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206화 (206/219)

<-- 206 회: 7-18 -->

일행들이 다친 사내를 꺼내는 동안 선실 곳곳에서 놀란 학생들의 비명 소리와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꺄야악~!"

"정말로 사고가 났나 봐."

"우리 이대로 죽는 것 아냐?"

"어떡해?"

"다들 멍청하게 있지 말고 구명조끼부터 입어."

"다친 사람은 없지?"

"괜찮아."

"우리 빨리 갑판으로 나가야 하는 것 아냐?"

"우선 진정하고 옆에 사람부터 챙겨."

사고가 났다는 생각에 아직은 어린 학생들이 동요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지훈의 꿈 얘기를 들은 덕인지 많은 학생들이 이성을 지키며 친구들을 진정시켰다.

그사이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또다시 앞쪽에서 들려왔고 동시에 선실 전체의 전기가 나갔다.

치~칙!

"이런!"

"전기가 나갔잖아?"

"방금 충격으로 퓨즈가 나간 것 같은데?"

"자판기가 내려가니까 조심하십시오."

콰~앙!

지금껏 막아 내고 있던 두 대의 자판기를 밑으로 흘려보낸 지훈은 헤드램프를 작동시키고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갑판으로 올라가게 했다.

"여보쇼, 당신은 어디 가는 거요?"

"전 선실을 비롯해서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올라가겠습니다."

"저 좀 도와주세요. 아기가 있어요."

"아주머니를 부탁합니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아줌마, 우리와 함께 나갑시다. 아기는 내게 주쇼?"

지훈이 알고 있는 기억에 의하면 갓난아기는 엄마의 품에 안긴 채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며칠 후 수색대에 의해서 사체가 인양되면서 전 국민을 비탄과 실의에 빠지게 했다.

하지만 미래를 알고 있던 지훈에 의해서 아기와 아줌마는 몇몇 남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25도로 기울어진 선체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

복도 끝에서 웅근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지훈 형, 어디 있어요?"

"웅근아, 나 여기 있어. 로프는 설치했니?

"각자 한 곳씩 맡아서 세 곳의 계단에 모두 설치했어요."

"고생했다. 이제는 다시 올라가."

"형, 같이 올라가요."

"난 사람들을 살피고 올라갈 테니까 먼저 가."

"같이 살펴요."

"인석아, 갑판에서 사람들의 탈출을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잖아. 어서!"

"아……알았어요."

걱정스러운 마음에 남아서 거들려는 웅근을 다시 갑판으로 돌려보낸 지훈은 선실과 휴게실 그리고 식당을 돌면서 승객들을 찾기 시작했다.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승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당 여객선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운항 능력을 상실하고 현재 좌초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긴급 구조 요청을 보낸 만큼 구조대가 올 때까지 안전한 선실에서 대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미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모두 밖으로 나가세요!"

-다시 한 번 안내 말씀 드립니다. 사고가 발생했지만 구조 요청을 보낸 이상 동요하지 마시고 승무원의 지시를 따르면서 안전한 선실에서 대기하시기 바랍니다.

"헛소리 그만해. 다들 갑판으로 나가세요."

아니나 다를까, 방송에서는 항해사로 짐작되는 이의 선실 대기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직후에는 여객 승무원의 안내 방송이 다시 흘러나왔고, 그때마다 지훈은 악을 쓰며 어찌할 바를 몰라서 갈피를 못 잡는 승객들에게 갑판으로 나가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나가자."

"선실이 안전하다고 하잖아?"

"바보야, 선실 안에 물이 차면 구조대가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도 방송에는 남아 있으라잖아?"

"맞아!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있는 게 좋다고 했어."

"야! 어젯밤에 어떤 형이 얘기해 준 꿈 얘기 생각 안 나?"

"그래, 그 형 말대로 사고가 난 이상, 우리가 살려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해."

"나는 나갈래."

"어! 배가 조금 더 기우는 것 같아."

"물소리도 들리는 것 같은데?"

"빨리 나가자."

"나가자고?"

"살려면 밖으로 나가야지."

학교를 다니면서 그동안 대피 교육을 많이 받은 덕에 학생들은 본능적으로 방송에서 나오는 대로 선실에서 대기하려는 이가 제법 있었다. 하지만 간밤에 지훈의 얘기를 들은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서 점차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한편 방송이 나올 때마다 악을 고래고래 지르던 지훈은 안내 데스크 앞에서 힘겹게 서 있는 여객 승무원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맞아! 저기서도 선내 방송이 가능하다고 했어. 저기서 방송을 하면 될 거야.'

원래의 계획은 조타실로 올라가는 거였다. 하지만 한번 기울기 시작한 배는 점점 기울었고 벌써 차디찬 바닷물이 빠르게 스며들고 있었다.

@

"위험하니까 돌아다니지 마시고 안전한 선실 안으로 빨리 들어가세요."

"당신, 미쳤어요?"

"네?"

안내 데스크 앞에 서 있던 여자 승무원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지훈을 향해서 선실로 들어가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지훈의 입에서 대뜸 튀어나온 소리는 힐난이었다.

"지금 바닥에 물이 차고 있는 것 안 보여요?"

"하지만 배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선실 밖을 돌아다니다 보면 다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물이 차서 아예 선실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하면 당신이 책임질 거요?"

"그……그 전에 구조대가 오겠죠?"

"장담하는데 구조대가 오기 전에 여기 3층은 완전히 물에 잠길 거요. 빨리 나와요!"

"뭐 하시려고요?"

"사람부터 살려야 할 것 아닙니까. 당장 갑판으로 나오라는 방송을 해야 돼요. 당신도 늦기 전에 어서 나가요."

"하지만 위에서 대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어요."

"대기하라는 지시를 내린 놈들은 이미 탈출하고 없을 테니까 연락해 보쇼. 아마 계속 인터폰을 눌러도 안 받을 텐데, 그렇지 않소?"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죠?"

"내가 조금 전에 조타실에서 사람들이 도망치는 것을 봤소."

여객 승무원은 조타실에서 지시한 대로 선실에서 대기하고 있으라는 방송을 했다.

사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유사시 조타실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었다. 하지만 사고가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훈은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서 조타실의 선원들이 모두 도망갔다는 거짓말을 했다.

아까부터 조타실과 통화가 안 되어서 마음속으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여직원은 선원들이 모두 도망갔다는 지훈의 말에 깜짝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반문을 했다.

"네? 말도 안 돼요."

"안 믿어도 좋소. 하지만 당신 때문에 죄 없는 다른 사람까지 죽게 할 수는 없으니 어서 나오시오. 난 대피하라는 방송을 해야겠소."

"내가 할게요."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으니 당신은 어서 나가시오."

"아뇨. 승객들을 안내하는 게 제 임무에요."

"이봐요."

-알려 드립니다. 선실 안에 물이 차고 있는 만큼 승객 여러분은 신속히 갑판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구명정을 밑으로 던지고 있으니까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바다로 뛰어들라고 하시오."

-승객 여러분께서는 구명조끼를 착용하시고 갑판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갑판의 구명정을 이용해서 탈출하셔야 합니다. 다시 안내드립니다. 다들 갑판 위로 신속히 대피하십시오.

여객 승무원의 탈출 방송이 나가자 곳곳의 선실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둠에 잠긴 가장 안쪽에서 여학생으로 짐작되는 소녀들의 아우성이 들려온 곳은 그맘때였다.

"앗, 차가워!"

"물이 허벅지 높이까지 찼어."

"이러다가 배가 가라앉는 것 아닐까?"

"빨리 올라가."

"수학여행 왔다가 이게 무슨 꼴이야?"

"뭐 해? 갑판으로 올라가야지."

"배가 기울어서 올라가기가 힘들어."

"내가 아까 나가자니깐!"

"아! 어떻게 하면 좋아, 이러다 우리 죽는 것 아냐?"

"울지 마!"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배는 한쪽으로 더 쏠려서 이제는 50도 가까이 기운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성인 남자도 걷기가 힘든 상태였고 더군다나 짙은 어둠 때문에도 더욱 힘들었다.

짐작이지만 캄캄한 것이 선수 쪽은 이미 상당 부분 물에 잠긴 것 같았다.

"얘들아, 아저씨가 갈 테니까 기다려."

"살려 주세요."

"여기요."

"애들아, 다른 선실의 사람들도 나오라고 해."

"아저씨, 물 때문에 문이 안 열려요."

"와서 빨리 도와주세요."

쾅쾅~!

소녀들의 아우성을 들은 지훈은 어깨에 메고 있던 로프를 계단을 따라서 내려온 로프에 연결시키고는 소녀들의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이동했다.

아마도 문이 안 열려서 그런지 몇몇 선실에서는 문을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얘아, 이 로프를 잡고 빨리 올라가."

"아저씨, 저 안에도 우리 친구들이 있는데 문이 안 열려요."

"내가 열 테니 어서 올라가."

"아저씨, 이 밑으로 선실이 좌우에 두 개씩 있는데 그 안에도 우리 친구들이 타고 있으니까 꼭 구해 주세요."

"알았으니까 너희들은 걱정 말고 올라가. 아저씨가 사람 구하는 것은 잘하니까 나만 믿어."

"어! 이지훈 셰프다. 그렇죠?"

"맞아."

선실의 문은 복도 쪽으로 밀어야 열리는 구조였다. 그런데 선수 쪽 복도는 이미 허벅지 근처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었고, 제일 안쪽에 자리한 네 개의 선실은 문이 물에 완전히 잠긴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안에서 아무리 용을 써도 문이 안 열렸는데, 지훈은 먼저 나온 아이들에게 로프를 넘기고는 제일 안쪽으로 내려갔다.

그곳은 이미 물이 턱 밑에까지 찬 상태라, 문을 열기 위해서는 차디찬 물에 몸을 완전히 담그고 잠수를 해야 했다.

'이거구나.'

헤드램프 불빛으로 문고리를 확인한 지훈은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하지만 복도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 물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서 꿈쩍도 안 했다.

'제발!'

"으으윽!"

보통의 힘으로는 문을 열 수 없다는 생각에 음양오행기를 운용한 지훈은 이를 악물고 최대한의 내력을 사용했다.

거대한 바위에 짓눌린 것처럼 꼼짝도 안 하던 문은 살짝 흔들리는가 싶더니 따라서 움직였고, 동시에 열려진 문을 통해서 선실 안으로 물이 쏟아졌다.

쏴아아악~!

"얘들아, 괜찮니?"

"허~푸! 괘……괜찮아요."

문 앞에 옹기종기 매달려 있던 네 명의 여학생은 폭포처럼 쏟아진 물벼락에 흠뻑 젖었는데, 지훈이 내민 손을 붙잡고 복도 위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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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 뭔 일이래?"

"사고가 난 것 아녀?"

"흐미, 저기는 물살이 센 곳인디."

"뭐 혀?"

"어디 가?"

"어디 가기는, 사람을 구해야지. 자네도 빨랑 따라와."

"알았어."

"어이, 김 씨, 전화해서 다들 배를 몰고 오라고 해."

"그랴!"

대형 여객선이 물에 잠기고 있는 모습은 좌우에 자리하고 있는 진도군 팽목항과 병풍도에서도 육안으로 관측 되었다.

고단한 새벽일을 끝내고 항구로 귀환한 어부들은 한쪽으로 기운 채 물에 선수 부분이 완전히 잠겨 있는 세모호를 발견하고는 너나없이 바다로 달려갔다.

비슷한 시각, 갑판 위에서는 종현과 철호라는 아이가 절단기로 압박을 풀어 낸 구명정을 바다에 밀어트리고 있었다.

"구명정 내려갑니다."

"수영할 줄 아시는 분들이 먼저 뛰어들어서 구명정을 잡아 주세요."

"내가 하겠네."

바다에는 10여 척의 구명정이 둥둥 떠 있었고 그 안에는 제법 많은 이들이 올라간 상태였다.

아울러 바다 위에는 구명조끼를 착용한 이들이 구명정을 향해서 필사적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웅근아, 소방 헬기가 오고 있어."

"헤엄 못 치는 사람은 저쪽으로 가서 헬기를 타세요."

"웅근아, 무서워."

"괜찮아. 난간을 잡고 오르면 쉽게 올라갈 수 있어."

"그러다가 떨어지면 어떡해."

"밑에만 안 보면 절대로 안 떨어지니까 안심해."

"난 떨어질 것 같아. 떨어지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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