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205화 (205/219)

<-- 205 회: 7-17 -->

그 때문에 지훈은 학생들을 비롯해서 주위의 승객들에게 꿈을 꿨다는 핑계로 사고가 나는 것을 미리 예언할 생각이었다.

물론 얘기를 막 들었을 당시에는 어이없어하겠지만 사고가 벌어지면 자신의 얘기를 떠올릴 것이 분명했다.

"뭐가 이상했는데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돌아가신 할머니가 이번 꿈에도 나타났거든. 믿기 어렵겠지만 프랑스에서 지하철 테러에 휘말릴 때도 그전 날 꿈에 할머니가 나왔었어."

"헉! 정말요?"

"으아악~!"

"아! 소름 돋아."

"오빠, 무섭게 그런 얘기를 왜 해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준비했잖아."

파리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 때 지훈이 많은 시민을 구한 것을 알고 있는 학생들은 그때에도 꿈에 할머니가 나타났다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래서 더 이상 지훈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꿈에서 할머니가 뭐래요?"

"배에 사고가 나면 선원들이 대기하라는 방송을 해도 무조건 갑판으로 나오래."

"갑판으로 무조건 나가라고요?"

"응, 배가 결국에는 침몰하니까 무조건 갑판으로 나가랬어. 다만 시간이 있으니까 혼자만 나가지 말고 다른 사람을 챙기라면서 로프와 헤드램프를 준비하라는 거야."

"그래서 그것들을 무겁게 챙겨 오신 거예요?"

"우리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서 나를 구해 준 적이 몇 번이나 있는데 너 같으면 안 그러겠니?"

"지하철 외에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

"너희들, 내가 파리에서 강도를 당해서 총 맞은 것 알고 있지?"

"맞다."

"설마 그때도 그랬어요?"

"그랬지. 그때는 할머니 말을 안 들어서 총을 맞았다는 것 아냐?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꿈을 떠올려서 베개와 침대로 몸을 가렸고, 그 덕에 살아났어."

"와~! 신기하네요."

"형, 이러다가 정말 사고가 나는 것 아니에요?"

"나도 사고가 안 나서 이번에는 할머니의 말이 틀렸으면 정말 좋겠어. 하지만 만의 하나라도 사고가 나면 구명조끼를 챙겨 입고 다들 갑판으로 올라가."

"갑판에 올라가면 살 수 있나요?"

"당연하지. 거기에는 구명정이 있잖아."

"아까 보니까 구명정이 철사로 고정되어 있어서 작동시키기가 어렵겠던데요?"

"그것도 꿈에 나왔어. 그래서 이걸 두 개나 가져왔어."

"형, 절단기까지 챙겼어요?"

"할머니가 평소와는 달리 이번에는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하셨는지라 안 가져올 수가 없었어."

"아! 이러다 정말 사고가 나면 정말 어떡해요?"

"만약 사고가 나면 내 말대로 하면 다 무사할 거야. 참! 헤드램프를 나눠 줄 테니까 다들 갖고 있을래? 사고가 안 나면 기념으로 가져."

"주세요."

"형, 저도 주세요."

"무조건 갖고 가지 말고 선실별로 두 개씩만 가져가."

"야! 다른 선실 애들에게도 이걸 나눠 주자."

"꿈 얘기도 해 줘야지."

"당연하지."

위기의 순간마다 꿈에 할머니가 나와서 경고를 해 줬다는 얘기는 지훈의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학생들은 지훈의 얘기에 빠져서 헤드램프를 챙기기 시작했고, 어떤 학생들은 다른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겠다고 흩어졌다.

그런데 지훈의 옆에는 웅근이를 비롯한 네 명의 남학생이 계속 남아 있었다.

"너희들은 얘기해 줄 사람 없어?"

"세계 최고의 셰프가 되고 싶은 우리는 형을 돕기로 했어요."

"날 돕는다고?"

"형 혼자서는 이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없을 것 아니에요? 그러니 우리가 도와야죠."

"형, 로프는 어떻게 사용할 생각이에요?"

"자식들, 용감하네."

"사고가 나면 친구들이 위험에 빠지는데 남자들인 우리가 나서야죠."

"형, 혹시 사고가 언제쯤 일어났는지 아세요?"

"날이 훤했던 것이 아침 무렵인 것 같아."

"아침요?"

"그러면 시간은 충분한데 지금부터 작전을 짜야지 않을까요?"

웅근을 비롯한 네 명의 남학생은 셰프가 되는 것이 꿈인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지훈의 존재는 아이돌 그 이상이어서, 녀석들은 지훈의 말을 100퍼센트 신뢰하고 있었다. 즉, 아이들은 사고가 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고 자신들의 우상인 지훈을 도와서 구조 활동에 나설 생각이었다.

"좋아, 두 명은 사고가 나면 절단기로 구명정을 묶고 있는 철사를 끊어."

"형, 우리는 뭐 하죠?"

"너희들은 나와 함께 갑판의 난간에 로프를 설치하고, 다른 학생들을 진정시켜."

"그럴게요."

"고맙다."

"뭐가요?"

"내 말을 믿고 도와준다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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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많은 학생들이 지훈의 얘기를 들었기에 그의 꿈 얘기는 빠르게 퍼져 가서 수학여행에 나선 모든 학생들과 지도 교사들이 알게 되었다.

당시 얘기를 직접 듣지 못했던 지도 교사들은 지훈의 꿈 얘기에 어이없어하다가 할머니의 얘기를 듣게 되자 마냥 무시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사고가 나면 구명조끼를 챙겨 입어야 한다는 식의 기본적인 대피 요령과 선실별로 단체 행동하라는 주의를 줬다.

한편 3등 선실에는 대부분의 일반인 승객이 타고 있었는데 그들도 지훈의 꿈 얘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해서 배 여기저기를 살피고 다니고 자기들끼리 대피 방법을 논의했다.

"여기는 제일 밑에 층이라 사고가 나면 바로 올라가야 해."

"맞아, 물이 밑에서부터 차올를 것 아냐?"

"당연하지. 여기 있다가는 바로 용궁행이야."

"여보쇼, 헤드램프 남았으면 우리도 주쇼?"

"여기 있으니 나눠서 갖고 있으십시오. 그리고 자판기 주위에서 멀어지세요."

"그건 왜 그래야 하는 거요?"

"꿈에서 배가 기울면서 자판기 같은 것이 쏟아지는 바람에 많이 다쳤습니다."

"알겠수다."

"그리고 저쪽에 아주머니와 갓난아기가 있던데 그분들을 챙겨 주십시오."

"거기는 우리가 챙길 것이니 걱정 마쇼."

"거참~! 별거 아닌 개꿈 때문에 무슨 지랄이야?"

"염병, 아주 놀고들 있다."

"이런 큰 배가 무슨 사고가 난다고 그래? 그리고 사고가 나면 해경이나 119에서 가만있을 것 같아?"

"세상이 어느 때인데, 지금은 바로 헬기들이 날아올걸."

모든 승객들이 지훈의 얘기에 주목하는 것은 아니어서 한쪽 구석에서 술을 마시며 화투를 치던 중년인들은 짜증을 내며 시비를 걸어왔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약간의 소란스러움에 화를 내는 그들을 바라보던 지훈은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는 갑판으로 올라갔다.

"형, 속상해도 신경 쓰지 마세요."

"아냐,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그리고 나도 사고가 안 났으면 좋겠어."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형, 요리와 관련한 얘기를 해 주세요."

"맞아요. 학원에서 배우고는 있는데 자격증 위주로만 수업이 진행되어서 조금 답답해요."

"저는 그것보다 진학과 관련한 상담을 해 주세요. 무조건 4년제 요리 학과를 가야만 셰프로 성공할 수 있나요?"

지훈을 따라서 갑판으로 올라온 학생들은 셰프와 관련한 질문을 쏟아 냈다.

꿈 많은 어린 학생들의 질문을 받은 지훈은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 주다가 밤이 늦었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선실로 데려갔다.

"선실로 돌아갔다가 아침 8시 20분에 여기서 모이자."

"그때는 너무 늦은 것 아니에요?"

"만약 내 꿈이 들어맞는다면 사고는 그 이후에 날 거야."

이전 시간대에서 경험한 일이라 사고 시각은 정확히 기억나지가 않았다. 하지만 대략 오전 9시 10분경에 사고가 일어났던 것을 얼추 기억하고 있는 지훈은 아이들을 재울 생각에 선실로 들여보내려고 했다.

"형, 그냥 여기서 계속 얘기하면 안 될까요?"

"인석아, 사람들을 구조하려면 체력을 비축해야지. 잔소리 말고 들어가."

"하루쯤 안 자는 것은 일도 아니에요."

"맞아요. 시험 기간에 벼락치기 공부를 자주 해 봐서 충분히 견딜 수 있어요."

"그건 평상시 얘기이고, 정밀로 사고가 벌어지면 그때는 극한의 상황에 처하는 만큼 체력을 비축해야 해."

좀 더 얘기를 하고 싶은 마음에 옆에 남으려는 학생들을 선실로 돌려보낸 지훈은 알람을 맞춰 놓고 자신도 잠을 잤다.

얼마쯤 잤을까, 알람 소리에 잠이 깬 지훈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호흡법을 통해서 음양오행기를 최상의 상태로 끌어 올렸다.

그사이 웅근을 비롯한 학생들이 찾아왔고 지훈은 그들과 함께 아침을 먹었다.

"형, 음식이 너무 성의 없는 것 같아요."

"맞아요. 내가 대충 해도 이것보다는 맛있을 것 같아요."

"멸치를 어떻게 볶으면 이렇게 맛이 없을 수가 있죠?"

"맛도 맛이지만 눅눅해 보여서 아예 먹을 생각이 안 들 정도예요."

셰프가 꿈이라 그런지, 아이들은 구내식당의 음식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많은 말을 해 댔고, 지훈은 멸치볶음부터 시작해서 요리와 관련한 조언을 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오전 9시를 넘었다.

"형, 9시가 넘었는데 살살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우선은 이곳과 선실을 돌면서 자판기 주위에서 멀어지라는 경고부터 해 줘."

"그 전에 구명조끼부터 입어야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자."

구명조끼를 착용한 지훈과 학생들이 선실과 식당을 도는 사이 그 광경을 목격한 여럿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지훈처럼 헤드램프를 착용한 이도 있었는데, 지훈은 그들에게 사고가 나서 선실의 전기가 나가면 당황하지 말고 헤드램프를 작동시키라고 했다.

반면 간밤에 악을 질렀던 중년 남성들은 지금껏 화투를 치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화를 내며 욕설을 내뱉었다.

"이것들이 미쳤나?"

"야, 저리 안 꺼져."

"저, 잡것들이 설치고 다닌 통에 정신이 사나워서 화투를 못 치겠네."

"아싸, 쓰리 고!"

"니미럴."

자판기 바로 앞에 자리를 잡은 중년 사내들은 조금 있으면 닥쳐올 위험도 모르고 화투에만 열중했다.

그들이 못내 불안했던 지훈은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하고 그곳에 남았다.

"너희들은 좌현 갑판으로 올라가."

"좌현요?"

"배가 오른쪽으로 기우니까 그쪽으로 탈출해야 해."

"형은요?"

"난 여기서 이 아저씨들을 챙긴 후에 따라서 갈게. 참! 강한 충격이 올 수 있으니까 선실 쪽 벽에 바짝 붙은 상태에서 난간을 꼭 잡고 있어."

"그럴게요."

"자기가 맡은 일 잊지 말고."

"걱정 마세요."

웅근과 그의 친구들을 갑판으로 먼저 내보낸 지훈은 여러 개의 자판기가 줄줄이 서 있는 오른쪽 벽으로 이동했다.

뭔가가 충돌하는 요란한 소음이 들려온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9. 같이 가야죠!

쿠-쿵! 우두~둑!

최초의 충격은 배 밑쪽에서 전해졌다. 동시에 선체가 크게 기우뚱거리는가 싶더니 철판이 부딪치며 깨지는 소리가 연거푸 들려왔다.

쿠쿠쿵~! 콰~쾅!

"이게 무슨 일이야?"

"설마 진짜로 사고가 난 것 아냐?"

"흐미, 왜 그래?"

기우뚱-!

"조심하세요."

철판이 부서지는 소리가 나기 무섭게 크게 휘청거리던 배가 한쪽으로 기울었고 동시에 자판기와 가방 같은 것이 한쪽으로 우수수 쏟아졌다.

굉음을 듣는 순간 사고를 짐작한 지훈은 외마디 경고음을 날리다 말고 쏟아져 들어오는 자판기를 몸으로 막았다.

미리 단단히 대기하고 있었던 덕에 한 손으로 두 대의 자판기는 막았지만 다른 두 대의 자판기는 어쩔 수 없었고, 그 와중에 심한 욕설을 했던 한 명의 중년 사내가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쿵~!

"아이코!"

"이보게, 괜찮나?"

"다……다리를 다친 것 같네."

"어서 저분을 도우십시오. 그리고 자판기를 마냥 붙잡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비키세요."

"어서들 나오게."

"아무래도 진짜로 무슨 사고가 난 것 같네."

"이 친구를 꺼내려면 먼저 자판기부터 한쪽으로 치워야 할 것 같네."

"아아~악!"

"이보게, 아파도 조금만 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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