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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사람들을 어찌할까요?
칠흑처럼 새까만 하늘에 띄엄띄엄 자리를 잡은 몇 개의 별이 보란 듯이 빛을 뽐내기 시작했고 잔잔한 달빛은 간간이 부는 바람을 타고 지상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서울 하늘이 밤에 물들어 가고 있을 무렵, 성남에 있는 서울공항에 한 대의 항공기가 착륙했다.
"위원장 동지, 다 왔습네다."
"남조선이 많이 발전했다더니, 고층 빌딩이 즐비한 것이 허튼 소리가 아니였나봅네다."
"위원장 동지께서 영도하는 이상, 우리 북반부도 조만간 그렇게 될 것입네다."
"기래야죠. 내래 인민과 공화국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 가릴 생각이니, 동무들도 각오하시라요."
"물론입네다."
겉면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비행기에서 내린 이들은 북한의 최고 권력자인 김정문 국방위원장을 비롯해서 림용순 노동당 제2비서와 김정택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이들 세 사람은 서울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던 정홍식 국무총리와 한민수 국방장관과 만나서 악수를 나누었다.
"위원장님, 어서 오십시오. 남한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북조선의 최고 권력자가 남한을 방문하는 것은 내래 처음이지요?"
"그렇습니다."
"내래 어려운 걸음을 한 만큼 우리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 남조선의 대통령과 많은 논의를 하고 갈 것이오."
"그러셔야죠."
"대통령 각하의 건강은 어드렇소?"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하십니다."
"무탈하다니 아주 좋소. 내래 금강산에서 채취한 자연 송이를 넉넉히 가져왔으니, 동무들도 가져가시라요."
"감사합니다."
"위원장님, 가시지요. 저쪽에 차를 대기시켜 놨습니다."
"기래야죠. 참! 이지훈 동무래 괜찮습네까?"
"세모호의 영웅인 이지훈 씨를 얘기하시는 거라면 건강을 완벽하게 회복했으니 걱정 안 하셔도 좋습니다."
"건강하다니 다행입네다. 그나저나 이번에 그 동무래 만드는 음식을 또 먹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네까?"
"이지훈 씨의 요리를 드시고 싶으신 것입니까?"
"기렇습네다. 가능하겠습네까?"
"최대한 힘을 써 보겠습니다."
"부디 힘 좀 써 주시라요. 그 동무래 요리가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우리 민족의 영웅인데 여기까지 온 이상 만나 보고 가야지 않겠습네까?"
"알겠습니다."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은 지훈이 베이징에서 김정문을 만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훈을 만나고 싶다는 김정문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어딘가로 연락을 했다.
비슷한 시각 가온누리를 나선 지훈은 주차장으로 향하다가 수아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수아야, 왜?"
-오빠, 어디야?
"지금 막 가게 나왔어."
-왜 이렇게 늦었어?
"아는 분들이 찾아와서 빨리 나올 수가 없었어. 그런데 넌 어디야?"
-난 지금 집에서 어머님과 함께 요리하고 있지.
"최대한 빨리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렇다고 너무 급하게 오지 말고 안전 운전 해.
"알았어."
며칠 후면 프랑스로 돌아가는 수아 때문에 오늘 저녁은 온 가족이 집에 모여서 식사를 함께하기로 했다. 그 때문에 지훈은 아직 가게가 끝나려면 멀었음에도 먼저 퇴근을 한 상태였다.
급하게 주차장으로 향하던 지훈의 시야에 골목 아래로 터벅터벅 내려가는 문형석의 부인이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아! 네. 뉴스를 통해서 무사히 구조되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다행이네요.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문 사장님은 잘 계시죠?"
"글쎄요? 잘 있겠죠. 잘 있었으면 좋겠네요."
"문 사장님, 외국 출장 가셨어요?"
"휴~우! 모르겠어요."
"그러면 국내에 계시나요?"
"글쎄요. 대체 어디 있는지, 저도 알았으면 좋겠네요."
문형석의 부인은 일주일째 행방이 묘연한 남편 때문에 실종 신고를 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는 그의 차가 발견된 공단 주변에서 하루 종일 남편을 찾는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반면 아직 문형석의 상황을 모르고 있는 지훈은 부인의 대답이 너무도 이상해서 반문을 했다.
"아주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문 사장님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요?"
"일주일 전, 공장에서 퇴근을 한 후에 행적이 끊겼습니다."
"행적이 끊겼다니, 행방불명이라도 되었다는 겁니까?"
"그러게요. 차는 있는데 남편은 없고, 전화도 계속해서 꺼져 있는 상태이고……. 제발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아! 혹시 바람을 쐬고 계시는 것 아닐까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요즘은 회사 일도 잘 풀려서 딱히 어려움은 없어요. 그러니 굳이 머리를 식힐 일도 없을 텐데 답답하네요."
"조만간 돌아오실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까요?"
"문 사장님이 회사 일에 엄청난 열정을 갖고 계신 것은 아주머니도 잘 알고 계시잖아요. 분명 오늘쯤이면 좋은 소식이 들려올 거예요."
"그렇게 되겠죠?"
"그럼요. 아마 충분한 휴식을 통해서 더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오실 거예요."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될 거예요."
하소연하듯 문형석의 안부를 걱정하는 그의 부인과 한참 동안이나 얘기를 나누던 지훈은 마지막까지 격려의 말을 전하고는 자신의 승용차에 올랐다.
주머니에 넣어 둔 스마트폰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온 것은 그 직후였다.
'누구지?'
시동을 키려다 말고 낯선 번호를 확인한 지훈은 화면을 조작해서 통화에 들어갔다.
"여보세요."
-이지훈 씨, 김기철입니다.
"어! 실장님, 무슨 일이세요?"
-지금 가게에 있습니까?
"네."
-중요한 손님이 와서 그러는데, 지금 바로 내가 있는 곳으로 와 줄 수 있겠습니까?
"지금 바로요?"
-조금 전에 경호실 요원들을 보냈으니까 그 사람들과 함께 와 주면 좋겠습니다. 이지훈 씨도 몇 번 본 적이 있는 요원들이니까, 얼굴 보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실장님,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데, 집에 잠시 들렀다가 가면 안 되겠습니까?"
-죄송합니다만 일정상 최대한 빨리 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VIP께서 이지훈 씨를 빨리 보고 싶어 합니다. 사담이지만 이지훈 씨가 실종되었을 때 그분도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실장님, 그분이 누구신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미안합니다만 국가 안보상 말해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지훈 씨도 그분을 만나면 무척 반가워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여기서 기다리죠."
청와대 비서실장이 VIP라고 표현하는 것이, 외국의 정상이거나 고위 각료인 것 같았기에 지훈은 그리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자신과도 이미 안면이 있는 사람인 것 같아서 누구인지 추측을 해 봤지만, 딱히 짐작 가는 이는 없었다.
김기철 비서실장의 연락을 받은 지훈이 수아에게 전화를 걸어서 변화된 상황을 알리고 있을 무렵 맞은편 골목에서는 두 명의 사내가 어둠 속에 숨어 지훈을 주시하고 있었다.
"계장님, 저자가 곧 움직일 것 같은데요."
"놈이 움직이면 바로 뒤따라가."
"물론입니다. 골목 어귀에 대기하고 있는 강 대리에게도 미리 연락해야지 않을까요?"
"그렇게 해."
지훈을 감시하고 있는 두 명의 사내는 5국 7과의 요원들인 박상호와 이현수였다. 둘은 다른 두 명의 요원들과 함께 오늘 밤 중으로 지훈을 체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곧 출발할 것으로 예상했던 지훈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계장님, 놈이 왜 안 움직이죠?"
"차 안에 들어가서 안 나오지?"
"그런 것 같은데요."
"전화하고 있는 것 아냐?"
"설마 전화를 지금까지 하고 있을까요?"
"한번 가 봐."
"제가요?"
"그럼, 내가 갈까?"
"알았습니다."
시간이 제법 흘렀음에도 차 안에 들어간 지훈이 꿈쩍도 안 하자 이현수가 어슬렁거리며 주차장으로 다가왔다.
그는 마치 손님인 척 가온누리로 향하다가 전화를 받는 척하며 몸을 돌려 차 안에 들어간 지훈을 힐끔 살피고는 본래의 장소로 돌아왔다.
"계장님, 차 안에 가만히 있는데요."
"무슨 꿍꿍이지?"
"계장님, 그냥 덮쳐 버릴까요?"
"주차장에서?"
"네."
"미쳤어, 그러다가 놈이 저항을 하거나 도망이라도 치면 어쩌려고 그래?"
"차 안에 있는데 도망칠 곳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다가 일이 복잡해지면 그때는 어쩌고?"
"제깟 놈이 총을 들이대면 뭘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일이 커지면 골치 아파지니까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마음이 급한 이현수는 더 기다릴 것 없이 바로 검거를 하자고 했지만 박상호가 반대했다.
그러나 10여 분이 더 흘렀음에도 움직일 기미가 전혀 안 보이자 결국에는 움직이기로 했다.
잠시 후, 골목 어귀에 있던 다른 두 명의 요원들까지 불러들인 박상호는 지훈의 차로 다가갔다.
똑똑~!
"이지훈 씨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국정원에서 나왔습니다."
"이지훈 씨, 같이 가 주셔야 하니 차에서 빨리 내리십시오."
지훈의 차로 다가간 박상호는 노크를 하듯 차 문을 두드리고는 자신들의 정체를 밝힌 후에 함께 가자고 했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네?"
경호실 요원들을 기다리고 있던 지훈은 박상호 일행이 국정원에서 나왔다고 하자 순간적으로 착각을 일으켜서 그들을 경호실 요원으로 오해했다. 그래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질문을 했다.
반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품속의 권총을 만지작거렸던 5국 7과의 요원들은 지훈이 차에서 순순히 내릴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다는 식으로 질문을 해 오자 어안이 벙벙했다.
"차는 어디에 있습니까?"
"밑에 있소."
"많이 기다리고 계실 것 같은데 빨리 가시죠."
"이 자식이 뭐라는 거야?"
"네? 뭐라 하신 겁니까?"
"이지훈, 누가 기다리고 있다는 거지?"
"이봐, 무슨 꿍꿍이야?"
"당신들 어디서 왔다고 했죠?"
"이 자식이 이제 와서 엉뚱한 소리 하고 있어."
"이지훈, 몸에 바람구멍 나기 전에 좋게 따라와라."
5국 7과 요원들을 따라서 주차장을 벗어나던 지훈은 그들과 몇 마디 나누고 나서야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네 명 중에서 단 한 명도 안면이 익은 사람이 없다는 점이 수상해서 머뭇거렸는데, 그 직후 이현수와 다른 요원이 권총을 꺼내 보이며 위협을 가했다.
'아뿔싸! 이자들은 경호실 요원이 아니구나.'
사내들의 정체가 경호실 요원이 아님을 깨달은 지훈은 그들의 정체를 조폭이거나 또는 조폭과 관련이 있는 자들로 오해했다.
지훈은 겁먹은 척 깜짝 놀란 모습을 보이다가 이현수와 다른 요원이 좌우 양쪽에서 다가오며 자신을 결박하려고 하자 몸을 틀며 다리와 주먹을 빠르게 놀렸다.
퍽-!
"컥~!"
퍼-퍽!
"억~!"
"이봐, 당신들 정체가 뭐야?"
"이 대리?"
"이 자식이, 감히!"
"계장님, 조심하십시오."
바로 옆에서 두 명의 요원이 얻어맞고 쓰러지자 박상호와 다른 요원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주먹과 발길질을 너무도 여유롭게 피한 지훈은 박상호의 품을 파고들며 그의 안면에 주먹을 꽂았다. 동시에 몸을 날려서 품 안을 만지작거리던 또 다른 사내의 턱을 오른발로 강하게 걷어찼다.
퍽-!
"커~억!"
박상호와 다른 요원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찰나,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이현수와 다른 요원이 정신을 차렸다. 그 둘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어나기 무섭게 권총을 뽑아 들고 지훈을 위협했다.
"꼼짝 마!"
"이지훈, 손들어!"
"비겁한 새끼들, 어디서 나온 놈들이냐?"
"개자식, 주둥이 닥치지 못해!"
"끙~!"
"계장님, 괜찮으십니까?"
"안면이 욱신거리기는 하지만 참을 수 있을 정도네."
상대가 권총으로 위협하는 통에 더 이상 어찌해 볼 수 없어 지훈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눈앞에서 세 대의 차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양복을 입은 여러 명의 사내가 권총을 꺼내 들며 달려온 것은 그때였다.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