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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대용으로 사용하던 핸드폰을 분실한 데다 어둠이 깃든 곳에서 지내다 보니 시간 개념이 사라졌다. 그래서 짐작일 뿐이지만 얼추 칠팔 일은 지난 것 같았다.
'이쯤이면 구조대가 들어와야 하는데……. 혹시 내가 실종된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아냐?'
지훈은 모르고 있지만 지금은 사고가 난 지 딱 사흘이 지난 상태였고, 구조대가 계속해서 선실 접근을 시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악조건이 맞물리다 보니 절로 마음이 약해져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냐! 웅근이와 종현이가 날 봤으니 지금쯤은 구조대가 열심히 움직이고 있을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은 지훈은 호흡법을 펼치는 도중에도 점점 감각이 사라지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나마 이 안에 갇히면서 얻은 소득은 워낙 능숙해져서 이제는 숨 쉬는 것처럼 자유로워진 호흡법과 부쩍 커진 단전이었다.
'지금 정도면 주먹 두 개를 합쳐 놓은 것보다 더 커진 것 같은데.'
살기 위해서라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호흡법을 펼쳐서인지 단전은 놀랄 만큼 커져 있었다.
게다가 능숙해진 호흡법으로 인해서 이제는 음양오행기의 세분화도 숙련되어서 수기와 화기처럼 상극의 성질을 갖고 있는 두 가지 기운을 동시에 분출할 수도 있었다.
'만약 여기서 살아 나갈 수만 있다면 더욱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을 텐데…….'
고독함과 추위 그리고 졸음과 배고픔을 이겨 내기 위해서 지훈은 의식적으로 행복한 상상을 많이 했다.
어딘가에서 희미하게나마 뭔가가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구조대일까?'
방금 전 희미하게 들려온 것은 분명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였다.
어쩌면 구조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든 감각을 집중한 지훈은 다시금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
'구조대야!'
마침내 구조대가 선실 안까지 접근했다는 생각에 지훈은 맨손으로 벽을 때렸다. 그러다가 한쪽 구석에 쌓여 있는 식판을 두 개 가져와서는 그걸 징처럼 서로 부딪치며 계속 소리를 냈다.
팅~팅! 퉁~! 퉁퉁~! 팅팅팅팅~!
희미하게 들려오는 금속성에 화답하듯 식판을 연신 두들기던 지훈은 금속성이 점점 가깝게 들려오자 더욱 힘을 내서 강하게 두들겼다.
"이쪽입니다!"
퉁퉁~!
"여기예요!"
팅팅팅~! 퉁퉁~!
"여기요, 여기!"
"이지훈 씨?"
"네."
"살아 계셨군요?"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물속에서 점차 드러나는 주황색 빛을 발견한 지훈은 큰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결국에는 두 명의 구조대원을 만나는 데 성공했다.
기적적으로 지훈을 찾은 구조대원은 동그란 수경을 벗고는 지훈의 건강 상태를 물었다.
"추운 것도 문제지만 너무 졸음이 옵니다. 대체 며칠이나 지난 것입니까?"
"오늘이 딱 사흘째입니다."
"사흘요? 난 최소 일주일은 지난 줄 알았는데 그것밖에 안 지났습니까?"
"어둡고 밀폐된 곳인 데다 혼자 있어서 더 그랬을 것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실종자는 몇 명이나 됩니까?"
"이지훈 씨가 유일한 실종자입니다. 정말 장한 일을 하셨습니다. 아마 이지훈 씨가 아니었다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큰 위험에 처했을 것입니다."
"그나마 나 혼자라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물 밖까지는 시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각종 시설물이 뒤엉켜 있는 데다 시야가 탁하고 조류가 심해서 최소 20분 이상은 걸립니다."
"산소통이 없으면 나가기 힘들겠군요?"
"수영은 할 줄 아십니까?"
"수영은 잘합니다."
"호흡기는 사용할 줄 아십니까?"
"살려면 배워야죠."
"남은 산소가 많지 않아서 일단 올라갔다 와야 하는데,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있겠습니까? 나가면서 유도선을 설치한 후에 이지훈 씨의 장비와 물을 가져오겠습니다."
"다시 오시는 거죠?"
"물론입니다."
"농담입니다. 지금껏 기다렸는데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으니 어서 다녀오십시오."
"최대한 빨리 돌아올 테니 마지막까지 힘을 내십시오."
"아직은 버틸 만하니까 걱정 마십시오."
두 명의 구조 요원은 에어 포켓 한쪽 구석에 로프를 연결하고는 다시금 잠수를 했다.
얼마 후, 구조선으로 올라온 두 명의 대원은 에어 포켓에서 버티고 있는 지훈을 발견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이지훈 씨는 무사한가?"
"무사합니다."
"저희가 그곳까지 다시 들어갈 것이니 슈트와 산소통 그리고 식수와 헤드램프를 챙겨 주십시오."
"다시 들어갈 수 있겠는가?"
"걱정 마십시오."
원래 잠수를 하고 나오면 충분한 휴식을 해야만 잠수병의 위험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두 명의 대원들은 자신들이 다시 나서지 않으면 지훈을 찾는 데 시간이 꽤나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재차 잠수를 하겠다고 했다.
잠시 후,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구조팀은 마지막 잠수에 돌입했고, 지훈의 생존 사실은 무전을 통해 대책본부에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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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을 통해서 지훈의 생존 사실을 확인한 대책본부에서는 별안간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갑작스레 터져 나온 함성 소리는 대책본부 주위에 있던 방송국과 언론사의 기자들도 들었고, 그들은 본능적으로 낌새를 알아차리고 몰려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혹시 이지훈 씨와 관련한 소식이 들어온 것입니까?"
"방금 전 함성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지훈 씨를 찾았습니까?"
함성 소리를 듣고 몰려온 기자들은 대책본부 관계자에게 연신 질문을 쏟아 냈고, 지훈의 생존 사실을 확인했다.
"이지훈 씨는 무사합니까?"
"무사합니다."
"의식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구조 요원과 만나서 농담까지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상태입니까? 구조가 되어서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까?"
"아! 아직은 선실 안에 있습니다만 구조대가 다시 투입된 만큼 곧 구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조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입니까?"
"구조대가 여분의 잠수 장비를 챙겨서 들어간 만큼 함께 나올 것으로 여겨집니다."
보다 정확한 상황을 알게 된 기자들은 기적적인 구조 소식을 발 빠르게 알렸다.
진도 팽목항에서 전해 온 긴급 속보로 인해 모든 방송사는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특별 생방송을 내보냈다.
지훈의 생존 사실은 지구촌 곳곳에도 알려졌는데 사고 이후 남한의 방송을 계속 체크하던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위원장 동지, 긴급 속보입네다."
"뭡네까?"
"이지훈 동무의 생존 사실이 확인되었고, 지금 구조 작업에 들어가고 있답네다."
"기래요? 날래 틀어 보라요."
"알갔습네다."
"위원장 동지, 이지훈 동무래 구출된다면 이남의 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내야지 않갔습네까?"
"기래야지. 연결하시라요! 아! 이번 참에 남조선에 큰 선물을 줘야갔어."
"위원장 동지, 남측의 요구 조건을 모두 수용하시겠다는 것입네까?"
"기래야 이지훈 동무래 기뻐하지 않갔소?"
"그럴 것입네다."
"날래 연락하시라요."
"알갔습네다."
남한을 다녀온 림용순이 비밀리에 개설한 핫라인을 통해서 청와대와 통화를 시도하고 있을 무렵 국무회의를 진행하고 있던 오바나 미국 대통령도 참모진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여러분, 기쁜 소식입니다."
"각하, 무슨 일입니까?"
"코리아의 이지훈 셰프가 생존해 있고 곧 구조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하나님."
"각하, 아주 기쁜 소식인데 다 같이 박수를 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우리 모두 이지훈 셰프의 구조를 축하합시다."
"와아아~!"
짝짝짝~!
각국 정상들과의 친분도 있지만 대형 참사를 막아 내고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사람을 구하다 위기에 빠진 지훈의 행적은 존경과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렇다 보니 먼 나라의 일이지만 함께 안타까워하며 걱정했던 지구촌의 많은 이들은 갑작스러운 속보에 크게 기뻐하며 감격의 포옹과 악수를 나누었다.
한편 북한의 제안과 관련하여 관계부 장관 회의를 하고 있던 박미혜 대통령은 보고를 받기 무섭게 팽목항으로 직접 가겠다며 헬기를 준비하게 했다.
"각하, 북한의 김정문 위원장이 축하 전문을 보내왔습니다."
"마음 써 줘서 고맙다는 답전을 보내세요."
"각하, 미국의 대통령도 축전을 보내왔습니다."
"각하,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축전을 보내왔답니다."
글로벌 시대이다 보니 거의 실시간으로 소식을 접한 각국의 정상들은 진심 어린 축전을 보내왔고 대통령은 담당자로 하여금 답전을 보내게 하고는 팽목항으로 이동했다.
팽목항 상공에는 이미 각 방송사의 헬기가 떠 구조 상황을 촬영하고 있었고, 그 장면은 곧장 TV로 방영되었다.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MBS 이대기 기자입니다. 저는 지금 헬기를 타고 구조 작업이 펼쳐지고 있는 사고 해역을 비행 중입니다."
-이 대기 기자, 지금 이지훈 씨의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까?
"아직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만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는 구조선의 상황으로 봤을 때 곧 구조 소식이 들려올 것 같습니다."
-이지훈 씨가 무사하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이 걱정하고 있는 것은 이지훈 씨의 건강입니다. 혹시 그것과 관련한 소식은 들은 것이 있습니까?
"대책본부 관계자에 의하면 건강 상태는 양호하며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졸음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추위와 배고픔은 알겠는데 졸음을 호소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건 저체온증과 관련이 있는데, 물속에서 의식을 잃으면……. 아! 말씀드린 순간 물속에서 여러 개의 기포가 올라오는 것이 보입니다."
-이지훈 씨가 구조되어 올라온다는 건가요?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아! 물속에서 잠수복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고 있습니다."
-모두 몇 명인가요? 알려지기로 여섯 명의 구조 요원들이 들어갔다니 이지훈 씨까지 해서 일곱 명이 나와야지 않습니까?
"오~! 국민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이지훈 씨가 기적적으로 사흘 만에 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현재 제 눈에는 잠수복을 착용한 일곱 명이 구조선에 오르고 있는 것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대기 기자, 일곱 명인가요? 일곱 명이 확실한가요?
"네, 그렇습니다. 물속에서 솟아오른 이는 모두 일곱 명이고 그중의 한 명은 이지훈 씨로 짐작됩니다. 국민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마침내 우리의 영웅 이지훈 씨가 구조되었습니다."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보니 헬기까지 동원해서 항공촬영에 나선 각 방송국은 구조선에 오른 일곱 명을 클로즈업해서 촬영하기 시작했다.
TV를 통해 생방송으로 방송되는 구조 광경을 지켜보던 국민들은 잠수 장비를 벗고 담요를 두르는 지훈의 모습이 화면에 나오자 함성을 지르거나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한편 구조대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생존의 기쁨을 나누던 지훈은 구조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각 방송사에서 헬기까지 띄웠다는 말에 그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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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선에 오른 직후부터 팽목항에 도착할 때까지 지훈의 일거수일투족은 방송을 통해서 전국에 중계되었다.
잠시 후, 팽목항에 도착한 지훈은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부모님과 여동생 그리고 수아를 발견한 순간 자기도 모르게 뛰어가서 얼싸안았다.
"이놈아, 어떻게 된 일이야?"
"아들, 장하다!"
"죄송해요."
"오빠, 좀 조용히 살면 안 돼?"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미안해."
"아냐,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 줘서 정말 고마워."
"나 때문에 한국에 온 거야?
"오빠가 사고를 당했다는데 당연히 와야지."
"레스토랑은 어떡하고?"
"마스터가 아무 걱정 말고 다녀오래. 마스터님도 오빠 걱정을 얼마나 하고 계신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