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200화 (200/219)

<-- 200 회: 7-12 -->

"남한 사람인 이 사장님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대외연락부의 고위 간부인 저는 간첩일 수 있습니다."

"이런!"

"하지만 저는 '외화벌이'에 집중하는 무역 일꾼이지, 대남 사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의 국적도 법률상으로는 일본입니다."

"어쨌든 북한의 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잖소?"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을 밝히지 않은 것은 죄송합니다. 하지만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미리 말하지만 여기서 나가면 우리 정부에 박용성 씨가 북한 기관의 간부라는 사실을 알리겠소."

"그건 상관없습니다. 아마 남한의 요원들도 저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일은 알리지 않은 것이 좋을 것입니다."

"무슨 말이오?"

"이미 노출된 나와 만난 건 알려 봐야 별 의미도 없습니다. 하지만 국방위원장 동지를 직접 만난 사실을 알리게 되면 남한 정부에서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설마 우리 정부에서 날 간첩 혐의로 잡아간다는 것이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점을 걱정해서 은밀하게 모셨습니다. 장담하건대 오늘의 일은 이 사장님이 얘기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사실을 안 알릴 수는 없소."

"돌아가실 때는 더욱 은밀하게 모실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위원장 동지가 중국을 방문한 사실은 극비 중의 극비라 아무도 모르고 있는 만큼 그냥 함구하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

"이지훈 동무, 그렇게 하기요. 박용성 동무도 그렇지만 나도 이지훈 동무가 다치는 것은 싫소."

"우리 정부는 사실대로 얘기하면 내 말을 믿어 줄 것이오."

박용성과 고경철의 눈에는 지훈을 걱정하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훈은 걱정 말라는 표정으로 다시금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20대로 보이는 뚱뚱한 사내가 나온 것은 그때였는데 그는 TV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김정문 국방위원장이었다.

"무슨 일 있소? 왜 이리 시끄러워."

"위원장 동지, 나오셨습네까."

"위대한 영도자, 위원장 동지를 뵙습니다."

"이 동무가 남조선의 이지훈 셰프입네까?"

워낙 살집이 많은 체형 때문에 걸음걸이가 많이 불편해 보이는 그는 자신을 보고 놀라는 지훈을 먼저 알아보고 다가왔다.

"이 사장님, 어서 인사를 올리십시오."

"이지훈 동무, 위원장 동지께 날래 인사를 드리지 않고 뭐하는 기요?"

"안녕하십니까, 이지훈입니다."

"하하하, 어서 오기요. 내래 동무의 명성은 진즉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시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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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문 국방위원장은 잘 꾸며진 접견실로 지훈을 안내했는데 박용성도 따라 들어왔다.

접견실에는 예전에 한번 만난 적 있는 림용순도 자리하고 있었는데, 여전히 당황하고 있던 지훈은 김정문 국방위원장이 내주는 커피를 마시고서야 마음을 추슬렀다.

"이지훈 동무,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갔소. 내래 동무를 여기까지 부른 이유는 딱 한 가지요. 동무래 해 주는 요리를 먹어 보고 싶소. 해 줄 수 있갔소?"

"이 사장님, 아까도 얘기했지만 국방위원장 동지의 중국 방문은 극비입니다. 그래서 가온누리를 찾아가지 못한 것이니까 이해를 해 주십시오."

"어떤 요리를 하면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김정문에게 직접 얘기하는 것이 불편했던 지훈은 옆에 있는 박용성에게 물었는데 대답은 김정문이 직접 했다.

"내래 동무의 요리 실력이 하늘에 닿을 정도로 출중하다는 얘기를 고경철 동무에게 들었소. 특히 지난번에 만들었던 두부전골은 가히 천상의 맛이라고 하던데, 그걸 만들어 주면 좋갔소."

"위원장 동지, 제가 서울에 있는 가온누리 본점을 몇 번 가 본 적이 있는데 불고기와 떡갈비도 아주 맛있었습니다."

"기렇소? 기렇다면 그것도 먹어 볼 수 있으면 아주 좋갔소."

"위원장 동지, 화로에 구운 고기지짐도 아주 좋아하시잖습니까? 이지훈 동무가 온 김에 기것들도 요리를 하라고 하는 것이 어갔습네까?"

요리 이야기가 나오자 박용성과 림용순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런데 김정문이 좋아한다는 요리는 하나같이 육식이었다.

'이렇게 육식을 좋아하니 자꾸 건강에 문제가 생기나 보구나.'

김정문을 비롯해서 박용성과 림용순의 얘기를 듣던 지훈은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의 기억을 더듬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내가 알고 있는 미래와 다르지 않은 결과가 나오겠어.'

지훈의 기억에 의하면 김정문은 11년 후에 지병으로 죽는다. 그런데 그 지병이란 것이 자신의 아버지나 조부가 그랬던 것처럼 심근경색이었고, 그 원인은 지나친 육류 섭취와 음주였다.

물론 그것 외에도 과도한 스트레스도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겠지만 비만과 고혈압 그리고 고지혈증과 동맥경화가 심장마비의 이유였다.

아울러 방금 열거했던 병들은 과음, 지나친 육류 섭취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래도 이 사람이 권력을 잡고 있는 동안에는 남북한의 긴장 관계가 많이 해소되고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었었는데…….'

조부와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권력을 승계받은 김정문은 유년 시절부터 청소년기를 유럽에서 보냈다. 그래서 아버지나 할아버지에 비해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았고, 그건 남북 관계의 개선을 가져왔다. 그 덕분에 남북한은 스포츠 분야부터 시작해서 경제의 여러 분야까지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것들은 남북한의 긴장 관계를 완화시키고 평화의 분위기를 가져왔다.

아울러 금강산만이 아니라 여러 관광지를 남한에 개방했고 이산가족의 왕래까지 허락했다.

하지만 김정문이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그러한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다시금 일촉즉발의 위기와 무거운 긴장감이 한반도를 휘감았다.

'이 사람의 여동생은 군부 강경론자들에게 놀아났어.'

김정문이 죽으면서 권력은 그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차지했다.

그런데 김여정은 군부 강경론자의 지지에 힘입어 권력을 차지했다. 그렇다 보니 그녀는 군부 강경론자의 의도대로 남북한 관계를 경색시키고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 탓에 남한은 북한의 위협에 맞서 군비 강화에 힘쓸 수밖에 없었고, 과도한 국방비 지출로 경제가 나날이 악화되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이 사람이 권력을 계속 잡는 것이 남한, 아니 우리 민족을 위해서도 좋은데…….'

아직은 다가오지 않은 미래이지만, 미래의 많은 이들은 김정문의 급사를 아쉬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권력을 잡았을 때와 그 사후가 너무도 비교가 되는 만큼 차라리 김정문이 계속 권력을 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많이 했었다.

'그래, 우리 민족 전체를 위해서라도 이 사람의 건강을 챙겨 주는 게 좋겠어.'

김정문이 40대의 젊은 나이에 급사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훈은 우리 민족을 위해서도 이번 기회를 적극 이용하기로 마음먹고는 한마디 했다.

"국방위원장님, 제가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뭐요, 해 보시오."

"제가 보기에 국방위원장님의 건강 상태는 많이 나쁜 것 같습니다. 제 짐작이 정확하다면 국방위원장님은 고혈압과 동맥경화증에 고지혈증과 지방간을 앓고 있을 것입니다."

"이……이 사장님."

"박용성 동무 나서지 말기요. 맞소! 내래 그런 병들을 앓고 있는데 그게 어쨌다는 기요?"

"전 의식동원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요리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식동원이라니, 그게 무신 소리요?"

"음식과 의약의 근원이 같다는 얘기입니다."

"그게 어떻다는 기요?"

"국방위원장님의 건강을 위한다면 앞으로 육식과 음주는 자제를 해야 합니다."

"이지훈 동무는 마치 의사 동무처럼 얘기하는구먼."

"의사들도 위원장님의 건강 상태가 우려스럽기에 그런 말을 했을 겁니다."

"기렇겠지. 그런데 기래서 요리를 못 하겠다는 기요?"

"아뇨! 이렇게 된 것, 제가 반드시 요리를 해서 위원장님의 건강을 회복시켜 놓겠습니다. 하지만 건강이 좋아진다고 해도 앞으로는 육류 섭취와 음주를 줄여야 합니다."

"동무, 건강을 회복시키겠다니 그게 무신 소리요?"

"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요리한 음식을 드시게 되면 위원장님의 건강 상태는 지금보다는 훨씬 좋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아까 말한 것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위원장님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질 것이고 끝내는……."

"왜 말을 하다 마는 기요?"

"길어야 10년입니다."

"기렇니까 내래 10년 후에는 죽는다는 기요?"

"그렇습니다."

"이……이 사장님!"

"이 동무래, 어디서 그런 망발을 하는 기야! 죽고 싶어?"

미래를 알고 있는 지훈은 굳이 말을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경고했다.

지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걱정과 염려가 담긴 박용성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분노한 림용순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당사자인 김정문은 자신이 10년 후에 죽는다는 말보다는 당장의 건강이 좋아진다는 말에 주목했다.

"동무, 내래 건강이 좋아질 거라고 기랬소?"

"그렇습니다."

"동무래 하는 요리를 먹는다고, 내래 건강이 좋아진다고?"

"드시고 나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좋소! 동무 말대로 기렇게 된다면 앞으로 육류와 음주를 줄이지. 하지만 동무 말대로 안 되면 그때는 어드렇게 할 생각이오?"

"위원장님 맘대로 하십시오!"

"내 맘대로 하라고?"

"그렇습니다."

"좋소, 기렇게 하지. 아! 미리 말하지만 내 주치의 동무래 여기까지 동행했으니 내일이면 결과가 바로 나올기요."

"바라던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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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문과 일종의 내기를 한 지훈은 고경철과 몇몇 요리사의 도움을 받아서 바로 요리에 들어갔다.

각국의 정상들이 주로 묵는 스튜디오 룸이라 그런지 내부에는 별도의 주방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 안에는 북한에서 직접 가져온 최고급 식자재가 즐비했다.

"이지훈 동무, 이것들은 다 다졌는데 다음은 어드렇게 하면 되갔소?"

"고기를 살짝 볶아 주시오."

"알갔소."

지훈은 고경철을 비롯한 북한 요리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김정문이 먹고 싶다는 모든 요리를 다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잘한 일은 그들에게 시켰는데, 대신 모든 과정에 음양오행기를 세분화해서 주입시켰다.

얼마 후, 두부전골과 불고기를 비롯해서 떡갈비와 맥적 그리고 신선로를 모두 요리한 지훈은 그것을 보기 좋게 플레이팅을 했다.

"이지훈 동무, 요리계의 피카소라는 평가를 받더니 과연 아름답구먼. 내래 세계 각국을 돌아봤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상은 오늘이 처음이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고 하잖습니까? 어서 드셔 보십시오."

"기러지. 그런데 이것들도 육류로 가득한데 이것들을 먹는다고 내 건강이 좋아질 수 있는 기요?"

"그래서 육류의 콜레스테롤과 지방을 감소시키는 야채와 과일을 충분하게 사용했습니다. 우선 드셔 보십시오."

"림용순 비서도 앉기요. 자고로 음식은 같이 먹어야 맛있는 것 아니겠소? 함께 듭세다."

"감사합네다."

림용순과 함께 식탁에 앉은 김정문은 음식을 먹기 시작했는데 결코 적지 않은 양의 음식을 거의 다 먹었다.

묵묵히 그 광경을 지켜본 지훈은 기회가 생기면 소식과 관련한 얘기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같은 시각, 호텔의 로비에서는 박상호와 이현수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대리, 사무실에서는 뭐래?"

"투숙객 명단을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면 박용성이가 묵는 객실만이라도 알아보라고 해."

"그건 진즉에 얘기했는데 박용성은 이 호텔에 투숙을 안 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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