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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안에는 덩치도 그렇고 다들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는 것이, 조폭들로 보이는 마흔 명가량의 사내가 모여 있었다. 그들은 상어가 들어가기 무섭게일제히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해 왔다.
참고로 입구에 JJ클럽이라는 커다란 안내문이 붙어 있는 이곳은 얼마 전까지 강북파가 운영하던 업소다.
도쿄에는 상어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일본으로 흘러들어 온 조폭들이 많은데, 그들은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세를 규합해서 변함없이 조폭 짓을 하고 있었다.
강북파도 그런 조직 중의 하나였는데, 상어가 결성한 범부산파에 무너지면서 이제는 하부 조직으로 흡수된 상태였다.
그런데 JJ클럽은 특이하게도 속살이 훤히 보이는 얇은 한복을 입고 있는 여자의 사진과 함께 한국 미녀 항시 대기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광고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아울러 가게의 정면에는 마치 쇼윈도처럼 유리로 막힌 특별한 공간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몇몇 여자들이 한국말로 수다를 떨면서 화장을 하고 있었다.
"형님, 나오셨습니까?"
"우탄아, 애들은 이게 전부냐?"
"몇 명은 미리 염탐을 내보냈습니다."
"몇 명이나?"
"목포파와 대전파에 네 명씩 보냈습니다."
"그놈들 분위기는 어때?"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입니다."
"우탄아, 목포파와 대전파를 동시에 치기는 어렵겠지?"
"형님, 우리만으로요?"
"힘들겠지?"
"솔직히 말하면 불가능합니다."
도쿄에 있는 한국계 폭력 조직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같은 지역을 중심으로 뭉쳤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세력을 갖고 있는 것이 목포파였는데, 그들은 오래전부터 목포에 있는 조직과도 깊은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다른 조직이 쳐들어올 경우 목포에 연락해서 지원을 받기까지 했는데, 그 덕에 도쿄 제일의 폭력 조직이 됐다.
하지만 야마구치구미의 지원을 받은 상어가 오랑우탄과 함께 부산파를 장악하면서 사정이 변해 지금은 부산파가 도쿄 제일의 조직이 되었다.
아울러 상어는 목포파와 대전파까지 제압해서 도쿄에 자리 잡고 있는 한국계 폭력 조직의 총보스가 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우탄아, 오늘 밤에도 야마구치가 직접적인 지원을 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하면 무장의 수준이 크게 다른 만큼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꾸 야쿠자를 끌어들여서 조직을 흡수하면 반감이 커질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의 조폭들이 사용하는 연장은 몽둥이나 쇠 파이프 아니면 회칼이 중심이었다. 즉, 한국의 조폭들은 몸과 몸이 부딪치는 싸움을 해 왔다.
반면 야쿠자들은 권총과 소총은 기본이고 심지어는 기관총에 로켓포와 수류탄까지 사용했는데, 상어의 지원 요청을 받고 달려왔을 때도 여지없이 기관총을 내밀었다. 그러니 한국의 폭력조직들이 야쿠자를 당해 낼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몸으로 싸운다면 야쿠자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다들 하고 있었고, 그런 마음은 상어에 대한 반감으로 표출되었다.
"그래 봐야 이 바닥에서는 한번 무릎 굻으면 끝이야."
"형님, 정말 동시에 칠 생각이십니까?"
"우탄아, 난 별것도 아닌 이 싸움을 빨리 끝내서 도쿄에 있는 모든 조직을 아우르고 싶다. 그래야 우리도 사업을 제대로 할 것 아니냐?"
도쿄의 조직을 모두 장악할 수 있다면 의외로 많은 이권을 차지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윤락 여성을 일본의 유흥업소에 공급하는 일을 독점할 수 있다.
또한 한국 조직에 마약을 공급할 수도 있다.
신성OB파나 오성파 같은 대형 조직은 사업의 영역을 합법으로 전환하면서 마약에서 완전히 손을 뗐지만 군소 조직은 여전히 마약을 유통하고 있는 만큼 판로는 무궁무진했다.
"형님, 그러면 목포파는 우리가 직접 치죠."
"더 강한 목포파를 우리가 치자고?"
"일단 목포파를 꺾으면 대전파는 숙이고 들어올 것입니다."
"목포파가 만만치 않아서 쉽지 않을 텐데, 차라리 맞바꾸는 것이 어떨까?"
"아닙니다. 목포파는 우리가 야쿠자를 동원해서 억누르면 언젠가는 반기를 들 것입니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그놈들만큼은 우리가 직접 꺾어야 합니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자. 먼저 야마구치구미와 통화해서 오늘 밤의 시간부터 맞추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하십시오. 저는 애들을 관리하겠습니다."
"수고하고, 오늘 밤 안으로 우리가 도쿄를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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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식히고 오겠다는 핑계로 저녁 무렵에 가온누리를 나선 지훈은 바로 인천항으로 향했다.
별들이 반짝였던 서울 하늘과는 달리 인천은 바다의 영향인지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이래서 출항이 원래의 예정 시각보다 늦어졌구나.'
항만 주차장에 차를 세운 지훈은 절단기와 로프 그리고 수십 개의 헤드램프가 들어있는 배낭을 짊어지고 매표소로 이동했다.
매표소 주위에는 대형 버스 여러 대가 줄지어 서 있었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타고 있는 것이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인 것 같았다.
'저런 아이들을 바닷속에 남겨 둘 수는 없어.'
아무것도 모른 채 들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결의를 다지던 지훈은 승선 여부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대기했다.
짙은 안개 때문에 모든 배가 출항을 포기한 가운데 오직 세모호만 결정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교감 선생님, 우리 수학여행 갈 수 있나요?"
"안개가 옅어질 수도 있다고 하니까 기다려 보자꾸나."
"만약 안개가 옅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돼요?"
"글쎄, 수학여행을 뒤로 미뤄야지 않을까?"
"여기까지 와서 다시 돌아간다고요?"
"교감 샘님, 그러지 말고 가요. 네?"
"일단 기다려 보자."
한참 들떠 있는 아이들은 수학여행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수시로 몰려와서 일종의 항의성 투정을 부렸다. 교감 선생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은 그럴 때마다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그렇게 갈팡질팡하며 시간이 계속 흐르던 찰나 여객선의 승무원들이 승선을 알리는 안내 방송을 하기 시작했고, 몇몇 남학생들은 드디어 수학여행을 간다는 생각에 함성을 터트렸다.
"1반부터 순서대로 탑승한다."
"야, 빨리 줄 서."
"아, 배고파."
"배에 오르면 밥 준대."
"진짜?"
"그래, 아까 우리 담탱이가 그렇게 얘기했어."
"제주도까지 몇 시간 걸리지?"
"내일 아침에 도착할걸."
"그동안 뭐 하지?"
"우리는 한방에 모여서 놀기로 했어."
"그래도 되는 거야?"
"그냥 하면 되지."
"다음은 2반이니까 2반도 대기해."
"야, 선생님이 줄 서래."
계단을 앞에 놓고 길게 줄을 선 학생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리거나 장난을 쳤다.
그러는 사이 본격적인 승선이 시작되었고 지훈은 아이들 사이에 끼어서 배에 올랐다.
"저는 개인 여행객입니다."
"표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3등 선실은 3층입니다."
"알겠습니다."
세모호에 탑승한 지훈은 선실로 들어가지 않고 배 구석구석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갑판의 좌우에 매달려 있는 구명정이었는데, 철사로 고정을 시켜서 아예 작동을 못 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내부의 구조를 파악하고 조타실의 위치를 알아야 해.'
사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가장 의아하게 여긴 것은 선실에서 대기하라고 했던 방송이었다.
후일담이지만 사고 직후 빠르게 대피 명령을 내렸다면 단 한 명의 피해자도 없이 전원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선장과 선원들은 선내 대기 명령을 내리고는 자신들이 가장 먼저 도망쳤다.
'갑판의 난간에 로프를 고정시키고는 계단을 이용해서 줄을 내려야겠어.'
기억에 의하면 세모호는 사고 이후 빠르게 기울었다. 그 탓에 선실을 빠져나왔음에도 끝내 갑판으로 올라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구조된 사람보다 희생자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었는데, 로프는 그런 상황에 대비해서 가져왔다.
'로프를 설치할 때 최대한 아래층까지 내려가야겠어.'
배를 몇 번이나 돌며 내부 구조를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시킨 지훈은 다음으로 조타실의 위치를 확인했고, 그 뒤로도 배 곳곳을 계속 돌며 승객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제는 승객들과 친해져야겠어.'
배의 구조와 승객들의 현황, 동선을 파악한 지훈은 한참만에야 3등 선실로 내려갔다.
교실처럼 뻥 뚫린 3등 선실은 여기저기에 누워서 잠을 자는 승객들이 많았는데 수학여행을 나선 아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 중에는 지훈을 알아보는 아이도 있었다.
"아저씨, 이지훈 셰프죠?"
"나를 아니?"
"그럼요. 제 꿈이 요리사인데 당연히 잘 알죠."
"꿈이 요리사야?"
"네. 그래서 형처럼 유명한 셰프가 될 거예요."
"그러려면 노력을 많이 해야 해. 이름이 뭐니?"
"박웅근요."
"웅근아, 누구야? 아는 사람이야?"
"너희들, 이 형 몰라? 예전에는 TV에도 자주 나왔는데?"
"연예인이야? 어쩐지."
"연예인이 아니라 셰프야."
"셰프?"
"어! 이지훈 셰프죠? 요리도 잘하고 프랑스에서는 테러에 당한 많은 사람을 구하셨죠?"
"맞다! 이지훈 셰프다!"
"얘들아, 이지훈 셰프가 여기 있다!"
"누구?"
"왜, 예전에 가수 리아와 CF를 함께 찍은 요리사 있잖아?"
"어! 저 사람, TV에서 본 적 있는데?"
"와우~! 짱 잘생겼다."
"우리도 가 보자."
웅근이라는 학생과 얘기를 나누는 도중에 같은 반 친구들이 왔고 그 덕에 지훈은 많은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학생들은 한때는 여러 개의 CF를 찍었던 지훈을 기억해 내며 신기해하다가 사인을 요청하거나 사진을 함께 찍었고, 자기들의 선실로 돌아가서 그것을 자랑했다.
덕분에 지훈의 주위에는 많은 고등학생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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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 어떻게 났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지훈의 주위에는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학생들에게 요리 얘기부터 시작해서 프랑스 유학 시절의 얘기와 각국 정상들과의 추억을 재미나게 들려주던 지훈은 몇몇 남학생들에게 돈을 쥐여 줘서 햄버거와 콜라를 사 오게 했다.
학생들은 지훈이가 햄버거와 콜라를 사 준다는 말에 더욱 몰려들었는데 그 덕에 넓은 3등 선실은 학생들로 가득했다.
그 와중에 한 여학생이 배낭 밖으로 삐져나온 로프와 머리에 두르고 있는 헤드램프에 관심을 보였다.
"오빠, 그건 뭐예요?"
"등산용 로프야."
"로프는 뭐하려고요?"
"오빠, 한라산으로 등반 가세요?"
"어! 한라산에도 암벽이 있나?"
"그게 아니라 지난밤에 이상한 꿈을 꿔서 가져왔어."
"이상한 꿈이요?"
"꿈에서 내가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사고가 나는 바람에 배가 가라앉는 거야."
"어마! 그래서요?"
"방송에서 선실에 대기하고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었는데 배가 계속 기울면서 물이 들어오고 난리가 난 거야."
"정말요?"
"말도 마라. 꼼짝없이 죽겠구나 싶었는데 캄캄한 어둠 속으로 로프가 갑자기 날아오는 거야."
"그다음에는요?"
"로프를 겨우 잡고 이 헤드램프의 불빛에 의지해서 갑판으로 나갔지. 그리고 갑판에 있던 구명정을 타고 겨우 빠져나갔어."
"완전히 악몽이네요?"
"악몽이 아니라 정말 끔찍했어. 기다리라는 방송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선실에서 대기하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었거든."
"저런!"
"어머! 현지야,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면 어떡해?"
"바보야, 꿈은 반대라잖아? 그러니까 그런 끔찍한 일은 절대 안 벌어질 거야."
"아니야! 나도 꿈은 반대라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너무 이상해서 로프와 헤드램프를 몽땅 갖고 탔어."
긴박한 순간에 학생들이 자신의 말을 따라 준다면 탈출이 용이해지는 것은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