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211화 (211/219)

<-- 211 회: 7-23 -->

"나도 알아."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움직여야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는 한데 한 가지가 의심스럽단 말이야."

"뭐 말입니까?"

"세모호는 왜 침몰했을까?"

"그거야 놈이 우리 사회에 혼란을 주기 위해서 일을 저지른 것 아니겠습니까?"

"정말 그럴까?"

"그것 말고는 이유가 없잖습니까?"

5국 7과의 요원들은 지훈을 국내에서 암약하는 여러 간첩단의 총책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직까지 정확한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세모호의 침몰도 그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 즉, 지훈이 세모호를 침몰시켰다고 추측했다.

"그렇다면 그자가 왜 사람들을 구조했을까?"

"잘은 모르지만 마지막에 무슨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 아닐까요."

"무슨 심경 변화?"

"어린 고등학생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그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간첩단의 총책을 맡고 있는 자가 그렇게 쉽게 심경의 변화가 왔을까?"

"하지만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세모호의 침몰 원인으로 그것이 제일 유력합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난 그자가 승객들을 구조하고 대피를 유도했다는 것이 아직도 이해가 안 돼."

"팀장님, 단순하게 생각하죠."

"어떻게?"

"사람이 몇 명이 죽든, 대형 여객선이 침몰하면 혼란이 오는 것은 당연하잖습니까?"

"그런데?"

"놈이 노린 것은 사망자의 숫자보다는 혼란, 그 자체이지 않았을까요?"

"저도 박 계장님 생각과 같습니다. 아마도 놈은 그걸 노리고 일을 저질렀을 것입니다."

"팀장님, 그리고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게 뭔데?"

"만약 그자가 실종되지 않고 무사히 탈출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많은 사람을 구조하고 대피까지 유도했으니 지금처럼 영웅이 되었겠지."

"바로 그겁니다! 놈은 프랑스에서도 그런 전력이 있습니다. 아마 놈은 그렇게 해서 더더욱 자신의 지명도를 알리고, 공작에 자신의 유명세를 적극 활용했을 것입니다."

"그렇군!"

"맞아, 그거였어!"

지훈을 간첩단의 총책이라고 단정을 해서 그런지, 5국 7과의 요원들은 한편의 시나리오를 멋들어지게 만들어 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들의 추측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어떡하지?"

"놈이 바다에 수장된 이상, 이쯤에서 덫을 걷어 올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금 당장은 문형석밖에 없잖아?"

"그자를 잡아들여서 족치면 뭐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5국 7과의 요원들은 사실상 지훈이가 죽었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지금까지의 노력이 허사가 된 것 같아서 무척 허탈해했는데 그 때문인지 문형석을 당장 검거하자고 했다.

"그래 봐야 그자가 관리하는 한 개의 조직밖에 없잖아? 그러니 문형석을 계속 감시하면서 새로운 총책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어?"

"그게 좋기는 한데 국내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국내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며칠 전에 국내의 부서에서 박용성과 관련한 문의가 6과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박용성이야 국내에서도 파악하고 있는 인물인 만큼 그럴 수도 있잖아?"

"그게 이상한 것이, 이지훈이 박용성과 접촉을 했는지 물어봤다고 합니다."

"뭐라, 왜?"

"국내에서 1급 보안으로 물어 왔기에 그 연유를 물어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1급 보안으로 물어 오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팀장님, 박용성과의 접촉 여부를 물어 왔다면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는 것 아닐까요?"

"팀장님, 이런 상황이라면 국내에서도 이지훈을 수사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면 문형석의 존재도 이미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런~!"

"팀장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그 친구들이 선수를 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위승환은 보다 확실한 건수를 올리기 위해서 지금껏 뜸을 들이며 수사를 지휘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의 여러 개 간첩단을 관리하는 총책의 실체를 밝힐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대의 간첩단을 검거하는 셈이었다.

그럴 경우 같은 팀원들은 물론이고 자신도 출세 가도를 달릴 수 있다.

하지만 국내의 부서가 끼어들어서 먼저 선수를 치면 그때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었다.

"문형석은 지금 어디 있지?"

"지난주에 국내로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자를 중국으로 불러들일 수 없을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잘못했다가는 놈이 눈치채고 잠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국내에서 검거해야 한다는 건가?"

"국내 부서와 마찰이 생길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팀장님, 결정을 내려 주십시오."

"지금 당장 서울행 비행기를 알아봐. 최대한 빨리 서울로 들어간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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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의 높은 담벼락을 따라서 줄줄이 심어진 조경수에는 제철을 맞아 흐드러지게 피어난 붉은 꽃이 주황색 가로등 불빛과 한데 어울리며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가다 말고 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꽃잎을 바라보던 문형석은 무슨 연유인지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이 사장, 사람 애간장 그만 태우고 빨리 나오시오. 아직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어서!"

옆에 아무도 없건만, 빈 허공을 향해서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말을 내뱉은 문형석은 축 처진 모습으로 자동차에 올랐고, 시동을 걸기 무섭게 라디오부터 틀었다.

때마침 흘러나온 뉴스에서는 세모호와 관련한 얘기가 나오고 있었는데, 지훈을 구했다는 내용은 없었다.

'이 사장, 제발 살아서만 나와 주시오!'

혹시나 싶어서 뉴스가 끝날 때까지 귀 기울이던 문형석은 다른 프로가 시작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차를 몰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비원은 문형석의 차가 다가오자 멋들어지게 거수경례를 하고는 차단기를 올렸다.

'하~아! 술이나 한잔해야 할까?'

공장을 나선 문형석은 퇴근 시간이 지난 탓에 한산해진 공단 도로를 따라서 천천히 차를 몰았는데, 어느 틈엔가 두 대의 차가 앞뒤에 달라붙었다.

-팀장님, 목표가 나왔는데 바로 덮칠까요?

"뒤쪽 상황은 어때?"

-따라오는 차가 없어서 한산합니다.

"CCTV 확인했어?"

-없습니다.

문형석을 포위하듯 앞뒤에 달라붙은 두 대의 차량에는 위승환이 이끄는 5국 7과의 요원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한국에 당도하기 무섭게 바로 이곳으로 달려온 이들은 국내 부서의 다른 요원들이 달라붙기 전에 문형석을 붙잡을 생각이었다.

"괜한 의심을 피하려면 접촉 사고를 내는 게 자연스러울 거야."

-그럴 생각입니다.

"상황 봐서 알아서 시작해."

-무전 종료하면 바로 들이대겠습니다.

"OK!"

위승환과 교신이 끝나자마자 박 계장은 문형석의 차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지훈을 생각하느라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했던 문형석은 뒤에서 전해지는 충격에 휘청거리다가 브레이크를 밟고는 백미러를 통해서 뒤를 봤다.

뒤에는 국산 승합차 한 대가 멈춰 있었는데, 운전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왔다.

'차가 많이 깨졌을까?'

살짝 놀라기는 했지만 딱히 다친 곳은 없기에 차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 문형석은 사과를 하며 명함을 건네는 상대방 운전자와 인사부터 나누었다.

"죄송합니다. 살짝 한눈을 팔았더니…….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딱히 다친 곳은 없지만 일단 보험회사부터 불러서 사고 처리를 해야지 않겠소?"

"그래야죠.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의도적으로 사고를 낸 박 계장은 핸드폰을 찾는 척하면서 상의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다가 옆의 동료에게 눈짓을 했다.

박 계장의 눈짓에 어딘가와 통화를 하고 있던 또 다른 사내가 움직였고, 순식간에 제압된 문형석은 두 사내에 의해 승합차로 옮겨졌다.

얼마 후, 문형석을 붙잡는 데 성공한 5국 7과의 요원은 서울 외곽의 한적한 창고에 당도했다.

"다……당신들 누……구요?"

"문형석, 잔소리 말고 옷부터 벗어."

"날 어쩌려고 그러는 것이오?"

"이 자식이, 옷부터 벗으라니깐!"

5국 7과의 요원은 공포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일단 문형석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 채 으쓱한 창고로 끌려온 문형석은 한참을 두들겨 맞고 축 늘어졌다.

"옷 벗겨서 소지품부터 검사해."

"알겠습니다."

"왜 이……이러는 겁니까?"

"빨갱이 새끼, 닥치지 못해!"

"빨갱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문형석, 몰라서 물어?"

"이봐, 척 보면 모르겠어? 우리는 네놈 같은 빨갱이를 잡아들이는 국가 정보기관의 요원들이야."

"제……제가 빨갱이라니요?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닥쳐, 새꺄!"

요원들은 문형석의 옷을 벗겼다.

자신이 왜 끌려온지도 모르고 있던 문형석은 상대가 간첩운운하자 깜짝 놀라며 부정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것은 무자비한 폭력뿐이었고, 그사이 문형석은 벌거숭이가 되었다.

"이상한 물건은?"

"정밀 조사를 해 봐야겠지만 없는 것 같습니다."

"치밀한 놈이군."

"명색이 한 조직을 관리하는 자인데 어련하겠습니까?"

"취조실로 데려가."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상대가 믿어 주지 않고 폭력만 행사하자 겁에 질린 문형석은 요원들을 따라서 책상과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작은 사무실로 따라갔다.

"문형석, 이미 정체가 드러났는데 어렵게 가지 말고 쉽게 가자. 그게 너에게도 좋을 거야."

"오해입니다. 제가 간첩이라니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자식, 말로 좋게 하려고 했더니 끝까지 오리발이야?"

"정말입니다. 전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입니다."

"너, 박용성이 알지? 중국에서 박용성이 자주 만났지?"

"사업 때문에 만났습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그 자식이 북한 대외연락부의 고위 간부인 것을 알아, 몰라?"

"네? 몰랐습니다."

"몰랐다고, 그러면 이지훈이가 국내 간첩단의 총책이란 것도 모르고 있었겠네?"

"누구요?"

"이 자식이 어디서 능청이야? 세모호를 침몰시키다가 재수 없이 같이 물에 빠져 버린 이지훈이 몰라?"

"이지훈 씨가 그런 일을 했을 리 없습니다. 오해입니다, 오해!"

"오해라고? 이 자식,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이봐, 정신이 번쩍 들게 살짝 어루만져 줘."

"문형석, 쉽게 가자고 했지?"

문형석이 박용성을 만난 것은 철저히 비즈니스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지훈이가 간첩단의 총책이고, 그가 세모호를 침몰시켰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문형석은 아니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애당초 문형석과 지훈을 간첩으로 단정하고 있는 요원들은 다시금 폭력을 행사했고, 거듭된 폭력에 문형석은 축 늘어졌다.

"팀장님, 기절했는데요?"

"물을 끼얹어서 깨워! 날을 새우는 한이 있더라도 이자가 관리하는 하부 조직원의 명단을 알아내."

"염려 마십시오. 적당히 어르고 달래면 제깟 놈이 안 불고 배기겠습니까?"

"다시 시작해."

"알겠습니다."

12.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차디찬 바닷물은 아무리 음양오행기를 운기해도 뼛속 깊이 시린 한기를 안겨 주었다. 더군다나 계속해서 잠을 안 잤더니 얼마 전부터는 견디기 힘든 수마가 밀려오고 있었다.

'자면 안 돼, 자면 죽어!'

차디찬 물속에 있으면서도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호흡법을 펼쳐서 음양오행기를 계속 운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서 잠에 취한다면 그때는 호흡법을 펼칠 수가 없을 것이고, 결국에는 익사를 하거나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

'대체 시간이 며칠이나 흘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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