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회: 7-11 -->
"오늘 오전에 중국에 당도한 이지훈의 뒤를 쫓고 있습니다."
"박 계장에게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말라고 해."
"알겠습니다."
수사가 생각만큼 진척이 안 되는 통에 답답해진 위승환이 부하 직원을 닦달하고 있을 무렵 베이징 매장에 당도한 지훈은 자신을 찾아온 박용성을 만나고 있었다.
"박 사장님, 연락도 없이 어떤 일이십니까?"
"때마침 이지훈 사장님이 중국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찾아왔습니다."
"또 요리를 배우시게요?"
"그게 아니고 이 사장님을 모시고 갈 데가 있습니다."
"저와 같이 갈 곳이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오늘은 이 사장님에게 아주 특별한 분을 소개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아주 특별한 분이라니 누구입니까?"
"그건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박 사장님, 대체 누구기에 얘기를 못 하는 것입니까?"
"아주 중요한 분입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누굽니까?"
"죄송하지만 그분이 누구인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장님에게 해가 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니, 저를 믿고 함께 가 주십시오."
오래간만에 만난 박용성이 반가운 지훈은 평소와 다름없이 반갑게 대했다. 그런데 박용성은 무슨 일인지 무작정 어딘가를 함께 가자고 하며 지훈을 재촉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가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세계 최고의 셰프가 해야 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가서 요리를 하라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을 이쪽으로 모셔 와도 되잖습니까?"
"그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했겠지만 사정상 모셔 오기 어렵기에 이리 부탁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사장님이 함께 가 주신다면 충분한 사례를 할 것입니다."
"사례를 떠나서 요리를 하려면 식자재부터 주방까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것들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이 사장님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은 이 사장님의 요리를 간절히 드시고 싶은 마음에 어려운 줄 알면서도 오늘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어딘가를 함께 가자는 박용성의 얼굴에는 간절함과 함께 진심이 뚝뚝 묻어났는데 그게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가온누리를 직접 찾아올 수 없다는 말에 어쩌면 중환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냥 거절하기가 어려웠던 지훈은 결국 박용성을 따라나섰다.
@
지훈을 태운 박용성의 차는 온갖 차들과 오토바이 그리고 전기 자전거가 얽혀서 좀처럼 움직이기가 어려운 시내로 진입했다.
"박 사장님, 도심으로 들어가는 겁니까?"
"그분이 그쪽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어차피 따라나선 이상, 이제는 그분이 누구인지 얘기해 주셔도 되는 것 아닙니까?"
"가 보시면 압니다!"
"여기까지 왔는데도 비밀입니까?"
"죄송합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가서 어떤 요리를 해야 하는 겁니까?"
"그분은 이 사장님의 궁중 요리에 관심이 많고 예전에 미국의 오바나 대통령이 드셨다는 음식도 드시고 싶어 하십니다."
"재료만 준비되어 있다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도대체 지훈은 부른 이가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함께 따라나섰음에도 박용성은 끝끝내 알려 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차는 계속해서 도심으로 진입하더니 베이징 최고의 변화가인 왕푸징 거리에 들어섰다.
"이 사장님, 거의 다 왔습니다."
"다 왔다면 베이징 호텔로 가는 것입니까?"
"일단은 그렇습니다."
"일단은 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다 왔으니 궁금해도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이해하기 어려운 대답을 했던 박용성은 차를 베이징 호텔의 지하 주차장에 주차시킨 후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이지훈 셰프를 모시고 왔습니다."
-지금 어디인가?
"베이징 호텔 지하 주차장 3층입니다."
-사람을 보낼 테니 그쪽에서 기다리고 있게.
"알겠습니다."
박용성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린 지훈은 설명을 바라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박용성은 겸연쩍어하는 표정으로 살짝 미소를 그리더니 잠깐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양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 세 명이 지하 주차장에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였고, 그들을 발견한 박용성은 자동차의 쌍라이트를 깜박여서 신호를 보냈다.
"아! 안내를 해 줄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사장님도 그분을 뵈면 저의 이런 행동을 이해할 것입니다. 가시죠."
한발 앞서서 걸음을 옮기던 박용성은 세 명의 사내 중 40대로 보이는 사내와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하고는 그에게 지훈을 소개했다.
"여기 계신 분이 이지훈 셰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지훈입니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수다. 이제부터는 우리래 안내하갔시오."
"이 사장님, 가시지요."
박용성과 나란히 선 지훈이 40대 사내의 뒤를 따르는 동안 다른 두 명의 사내는 세 사람을 호위하듯 앞과 뒤에 섰다.
몸에 익은 듯 무척 자연스러워 보이는 그들의 행동과 몸가짐을 보는 순간 지훈은 절로 경호원을 떠올렸다.
한편 지훈이 사라진 지하 주차장에는 약간의 간격을 두고 따라서 들어온 자동차에서 두 명의 사내가 내렸다.
"박 계장님, 이지훈은 어디로 갔을까요?"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아까 박용성과 악수를 나눈 자는 누구일까요?"
"글쎄, 처음 보는 얼굴이었어. 하지만 일반 경호원들은 절대 아닐 거야."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자연스럽게 군기와 살기가 느껴지는 것이 잘 훈련된 군인 같았습니다."
"나도 그렇게 느꼈어."
"박 계장님도 그렇게 느꼈다면 혹시 북한의 특수 요원들이지 않을까요?"
"그래, 그럴지도 몰라."
사라진 지훈에 대해서 계속 얘기를 하는 두 명의 사내는 5국 7과의 요원들인 박상호와 이현수였다.
그들은 지하 주차장까지 배웅을 나온 세 명의 사내가 북한의 특수 요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쁘게 로비로 올라갔다.
그러나 드넓은 로비 어디에도 지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는지 안 보입니다."
"차를 지하 주차장에 파킹한 이상, 호텔 어딘가에 있겠지."
"사무실에 연락해서 호텔 투숙객의 명단을 확인해 북한의 누가 머무르고 있는지 알아보라고 할까요?"
"이곳은 명색이 중국 최고의 호텔이라 투숙객 명단을 빼내기가 어려울 거야."
"밑져야 본전이니까 시도는 해 보라고 하죠."
"그렇게 하고, 자네는 2층을 샅샅이 뒤져 봐."
"1층은 계장님이 확인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자고. 그리고 2층에 없으면 8층과 9층의 식당을 뒤져 봐. 그사이 나는 호텔의 입구를 계속 감시하지."
"알겠습니다."
두 명의 요원은 빠르게 흩어져서 커피숍과 바를 비롯해서 호텔 내의 매장을 살피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호텔의 로비를 통해서 밖으로 나간 지훈은 관리가 잘된 아름다운 정원을 지나쳐서 울타리처럼 나무가 빽빽하게 자란 곳으로 계속 걸어갔다.
"어디까지 가는 거죠?"
"일반 이용객들은 여기가 호텔의 끝인 줄 알고 있는데, 실상은 다릅네다."
"다른 뭔가가 있다는 말입니까?"
"기렇습네다. 이 정원을 넘어서면 울창한 숲에 가려진 스튜디오 룸이 자리하고 있습네다."
"스튜디오 룸요?"
"가 보시면 압네다!"
또 다른 객실이 있다는 말에 사내들의 뒤를 따랐던 지훈은 완만하게 휘어지며 계속해서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나무 울타리를 따라 한참을 들어갔다.
지훈의 눈에 놀라운 광경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오! 이런 곳이 있었습니까?"
"건물의 각도 때문에 객실에서도 이곳이 보이지 않지만 도심에 어울리지 않게 쭉쭉 뻗은 나무와 빽빽하게 자리한 나무 울타리 덕분에 그 어디에서도 이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꾸불꾸불한 나무 울타리가 끝난 곳에는 대저택을 연상시키는 2층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광경을 처음 본 지훈은 탄성을 터트렸다.
그사이 박용성은 이미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설명을 덧붙였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중국을 찾는 각국 정상들이 이곳을 숙소로 종종 이용한다고 했다.
6. 위원장님 맘대로 하십시오!
스튜디오 룸에 다가간 지훈은 수문장처럼 그 앞을 지키고 있던 여러 명의 사내들과 마주했다. 여덟 명에 달하는 그들은 지하 주차장에서 이곳까지 지훈을 안내해 준 이들처럼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는 것이 경호원 같았는데, 공항에서 사용하는 검색 봉을 들고 다가왔다.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는 누구나 하는 절차이니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신기한 곳에 머물고 계시는 그분의 정체가 누구인지 참으로 궁금하군요."
"들어가 보면 아시겠지만 이 사장님도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검색 봉을 이용한 몸수색을 당하는 동안 지훈은 스튜디오 룸에 머물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추측하기 시작했다.
'설마 그 사람일까?'
지훈의 뇌리에 떠오른 사람은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북한의 김정문 국방위원장이었다. 이는 비밀스러운 스튜디오 룸을 각국의 정상들이 종종 이용한다는 점과 건장한 사내들의 몸가짐에서 잘 벼린 칼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 통에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사내들의 말투에서 진한 북한 억양이 묻어 나와서도 더욱 그랬다.
하지만 여전히 몇 가지가 의문스러웠다.
먼저 북한의 김정문 국방위원장이 자신을 만나려 한다는 점이 이상했고 심지어 자신을 알고 있을 리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재일 교포 3세로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을 오가는 박용성이 북한의 최고 권력자를 알고 있을 리 없었다.
'대체 누구지? 연변 지역을 관리하는 중국의 고위층 인사일까?'
연변에는 많은 조선족이 살고 그들의 말투는 북한의 말투와 거의 흡사하다. 그 때문에 지훈은 어쩌면 연변 지역을 관리하는 고위층 인사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에 무게를 뒀다.
"들어가시라요."
"이 사장님, 들어가시죠."
"미리 말하지만 례의를 지켜 주시라요."
"내가 아는 이 사장님은 점잖으신 분이니까 그 점은 걱정 안 해도 좋소."
검색을 끝내고 스튜디오 룸 안에 들어간 지훈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사내와 마주한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훈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는 지난달 세계 요리 대회에서 만났던 고경철이었다.
"이지훈 동무, 어서 오기요. 내래 동무가 당도하기만을 무척 기다렸시요."
"고경철 씨."
"와 그렇게 토끼처럼 놀란 눈을 하는 기요? 아! 아무것도 모르고 여기까지 온 기요?"
"박용성 씨,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미리 말씀드려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대체 날 이곳으로 데려온 저의가 뭐요?"
세계 요리 대회에 북한 대표로 참가했던 고경철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아까 잠깐 떠올렸던 추측대로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때문에 깜작 놀란 지훈은 자신을 이곳까지 데려온 박용성을 쳐다보며 따지듯 물었다.
"저의라니요? 오해 마십시오. 국방위원장 동지께서 이 사장의 요리를 너무도 드시고 싶어 하셔서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 말은 나의 무사귀환을 보장한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신 것에 대한 충분한 사례도 지급할 것입니다."
무사 귀환을 보장한다는 말에 지훈은 일단 안심했다.
하지만 그 부분과 관련한 보장을 받자마자 박용성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기업가가 북한의 최고 권력자를 알고 있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박용성 씨의 정체가 뭡니까?"
"아시다시피 사업을 하는 기업가입니다."
"허튼소리 말고 사실대로 얘기하시오. 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