을 든 그는 현란한 손놀림으로 무를 써는 묘기를 보였다.
"오~! 참으로 대단하군요. 과연 최고의 요리사를 선발하는 대회답게 개인기도 요리와 관련한 것을 보여 주는군요. 혹시 요리와 관련한 또 다른 묘기를 보여 주실 분은 없습니까?"
고경철의 개인기가 방청객의 호응을 받아서 그런지 사회자는 또 다른 참가자를 찾았고, 이번에는 자오량이 나섰다.
"내가 해 보겠소."
"오~! 이번에는 찬란한 역사를 가진 중국의 황궁 요리를 계승한 자오량 명인이 나셨습니다. 중국 최고의 요리사를 넘어 세계 최고의 요리사로 평가되는 자오량 명인이 어떤 묘기를 보여 줄지 사뭇 기대가 됩니다."
이번 대회는 중국의 황궁 요리와 자오량을 세계 최고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 때문에 사회자는 자오량이 나서자마자 그를 한껏 띄워 줬다.
한편 마이크를 넘겨받은 자오량은 자신이 보여 줄 묘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준상아, 뭐라고 하는 거야."
"생선 살과 내장을 모두 발라낸 생선이 계속해서 살아 있는 것을 보여 주겠다고 하는데요."
"역시 그것을 보여 줄 생각이구나."
"사장님은 알고 계셨어요?"
"자오량 명인이 그런 묘기를 가끔씩 보여 준다는 얘기를 누군가에게 들었다."
"그랬군요. 어! 그다음으로는 닭의 털을 뽑고 살을 발라내겠다는데요."
"닭의 살을 발라낸다고?"
"네, 닭은 그대로 살아 있고요."
"살을 발라낸 후에도 닭이 살아 있다고?"
"그렇다고 얘기하니까 그렇겠죠."
닭과 관련한 묘기는 지훈도 처음 듣는 얘기였기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라웠다.
자오량의 얘기는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는데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가온누리라는 말이 자꾸 튀어나왔다.
"사장님, 자오량 명인이 사장님도 한번 해 보라는데요."
"나도?"
"세계 최고의 요리사라면 그 정도는 기본으로 해야지 않겠냐고 얘기하는데요."
"요리만 잘하면 되었지, 잔인하게 그런 짓을 왜 해?"
문형석을 통해서 자오량이 자신의 매장에서 요리 묘기를 종종 선보인다는 얘기는 들었다. 하지만 대회에까지 나와서 그런 묘기를 선보일 줄 몰랐던 지훈은 거절의 의미로 고개를 흔들었고, 그걸 본 자오량은 다시금 뭐라고 얘기했다.
"뭐래?"
"칼질은 요리의 기본이고 칼질을 잘하면 그 정도 묘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답니다. 그런데 사장님은 칼질에 자신이 없어서 안 나오고 있답니다."
"참나, 누가 못해서 안 나가나?"
"고작 이런 것도 못하면서 어떻게 세계 최고의 요리사라고 자부할 수 있겠냐고 물어 오는데요."
유준상이 자오량의 말을 번역하는 사이 방청객에서는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무대 한쪽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는 살짝 당황한 표정의 지훈이 나왔는데, 그걸 본 일부 방청객은 야유를 토해 냈다.
"사장님, 할 수 있으세요?"
"하려면 하지."
과거라면 쉽지 않았겠지만 태국의 고승으로부터 호흡법을 배운 지금은 살아 있는 생명체에도 음양오행기를 머무르게 할 수 있다. 그러니 생명의 기운을 가득 담고 있는 음양오행기를 생선과 닭에게 주입하면 어느 정도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은 그야말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요리와 연결되는 것도 아니었고, 잔인하다는 생각에 선뜻 나가고 싶지가 않았다.
지금껏 가만히 있던 북한의 고경철이 자기가 해 보겠다고 나선 것은 그때였다.
그는 자오량이 그랬던 것처럼 지훈을 도발했고, 그걸 본 자오량도 재차 도발을 걸어왔다.
그런데 그는 중국의 황궁 요리야말로 세계 최고라면서 한국의 궁중 요리는 중궁의 황궁 요리를 흉내 낸 아류라는 근거 없는 비방을 가했다. 덕분에 온통 중국인 일색인 방청석은 후끈 달아올라서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고, 아까처럼 지훈의 얼굴이 화면에 잡힐 때면 요란한 야유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사장님, 나가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사장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요리 대회에서 사장님이 우승을 한다고 해도 다들 승복을 안 하고 자오량을 최고라고 얘기할 것 같은데요."
"사장님, 우리의 궁중 요리를 감히 아류라고 비방한 자오량의 콧대를 납작하게 꺾어 주십시오!"
4. 나도 모르죠!
결코 나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자오량의 도발을 묵묵히 받아 낸다면 우리의 궁중 요리가 중국의 황궁 요리를 흉내 낸 아류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었다. 그러니 자오량의 말을 부정하기 위해서라도 지훈은 본인도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비슷한 시각에 일본의 스즈키도 참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잠시 후, 무대 정중앙에는 중국의 자오량과 북한의 고경철을 비롯해서 일본의 스즈키와 지훈이 나란히 섰다.
"여러분, 나라를 대표해서 묘기를 보여 줄 네 명의 셰프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 주십시오."
"와아아~!"
짝짝짝~!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가 분위기를 잡고 있을 무렵 무대에는 네 개의 조리대가 세팅되었고 퍼덕이는 도미 한 마리가 놓였다.
"정식 요리 대회가 아닌 만큼 도미가 가장 오랫동안 살아 있는 순으로 순위를 매기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준비되셨습니까?"
"네."
"좋습니다. 시작해 주십시오."
사회자의 시작 선언과 동시에 네 명의 셰프는 도미의 거친 비늘을 제거하고 배를 갈라서 내장을 뽑아냈다. 그러고는 빠르고 간결한 손놀림으로 회를 뜨듯 살점을 발라내기 시작했는데, 다들 수준급의 실력을 갖고 있어서 속도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
"아! 중국의 자오량 명인이 수족관에 도미를 담았습니다. 말하는 순간 한국의 이지훈 셰프의 도미도 수족관에 들어갔습니다."
"오~!"
"와~우!"
짝짝짝~!
죽은 듯 꼼짝도 않고 있던 자오량과 지훈의 도미는 수족관에 들어가기 무섭게 헤엄을 치기 시작했고, 얼마 후에는 다른 두 사람의 도미도 수족관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비교적 평온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다른 사람의 도미와는 달리 고경철의 도미는 수족관에 들어가자마자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도미가 살아 있는 동안 이번에는 닭을 상대로 하는 묘기를 선보이겠습니다."
한동안 수족관 속의 도미를 계속해서 비추던 카메라가 다른 곳으로 이동함과 동시에 닭장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조리대가 치워지는 동안 매끄러운 진행으로 시간을 끈 사회자는 진행 요원의 큐 사인이 떨어지자 이번에는 참가자들로 하여금 닭을 가져가게 했다.
"도미와는 달리 닭은 금방 죽는다고 하는 만큼 닭으로 하는 묘기는 승부가 빨리 날 것입니다. 아! 말하는 순간 북한의 고경철 셰프의 도미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제일 끝에 섰던 지훈이 닭을 고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닭장이 철수된 순간 고경철의 도미가 죽은 것처럼 수족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는 도미는 다시금 떠올랐는데, 위아래가 바뀌어서 떠올랐다.
"아무래도 고경철 셰프의 도미는 곧 죽을 것 같습니다. 반면 다른 참가자들의 도미는 아직까지 평온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 도미 묘기는 고경철 참가자가 4위입니다."
사회자가 고경철을 4위라고 발표한 순간 카메라는 그를 잡았고, 대형 화면에는 무척 안타까워하는 그의 모습이 잡혔다.
"말씀드린 순간 스즈키 셰프의 도미가 심한 경련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 스즈키 셰프의 도미도 한계에 다다른 걸까요?"
고경철에 이어서 스즈키의 도미가 이상 반응을 보이자 카메라는 그 광경을 재빨리 찍기 시작했다.
그사이 사회자는 닭을 상대로 하는 묘기의 시작을 알렸고 네 명의 참가자는 닭털을 뽑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렵게 닭의 털을 뽑는 고경철과 스즈키와는 달리 지훈과 자오량의 닭은 마치 죽은 것처럼 쭉 늘어져서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
"이지훈 셰프와 자오량 명인은 닭은 기절시키고 털을 뽑는 것 같습니다. 반면 고경철 셰프와 스즈키 셰프는 산 채로 닭털을 뽑고 있는 관계로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저런! 스즈키 셰프의 닭이 탈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묵묵히 닭털을 뽑아내는 지훈, 자오량과는 달리 고경철과 스즈키는 아예 닭과 씨름을 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스즈키의 닭은 탈출을 감행했다.
덕분에 방청객에서 요란한 웃음이 터져 나왔는데, 그게 계기가 되었는지 스즈키는 기권을 선언했다.
하지만 고경철은 닭 목을 비틀어 가며 계속해서 털을 뽑았다.
"오! 빠릅니다. 어느새 닭털을 모두 뽑은 자오량 명인과 이지훈 셰프는 살을 발라내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고경철 세프는 여전히 털을 뽑고 있는데, 언제 끝날지 끝이 안 보입니다."
"하하하~!"
살기 위해서 도망치려는 닭과 기어이 털을 뽑고자 하는 고경철의 모습은 한편의 블랙코미디와도 같아서 방청객 사이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고 터져 나왔다.
결국 우격다짐으로 기어이 닭털을 모두 뽑은 고경철은 칼등을 사용해서 닭의 머리를 몇 대 쳐서 쓰러트리고는 살을 바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채 몇 점도 썰기 전에 비명과도 같은 울음을 터트리며 일어난 닭은 도저히 믿기지 않은 엄청난 속도로 조리대를 벗어나서 방청석으로 도망쳤다.
"내래 포기하겠소."
"일본의 스즈키 셰프에 이어서 북한의 고경철 셰프도 포기를 했습니다. 이로써 닭을 이용한 묘기도 자오량 명인과 이지훈 셰프의 대결로 압축되었습니다."
"아!"
"오~!"
사회자가 고경철의 기권을 알리는 순간 방청객들이 아쉬움이 담겨 있는 탄식을 터트렸다.
동시에 카메라는 자오량의 수족관을 잡기 시작했는데, 지금껏 평온하게 있던 도미가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반면 지훈의 도미는 여전히 평온한 모습으로 수족관 안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아쉽게도 자오량 명인의 도미가 이상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 곧 죽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닭이 남아 있는 만큼 묘기를 계속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방청객의 반응을 통해서 도미의 상태를 알아차린 자오량은 무표정하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제일 끝에 있는 지훈과 그의 수족관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놈! 닭에서는 내가 이길 것이다.'
도미에서 패배한 이상 닭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문 자오량은 아까보다 더욱 빨라진 손놀림으로 닭의 살을 발라냈다.
"나는 끝났소."
"오! 이번에도 자오량 명인이 가장 빨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