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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성이가 이 호텔에서 투숙을 하지 않고 있다면 또 다른 제3자를 만나고 있다는 얘기잖아?"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할 텐데 답답하군."
"계장님, 우선은 지원을 요청해서 박용성의 차와 호텔의 로비를 밀착 감시해야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여기서 마냥 죽치고 있다가는 호텔의 직원들이 우리를 의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겠지. 사무실에 연락해서 지원 요청을 하면서 교대 요청까지 해."
"알겠습니다."
지훈이 누군가와 접선하고 있다는 생각에 몸이 달은 박상호는 사무실에 지원 요청을 하게 하고는 신문을 보는 척하면서 호텔 구석구석을 감시했다.
그 무렵, 식사를 끝낸 김정문은 지훈이 직접 끓인 홍삼차를 훌쩍이고 있었다.
"이지훈 동무, 홍삼차도 맛이 아주 좋구먼?"
"개성 인삼이 조선 최고라고 하더니, 오늘 보니 그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렇지! 조선의 삼 중에서는 개성 인삼이 최고이디. 갈 때 넉넉하게 싸 줄 테니 가져가라우."
"고맙습니다."
"듣자니 가온누리가 중국에서 대성공이라지? 그리고 태국에도 진출해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좋은 파트너를 만나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위원장님, 이 사장은 중국과 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도 진출할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라면 어디를 말하는 기요?"
"내년에는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그리고 일본을 진출할 생각이고 내후년에는 미국을 진출할 생각입니다."
"많은 외화를 벌 생각에 세계 각국으로 진출하는 기요?"
"그것도 있습니다만 중국과 일본처럼 우리의 한식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한식을 널리 알리다니 좋은 생각이오. 기런데 외화는 얼마나 벌어들이고 있는 기요?"
"충분히 만족할 정도입니다."
"이 사장님, 위원장 동지께서는 이북의 음식을 주 메뉴로 하는 프랜차이즈를 설립해서 세계 각국으로 진출시키고 싶어 합니다."
"프랜차이즈를 설립한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해외 진출에 성공한 이 사장님의 경험과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 하십니다."
유럽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김정문은 현재의 폐쇄적인 경제구조와 무기 판매만으로는 지금의 경제난을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과거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었는데, 북한의 기술력으로는 당장 성과를 낼 수 있은 것이 없었다.
게다가 테러 국가로 낙인찍힌 이미지를 벗기 전에는 세계시장에 진입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당장은 외식 프랜차이즈를 설립해서 해외에 진출시키고 거기에서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외국의 자본과 기술력을 도입해서 공업을 발전시킬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한편 미래를 경험했던 지훈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서 김정문이 프랜차이즈를 설립한데 그치지 않고 나중에는 한국의 자본과 기술력을 받아들인 사실을 떠올렸다.
'맞아! 이 사람이 집권을 하면서 기존의 개성 공단 외에 원산 공단까지 생겼어. 그리고 자유무역 지구로 지정된 그곳이 활성화되면서 북한만이 아니라 우리 경제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어.'
"이지훈 동무, 도와줄 수 있겠소?"
"원하신다면 도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뭐요?"
"위원장님께서는 프랜차이즈 설립을 시작으로 이후에는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여서 북한의 경제를 일으킬 생각을 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기렇소."
김정문의 이후 행보를 잘 알고 있는 지훈은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를 바탕으로 노골적인 제안을 했다. 그건 굳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남한의 기술력과 자본을 받아들이라는 내용이었고, 이를 위해서 북한이 반드시 보장해야 할 조건들을 나열했다.
마음 한편으로 남한과의 협력을 생각하고 있던 김정문은 지훈의 제안이 흥미로웠는지 그와 얘기를 계속 나누었고, 그러는 사이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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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던 별빛이 급격하게 흐려지면서 새까맣기만 하던 하늘은 어느새 파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화단의 여린 풀잎이 가볍게 휘날리는 동안 밤새껏 맺혀 있던 이슬은 찬란한 아침햇살을 튕겨 내며 보석처럼 영롱한 빛을 뿜어냈다.
"이지훈 동무, 정말 그렇게 될 수 있갔소?"
"우리는 같은 민족이잖습니까? 먼저 대화를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불신은 빠르게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동무는 우리래 힘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요?"
"어렵겠죠.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믿을 수만 있다면 남북한은 그야말로 최고의 파트너이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기랬소?"
"그렇습니다. 언제까지 같은 민족이 남북으로 갈려서 서로 총부리를 겨눌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너무도 오랜 세월을 갈라져 지낸 만큼 동무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기요."
"그렇다고 시도도 해 보지 않고 포기할 수는 없잖습니까? 단언하건대 남한의 협력을 얻어야만 위원장님 의도대로 북한의 세계 무대로의 진입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밤새 김정문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던 지훈은 산책을 하자는 그의 제안에 스튜디오 룸 밖의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김정문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박용성과 림용순은 물론이고 경호 요원들도 떨어트려 놓은 채 오직 지훈만을 대동했다.
그런데 얘기가 이어질수록 가슴속의 깊은 얘기를 꺼내 놓더니 나중에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해 왔다.
"이지훈 동무, 평화의 사절이 될 수 있갔소?"
"무슨 말씀인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듣기로 남조선의 박미혜 대통령도 가온누리를 종종 찾는다고 들었소."
"사실입니다."
"내가 박미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친서를 써 줄 테니 그것을 전달해 줄 수 있갔소?"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알고 있는 만큼 가능할 것입니다."
"좋소, 부탁하갔소."
"위원장 동지, 아직은 날이 찬데 이만 들어가시는 게 어떻겠습네까?"
"이지훈 동무, 들어갑세다."
얘기가 제법 길어진 통에 림용순이 나와서 한마디 했다.
이미 나눠야 할 얘기를 모두 마친 김정문은 친서를 쓸 생각인지 성큼성큼 걸어갔고 그 뒤를 따른 지훈은 미리 대기 중이던 북한의 요리사들과 합심해서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양복을 입고 안경을 쓴 중년 사내가 김정문이 들어간 집무실에서 나온 것은 그맘때였는데 그는 누군가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요리를 하던 지훈이 김정문을 다시 만난 것은 아침 식사를 할 때였는데 김정문은 함께 먹자며 지훈에게 자리를 권유했다.
"이지훈 동무, 만약 일이 잘 풀리면 평양에 가온누리를 열어 보는 게 어떻겠소?"
"평양에요?"
"이렇게 맛난 음식을 다시는 못 먹는다는 생각을 하니 내래 무척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데, 동무 생각은 어드렇소?"
"기회가 된다면 그리하겠습니다."
"약속한기요."
"알겠습니다."
"참! 주치의 동무 말로는 내래 혈압이 많이 떨어졌다는데 어드렇게 한 거요?"
"요리할 때 몸에 좋은 야채와 과일을 사용해서 그렇습니다."
"그것은 이북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단순히 고것만으로 그런 변화가 온다는 기요?"
"제가 갖고 있는 재주를 살짝 부리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반드시 육류 섭취와 음주를 자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식사량도 줄이시는 게 좋습니다."
"고기만이 아니라 먹는 양도 줄이라는 기요?"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위원장님의 식사량은 보통이 아닙니다. 게다가 지병으로 소화 능력도 떨어졌는데 많은 식사량은 위에 큰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비만으로 이어집니다."
"조선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데 너무한 것 아니요?"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서서히 줄이시면 이내 적응하실 수 있습니다."
지훈이 소식을 할 것을 권유하고 있을 무렵 누군가가 들어와서 림용순에게 뭐라고 속닥거렸는데 무슨 내용인지 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위원장 동지, 기뻐하시라요."
"무슨 일인데 그러는 기요?"
"병원으로 간 의사 동무에게 보고가 들어왔는데, 위원장 동지의 건강 상태가 많이 양호해졌답네다. 특히 혈당과 고지혈증이 혁혁하게 좋아졌답네다."
"기래요? 이지훈 동무, 대체 어드렇게 한 거요? 끝까지 얘기 안 해 줄기요?"
"오늘은 그냥 넘어가고 나중에 위원장님을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는 알려 드릴 것이니, 제가 당부한 말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김정문은 혈압이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종종 그런 적이 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혈당과 고지혈증 수치가 대폭 떨어졌다는 보고를 받게 되자 그냥 넘길 수가 없어서 그 연유를 물었다.
하지만 자신의 비밀을 다 까발리고 싶지 않은 지훈은 다음을 핑계로 유야무야 넘겼고, 다행히 김정문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렇게 아침을 함께 먹은 지훈은 김정문의 자필 친서를 받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이지훈 동무, 어디로 갈 생각이오?"
"위원장님의 친서를 대통령 각하께 최대한 빨리 전하는 게 제 의무인 것 같습니다."
"바로 공항으로 갈 생각이오?"
"그렇습니다."
"림용순 비서 동무, 이지훈 동무를 날래 공항까지 바래다주고 오기요."
"알갔습네다."
"괜찮습니다. 시내인데 알아서 갈 수 있습니다."
"그러지 말고 내 차를 타고 가기요. 동무래 내 몸을 챙겨 줬는데 내래 뭐라도 해야 하지 않갔소?"
김정문의 권유로 림용순과 함께 나간 지훈은 스튜디오 룸 뒤쪽의 또 다른 출구를 이용해서 공항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림용순은 돈이 들어 있는 두둑한 봉투를 건넸는데 지훈은 끝까지 사양했다.
한편 지하 주차장과 호텔의 로비 그리고 가온누리 베이징 매장을 지키고 있던 5국 7과 요원들은 지훈의 출국도 모르고 마냥 죽치고 있다가 오후 늦게야 그 사실을 알고 철수했다.
7. 결국 내가 갈 수밖에 없어!
인천공항에 당도한 지훈이 공항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을 무렵 이재철은 두레의 1/4 분기 실적을 보고받고 있었다.
"국내는 소폭으로라도 매출이 증가하고 있군요."
"이제는 어느 정도 인지도를 확보한 상황이라 안정적인 영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니 매출을 증진시킬 수 있는 대책을 수립하세요."
"알겠습니다."
"중국 지사는 어떻습니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결과가 좋지 못합니다."
"결과가 좋지 못하다니 무슨 말입니까?"
"2월을 기점으로 줄어든 매출이 3월에는 더욱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내보다 중국 시장 개척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 오히려 매출이 계속 하락을 하고 있다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두레의 중국 진출은 이재철이 강하게 밀어붙여서 결정된 일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중국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빼앗아 간 이재만을 의식한 이재철의 반격이었다.
그렇기에 자금을 비롯한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광고를 비롯한 마케팅도 빵빵하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애쓴 보람이 있었는지 초반에는 기대 이상의 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음식 사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맛이었는데, 이재철의 두레는 그 부분에서 많이 떨어졌다.
솔직히 아무리 한류 스타를 내걸고 광고를 요란하게 해도 중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뭔가가 부족했다. 그러니 반짝했던 처음과는 달리 갈수록 매출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더군다나 중국의 핵심 대도시에는 가온누리가 자리하고 있었고, 지훈의 명성을 잘 알고 있는 중국인들은 가온누리의 맛을 한국의 대표 맛으로 인정했다. 그래서 두레를 이용할 바에는 조금 무리해서 차라리 제대로 된 한국의 맛을 보기 위해서 가온누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