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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집무실로 들어온 지훈에게 일종의 사과를 하는 이는 국가정보원장이었다.
왜냐하면 친서에는 김정문이 지훈을 만나게 된 이유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친서에 의하면 김정문은 세계 최고의 요리사로 평가받는 지훈의 음식을 맛보고 싶어서 그를 불렀고, 그와 얘기를 나누면서 남북한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쉽게 말해서 지훈과 얘기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느꼈고, 그로 인해서 남북 관계 개선에 나서게 되었다고 적었다.
그러니 지훈에 대한 간첩 혐의는 깨끗하게 사라진 상태였다.
"이지훈 씨, 나라를 위해서 정말 큰일을 해 줬습니다."
"각하, 저는 김정문 위원장이 있는지도 모르고 갔다가 친서를 받아 온 것이 전부입니다."
"어쨌든 김정문 위원장이 이지훈 씨와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 민족의 공영에 관심을 가졌다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제가 어떤 영향을 끼친 것보다는 그만큼 북한의 상황이 어려워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있겠죠. 그런데 김정문 위원장과는 어떤 얘기를 나누었죠?"
"별것 없습니다."
심문을 했던 요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대통령도 지훈과 김정문이 나눈 대화 내용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대통령의 물음에 지훈은 처음 만남부터 헤어질 때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지훈 씨가 보기에 김정문 위원장의 말에 진실성이 있던가요?"
"최소한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북한의 경제난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는 진심이었습니다."
"이지훈 씨가 남한의 기술과 자본을 받아들여서 공단을 개설하라는 말을 했을 때는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처음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는 몇 년 전 개성 공단의 일을 염두에 둔 것 같았습니다."
북한의 경제에서 남한의 기업이 진출해 있는 개성 공단은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이유로 하등 관련이 없는 개성 공단을 폐쇄한 적이 있었는데, 김정문은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한이 추가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했고, 지훈은 중국과 북한의 합작으로 설치된 다른 공단의 예를 들면서 그보다는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가능하다는 조언을 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지훈이 알고 있는 미래에서는 실제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렇다면 나중에는 바뀌었다는 건가요?"
"저는 중국 기업이 진출한 공단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가능하다는 얘기를 했고, 김정문 위원장은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눈치였습니다."
"바로 거부하지 않고 고민을 했다고요?"
"그렇습니다."
"확실히 유럽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자신의 아버지와는 많이 다른 것 같군요."
"저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참! 건강과 관련한 얘기는 무엇입니까?"
"성인병 관련 얘기입니다."
좀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은 대통령은 그 뒤로도 많은 질문을 했고, 지훈은 당시의 내용만이 아니라 분위기까지 전하기 위해서 많은 얘기를 했다.
"알겠습니다. 이지훈 씨, 고생 많았습니다."
"각하, 제발 우리 민족에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바라는 일인 만큼 그렇게 되겠지요. 많이 피곤할 텐데 이제 그만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그리고……."
가도 좋다는 말에 집무실을 벗어나려고 했던 지훈은 뭔가를 말하려다가 머뭇거렸다.
그가 말을 하려다 만 것은 일주일 후에 벌어지는 대형 선박의 침몰 사고였다. 그런데 막상 말을 하려고 보니까 할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주일 후에 대형 여객선이 침몰을 하고 많은 이가 목숨을 잃게 된다고 얘기하면 누구라도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어. 그 일은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해.'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선 아직 벌어지지 않은 미래의 일을 떠들어 봐야 믿어 줄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나면 그때는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두려웠다.
'사고의 원인부터 시작해서 많은 의문이 남은 사건이라 잘못하면 엉뚱한 일에 휘말릴 수 있는 만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이지훈 씨, 뭐죠?"
"아닙니다."
"괜찮으니까 얘기해 보세요."
"그게 그러니까……. 제가 보기에 김정문 위원장은 상당히 절실해 보였습니다."
"그의 제안이 진심이라는 겁니까?"
"저는 그렇게 느꼈는데, 무례하게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고맙습니다."
끝끝내 선박 사고와 관련한 얘기를 꺼내지 못한 지훈은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가온누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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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둑! 후두~둑!
봄이 무르익어 감을 알리는 부슬비가 오락가락 며칠째 이어지고 있었다.
나흘 전, 청와대를 다녀온 지훈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다가오는 사고일 때문에 일손이 전혀 안 잡혀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마당으로 나왔다.
'어떻게 해야 사고를 막을 수 있을까? 아! 수학여행을 취소하면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사고 선박에는 극소수의 일반 승객과 수학여행을 나선 많은 학생들이 타고 있었다. 그러니 수학여행만 취소하면 배가 운행을 안 할 가능성이 많았고, 그러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냐! 만약 선박에 문제가 있어서 벌어진 일이라면 결국에는 사고가 날 거야. 그리고 그때는 원래보다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수도 있어.'
수많은 어린 생명을 앗아 간 침몰 사고라 그 원인부터서 많은 얘기가 오갔다. 그중에는 잠수함 충돌설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선박에 문제가 있어서 사고가 났다는 식으로 얘기가 흘러갔다.
하지만 그때의 사고 원인은 그 뒤로도 끝끝내 안 밝혀졌는데, 만약 선박에 문제가 있어서 발생한 일이라면 언제라도 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
'사고의 원인을 정확하게 모르는 이상 나로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해. 젠장, 사고 원인만 확실하게 밝혀졌어도 방법을 찾기가 쉬웠을 텐데.'
끝끝내 많은 의문이 남았다는 것은 그만큼 구린 구석이 많다는 뜻이었다. 그렇다 보니 지훈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처럼 선박이 침몰한다는 가정하에 구조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결국 내가 갈수밖에 없어! 그래, 먼저 대피하라는 방송부터 최우선적으로 내보내야 해. 그리고 선실 안에 갇힌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
여러 가지 이유로 배의 출항을 막을 수 없다면 구조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당시의 사고를 재현한 외국 방송사의 다큐멘터리에서는 사고 직후, 바로 탈출에 나섰다면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시뮬레이션이 나온 적 있었다.
결국 희생자를 막기 위해서는 두렵더라도 문제의 배에 탑승해야 했다.
'로프와 헤드램프 그리고 선실의 유리창을 깰 수 있는 장비를 구해야 해. 아! 쇠사슬로 묶여 있는 구명정을 풀 수 있는 절단기도 준비해야겠구나.'
침몰에 대비한 구조 방법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있을 무렵 조미정이 다가왔다.
"사장님, 여기 계셨네요."
"……."
"사장님, 광저우 매장 건설 현장에 문제가 생겼다는데요."
"……."
"사장님, 뭐 하세요?"
워낙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조미정이 부르는 것을 몰랐던 지훈은 그녀가 몸을 건든 후에야 반응했다.
"미정 씨, 무슨 일이죠?"
"사장님, 무슨 생각을 하기에 몇 번이나 불러도 모르세요?"
"아! 그랬습니까?"
"사장님, 요즘 이럴 때가 종종 있던데, 무슨 고민 있으세요?"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나를 찾았죠?"
"중국에서 연락이 왔는데 광저우 시의 공무원들이 우리 매장의 건설에 문제가 있다면서 공사를 중단시켰답니다."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죠?"
"공사를 하다 보면 사소하게 벌어지는 일인데, 그걸 가지고 계속 꼬투리를 잡으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네요."
"뇌물을 요구하는 것 아닙니까?"
"우선은 공사 관계자보고 상황을 알아본 뒤 다시 연락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뇌물을 요구하면 차라리 몇 푼 쥐여 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랬다가는 나중에 그게 더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일정이 늦춰지더라도 지적받은 부분을 개선하면서 공사를 하라고 하세요."
"사장님이 그렇게 얘기하실 것 같아서 저도 그렇게 얘기했어요. 그리고 상하이 매장에서도 일이 있었어요."
"거긴 또 뭡니까?"
"시의 위생당국에서 위생 검열을 나온다고 합니다."
"갑작스레 위생 검열을 하는 이유는 뭐죠?"
"말로는 일반적인 검열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검열에 응하면 될 것 아닙니까?"
"그게 말처럼 간단하지 않은 것이, 식자재부터 시작해서 조리 시설까지 모든 것을 검열한다고 합니다."
"시간이 꽤나 걸린다는 건가요?"
"검열이 끝날 때까지는 영업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네?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직원들도 그 부분과 관련해서 항의를 했지만 전혀 받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약을 한 손님들도 있을 텐데 큰일이군요. 대체 위생 검열일은 언제랍니까?"
"그게 또 하필이면 손님들이 가장 많은 토요일이라고 합니다."
"이번 주요?"
"네."
"미치겠군요. 우선 급한 대로 평일로 바꿔 달라고 하세요."
"최 지사장이 이미 얘기했는데 날짜가 확정된 이상,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답니다."
광저우를 비롯해서 상하이의 공무원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까닭은 유상혁과 전철민이 움직인 통에 그리되었다. 하지만 그 내막을 모르는 지훈은 답답해하면서도 편법을 사용하지 말고 정상적으로 검열에 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같은 시각, 유상혁과 전철민은 상하이 시의 위생국장을 만나고 있었다.
"국장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쓰레기통까지 뒤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꼬투리를 잡아낼 생각이니 걱정 마시오."
"역시 국장님이십니다."
"저희들은 국장님만 믿겠습니다. 이것, 얼마 되지 않은데 제 성의를 생각해서 받아 주십시오."
"하하~!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말 그대로 성의만 표시했습니다, 하하하~!"
8. 완전히 악몽이네요?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기 무섭게 수많은 인파가 가로세로로 교차된 스크램블 신호등을 바쁘게 건너기 시작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것이 번화가로 보이는 이곳은 도쿄에서도 한식당이 많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신주쿠 거리였다.
"형님, 나오셨습니까?"
"장사는 어땠냐?"
"오늘 점심때는 많이 찍었습니다."
"얼마나?"
"150 정도 찍었습니다."
깔끔하게 잘 차려진 한식당에 들어서기 무섭게 카운터로 다가가서 지금까지의 매상을 확인한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는 한때 부산을 주름잡았던 상어였다.
"애들은?"
"아래쪽 골목에 자리한 JJ클럽에 집결하고 있습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나오라고 했지?"
"우탄이 형님이 확실하게 얘기한 이상 한 놈도 빠짐없이 다 나왔을 것입니다."
"우탄이는?"
"먼저 그쪽으로 가셨습니다."
"나도 그쪽으로 가 봐야겠다."
"형님, 조심하십시오."
"내 걱정 말고 가게나 잘 봐."
"염려 마십시오."
상어는 한국에서 빼돌린 재산으로 신주쿠 거리에 한식당을 차리고는 성실하게 살아가는 재일 교포 행세를 하고 다녔다.
그러나 그건 겉모습에 불과하고 실상은 아주 달라서 야마구치구미의 지원을 받아 도쿄에 자리하고 있는 한국계 폭력 조직을 통합하고 있었다.
잠시 후, 유흥업소가 밀집한 신주쿠 뒷거리에 당도한 상어는 건물 전체에 유흥업소가 입점한 건물로 올라갔다.
"형님, 나오셨습니까."
"형님."
"우탄이는 어디 있냐?"
"안에 있습니다."
"나오라고 해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