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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온을 지키기 위해서 지훈은 호흡법을 펼치면서 몸속의 음양오행기를 계속 운기하고 있었다. 덕분에 차디찬 바닷물로 체온이 떨어졌음에도 지금껏 정신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잠수 요원들이 언제부터 구조에 투입되더라?'
기억에 의하면 잠수 요원들이 실제 구조 활동에 나선 것은 사고 발생일로부터 며칠 후였다. 그렇다면 이 상태에서 며칠을 버텨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헤드램프가 고장 나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탈출을 시도해 보겠는데.'
떨어지는 과정에서 뭔가와 충돌을 하면서 헤드램프는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렇다 보니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 지훈은 탈출할 엄두를 못 냈다.
막말로 호흡법을 통해서 숨을 어느 정도 참을 수는 있었지만 그동안에 어둠에 뒤덮인 선실을 빠져나간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리고 한번 이곳을 벗어나면 다시 찾아올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제한적인 공기를 이용해서 숨을 쉬며 저체온과 싸워 가면서 구조대가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이랑 수아가 많이 걱정하겠지? 어떻게 된 것이 시간을 거슬러 왔음에도 더 많은 걱정거리를 안겨 드리지?'
이전의 시간대에서는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기는 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부모님의 애간장을 태운 적은 없었다.
반면 이번에는 지하철 테러 때부터 시작해서 클럽에서 마약범으로 체포된 일에 심지어는 강도들에게 총을 맞은 일로 부모님의 속을 태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마당에 이런 일까지 당해서 큰 걱정거리를 안겨 줬으니 부모님에게 너무 죄스러웠다.
'휴대폰을 분실하지만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뒤늦은 후회지만 휴대폰 생각이 간절했다.
만약 휴대폰만 갖고 있다면 자신의 생존 사실을 알리고 이를 통해서 더 빠른 구조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휴대폰을 분실하지 않았다고 해도 바닷속에 빠진 이상 정상적으로 작동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비슷한 시각, 중국 출장을 다녀온 이재철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인터넷을 보다 말고 뭐가 그리 좋은지 껄껄거렸다.
'건방진 새끼, 그리 까불고 설치더니 꼴좋구나.'
중국에 있을 때만 해도 세모호의 침몰 사실을 몰랐던 이재철은 한국에 도착해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자신과 하등의 관련이 없다는 생각에 그냥 넘겨 버렸다
하지만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속보를 통해서 지훈의 실종 사실을 알게 되자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아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멍청한 새끼, 그러게 그런 병신 짓을 왜 해?'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중요하고 보람된 일은 없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각, 세상 사람들은 기적을 바라며 지훈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직 자기밖에 모르는 삶을 살았던 이재철은 위험을 자청한 지훈의 행동이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젠장, 그딴 놈이 죽는 것이 무슨 대수라고 이런 난리 법석을 떠는 거야?'
배가 바닷속에 가라앉고 지훈이 그 안에 갇혔다면 사실상 죽었다고 봐야 했다. 그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 이재철은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가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해당 기사는 리아와 레이나를 비롯해서 많은 유명 연예인들이 지훈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밑에는 같은 내용의 댓글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달려 있었다.
"병신 같은 것들 떼거리로 놀고 있네."
많은 사람들이 지훈을 걱정하며 그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고 있음을 알게 된 이재철은 자꾸 짜증이 났다.
더군다나 많은 이들이 지훈의 의로운 행동을 절대 잊지 말자며 일부러라도 가온누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기사를 보게 되자 기분이 완전히 잡치고 말았다.
"흥! 누가 보면 그놈이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인 줄 알겠네."
이번 일로 가온누리가 더더욱 널리 알려지겠다는 생각에 심사가 뒤틀린 이재철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자신의 SNS에 접속했다. 그러고는 별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을 떨지 말자며 지훈의 행동을 영웅화하는 많은 이들을 단체로 싸잡아서 비난하는 글을 작성했다.
게다가 그것만으로는 성에 안 찼는지 지훈이 없는 이상 가온누리의 음식 맛은 형편없어질 거라면서 다시는 가온누리를 찾지 않겠다는 글까지 올렸다.
"큭큭, 이제야 속이 풀리네."
욱한 마음에 가슴속의 말을 모두 토해 낸 이재철은 이제야 속이 시원한지 싱글벙글하는 표정으로 접속을 종료하고는 사무실을 벗어났다.
중국 출장의 후유증으로 몸은 피곤했지만 오늘처럼 기분 좋은 날은 분위기 좋은 곳에서 거하게 술 한잔 꺾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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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랑찰랑~!
무심한 바다는 오늘도 변함없이 파랑을 수없이 일으키며 부두의 기슭을 끊임없이 때렸다.
부두의 한편에는 늦은 밤까지 구조 활동을 펼쳤던 해군 특수부대 요원들과 그들과 함께 차디찬 바닷물로 뛰어들었던 민간인 잠수사들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잠수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허~참, 이런 싸가지 새끼."
"선배님, 왜 그러십니까?"
"TJ그룹의 차남이라는 새끼가 인터넷에 올린 글 봤어?"
"봤습니다. 그 새끼, 완전 또라이 같던데요."
"뭔, 그런 새끼가 다 있냐?"
"그러게 말입니다."
해군의 특수부대 요원들과 구조 활동을 함께 펼치고 있는 민간인 잠수사들은 다들 특수부대 출신이었다. 그래서 현역 특수부대원들은 그들을 선배님이라고 불렀는데, 어찌하다 보니 어제저녁부터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재철의 얘기가 튀어나왔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뇌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뜯어보고 싶어."
"재벌가들이 우리 같은 평범한 국민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른 사람을 구하다가 사고를 당한 영웅에게 그딴 식으로 말을 하면 안 되지."
"그래서 난리가 난 것 아닙니까? 듣자니 아예 TJ그룹 전체에 대한 반대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던데요?"
"그래야지. 그런 것들은 이번 기회에 단단히 혼이 나 봐야 해."
어제, 이재철이 홧김에 올린 글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불과 30분 만에 곳곳으로 퍼져 나간 이재철의 글을 읽은 네티즌은 이재철에 대한 비난에 그치지 않고 아예 TJ그룹 전체에 대한 강렬한 반감으로 이어 갔다. 그래서 각 포털 사이트에는 TJ그룹 반대를 위한 여러 가지 캠페인이 펼쳐지고 있었고, 일부 성급한 이들은 TJ의 사옥에 오물을 투척하기까지 했다.
"모두들 주목, 다들 준비 끝났지?"
"바로 출동 가능합니다."
"이상 있는 대원 있나?"
"없습니다."
특수 대원들과 민간인 잠수사들이 이재철에 대한 분노와 반감을 표출하고 있을 무렵 해군의 고위 장교가 다가왔다.
그가 다가올 때부터 모든 장비를 챙기고 일어섰던 구조대원들은 큰 목소리로 대답을 하며 당장이라도 구조 활동에 나설 수 있음을 알렸다.
"만 하루가 지난 만큼 실종자는 우리의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여러모로 악조건인 줄은 알고 있지만 걱정하고 있는 국민들을 생각해서라도 오늘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실종자를 구조해 내자. 알았나?"
"알겠습니다."
"조별로 단정에 승선한다."
"실시!"
네 대의 모터보트에 분산 승선한 구조대원은 사고 현장으로 빠르게 이동했고, 다시금 구조 활동을 재개했다.
같은 시각, 이재철은 그룹의 회장이자 아버지인 이현호에게 엄청나게 깨지고 있었다.
"어리석은 놈 같으니, 어쩌자고 그따위 글을 올린 것이냐?"
"죄송합니다."
"지금 죄송하다는 말로 이 상황을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저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습니다."
"멍청한 녀석, 너의 어리석음으로 그룹의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무너졌는데 이 일을 어찌할 생각이냐?"
"잘못했습니다."
"회장님, 진정하십시오. 이러다가 회장님의 건강까지 상할 것 같아서 무척 걱정스럽습니다."
"지금은 내 건강보다는 분노한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는 것이 우선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우선은 안정부터 찾으십시오."
이현호 회장의 옆에는 큰아들이자 작년부터 그룹의 후계자로 내정된 이재만 사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크게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현호부터 진정시켰다.
큰 잘못을 저지른 탓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이재철은 그 와중에도 이재만을 못마땅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자신이 궁리해 낸 해결책을 제시했다.
"일이 불거진 이상 전 조용해질 때까지 한동안 외국에 나가 있겠습니다."
"뭐가 어쩌고 어째?"
"문제의 당사자인 저만 없으면 곧 잠잠해지지 않겠습니까?"
"이런 철딱서니 없는 놈! 일을 저지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외국으로 도망을 치겠다고? 이놈, 네가 아직도 스무 살 어린 학생인 줄 아느냐?"
젊었을 적 사고를 쳤던 이재철은 도망치듯 외국 유학을 간 적이 있었다.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 이재철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외국으로 나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너무도 달랐다.
막말로 그때는 나이도 어렸고 회사의 임원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어린 나이의 치기로 이해해 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룹의 임원이었다. 그러니 그때처럼 외국으로 도망치면 일이 잠잠해지기는커녕 더 큰 비난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이재철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고, 이현호는 그런 이재철이 답답해서 자기 가슴만 두드렸다.
"으이구~! 저런 것을 아들이라고 전무 자리에 앉혔으니, 내가 죽일 놈이다."
"회장님, 진정하십시오."
"재만아,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느냐?"
마음이 너무 답답해서일까? 이현호는 평소와는 달리 직책을 부르지 않고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이재만은 그런 아버지의 등을 살살 두드린 후에 이재철을 바라봤다.
"이 전무, 내가 생각할 때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딱 한가지밖에 없네."
"뭡니까?"
"기자회견을 열어서 직접 사과를 하게. 그 자리에는 회장님을 대신해 나도 참석해서 함께 사과를 하겠네."
"별것도 아닌 일로 저보고 머리를 숙이라는 것입니까?"
"이놈아, 별것도 아니라니? 네놈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이냐?"
"아버지!"
"잔소리 말고 네 형 말을 들어. 재만아, 사과를 하면 이번 일을 무마할 수 있겠느냐?"
"사과를 한다고 모든 일을 덮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과를 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면 되겠느냐?"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일시적이라도 이 전무에 대한 징계성 인사를 내려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구조 활동과 관련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 그게 좋겠구나."
"아버지,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것입니까? 저를 징계한다니요,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징계를 받아야 합니까?"
"이런 답답한 놈, 정녕 네놈이 뭘 잘못했는지 몰라서 묻는 것이냐?"
마지막까지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깨치지 못한 이재철은 완벽하게 이현호의 눈 밖에 나서 전무에서 직위 해제 되고 두레의 중국 지사장으로 좌천되었다. 물론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도 결정 나서 그날 저녁에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기자회견장에 가서 머리 숙이며 눈물까지 흘렸다.
하지만 그가 흘린 눈물은 참회의 의미가 아니라 후계자의 자리에서 완전히 멀어진 것이 분해서 흘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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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난 지 이틀이 지났다.
온 국민과 세계인의 애타는 마음에도 지훈의 구조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사이 파리에서 날아온 수아가 현장에 당도했다.
방송에서는 온갖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놓고 생존 가능성이 몇 퍼센트라는 별 근거도 없는 얘기를 떠들며 희망 고문을 했다.
그 탓에 온 국민의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을 무렵 베이징에서는 5국 7과의 요원들이 모두 모여서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하고 있었다.
"팀장님, 이틀이 지난 지금 상태라면 이지훈은 벌써 죽었다고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